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예

 



'''吳芮'''
'''? ~ 기원전 202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


초한전쟁 시기의 인물.

2. 생애


진나라 파양현의 현령으로 유방이 패공으로 불렸듯 파군(番君)이라 칭했다. 진승·오광의 난이 일어나자 얼마뒤 영포의 수적 세력이 찾아오고 이들과 반란을 일으켜 북월에서 세력을 키운다. 이때 영포를 자신의 딸과 혼인시켜 사위로 삼는다. 이후에는 항우를 따라서 함양에 입성했고 항우의 18제후왕 분봉에서 형산왕에 임명된다. 이후에는 사위인 구강왕 영포 및 임강왕 공오와 같이 초의제 시해에도 가담했으나 어쩐 일인지 얼마 안가 다짜고짜 공격해온 항우에게 땅을 빼앗기고 유방에게로 도망쳤다. 이 때문에 옛 형산왕으로 불렸다. 안그래도 오예의 부하들은 유방과 친분이 있었는데,[1] 이 때문에 북월 출신 장수들 또한 유방 편을 들면서 싸웠고, 유방은 천하통일 후 오예의 땅을 돌려주고 장사문왕에 봉했다. 곧 오예는 사망하고 아들 오신이 이었다.
친분 자체도 제후왕들 중 가장 나았던데다, 봉지의 거리도 멀고, 본인과 아들도 책잡힐 짓을 전혀 하지 않아서[2][3] 이성 제후왕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4] 여후 대에도 아무런 피를 보지 않고 오랫동안 번성했다.[5] 사마천은 "오랑캐인데도 덕이 있었던 것 같다."고 평. 오예가 죽고난 후 유방이 남긴 평에서도 '장사왕은 충성스럽다'라고 했으니 처신을 굉장히 잘한 듯 하다.
무덤이 손권에게 도굴당했는데 시체가 전혀 썩지 않았었다고 한다.
[1] 반진전쟁 당시 오예의 장수 매현은 유방을 도와주며 무관 돌파에까지 일조했다. 매현은 이 공으로 항우의 18제후왕 분봉 당시 졸지에 10만호의 제후가 되기도 했다.[2] 훗날 영포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후 처남이였던 오신에게 도망쳐왔지만 오신은 영포를 죽였다.[3] 따지고 보면 영포항우를 배신할 때 항우가 오예의 딸을 포함한 영포의 가족을 다 죽였으므로 오예나 오신 입장에서는 영포가 썩 좋아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영포도 유방의 부하라서 대놓고 말하기는 뭐했을뿐[4] 남월조타도 있긴 했으나, 말이 좋아 제후왕이지 초한전쟁에도 전혀 관여하지 않았던 천상 외부인이었다. 제후왕에 편입된것조차 유방이 사망하기 직전의 일.[5] 다만 여후가 괜히 남월에게 철기 교역 금지로 시비를 거는 바람에 빌미를 잡은 남월왕 조타가 '이게 다 장사국 놈들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며 장사국을 털어대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