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 게이타로
[image]
渡部敬太郎 (わたべ けいたろう)
1927년 1월 15일 ~ 1997년 11월 26일
일본의 군인, 자위관. 17대 육상막료장과 15대 통합막료회의의장을 지냈다.
1927년에 도쿄에서 태어났고 일본육군사관학교 60기로 재학 중에 1945년 일본의 패전을 맞았다.[1] 덕분에 최종 계급이 육군'''병장'''이다. 일본육군사관학교의 사관생도는 일본해군병학교나 일본육군항공사관학교와 달리 상병 정도로 취급받았기 때문이다.
1954년에 육상자위대에 입대했고 소련에서 방위주재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10사단장과 북부방면대 총감 등을 거쳤다. 북부방면대 총감 시절에는 대민홍보 차원에서 화력 시범을 민간인을 초청하여 벌이기도 했다. 1983년에 무라이 스미오에 이어 육상막료장이 되었다. 무라이 스미오는 통막장으로 옮겼는데 1984년에 무라이가 통막장에서 퇴임하면서 그대로 자리를 이어 받아 통막장을 지낸 뒤 1986년에 퇴임했다. 육막장 후임자는 나카무라 모리오였고 통막장 후임자는 모리 시게히로였다.
아들인 와타나베 나오키는 문학평론가로 활동한다.
渡部敬太郎 (わたべ けいたろう)
1927년 1월 15일 ~ 1997년 11월 26일
1. 개요
일본의 군인, 자위관. 17대 육상막료장과 15대 통합막료회의의장을 지냈다.
2. 생애
1927년에 도쿄에서 태어났고 일본육군사관학교 60기로 재학 중에 1945년 일본의 패전을 맞았다.[1] 덕분에 최종 계급이 육군'''병장'''이다. 일본육군사관학교의 사관생도는 일본해군병학교나 일본육군항공사관학교와 달리 상병 정도로 취급받았기 때문이다.
1954년에 육상자위대에 입대했고 소련에서 방위주재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10사단장과 북부방면대 총감 등을 거쳤다. 북부방면대 총감 시절에는 대민홍보 차원에서 화력 시범을 민간인을 초청하여 벌이기도 했다. 1983년에 무라이 스미오에 이어 육상막료장이 되었다. 무라이 스미오는 통막장으로 옮겼는데 1984년에 무라이가 통막장에서 퇴임하면서 그대로 자리를 이어 받아 통막장을 지낸 뒤 1986년에 퇴임했다. 육막장 후임자는 나카무라 모리오였고 통막장 후임자는 모리 시게히로였다.
아들인 와타나베 나오키는 문학평론가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