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포
- 드라마 주몽의 등장인물: 영포(주몽)
- "영어를 포기하다"의 줄임말: 영포자
- 신라왕조 때 흰 천으로 어깨를 덮어 앞에 늘어뜨린 전통 옷차림.
- 영일군과 포항시를 아우르는 말
- 후한 말의 인물: 냉포
英布
? ~ 기원전 1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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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 말기와 초한쟁패기, 전한 초기의 무장. 구강군 육현[1] 사람이다.
2. 생애 초기와 이름의 유래
원래 평민이었는데 소년 시절에 누군가가 그의 관상을 보고 "자네는 '''형벌을 받은 후에 왕이 될 상'''이로군"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조금 커서 법을 위반하여 칼로 죄인의 얼굴에 글씨를 새긴 후 그 위에 먹물을 칠하는 벌인 경형(黥刑)을 받았는데 이 벌을 받은 영포는 '''"옛날에 내 얼굴을 보고 누군가가 형벌을 받은 후 왕이 될 관상이라고 했는데 이거구나!"'''라며 좋아했다고 한다. 그 후 경형을 받은 전력 때문에 '경포(黥布)'라고 불리게 되었다.[2]
3. 진나라에 반기를 들다
형벌을 받고 진시황의 능을 짓던 여산으로 보내졌는데, 이 당시 여산에는 형을 받고 끌려 온 무리가 수십만 명이나 있었고[3] 영포는 이들과 어울리며 무리를 형성하다가 조금 후 그 무리를 이끌고 장강으로 가서 도적떼의 수령이 되었고, 진시황 사후 진승·오광의 난이 일어나자 진나라에 반기를 든 현령 오예와 만나서 오예의 딸과 결혼하고 군사를 모아 거병하여 동진했다. 이 무렵 초나라의 항량이 세력이 커져 서진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영포는 자기 무리를 이끌고 항량의 휘하로 들어가 항량 휘하에서 전공을 세웠다.
4. 항우의 휘하에서
항량이 정도에서 진나라 장군 장한에게 패사한 후에도 항우를 따라 각지를 전전하며 용맹을 떨쳐 진군을 각지에서 격파하고 거록대전에서 큰 공을 세우고 서진하여 관중으로 들어간 항우를 따라서 함양에 입성하기에 이르렀다. 함양에 입성한 항우가 서초패왕을 칭하고 제후들에게 논공행상을 할 때 영포는 '''구강왕'''에 임명되었고 고향인 육현에 도읍을 삼게 하였다. 관상가의 말대로 왕이 된 것. 이후 항우는 예전에 항량이 명분용으로 옹립한 초 회왕 미심을 쫓아내고 영포와 오예 등으로 하여금 회왕을 살해하게 하여 영포는 침현에서 의제를 죽였다.[4]
이후 제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항우가 영포에게 출병을 요구했지만 영포는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고, 이 틈을 탄 한왕 유방이 항우의 수도 팽성을 빈집털이할 때도 이를 구원하지 않았다. 빡친 항우는 사자를 보내 영포를 질책했지만 이 때문에 더 쫄아버린 영포는 끝끝내 항우에게 가지 않았다. 항우 입장에서는 영포가 못마땅한 입장이었지만 제나라와 조나라, 한나라 유방의 세력에 둘러싸여 있어서 영포라도 다독여야 했기 때문에 끝끝내 영포를 치지 않았다.
