영부인/미국
1. 개요
- 한국어 : 미국 영부인
- 한자 : 美國 令夫人
- 영어 : First Lady of the United States (약칭 : FLOTUS)
- 스페인어 : La primera dama de los Estados Unidos
2. 유명한 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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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직 영부인 질 바이든: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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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이 40명이 넘는 만큼 여러 영부인이 있었지만 미국의 역대 미국의 영부인 중에서 제일 평가가 높고 존경받는 사람은 바로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부인인 엘리너 루스벨트(1884~1962)이다. 여러 사회활동과 인권운동으로 가장 능동적인 활동을 펼친 영부인으로 당시 미국인들은 물론 남편 사후에도 미국인들의 국모 같은 존재였다. 남편 루스벨트가 자신의 비서였던 루시 마사와 불륜을 저지르는 행각[1] 때문에 남편과는 끝내 남 같은 사이로 지낼 뻔했지만 결국 대인배적 정신을 발휘하여 남편을 용서했다. 이런 사정 속에서도 그녀가 여러 사회복지활동, 인권운동 분야에서 이룬 업적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고 케네디가 대통령이 된 시기까지 활동을 계속했다. 그밖에 2대 존 애덤스의 부인이자 6대 존 퀸시 애덤스의 어머니인 애비게일 애덤스[2] , 4대 제임스 매디슨의 부인인 돌리 매디슨[3] , 38대 제럴드 포드의 부인 베티 포드[4] , 41대 조지 H. W. 부시의 아내이자 43대 조지 워커 부시의 어머니 바버라 부시[5] ,42대 빌 클린턴의 아내 힐러리 클린턴[6] 등이 좋은 평가를 받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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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도 검소한 성격으로 인정받은 데다가 이미 검은 재클린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라 평판이 괜찮은 편에 속한다. 여담이지만 미셸 오바마는 키가 180cm이기에 역대 미국의 영부인 중 가장 키가 크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고.
- 영부인 관련 여론조사를 할 때마다 항상 최악의 영부인으로 뽑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16대 에이브러햄 링컨의 영부인인 메리 토드 링컨이다. 최고의 대통령의 부인이 최악의 평가를 받는 것은 아이러니. 링컨이 결혼식장으로 가면서 "나는 지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은 매우 유명한 일화.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은 남북전쟁을 맞아 예산이라든지 전쟁 비용이라든지 등 국고를 어떻게 쓸지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는데 이 여인은 낭비벽이 심해서 백악관에 들어서자마자 2천 달러의 흰색 바늘뜨개 레이스 숄, 2천 달러의 가운, 1천 달러의 캐시미어 숄까지 질러버리고 한 달 동안 84켤레의 장갑을 구입했으며 백화점에 외상빚을 지기도 했다. 거기에 링컨에게 고압적으로 굴곤 해서 링컨을 놀래킨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거기다가 백악관 단장을 단장한답시고 국고의 돈을 함부로 썼으며, 심지어 남편이 암살당하고 장례식에 참석할 때에도 최고급의 상복을 주문했을 정도이며 의회에 품위 유지비가 필요하다고 탄원한 적도 있다. 당연히 언론이나 사람들의 평판은 최악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영부인은 항상 우아한 옷을 입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수입품을 사서 쓰는 것도 국고에 보탬이 되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결국 그녀는 남편이 죽고 10년 후에 '정신이상자'로 판명되어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그러나 백악관에서 자식을 잃은 적이 있는데[7] 그 충격이 컸는지 '심령술'에 빠져버려서 불행한 영부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어쨌든 이런 영부인과 연애결혼을 했고 주위의 악평에도 불구하고 결국 끝까지 곁에 둔 링컨도 대인배.
그러나 메리가 퍼스트 레이디로써의 역할을 아예 하지 않은 것만은 아니다. 그녀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좋은 학력의 소유자였고 프랑스어에 능통했으며 남북전쟁 중 부상자 막사를 위문하기도 했으며 남편과 함께 전장을 직접 시찰한 적도 있다. 그리고 전대나 후대의 퍼스트레이디들도 그녀만한 사치는 다 했기 때문에 딱히 메리만 비난할 수는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남편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이나 다름없는 링컨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이런 행동들이 메리를 평가함에 있어 더욱 악재로 작용한다.
그러나 메리가 퍼스트 레이디로써의 역할을 아예 하지 않은 것만은 아니다. 그녀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좋은 학력의 소유자였고 프랑스어에 능통했으며 남북전쟁 중 부상자 막사를 위문하기도 했으며 남편과 함께 전장을 직접 시찰한 적도 있다. 그리고 전대나 후대의 퍼스트레이디들도 그녀만한 사치는 다 했기 때문에 딱히 메리만 비난할 수는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남편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이나 다름없는 링컨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이런 행동들이 메리를 평가함에 있어 더욱 악재로 작용한다.
3. 역대 미국 대통령의 영부인
4. 이야깃거리
- 영부인이 없었던 대통령으로는 3대 토머스 제퍼슨, 7대 앤드루 잭슨, 8대 마틴 밴 뷰런, 15대 제임스 뷰캐넌, 21대 체스터 아서가 있다. 이 중 평생 결혼하지 않은 뷰캐넌을 제외하면 모두 대통령 취임 전에 부인이 사망한 경우다.[15] 일단 영부인 직책 자체는 다른 사람이 대신해 수행했다. 제퍼슨의 경우 딸이, 잭슨의 경우 조카와 며느리가, 밴 뷰런의 경우 며느리가, 뷰캐넌의 경우 조카가, 아서의 경우에는 여동생이 직책을 수행했다.
