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비스 옵티무스/역사
1. 시작기 (2000년 ~ 2002년, 오르비 0 ~ 5)
2000~2001년 경 오르비가 등장할 당시에는 인터넷이 이미 대중화된 시점이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다양한 사이트가 발달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지는 않았다. 수험생만을 위한 사이트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굳이 찾자면 당시 갓 스타트업 출판사로 시작한 이투스의 수험생 커뮤니티 게시판이나, (이미 사라지거나 아직도 남아있는) 다음 카페들 뿐이었다. 그나마도 미미했는데, 당시 입시에서 대란이 벌어지면서 의대 지망 수험생이던 이광복이 만든 오르비가 최상위권의 해방구(?)이자 고급 정보 공유처의 역할을 하였다. 당시 운영자가 직접 제작해 배포하는 입시 자료들의 정확도가 사설 입시 기관을 압살할 만큼 정확도가 높았던데다가 운영자와 올드 멤버들이 의대 등 목표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한동안 입시 정보나 공부법을 공유해 이를 기반으로 커뮤니티 기능이 강화되었다. 사실 대학에 간 후에도 오르비에 자주 들어오는 이들이 많은 이유는 주제와는 관계없이 동접자 수가 많은 커뮤니티 사이트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들의 특징인 '''주제는 명확히 있으나 그것과 무관하게 많은 이들이 모여서 노는 공간'''을 보여준다.[1]
홈페이지 극초반인 2001년과 2002년에는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폐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새카만 바탕에 글자에만 색이 들어간 단순한 형태였다. 홈페이지 주소도 전국 최상위권을 중심으로 알음알음 전파되는 형식.[2] 터를 닦은 초기 사이트 이용자의 대다수는 막강한 정보력을 지닌 강남 목동 여의도 등 주요 학군이나 특수목적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의대 지망생이 주류였기 때문에[3] 80% 이상이 의대 컷 예상과 비전 얘기였다. 당해 배치표컷에 따라 한의대, 스카이 공대 지망생들이 간혹 이야기에 꼈고, 문과는 이화여대 언홍영 지망이 마지노선이었다.[4]
당시엔 아예 최상위권'''만''' 대화에 참여 가능했고, 그 이외엔 아무리 상위권에 속하는 대학과 학과일지라도 철저히 무시 당했다. [5] 잘 모르는 학생이 얼떨결에 찾아와 중위권 이하의 대학 얘기를 꺼낼 경우엔 아예 크게 비웃음을 샀다.[6] 게다가 회원 등급의 이름은 모조리 라틴어로 지어져 있다.[7] 이렇듯 엘리트주의와 스노비즘이 팽배해있었으나 내부에서 불만이 제기된 적은 없다.(...) 불만세력이 될 만한 인원이 커뮤니티 내에 아예 진입하지 못하면 불만이 나타나지도 않는다는 예. 사실 목적이 명확한[8] 동질적 집단이다보니 갈등이 생기기 힘들었던 것이다.
오히려 덕분에 잡담이 극단적으로 없고 철저히 최상위권의 공부와 컷, 원서 정보로만 돌아가 정보 정리가 효율적으로 이뤄져 대부분 만족하는 분위기. 이런 엄격성에 더해, 비밀주의(?), 소수정예, 게시물 하단 아이피 공개 시스템까지 삼단콤보로 작용해 점수를 위조하거나 헛소문을 퍼뜨리는 시도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학교 입시담당 교사들은 물론이고, 명색이 학원의 입시 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 신뢰할 수 없는 입시정보를 제공하던 시대에 일개 수험생들이 상당한 고급 정보들과 입시분석, 배치표 등을 생산해냈다는 점은 나름 인정해 줄 만하다.
2. 성장기 (2002년 ~ 2010년, 오르비 6 ~ 12)
* 2002년 ~ 오르비 6 : 자체적인 DB 서버 구축
* 2008년 ~ 오르비 11 : 오르비 10(2006년 ~ 2008년)까지 글쓰기 권한을 얻기 위해서는 '''오르비에 전화를 걸어 영어 문제를 풀어 맞히고, 한 주 정도 기다려야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으나, 오르비 11부터는 실명 인증만 되면 바로 글쓰기 권한을 부여하기 시작하였다.