5. 유방의 휘하로
이 무렵 팽성을 빈집털이했지만 팽성대전에서 항우에게 개발살나고 도망친 유방은 한왕 성이 항우에게 살해당할때 도망쳐서 유방에게로 합류한 장량에게 "내가 천하를 얻기 위해 땅을 떼어줘야 한다면 누가 좋겠는가?"라고 물었다. 장량은 "폐하의 사람 중 한 전역을 스스로 맡을 수 있는 사람은 한신입니다. 팽월은 여전히 항우에게 맞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포는 항우의 신하지만 지금은 틈이 벌어져있으니 이쪽으로 끌어올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유방은 수하(隨何)를 시켜서 구강으로 향하도록 했다. 이 과정이 상당히 코믹한데, 장량의 계책은 따르려고 했는데 정작 누구한테 맡길지는 감이 안잡혀서 답답해진 유방이 어느날 다짜고짜 주변을 둘려보며 "이 쓸모없는 놈들아! 내가 너희들 같은 녀석들이랑 뭘 하겠냐?"라며 같이 도망치던 사람들을 구박했다. 영포와 고향이 같은 수하가 어리둥절해서 왜 이러냐고 물으니 유방이 "영포가 몇달만 항우를 붙잡아주면 내가 천하를 다 가질수 있겠지만, 너희들 중 누가 가능하겠냐?"라고 버럭했다. 그러자 수하가 "제가 하죠 뭐."라면서 사람 20명을 데리고 그날로 길을 떠난 것.
영포는 찾아온 수하를 사흘동안 만나주지 않았다. 이러자 수하는 자신의 말을 들어보고 쓸모없다 싶으면 우리 20명의 목을 도끼로 쳐서 항우에게 충성심을 증명하면 될 것이라고 밀어붙였다. 솔깃한 영포가 수하를 만나자, 수하는 폭포수처럼 이 당시의 정세와, 영포의 속내를 시원하게 풀어내는 명연설을 펼친다.
즉 영포는 이미 신하의 도리를 저버린지 오래이고, 그러면서 항우의 신하라고 자칭하는 것은 기만에 불과하다는 것이며,대왕과 항왕은 같은 제후의 신분이 아닙니까? 북면하여 신하로써 받들고 있다면 그것은 필시 초나라가 강하기 때문에 나라와 몸을 맡길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항왕이 제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몸에 친히 영채나 보루를 세울 때 이용하는 판축(版築)과 같은 기구를 몸에 지고 사졸들 앞에 서서 진군할 때 대왕께서도 마땅히 회남의 군사를 모두 이끌고 종군하여 초나라 군사의 선봉에 섰어야 했음에도 기껏해야 4천의 군사만을 보내 초나라를 돕게 했습니다. 무릇 북면하여 신하로써 남을 모시는 방법이 원래 이렇습니까?
옛날 한왕이 팽성을 공격했으나 제나라를 공격하던 항왕이 미처 귀환하지 못했을 때 대왕은 마땅히 재빠른 행동으로 회남의 군사를 이끌고 회수를 건너 밤낮을 가리지 않고 팽성으로 달려가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만여 명의 군사를 보유하고 있었던 대왕께서는 단 한 명도 회수를 건너지 않고 팔을 늘어뜨린 채 방관만 하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맡기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원래 그래야 합니까? 대왕께서는 입으로만 초나라를 섬긴다 말하고서는 지금은 다시 확실히 스스로를 항왕에게 맡기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초나라를 등지지 않는 건 한나라가 나약해보이기 때문이겠지만, 항우는 이미 의를 잃고 홀로 싸우는 말만 제왕일 뿐이고 노약자까지 동원해 필사적으로 방어선을 구축하기 시작한 한나라를 먼 땅까지 나서서 돌파하는 것은 항우라도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한번 그러기 시작하면 추격이 두려워서 물러나기도 힘든 수렁에 빠지게 되니 초나라는 실제로는 전혀 믿음직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며,그러나 대왕께서 초나라에 등을 돌리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한나라가 