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관주의

 

1. 개요
2. 역사
3. 특징
3.1. 장점
3.2. 단점
4. 대한민국의 엽관주의
5. 같이보기


1. 개요


獵官主義, Spoils System
엽관주의라는 용어는 일종의 속칭으로서, 이 용어가 처음 생긴 미국에서의 정식 명칭은 교체임용주의(交替任用主義)라고 한다.
정당에 대한 충성도와 기여도에 따라 공직자를 임명하는 인사제도로 공천제도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하지만 전문직이나 정무직 한정으로 대학 교수 등을 끌어오는 공천과는 달리 엽관제는 하위 공무원까지 모조리 정당의 뜻에 따라 물갈이할 수 있는 제도였다. 사실상 정당 하나가 관료제를 자기네들 내에서 독점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방식으로 선거에서의 결과에 따라 승리한 정당이 임명권을 가지고 공직을 행사하는 것이었으며, 이에 따라 공무원직은 사실상 선거의 전리품이나 다를 바 없었다. 공무원 임명의 기준을 정치적 신조나 정당관계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실적주의(實績主義)의 반대이다.
어째서 이런 막장으로 보이는 제도가 들어섰냐 하면 그 이전의 대세가 정실주의(情實主義)와 족벌주의 등이었기 때문. 이 제도들은 한 술 더 떠서 최고 권력자와 귀족 같은 상류층들이 자기 내키는 대로 친인척이나 자기 파벌을 공직에 앉히는 제도였다. 이에 비하면 선거로 정권을 잡은 정당이란 다수가 결정권을 갖는 엽관주의는 훨씬 획기적이고 합리적인 제도였던 셈. 또한 정당 위주의 공직 배분이다보니 그 정당을 뽑은 국민들의 의사를 더 잘 반영한다는 이유로 실적주의보다 '''민주적'''이라고 보는 학문적 견해도 존재한다.
특정 정당의 공직 독점은 온갖 부작용과 부패를 낳았고 이 때문에 공직에 실적주의가 도입되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도 엽관주의는 아직도 부분적으로 남아있으며 현대 대부분의 국가들이 행정부 각 조직의 수장들을 실적이 아닌 대통령이나 총리가 인선하여 임명하는 것이 엽관주의의 일환이다.

2. 역사


영국 의회가 왕권과 대항하여 의회정치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관리를 친의회주의자로 임명하기 시작한 것이 시작이지만, 제도적인 엽관주의가 본격적으로 발달한 것은 미국이다. 미국 제3대 대통령토머스 제퍼슨이 부분적으로 엽관제를 실시하기 시작한 후, 1820년 5대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는 엽관제를 입법화하였고, 1829년에 취임한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엽관제를 "공직의 민중에 대한 해방과 공무원에 대한 인민통제의 역할을 지닌 것"라며 적극 활용하였다. 엽관주의를 민주주의의 실천원리로 선언하고 미국 인사행정의 공식적인 기본 원칙으로 채택하였다.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고 이 때 이전 정권의 인사를 현임 정권의 인사로 교체하는 공직경질(公職更迭) 원칙을 내세웠던 것이다.
잭슨 대통령이 엽관제를 적극적으로 밀고 나갔던 것은 당시의 정부 요직이 재산, 학력, 경력 등에서 검증된 인물들만 받아들인다는 명분으로 사실상 상류층, 그것도 동부 연안 지역의 상류층들만 혜택을 보는 '''그들만의 리그'''였기 때문이다. 잭슨이 흔히 관료제를 타파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당시 미국 정계의 상황은 정확히는 '''명문가 위주의 과두제'''에 가까웠다. 이런 구조를 깨기 위해서 엽관제를 밀고 나가서 서부 개척민들과 중하류층이 대거 중앙 권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고, 이들이 잭슨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기반이 되어가고 정권이 교체되어도 엽관주의는 수십 년간 유지되어 간다.
그러나 국가업무가 확대되고 전문화 되면서 엽관주의는 한계를 드러내 많은 폐해가 나타나 사회 곳곳에서 문제점을 제기하였고 대략 1868년부터는 미국의 엽관주의적 인사행정에 대한 반발로 시정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심지어 엽관제가 원인이 되어 1881년에는 당시 대통령 제임스 A. 가필드가 암살당하기까지 했다. 1883년 공무원제도 개혁 운동의 일환으로 팬들턴법이 제정되면서 엽관주의에서 실적주의로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실적주의는 엽관주의에 대한 반발, 반동현상으로 나타나게 된 경향으로 초기에 적극적, 창조적 시각이 결여된 소극적, 부정적인 성격을 보인다.
본래 잭슨이 확립한 엽관제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제도이지만 행정학에서 유난히 비난을 받기도 했었던 제도였다. 이는 행정학 자체의 역사와 연관이 있다. 행정학이 정치에서 독립된 학문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는 우드로 윌슨의 영향이 매우 크다. 아예 행정학계에서는 이 윌슨으로부터 행정학이 시작됐다고 평가한다.
윌슨은 행정학의 기본을 잡으면서, 엽관제의 단점과 폐해를 지적하고 행정은 정치와는 완전 별개인 '경영(Business)'의 영역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행정관리설이라고 하며 행정학의 기본 중 하나로 여긴다. 이 때문에 엽관주의는 행정의 기본을 망가뜨리는 제도로 오해를 받았고 한동안 과도한 비난을 받았다. 현대에는 엽관제가 당시로선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었고, 행정 자체에도 '정치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엽관제를 행정 제도의 요소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다.