- 10대 존 타일러의 경우 첫 부인 러티샤가 대통령 임기 중 사망했고(1841~1842), 며느리 프리실라가 대행하다가(1842~1844) 두 번째 부인 줄리아와 재혼했다.(1844~1845)
- 22대/24대 그로버 클리블랜드의 경우 취임 당시 결혼을 하지 않은 관계로 여동생 로즈가 대행하다가(1885~1886), 프랜시스와 결혼했다.
- 23대 벤저민 해리슨의 경우 첫번째 부인 캐럴라인이 대통령 임기 중 사망했고(1889~1892), 딸 메리가 대행했다.(1892~1893)
- 28대 우드로 윌슨의 경우 첫번째 부인 엘런이 대통령 임기 중 사망했고(1913~1914), 딸 매거릿이 대행하다가(1914~1915) 두번째 부인 이디스와 재혼했다.(1915~1921)
- 6대 존 퀸시 애덤스의 영부인 루이자 애덤스와 45대 도널드 트럼프의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는 역대 영부인 중 미국 출생이 아니다.(각각 영국 출생, 유고슬라비아 출생이며 후에 미국에 귀화했다.)
- 역대 영부인 중 최고령 영부인은 9대 윌리엄 해리슨의 아내인 애나 해리슨(65세. 이하 나이는 영부인이 되었을 당시의 나이)이며, 그 다음으로는 41대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의 아내인 바바라 부시(63세). 최연소 영부인은 22대/24대 그로버 클리블랜드의 아내인 프랜시스 폴섬 클리블랜드. 그로버 클리블랜드가 대통령직에 취임한 직후 결혼했는데 당시 나이가 21세였다. 남편이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에 결혼한 영부인 중에서는 35대 존 F. 케네디의 아내로 유명한 재클린 케네디(31세)가 가장 어렸다.
- 영부인이 되기 전부터 가정주부가 아닌 직장인으로 활동한 인사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 특성상 영부인이 된 뒤에는 모두 퇴직하였다. 46대 조 바이든의 영부인 질 바이든은 직업이 학교 교수로 현직에서 활동하는 최초의 영부인이다.
[1] 1945년에 루스벨트가 뇌출혈로 사망할 때 루스벨트의 임종 자리를 지킨 여인은 엘리너가 아니라 루시였다.[2] 존 애덤스의 충실한 조언자이자 정치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동반자'였던 여인. 미국 드라마 <존 애덤스>에서 잘 나타난다. 이 드라마에서 특히 애비게일이 죽었을 때 존 애덤스가 "애비게일, 내 친구여..."라고 울부짖는 장면은 압권.[3] 1812년 영국과의 전쟁 때 영국군이 백악관 코앞에 온 상황에서 장교 한 명만 데리고 몸소 많은 공문서들과 기록물, 그리고 워싱턴의 초상화까지 모두 챙겨온 것으로 유명하다.[4] 베티 포드도 엘리너처럼 사회활동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다. 대통령으로서의 남편은 시원찮은 편이었지만.[5] 이 때문인지 심슨에서도 남편이 개그를 하고 있을 때 바바라 부시는 남편과 심슨 부자를 화해 시키려는 모습으로 나왔다. 호머가 이 부부의 아들들 모양으로 부시를 낚을 때 아들들을 별로 안 좋게 말하며 남편을 말린 걸 보면 자기 자식이라도 사람은 제대로 본 모양(?)[6] 그러나 본격적으로 정계에 진출한 뒤 온갖 논란과 구설수의 주인공이 되며 현재는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욕을 먹는 처지가 됐다.[7] 셋째 윌리로 1862년 백악관에서 사망했다. 에이브러햄과 메리 사이에서 4명의 자식이 태어났는데 그 중 성인으로 무사히 성장한 자식은 장남 로버트뿐이다. 둘째 에드워드는 링컨이 변호사일 때 사망했으며 막내인 토드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사망한 후 5년 뒤에 병으로 요절했다.[8] 미영전쟁 때 백악관이 불탔을 때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를 먼저 챙긴 일화 덕택에 이미지가 좋은 편.[9] MBC 드라마 로망스의 실제판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 왜냐하면 그녀는 사실 남편인 필모어의 담임선생님이었다![10] 아예 결혼을 안한 유일한 미혼 대통령이었다.[11] 위에도 거론되었듯이 남편은 반대로 미국인이 제일 존경하는 대통령 1위이다.[12] 남편과 27살의 나이차가 났다. 결혼할 때 당시 나이가 겨우 21살이었다고 한다. 덕분에 남편보다 훨씬 오래 살았다. 사실 남편은 아버지와 동료였으며, 남편은 그녀가 태어난 것도 본 사람이었다고 한다.(그녀가 태어난 기념으로 그녀의 유모차를 사주었다고.)[13] 병치레가 꽤 많았다고 한다. 특히 간질이 무척 심했다고. 남편인 매킨리가 그래서 매번 그녀를 챙겨주었다고 한다.[14] 본직은 노던 버지니아 커뮤니티 칼리지 강사인데, 영부인이 되고서도 본 직업이었던 교직을 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15] 1829년 3월 4일에 취임한 앤드루 잭슨의 부인 레이철 잭슨은 1828년 미국 대통령 선거일인 12월 8일에서 14일 후인 12월 22일에 사망했다.[16] 즉 역대 미국 대통령 & 영부인 중에 최초 + 유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