아직 약하기 때문에 대왕의 몸을 맡길만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릇 초나라 군사가 비록 강하다고 하나, 천하에 이미 의롭지 못하다는 이름을 얻은 원인은 제후들끼리 한 맹약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의제(義帝)를 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왕은 전투력만을 의지하여 스스로 강하다고 자부하고 있는 반면에 한왕은 제후들을 이끌고 성고(成皐)와 형양(滎陽)으로 돌아와 지키며 촉(蜀)과 한중(漢中)의 곡식을 군량미 삼아 보루를 깊게 한 후에 군사들을 나누어 변경을 순찰하고 성과 요새를 지키고 있습니다. 초나라 군사들이 뒤를 추격해 왔으나 중간의 양나라 땅을 가로질러 8-9백리에 달하는 적국의 땅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전투를 하고자 하나 상대방이 응해주지 않아 싸울 수도 없고, 성을 공격하려고 하나 힘이 닿지 못하는 사이 늙고 유약한 군사로 천리 밖의 군량을 운송하고 있습니다. 초나라가 군사들이 형양과 성고에 이르렀으나 한군이 굳게 지키기만 할뿐 미동도 하지 않으니 앞으로 나아가고자하나 관문을 돌파할 수 없고, 후퇴하고자 하나 한군의 추격이 두려워 그럴 수도 없는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고로 초나라 군사들은 믿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설령 유방이 기어이 패한다 해도 그 다음엔 항우에게 겁을 먹은 제후들이 모조리 연합해서 항우에게 대항하게 될 뿐이니, 결국 초나라는 버티지 못하고 망하게 될 것인데 그런 나라를 아직도 믿고 줄타기를 해봤자 소용 없다는 것이다.만에 하나 초나라가 한나라를 이겨봤자 어찌되겠습니까? 그때는 온 천하가 초나라에 두려움을 가져 스스로 위기를 느끼고 서로 구원하려 할 것입니다. 초나라가 강대해진들, 단지 천하 모든 제후국들의 군사를 끌어들여 적으로 만들기에 적당할 뿐입니다. 그 형세는 쉽게 보입니다. 이러한데도 대왕께서 만전한 한과 더불어 하지 않고, 스스로 망하게 될 초에 의탁하고 있는 것은 신이 보기엔 매우 틀린 것입니다.
영포가 초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까진 기대하지도 않지만 단 몇달만 항우를 묶어준다면 그 공으로 유방으로부터 구강 땅의 지위를 확약받을것이라는 말에 영포는 초를 배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항우가 보낸 사신이 계속 군사를 보내라고 독촉중이었는데, 혹여 영포가 또 변덕을 부릴까봐 불안해진 수하는 아예 못을 박아버리기 위해 영포가 사신을 만나고 있는 타이밍을 노려서 난입, "이 멍청한 놈아! 구강왕은 이미 한나라의 편이 되기로 했거늘 너희들이 어딜 맘대로 군사를 움직이겠다는 거냐?"라고 일갈했다. '''영포조차 깜짝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경악한 사신이 벌떡 일어나서 뛰쳐나가자 완전히 당했다는 걸 깨달은 영포는 그제서야 초나라의 사신을 붙잡아와 목을 베고 정말로 반기를 들었다. 그리고 약속한대로 그해 12월까지 버티다가 용저에게 패배하고 한나라로 도주하였다. 영포가 벌어준 이 천금같은 시간동안 한나라는 경색 전투에서 초나라의 추격대를 격퇴하는 것을 시작으로 정신없이 움직이며 위표를 굴복시키고, 장한을 죽이고, 대나라를 깨면서 유방은 근흡과 함께 조나라 지역을 약탈해 물자와 군사를 보충하고 한신은 정형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한편 항우는 영포를 놔두고는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모든걸 눈뜨고 지켜볼 뿐이었다.