오르비 내부에서는 오르비가 유명해지면서 오르비의 '''질적 저하'''가 문제라고 보기도 하였다. 그래서 생긴 것이 에피옵티무스와 센츄리온이다.[9] 물론 최상위권의 비율이 낮아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학습자료 면에서는 질적저하의 모습을 보였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용자수가 많아지다보니 생긴 트롤들의 증가를 성적대의 확장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심각한 엘리트주의가 아니냐는 지적도 이미 과거부터 있었다. 질적 저하의 원인에 대해서는 상업화가 문제라거나, 오르비언들의 인성(...)이 문제였다거나, 수갤에서 까대서(...) 명성이 떨어졌다거나, 입시 제도와 상황의 변화 탓이었다는 등[10] 여러 주장들이 있다. 사실 역사학의 주된 관점 중 하나처럼[11] 시대가 흐르고 우연의 요소들이 더해진 결과일지도 모른다.
2007년 11월 수능 등급제 시절에는 등급제 때문에 피를 봤다고 생각하는 수험생(의 화풀이)을 위한 게시판인 "피해자의 모임"이라는 게시판도 존재했었다. 이외에도 입시 정보 공유 이외에도 학부모를 위한 게시판, [12] 등이 혼재하기 때문에, 그냥 고3시절을 위한 일종의 커뮤니티라고 봐도 될 듯 하다.
3. 상업화 (2010년 ~ 2015년, 오르비 13 ~ 15)
- 2010. 가을, 출판업 시작 현(現) 오르비북스(당시: Wizet Market) 서비스 개시. 당시 오르비 회원이던 포카칩(이덕영)의 포카칩 모의고사가 처음 출판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이를 기점으로 대학생 저자들의 실전 모의고사 제작 붐이 일어났으며, 오르비북스가 이를 선두에서 이끌었다.
- 2010.11. fait 유료 정시분석 서비스 개시.
2012~2013년 경 '''오르비 클래스'''라는 인터넷 강의 서비스를 시작하였고, 이제는 스카이에듀..로 이적한 유대종 등의 강사들이 등장하였다.
2013년 '''오르비 학원'''도 설립되었고 학원업을 영위하기 위해 '''오르비 주식회사'''가 자회사 형태로 분리되었다. 2015년부터 독학재수학원을 운영하였는데 지금은 러셀, 잇올 등 독학재수학원이라는 개념이 흔해졌지만 당시 오르비가 독재학원을 처음 운영할 때만 해도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다.
커뮤니티로서의 오르비는 2010~2015년 동안 무게 중심이 오르비 외 유사 기능을 하는 사이트나 카페로 많이 분산이 되었다가 2015년 경부터 다시 오르비의 비중이 커지는 추세다. 가령 2010~2011년 경 일일 신규 게시물수를 보면 유사 커뮤니티중 화력이 제일 센 수만휘가 오르비보다 10배 가량 많았던 적도 있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오르비의 신규 게시물 수가 수만휘와 포만한을 합친 것보다 많다.# 일반 커뮤니티 사이트와 네이버 카페의 구조적인 차이점 상 오르비가 수만휘 대비 글 1건 당 평균 조회수가 더 높은 편이기 때문에 전체 트래픽은 2018년 경 이미 오르비가 수만휘를 다시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구글 트렌드에서 키워드 검색을 해 보면 오르비와 수만휘의 관심도는 2010년에 수만휘가 오르비를 앞섰다가, 2011년부터 다시 오르비가 수만휘를 앞선 이후 매년 점점 벌어지고 있고 2019년 현재 두 사이트 간에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2015년 이후에는 오르비 클래스 소속 강사들이 꽤나 공이 들어갔음직한 자료들을 거의 매일 뿌려대는 탓에 공짜로 얻을 수 있는 학습자료는 그 어느때 보다도 많다. 어쨌든 게시판에서 키배에 빠져서 시간을 까먹지만 않는다면 요즘은 캐스트 태그나 클래스 태그, 학습자료 태그의 알짜 자료만 빼먹고 나오면 꽤 유용한 사이트일 수도 있다. 물론 실제로 오르비를 방문하면 엄청난 중독성 때문에 모아보기에서 분탕종자들의 글을 지나치기는 불가능에 가깝고 추천 태그에 있는 글들은 꼭 유용한 자료뿐만이 아니라 분쟁글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2016년말에 팔로우 기능 등 소셜 기반 기능과 앱을 통한 알림 기능이 대거 보강되었는데 그러한 기능으로 인해 중독성이 더욱 강해진 면도 있다.
