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고사성어'''
'''四'''
'''面'''
'''楚'''
'''歌'''
넉 '''사'''
얼굴 '''면'''
초나라 '''초'''
노래 '''가'''
1. 개요
2. 유래
3. 실제 사례
4. 가상 사례


1. 개요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흘러나오는 상황으로,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고립무원(孤立無援)''' 상태를 이른다. 진퇴양난의 다음 단계라고 볼 수 있다.

2. 유래


사기 항우본기에서 유래한다. 항우해하에서 한군에 포위되었는데, 초나라군이 죽기살기로 덤벼들어 쉽게 기세가 꺾이지 않자, 어느날 한군이 초군의 사기를 꺾기 위해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울려퍼지게 했다.[1]
이러자 고향과 가족 생각에 기세가 꺾인 초군에서 탈영병이 생겨났고, 한군에서 탈영하는 초군을 죽이지 않고 일부러 지나가게 해주자 탈영병의 규모는 삽시간에 늘어났다. 심지어 항우의 숙부인 항백, 처남인 우자기와 초군에서 항우 다음가는 장군인 종리말, 계포 등도 탈영했을 지경이었는데, 결국 초나라군에는 환초, 주란, 항장[2]과 800여명의 군사만이 남았다고 한다.
이에 항우는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점령했다는 말인가, 어째서 초나라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가!" 하며 크게 놀라고 슬퍼했다. 이때 항우는 비통해하며 노래를 불렀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해하가'다. 역발산기개세라는 첫구절로도 유명하다.

力拔山兮氣蓋世(역 발 산 혜 기 개 세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었도다.

時不利兮骓不逝(시 불 리 혜 추 불 서 하지만 시운이 불리하니 추(騅)도 나아가지 않는구나.

骓不逝兮可奈何(추 불 서 혜 가 나 하 추마저 나아가지 않으니 난 어찌해야 하는가.

虞兮虞兮奈若何(우 혜 우 혜 내 약 하 우희(虞姬)여, 우희여! 그대를 어찌하면 좋은가.

항우, 〈해하가(垓下歌)〉

항우가 노래를 부르자, 우희(虞姬)도 답가를 불렀다고 전해진다.

漢兵已略地(한 병 이 략 지 한군이 이미 천하를 다 빼았으매

四面楚歌聲(사 면 초 가 성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은 초나라의 노랫소리

大王義氣盡(대 왕 의 기 진 대왕의 의기가 다하셨다면

賤妾何聊生(천 첩 하 료 생 천첩이 살아서 무엇하리요.

우희(虞姬), 〈해하가〉

결국 서초패왕 항우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도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차마 항우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다고 한다. 정사에는 이후 우미인에 대한 기록이 없다.
초한지에서는 우미인 자신이 항우의 걸림돌이 된다며 직후 자결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3. 실제 사례


사실 사면초가와 비슷하게 적군에게 익숙한 노래 등을 틀어서 사기를 꺾는 심리전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종종 유용하게 사용되는 방법이다.
  • 1954년 베트남군과 프랑스군이 싸운 디엔비엔푸 전투이 막바지에 치달았을 때, 베트남군은 포위된 프랑스군의 사기를 꺾기 위해 프랑스 노래를 불렀는데 다른 노래도 아닌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노래였다. 정말 사면초가의 뜻과 딱 맞아떨어지게 된 것. 그리고 몇 달을 싸운 전투는 사면초가의 사례처럼 다음날 끝이 났다.
  • 릴리 마를렌: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군과 추축군을 막론하고 모두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인지라 이런 사례도 있다.

4. 가상 사례



[1] 이것이 한신의 계략이라는 말도 있고, 마침 그의 진지를 찾은 장량이 생각해 냈다는 말도 있다. 이걸 섞어서 "장량이 생황을 뽑아 한 곡조 부니 한신이 '바로 이거다!' 하고 써먹었다."는 말도 있다. 애초에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이긴 하다. 다만 한왕 유방부터 초나라 사람이라 초기 그의 부대 역시 초나라 출신이 많았다고 한다.[2] 항우의 사촌 항장은 판본에 따라서 최후 전투까지 동행하기도 하고 그 전에 죽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