나중에 천하통일 후 술자리를 가졌던 유방이 뜬금없이 이 수하를 들먹이며 저런 썩은 선비들을 어디다 쓰겠냐고 구박했는데, 수하가 자기가 영포를 꼬드겨서 수만 병사로도 불가능한 일을 해줬는데 이제와서 그런 말이 어딨느냐고 따지자 또 곧바로 말을 바꾸며 승진시켜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영포가 한나라로 가자 유방은 평상에 걸터앉아 여자 시종들에게 발을 씻기고 있는 상태로[5] 건성건성 일관하자 성격이 불같고 자존심이 강했던 영포는 제대로 빡쳐서 "내가 저딴 놈에게 숙여야 되는 건가?" 라는 생각에 심지어 자살까지 하려고 했지만 숙소 상태가 유방의 거처와 같자 마음을 풀었다. 이는 자존심이 강하고 포악한 영포를 구슬리기 위한 유방의 계책으로, 영포를 극진히 환영하되, 첫 만남에서는 "내가 너보다는 아득히 위다."라는 서열 정리를 확실하게 하고 들어간 것이다. 즉, 유방은 영포를 그야말로 강아지 다루듯(...) 능숙하게 처리한 것. 그리고 사람을 시켜서 영지에 두고 온 가족들의 상태를 알아봤지만 이미 항백이 항우의 명을 받고 영포의 가족들을 전부 살해한 뒤였다. 이미 살해당한 가족은 데려올 수 없으니 흩어진 부하들을 수습하여 한나라로 들어오게 했다.
그 후 유방의 휘하에서 초군을 상대로 초군 공격에 힘썼고 항우가 궁지에 몰리자 초나라의 주은을 회유해 그의 마지막 동앗줄을 끊어버렸다. 마침내 해하 전투에서 항우가 패하고 오강에서 자결하여 천하가 통일되자 '''회남왕'''에 봉해지고 구강, 여강, 형산, 예장 등을 영지로 거느리는 제후국의 왕이 되었다. 전란은 완전히 끝났고, 관상가의 말대로 된 왕의 지위를 이어가는 것만 남았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영포의 몰락이 시작된다.'''
6. 반란과 최후
천하를 통일한 유방은 한신과 팽월을 무력화시켜 토사구팽 작업에 착수했는데 영포는 한신과 팽월의 운명을 보고 크게 두려워하여 은밀히 군사를 모아 다른 땅의 정보 수집에 힘썼다. 이러던 중 영포의 가신 분혁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애첩과 간통을 했다는 오해를 하자 분혁은 장안으로 가서 유방에게 영포가 모반을 꾀한다고 고변했다. 상국 소하는 원한으로 밀고하는 걸 바로 믿었다가 애먼 사람을 잡는 게 아닌지 걱정하여 오히려 분혁을 잡아 가두고 영포에겐 사람을 보내 알아보게 하려 했으나, 일이 글렀다고 여긴 영포는 모반하면서 "황제의 여러 장수 중 한신과 팽월만이 걱정이었는데 모두 죽었고, 황제도 늙어서 싸움을 싫어하니 오지 못하니 내가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다."이라고 호언장담. 모반한 영포는 동진하여 형나라를 쳐서 형왕 유고[6] 를 쳐서 죽였고 초나라까지 쳐서 초원왕 유교[7] 마저 도주하게 만들었다. 이때 유방은 영포의 예상대로 병이 깊어서 처음엔 영포가 반란을 하든 말든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고, 그전까지 친정하던 것과 달리 토벌군도 태자 유영에게 맡기려고 했지만 여후가 그 아이한텐 무리라고 울며 사정하고, 번쾌까지 들이닥쳐서 닦달을 하자 짜증이 났는지 결국 직접 나섰다.
유방과 영포는 추라는 곳에서 맞닥뜨렸는데 유방은 영포의 군대가 항우와 비슷한 진법을 취하는 걸 보고 불쾌해했다고 한다. 유방이 영포에게 "야 이 반란군 놈의 새퀴야! 무엇이 아쉬워서 모반했냐?"라고 묻자 영포는 '''"나도 황제 한 번 해 보고 싶었다!"'''라고 대답했다. 유방이 욕을 퍼부으며 큰 싸움이 벌어졌다. 반란군의 사기는 대단히 높았으며, 총사령관인 유방은 병치레 중이어서 마차에서 나오지도 못할 거라는 소리를 들었으니 영포의 자신감은 분명 근거가 충분했지만 유방이 죽음을 앞두고 괴력이라도 발휘한 것인지[8] 이후 몇차례 전투를 벌일 때마다 참패한 영포는 결국 백여 명만 이끌고 강남으로 도망치고 만다. 이때 자신의 처남인 장사왕 오신의 도움을 받으려 했다. 하지만 오신은 반역자가 될 생각이 없었기에 오히려 영포를 속여 파양으로 유인했고 영포는 자항의 농가에서 오신과 파양 사람들에게 죽는다. 회남국은 영포 대신 유방의 아들 유장이 왕이 되었고, 영포의 모반을 알린 분혁은 기사 땅의 제후가 되었다. 그러나 영포 토벌전에서 유방 또한 반란군이 쏜 화살에 부상을 입었고 이 부상으로 인해 얼마 못가 죽음을 맞았다. 분혁 역시 영포에게 일가족이 모두 죽었기 때문에 후손이 없어 기사후도 1대로 끝나고 만다.