[1] 오늘의 유머, 클리앙, 82쿡, 레몬테라스, 엠엘비파크, PGR21, SLR클럽, 아이러브사커, 엽혹진, 쭉빵카페, 도탁스, 이종카페 등 대다수의 커뮤니티는 주제와 관계없는 포괄적인 커뮤니티가 아니다. 그런 식의 주제가 없는 커뮤니티는 PC통신과 인터넷 초기 이후로 거의 사멸하였다.[2] 애초에 사이트가 개설될 때 운영자가 인맥을 바탕으로 초기 멤버를 호출하였다고 한다.[3] 애초에 이 사이트 창립자부터가 서울대 의대 학생이다.[4] 그런 이유로 초창기 오르비는 지금에 비해 '''엘리트주의'''적인 사고방식이 훨씬 강했다. 이용 계층만 가지고 보자면, 2019년 현재는 건동홍 라인에 대한 입시 정보를 제공할 정도로 이용자 계층이 예전에 비해 워낙 넓어진 관계로 엘리트들의 사이트라고 보기에는 애매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2019년 시점의 오르비가 과거의 사고방식과 거리가 먼 것은 아니다. '''흔히 엘리트와 엘리트주의적인 사고방식을 혼동하고는 하는데''', 그 집단 자체가 엘리트인 것과, 엘리트를 숭상하고 특정한 우월감내지 경멸감으로 구성된 문화적, 이념적 경향을 가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런 면에서 오르비는 극단적인 서열의식을 지니고 있는 곳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이는 오르비만의 문제는 아니고 입시 사이트는 오래전부터 가져 온 모습이기도 하며, 2019년 시점에서는 인터넷 문화 전체 나아가서 젊은층들의 의식 전반에 뿌리깊게 자리잡게 된 서열중독적 이데올로기의 영향이기도 하다.[5] 인원은 적어도 피드백이 활발한 편이라 보통 한 게시물당 덧글이 최소 3개 이상 달리곤 했다. 아주 간혹 덧글이 하나도 달리지 않은 글이 있으면 백이면 백 오르비에서 취급하지 않는 대학과 학과에 대한 얘기였다.[6] 사실 오르비에서 다루는 대학들의 범위 자체가 사이트 헌법 차원의 규정으로 정해져 있었다. 운영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르비의 정체성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입니다.'''[7] 이건 운영자가 라틴어를 취미로 공부해오다 보니 사이트를 만들 때 라틴어 어휘를 많이 쓴 것일 뿐이다. 느낌이 그렇게 비춰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이것만 가지고 엘리트주의라고 비판할 부분은 못 된다. 라틴어를 공부한다고 엘리트주의인 것도 아니고.[8] 당시 입시대란 하에서의 입시정보 공유[9] 그런데 에피옵티무스가 생긴 것이 2005년이니 이런 질적 저하 논란은 무려 14년 전에도 있었던 셈이다. 당시 올드 유저들의 증언에 따르면 '''"오르비에 연세대 공대 합격 가능성을 묻는 글이 올라오다니 이제 오르비도 말세다"'''라는 글도 올라왔었다 카더라. [10] 오르비는 철저히 의대 열풍의 전성기를 타고 태어난 곳이다. 그리고 그 때는 경희대 한의대도 서울대 의대와 거의 비견될 정도로 한의대 역시 전성기였다.[11] 이를테면 유럽에서 근대 문명이 탄생한 이유를 필연적인 조건 대신 우연적인 사건들의 연쇄의 결과로 보는 관점[12] 갤러리는 2019년 2월 28일자로 서비스 종료되었다. https://orbi.kr/00021560857 참조.[13] 세부 과목별로 한권씩 나오기 때문에 우스갯소리로 오완수라는 별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