3. 특징



3.1. 장점


엽관제는 장점으로서 일단 특정한 신분이나 시험, 경력, 실적, 자격조건을 따지지 않고 해당 정당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인사가 임명되기 때문에 연공서열 등으로 인한 관직의 경직성과 특권화를 배제하여 관료제 안에서 '''민주화에 기여하는 면이 있다.''' 공직자의 적극적인 충성심이 확보되는 측면도 있고 해당 정권 안에서 업무에 추진력을 더하는 측면이 있다. 특별히 경력같은 건 없더라도 제대로 능력 갖춘 인선만 잘 뽑으면 유연하게 능력을 갖춘 인재를 적시에 투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관료가 잘못하거나 하면 정권이 날아가고 그에 따라서 자기도 잘릴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대응성이 높아진다는 것도 흔히 엽관주의의 장점으로 꼽히는 내용이다.
또한 특정 관료조직이 정치세력으로 변모하는 것을 막는 역할도 한다. 각 분야의 전문화가 진행된 오늘날에는 각 부처의 관료들이 부처 소관 분야를 다루면서 전문가가 되고, 그러면서 부처 관료와 각 분야의 관련 인물들이 단일한 이해관계를 갖게 된다. 이러한 부처의 인사를 이해관계자들끼리 결정한다면 부처가 자신의 이해관계자들을 위해서만 활동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대의 민주주의 원칙에 반함은 물론 국가적인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 또한 이렇게 되면 일본의 관료제 문제처럼 민주적으로 뽑힌 국가지도자의 정책을 부처 인사들이 단합해 공공연하게 거부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이에 대해 엽관제는 대통령이나 총리 등 국가지도자가 부처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함으로써 이해관계자가 아닌 자를 참여시켜 부처 관료들이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봉사하지 않도록 한다. 이런 점에서는 문민통제와 비슷한 장점을 지닌다.

3.2. 단점


정당이 바뀔 때마다 인사가 바뀌기 때문에 정권이 금방 바뀌게 되면 전문성을 갖추기 힘들어지며 원래 특정한 조건이나 능력을 다투어서 뽑은 인선이 아니기 때문에 정당에서 인선이 잘못되면 망. 인선의 중립성이야 일단 엽관제가 선거결과에 따른 제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넘어간다 치더라도 정당제의 특성상 정당 자신의 이득이나 부정부패, 안목의 부재로 인한 무능력한 낙하산 인사 등이 관직에 배치되면 역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때문에 행정의 부패와 기강의 문란을 초래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이런 엽관제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게 19세기 들어서 뉴욕을 장악한 민주당 조직인 태머니홀로 이들은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부정부패의 대명사로 꼽히는 집단이다. 또한 사회가 발전하면서 복잡해지면, 그에 비례해서 행정도 전문적인 기술이 있는 인재를 요하지만 엽관주의는 능력을 평가하는 제도는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4. 대한민국의 엽관주의


대한민국도 엽관주의를 일정부분 취하고 있는 국가중 하나다. 일단 대한민국은 국가공무원법(28조)과 지방공무원법(27조) 모두 실적주의를 기반으로 한 시험제도로 공무원을 채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에서 국무총리(86조) 국무위원(87조), 행정각부의 장(94조), 감사원장과 감사위원(98조), 대법원장과 대법관(104조), 일부 헌법재판관과 헌법재판소장(111조) 일부 중앙선거관리위원(114조) 등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규정이 있고 그외에도 기타 법률에 따라서 대통령이나 혹은 다른 기관장들이 자의적으로 공무원을 임명할 권한을 가지고 그렇게 자의적으로 임명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엽관제의 폐해를 인식하고 실적제가 기본이 되는 관료제 바탕 하에서 부분적으로 엽관제를 도입해서 유연성을 갖추려고 하지만 언제나 세상은 좋게 돌아가지만은 않는 법이라서 실적제의 단점과 엽관제의 단점이 시너지를 일으키는 방향으로 튀는 경우가 많다.
2000년대 이후 "관피아는 일을 할 줄이라도 아는데 주로 대선캠프 출신, 집권자의 후보시절 후원회나 인수위 출신인 '''정피아'''는 하나부터 열까지 옆에서 다 가르쳐야 한다"며 불만이 크고, 이런 사람이 조직의 장으로 임명되면 바로 아래 차장이나 부사장은 실무에 밝은 사람으로 짝을 지어 그 뒤치다꺼리를 맡기게 된다. 속칭 낙하산 인사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5. 같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