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계
1. 채운국 이야기의 등장인물
전직 어사대부(어사대의 장관)이며 현직 문하성 시중(문하성의 장관). 능안수에게 "가장 귀족다운 귀족. 앞으로도 이런 사람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라는 평가를 듣는다.
왕계라는 이름은 한자 그대로 왕가의 막내아들이라는 뜻이다.
1.1. 작중 활동
십여년 전 남주를 감찰하며 "만두를 띄워 성난 물길을 잠재우는" 고사를 남겼다.[1] 참고로 해당 고사는 사마신의 사건 당시 남긴 듯하다.
현직 문하성 시중으로서 자류휘에게 귀족들의 항의를 전달하며 누차 경고한다. 현 병부상서 손능왕과는 막역한 사이이다. 자류휘를 어린애 취급하며, 무언가 음모 같은 것을 꾸미고 있는 듯.
1.2. 정체
왕의 가문인 자가의 방계, 자문사가 중 왕가의 후계자. 선왕 자전화를 극도로 싫어하는데, 그 이유는 백성들이 싫어할 만한 일(전쟁, 가뭄 등)만 일으키는 왕이었기 때문. 정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그 일이 싫어서라고 한다. 각종 재난에 대처하기 위해 딸인 비연을 표가의 당주 표리앵에게 시집보내 표가의 부고에서 각종 재난에 대한 정보를 빼내 대처법을 마련하게 하였다. 자전화의 유일한 사랑이자 제 1대 흑랑이었던 귀희는 왕계의 누이다. 자전화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다.
청원공자를 체포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다만 그가 유배를 간 후 조정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되어 부하들 대부분이 좌천이나 암살을 당하는 일이 잦았다.[2] 그래서 지방에 있던 부하들에게 수도를 벗어나라고 매일같이 서찰을 받았다고 한다.
왕위를 위해 수십년 전부터 준비를 해 왔으며 특히 자전화에 의해 멸문된 귀족들의 후계자를 찾아내 조용히 키워내고 있었다. 순서대로 현 어사대부 규황의, 현 문하시랑 능안수, 현 상서령 정유순. [3] 손능왕 및 규황의, 능안수, 정유순 등과 함께 왕위를 얻기 위해 조용히 각 지방의 지방관들을 귀족들로 채워놓고 있었으며, 사형수 중 쓸만한 인재[4] 들을 모아 암살자로 쓰고 있었다. 따라서 병부시랑의 십삼희 암살 미수 사건 당시 병부시랑을 죽이려 들었다.
19권에 이르러 황해와 수해 등 각종 천재지변이 일어나자, 자류휘는 왕계가 천재지변에 대처하도록 전권을 위임하며, 병마권도 위임한다. 20권에서 자류휘와 독대하게 되는데, 어릴 적 자류휘가 편히 잠들 수 있었던 칠현금 연주를 했던 것이 드러난다. "짐으로서는 왕으로 안 되겠는가?" 라는 말에 "자신은 싫어하는 것[5] 을 없애기 위해 왕이 되려고 한다"라고 말하며 현왕인 자류휘에 대해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때문에 정사를 돌보는 어리석은 왕",'좋아하는 것을 위해서 정치를 해서 싫은 건 외면한다[6] 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왕으로 정사를 돌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질타한 것으로, 이로써 두 사람은 완전히 결별하게 된다.
자전화보다 피가 짙은 창가의 후예로[7] , 본명은 창계. 때문에 왕계의 딸 비연과 표가의 당주 표리앵 사이에서 태어난 리앵은 청원공자나 자류휘보다 왕위계승권이 높다. 본래 자전화가 일가친척들을 다 죽여버린 것은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왕위를 계승할 수 없을 만큼 계승권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계는 살려두었고, 그로 인해 왕계는 자전화의 심복이 득실거리는 조정에서 갖은 비방과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모든 것을 버리려고 했던 눈의 밤, 칠현금 소리의 마지막을 직감하고 달려온 어린 막내 공자와 만나고 그와의 문답을 통해 살아갈 것을 결심한다.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귀양을 떠난 왕계는 10여년 후 재회한 자류휘의 타락상에 실망하고 소요선과 거래, 3년간 기다리는 조건으로 자류휘를 즉위시킨 것이다.
