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여문

 

1. 소개
2.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呂汝文
? ~ 1598년
임진왜란일본에서 조선으로 귀화한 항왜 장수.

1. 소개


원래의 이름은 요여문(要汝文)[1]이었다. 투항한 일본인을 후대한다는 말을 듣고 투항을 결심하였다. 투항한 후에 귀화하였으며, 김충선과 함께 대표적으로 활약한 항왜 장수였다. 검술에 무척 능해 조선 조정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보통 왜인이 아니니, 대우를 후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
투항 후에는 주로 소년 부대인 '아동대'를 훈련시키며 검술과 시문을 가르치는 역할을 맡았고, 또한 일본군의 진법을 조선군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기록에 따르면...

"그 진법이 깃대를 진 자가 앞에 서고 조총을 가진 자는 다음에 서고, 창검을 가진 자는 또 그 다음에 서서 정연하게 대열을 이루고, 좌우에 또 교묘하게 기병(奇兵)을 설치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싸움에 임할 때마다 깃대를 진 자는 대열을 좌우로 분산하고, 조총을 가진 자는 총을 쏘며, 창검을 가진 자는 기세를 타고 돌진합니다. 깃대를 진 군사는 또 양쪽으로 에워싸고 나아가 좌우의 복병과 함께 적의 후미를 포위합니다. 이렇게 하여 분투하면서 분산할 때 또 많은 복병을 좌우에 배치하고, 조총과 창검으로 각각 하나의 부대를 삼아 숲속에 흩어져 매복하기를 마치 새와 짐승이 은복하듯 합니다. 그리고 도전할 때에는 반드시 소수의 군사로 유인하여 적이 매복한 곳에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잇따라 일어나 공격합니다. 그들이 해치고 모이면서 복병을 하는 형상을 보건데, 몹시 교사[2]

합니다." - 조선왕조실록 선조 29년 갑인조(2월 17일)

실록 등에 확인되는 바에 의하면, 여여문은 1593년에서 1594년 사이에 조선에서 결혼했는데 이때 얻은 처와 자식들을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에게 잃었다. 이후 명나라의 장수 양호가 이끄는 경주 진공 작전에 참여, 일본군의 복장을 하고 정탐 임무를 수행하여 높은 공적을 세웠으며, 이후 1598년 1월 울산성 공략에 참전해서 주로 척후 및 정찰 임무를 수행했으며 상당량의 수급을 거둔 것과 동시에 울산성 구원을 위해 접근해 오는 일본군 구원 부대의 규모와 기동로 등을 성공적으로 파악하는 공적을 세웠다... 고 추정된다.
추정된다고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길에 명군 진지에 들렀다가 마침 챙긴 수급을 내놓으라는 명나라 장수의 생떼에 대들다가 그 자리에서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여여문을 죽인 명나라 장수는 직산 전투에도 참전한[3] 명나라 장수 중 제일 품계가 낮은 인물이었던 유격 파새로,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었으나 그로부터 며칠도 지나지 않아 병들어 죽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이미 와병 중인 상태에서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여여문의 정확한 사망 시점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울산성 전투 종결 3일 ~ 4일 전으로 보인다. 사망 시점, 그리고 여여문이 수행한 임무의 달성 수준을 추측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를 죽인 사람이 파새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쨌든 선조는 이를 매우 슬프게 여겼으며, 이덕형은 논상을 청했다

2.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 당혹스럽게도 게임 임진록 2에는 지뢰를 매설하고 폭탄을 던지는 명의 장수로 나온다. 만약 여여문이 실제로 살아서 이것을 본다면 까무러칠 노릇. 명의 장수가 부족해서 생긴 일인지 이름이 중국스러워서(...)인지[4], 여하간 충공깽... 그래도 지뢰 때문에 제법 잘 쓰이니 위안이 될지도.
임진록 2의 미션 중 정유재란이 발발 직후를 배경으로 5일간 원군을 기다리며 막아내라는 미션으로 혼자 등장하여 고생깨나 한다. 문제는 이 미션을 제외하면 대사가 있는 미션이 전혀 없다는 것(...) 조선의 반격에서는 아예 브리핑 참여 기회가 없다.
  • 여여문의 영향인지 같은 게임사의 '해상왕 장보고'에서는 폭탄 기술자 영웅으로 손사막 (581년 ~ 682년)이 나온다. 시대적으로는 맞지 않지만, 원래는 뛰어난 의사이자 도술가이며, 무엇보다 초석의 혼합물이 격렬하게 연소한다는 것을 알아내고 거기에 목탄을 부가해서 흑색 화약을 발명해낸 인물인 건 사실이다. 결론은 여여문만큼 당혹스럽고 근거 없는 캐릭터는 없다는 것(…).
[1] 원래 발음은 야에몬 정도 되었을 것이다.[2] 巧詐, 속이기를 교묘하게 함[3] 부총병관 해생, 참장 양등산, 유격 장군 파귀, 파새 등이 참전하였다.[4] 또는, 명군 수뇌부가 여여문을 매우 중히 여겼던 것에서 온 착오일 수도 있다. 여여문이 명나라 장수에게 피살되긴 했지만, 그와 동시에 명나라 장수들 대부분이 그의 기량에 대해 호평한 것이 실록 곳곳에서 보이며, 조선 주둔 명군 총사령관 격인 경리 양호의 경우는 여여문의 부고를 듣고 울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