7. 평가
따를 때와 아닐 때의 변화가 중간이 없이 낙차가 너무 심해서 군주를 헷갈리게 만든 인물. 항우는 신안대학살과 의제 시해 등 많은 일을 맡으며 활약했던 영포에게 그답지 않게 꽤 미련을 보였으며, 유방에게도 한신이나 팽월 등과 달리 초한전쟁 동안은 영포가 굉장히 충실했다보니[9] 밀고가 들어왔을때도 일단 덮은 다음 알아보려고 했다.
특히나 나도 황제를 해보고 싶었다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동기가 인상을 끄는데, 실제 중국 역사는 물론 세계사를 통틀어도 영포의 이 동기는 반란의 명분으로는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에 속한다. 특히 중국은 오랜 역사 동안 유교의 영향으로 명분이라는 것을 강조해 왔다. 반란의 수괴들이 전장에서 격문을 낭독하는 이유가 다 있다. 전통적 관점에서 영포의 반란은 명분 없이 일으킨 반란으로 보기 좋기 때문이다. 반란 동기로 대표되는 시원시원한 행적 덕에 고대의 상남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다만 이런 영포의 패기는 피지배층이 갑작스레 지배층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가능했던 초한쟁패기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10]
군사를 다루는 일은 뛰어났다. 역사는 경포의 용병이 뛰어나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천하의 명장으로서, 전투에 뛰어나다고 기록했다. 사마천은 영포에 대해 '언제나 포악한 일의 우두머리였고 공도 제후 중 으뜸이어서 왕이 되었지만 화의 원인은 사랑하는 여자[11] 로부터 나고 질투에서 환란을 불러서 결국 시망했다.'는 사론을 덧붙였다.
8. 창작물에서
초한지 소설에서는 거의 항우 다음가는 용력을 가진 무장으로 등장한다. 초한지의 무장들 중 '항우 다음가는 맹장이 누구인가'라는 최강 논쟁 같은 것이 벌어지면 번쾌, 용저 등과 함께 자주 꼽히는 무장. 실제로 작중에서는 항우와 직접 일대일로 싸워서 승부가 나지 않은 몇 안 되는 무장이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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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유기의 영포)
코에이의 항유기에서는 전투가 91인 맹장인데, 용저나 종리말 등을 가뿐히 능가한다. 일러스트의 수염과 문신 때문인지 더욱 매서워 보인다.
적룡왕에서 영포의 모습은 항유기의 영포 모습과 완전 판박이다. 특히 대머리라는 것과 얼굴의 문신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똑같다. 작품 속 한신 역시 항유기의 한신 일러스트와 비슷한 것을 보면 코에이가 모토미야 히로시의 만화를 많이 참고한 듯한 인상을 준다.[13] 작품 속의 영포는 전체적인 행적과 비슷하다. 물론 비중이 적은 편이긴 하지만.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고대무장 중 한 명으로 등장한다. 무력이 90대 중반을 찍는 맹장 타입으로 등장한다. 삼국지 11에서의 특기는 위풍.
