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추마
1. 소개
'''烏騅馬'''
力拔山兮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었도다.
時不利兮騅不逝 하지만 시운이 불리하니 '''추(騅)도 나아가지 않는구나.'''
騅不逝兮可奈何 추마저 나아가지 않으니 난 어찌해야 하는가.
虞兮虞兮奈若何 우희(虞姬)여, 우희여! 그대를 어찌하면 좋은가.
항우, 〈해하가(垓下歌)〉
초패왕 항우의 애마. 그가 사면초가의 위기를 당했을 당시에 불렀다는 〈해하가(垓下歌)〉에 등장한다.
오추마의 실제 이름은 '''"추(騅)"'''로, 관련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다만 사마천의 《사기》 〈항우본기〉에서, 항우가 해하 전투에서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했을 당시에 최후를 직감하고 부른 〈해하가〉에서 그 애첩이었던 미녀 우희(虞姬)와 함께 언급될 뿐이다. 이 대목에서 사마천이 덧붙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후 항우는 마지막에 자신에게 강동으로 피신 할 것을 권한 오강의 정장에게 천리마를 주었는데, 이 '추' 라는 언급는 없지만 항우가 타고다니던 명마였다고 하니 아마 정장에게 준 말이 바로 이 추 였을 것이다.(항우에게는)우(虞)라는 이름의 미인이 있어서 늘 총애를 받아 따라다녔고, 추(騅)라는 이름의 준마가 있어서 늘 이를 타고 다녔다.
有美人名虞, 常幸從, 駿馬名騅, 常騎之.
《사기》 〈항우본기〉
"추"에 대한 기록은 고작 이것 뿐인지라, 이 말이 나름 준수한 말이었으며, 항우의 애마였다는 점을 제외하면 딱히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중국사 최강의 용장으로 이름을 드날렸던 초패왕 항우의 애마였던지라 후대 사람들에게는 여포가 타고 다녔다는 적토마와 더불어 명마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하의 이야기는 모두 후대의 소설 속 창작이다.'''
2. 《초한지》에서의 묘사
이후 항우에 대한 민담과 야사가 조합되면서 명나라 대에 창작된 소설 《서한연의》 [1] 등에서는 "오추마"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외모는 각색자들에 따라서 검은 바탕 혹은 청색 털에 흰털이 솟아났다는 등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다. 기본적인 베이스는 '''칠흑같이 검은 흑마'''의 모습인데, 이는 오추마의 '오' 자가 주로 오골계처럼 칠흑같이 검은 대상을 나타낼 때 쓰는 까마귀 오(烏) 자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공통적으로 묘사되는 점은 본디 개천의 흑룡이었으나 말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점 정도이다. 논밭을 횡행하면서 작물을 짓밟고 다녔으나 기질이 굉장히 난폭하여 아무도 다룰 엄두를 못 냈는데, 이 소문을 들은 항우가 다가가더니 약 반나절만에 완전히 길들여 버렸다. 그 이후로 항우와 함께 숱한 전장을 내달렸다. 이문열의 초한지에서는 이 용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항량의 독백을 빌어 원래 군마로 쓰이다 야생마가 된 말을 잡아다 바치면서 덧붙인 프로파간다 정도로 묘사한다. 보면 알겠지만 부케팔로스 설화와 비슷하다. 또한 항우가 오추마를 길들이는 과정을 지켜본 부농이 항우에게 자신의 딸(우미인)을 첩으로 삼으라고 부탁하였는데, 본의 아니게 중매(?)역도 서게 된 셈.