삼국지 12에서의 전법은 강용이나 지력이 매우 낮아서 조루 포스을 자랑한다. 그가 무명이었을 적 경형을 받았다는 일화를 참조해 일러스트에서는 오른쪽 뺨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맹장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들고 있는 칼도 교전의 흔적으로 날이 여기저기 상해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82/무력 91/지력 53/정치력 33. 중신 특성은 호단맹진. 통솔력이 80대라 임무장을 2개 받지 못한다. 전법은 투장용약. 자기 강화계라 전투시 연대하기 보다는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이 효율적이다. 특기는 훈련6 / 순찰5 / 위풍3 / 분전5 / 연전4 / 공성6 / 수영8 / 일기7 / 호걸7. 병종은 창병 A/기병 A/노병 B로 창병, 기병에 준특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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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전 온라인에서는 패왕항우의 패에 등장. 성우는 이호산[14] 이며 거친 말투와 걸쭉한 음성이 특징이다.
병과는 항적, 용저와 같이 효기병이며 특성은 일기당천, 인도공격, 회심공격, 전화위복을 받았지만 전화위복은 흡혈 공격이있고 방어력이 낮은 효기병에겐 좋은 특성은 아니며 회심공격은 회심방어, 특수 공격 면역에 막히므로 써먹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그나마 인도공격과 일기당천은 무난하게 써먹을 수 있지만 '''최종승급시 코스트가 23코스트다.'''[15] 2018년 7월 기준 효기병 3인방중 가장 평가가 낮다.
다만 나머지 둘에 비해 쓰기 애매하고 코스트값만큼을 못할 뿐이지 실용성이 없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방어력은 C지만 수면탄두연환개를 착용하면 인내심의 물피감이 중첩되기 때문에 받는 피해의 상당 비율을 흘려보낼 수 있기 때문에 작정한 세팅에서는 전화위복을 터뜨리기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 정도 딜량과 탱킹은 상향 이후의 관우도 어렵지 않게 뽑아내고 굳이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딜을 내는 항적이나 영포 이상으로 탱킹을 잘해주는 조참이 있어서 경쟁력이 부족하다.
소설 은하영웅전설에서 오스카 폰 로이엔탈이 영포가 반란 당시 유방에게 일갈했던 '''"나도 황제 한 번 해 보고 싶었다!"'''를 듣고 감탄했다. 로이엔탈은 이 말을 두고 "이보다 더 확실한 모반 이유는 없다"고 평가했다. 위의 평가에서도 나오다시피 역사 전체를 통틀어봐도 상당히 특이케이스이긴 하지만.
고우영 초한지에서는 초의제를 살해한 경력 때문에 '프로 킬러' 기믹이 붙었다. 영포 스스로도 '아이 앰 프로!'라고 말할 지경. 유방에게 반란을 일으킬 때 저 '황제 드립'은 나오지 않고, 단순히 팽월이 젓갈이 되어버리자 충격을 받고 '저런 잔인한 놈 밑에선 못살겠다!'라며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것으로 묘사했다.
진시황의 (가짜)무덤을 털 때 부하에게 싸대기를 맞은 적도 있다. 부하 병사 중 1명이 금괴를 슬쩍하다 걸리자, 영포는 처벌로 이 병사를 무덤 내에 잠깐 가뒀다. 이미 죽은 다른 인부들의 유골들과 함께 있는 건 보너스. 당연히 이 병사는 엄청난 공포에 시달렸다. 게다가 영포는 깜빡하고 무덤 내에 놔둔 채 가버리려 해서, 이 병사는 무덤에서 나온 뒤 공포와 분노에 찬 나머지 영포에게 달려들어서 뺨을 때린 것. 영포는 상황이 어이가 없기도 했고, 또 자기 잘못도 있긴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 그냥 넘어가줬다. 그리고 이 병사는 무덤 내에서 하도 심하게 당했는지 이후 정신병자가 되어서 사망.
삼국지평화에서는 손권으로 환생한다.
와이파이 초한지에서의 성우는 홍진욱. 해적 출신으로 묘사되며, 이름은 경포. 토사구팽 당시의 행적이 자세히 묘사되는데, 오예의 조카 오성에게 암살당하는 것[16] 으로 생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