이후 항우가 해하에서 사면초가에 빠지게 되고, 더는 이길 수 없음을 깨닫게 된 이후에 휘하에 소수의 기병을 이끌고 결사의 탈출을 시도하였을 때에도 함께 하였다. 항우가 목숨을 잃고 오강을 통하여 남은 강동의 정병들이 떠날 때 함께 배에 올라탔으나, 주인이 목숨을 잃은 것을 알아채고는 한 차례 울부짖고 강으로 뛰어들었다가 그만 물살에 휩쓸려 가라앉았다가 더는 나오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다른 이야기로는 항우가 죽음을 결심하면서 살아남은 부하들을 배에 태우고 이 오추마도 부하들에게 마지막 보내는 선물 삼아 같이 태웠는데, 오추마는 배에 올라타게 된 후에야 주인이 자신과 헤어지려고 한다는 것을 깨닫고 주인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강으로 뛰어들다가 그만 가라앉아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쪽이든 애처로운 이야기.
이런 드라마틱한 묘사들은 후대의 각색일 뿐, 앞서 언급하였듯이 실제 항우의 애마였던 "추"에 대한 기록은 《사기》에 대한 짤막한 구절이 전부인지라 그저 항우가 저런 이름의 말을 타고 다녔다는 점만 겨우 알 수 있을 뿐이다.
3. 수명
말이 중간에 한번 바뀌었을거라는 추측이 있으며 이문열 초한지에서도 이 설을 채택한다. 말이 전장에서 뛸 수 있는 기간이 유방과 항우가 싸운 기간보다 훨씬 짧기 때문에 중간에 말이 바뀌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추측은 적토마에도 나오지만 사실 적토마의 경우 사서에 한줄 달랑 나온 걸 주인을 3번이나 바꿔가며 30년 동안 써먹은 소설의 창작에 가깝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그런데 항우의 활동 기간은 7년 정도에 불과하다. 스토리가 꽤나 긴 것 같지만 실상 몇년 되지 않는 초한지와 시작부터 최소 제갈량 사후까지 50년인 삼국지와 호흡이 비슷해서 일어나는 착각에 가까우며, 7년 정도면 큰 외상을 입지 않는 한 말 한 마리가 팔팔하게 뛰어다니기는 충분한 기간이다. 이문열의 초한지에서는 이 때문에 오추마가 함양 함락 후 급사, 항우가 은밀하게 다른 말을 찾아 대신하는 대목이 나온다. 오추마가 상징하던 항우의 어떤 권위가 퇴색하기 시작했다는 암시적 장치인 듯.[2]
4. 미디어 믹스
- 고우영 화백의 만화 초한지와 십팔사략에서는 항우가 부하들과 오추마를 탈출시키고 홀로 남게 되었을 때, 그 광경을 본 오추마가 한 차례 울부짖고 오강으로 뛰어드는데, (십팔사략 기준으로) 항우는 이 광경을 보고 "그래, 오추여. 그대는 본디 용의 몸이 아니던가! 용은 용으로 돌아갔다!"라는 말을 남겼다.[3]
- 수호지에서는 "척설오추마"이라는 오추마가 나오는데 척설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몸이 다까만데 발 부분만 하얀 털이라 눈을 차는 듯 하다 하여 붙은 이름으로 호연작이 양산박 토벌 때 황제에게 하사받은 천리마로 나온다.
- 김성모의 만화에 등장하는 엑스트라 중에 오추마라는 이름의 인물이 있다. 대털에서는 성기와 함께 인천 결호의 오른팔이며 개나리와의 전투에서 칼에 맞고 사망한다.
- 이말년씨리즈의 삼국지 여포전 에피소드에도 잠깐 등장한다. 여포의 적토마가 사실 화룡이었다고 말하며 여포와 동일한 방식 으로 말을 조련하는 항우와 조련당하는 오추마가 나온다. 오추마는 까마귀 오(烏)라는 글자 때문에 흑룡이었을 거라고...
[1] 훗날의 《초한연의》, 《초한지》 등의 원본이다.[2] 함락 후 먹이를 거부하다 굶어 죽은 것으로 나온다. 즉, 항우의 권위가 퇴색한데에는 그 지나친 잔인함이 한몫했다는 얘기로, 후반부도 아닌 제후 18분봉 직후인 5권 초반에 나온다.[3] 초한지에서는 짤막하게 "오추는 용으로 돌아갔다."라는 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