압도적인 우세 위에서 자류휘와 최후의 대결을 벌이지만 결국은 자류휘가 자신보다 자신이 꿈꾸던 세계를 더 잘 만들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패배를 시인하게 된다.[8] 본인은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지기 위해 사형도 불사하려 했지만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의 안전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정유순의 조언으로 외손자인 표리앵이 자류휘의 양자가 되면서 자연스레 묻혀버렸다. 정작 본인은 자신을 처벌하지 않는 것[9] 과 '내 손자라고!!' 라며 리앵이 자류휘의 양자가 된 데 불만을 표시하는 중(...).
주변에서는 의외로 자류휘와 닮은 면이 있다고들 평한다. '''금전 감각이 없어서'''. 성 몇채를 너끈히 살 정식 군장을 정유순의 국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전당포에 금 100냥에 팔아버렸던 전적이 있다. 이런 면은 규황의도 비슷하다는 듯.
비연의 말에 의하면 완고하고 사람 말을 안 듣는다고. 그리고 이 점 때문에 딸에게 혼났다.
퇴임 이후에도 자류휘의 끈질긴 구애에도 끝내 조정으로 돌아와 자류휘의 사람이 된다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은 몇 안 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정유순이 죽고 8년이 지난 무렵, 도적과 관련된 사건을 조사하던 중 사망한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사실 국시파가 연관이 되어 있었으며, 또한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종된 능안수가 왕계의 죽음에 직접 관여하였다.[10] 다만 자주에는 왕계의 죽음 뒤에 국시파가 깊이 관여하였다는 사실만이 알려져 자류휘는 크게 분노하였으며, 당시의 재상이던 경유리는 자신과 함께 재상 일을 맡을 사람으로 규황의를 천거하였다. 이때부터 경유리를 필두로 하는 국시파와 규황의를 필두로 하는 귀족파 간의 길고 긴 싸움의 막을 열였다. 자류휘의 통치가 최상치라 불리는 최상의 치세였다고 하지만, 동시에 평온함과는 거리가 먼 치세였다고 알려진 것은 이에 기인한다. 결국 본인의 의도나 인품은 매우 훌륭한 사람이지만, 그와 다르게 평생동안 이런 저런 싸움의 굴레에서 살다가 간 비운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여담으로 상당한 늦둥이이다. 그의 형제들은 많았지만, 전쟁을 겪으며 대부분이 전사해 그가 13살이었을 때 형이 셋 밖에 없었다. 누나인 귀희 역시 여자형제들 중 막내였다고. 참고로 13세 당시까지만 해도 살아 있었던 나머지 가족들(이때 이미 흑랑으로 자전화에게 투신한 귀희 제외) 그의 아버지와 형들, 숙부들은 자전화와 처음 만났던 전쟁에서 전부 전사했다.
2. 대광현의 다른 이름
고려에 투항한 옛 발해의 왕자.
[1]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고사이지 않은가? 제갈량 문서 참조(...).[2] 황의 역시 왕계의 후계자라고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에 암살 위기를 겪기도 했다. 딸인 비연도 암살자들에게 시달리게 되자 비연은 수도에서 떨어뜨려 놨다고 한다.[3] 규황의의 경우 같은 자문사가의 일원이며 그 밑에 있는 육청아 또한 자문사가의 일원으로, 둘 다 자전화에 의해 멸족된 집안의 후계자이다. 이 점은 자전화에 의해 멸족한 홍문희가의 정유순 또한 마찬가지.[4] 대표적인 예로는 사마신이 있다.[5] 전쟁, 질병 등...[6] 황해 사건 등, 류휘의 외면이 후반부 얼마나 처절한 결과를 낳는가를 보면...[7] 채운국을 건국한 사람이 '창'현왕이며, 그 누이의 이름은 '창'요희다. 자전화와는 백여년도 전에 갈라졌으며, 자씨 부자와 비교할 수도 없는 왕가의 피를 가진다.[8] 여기에는 능안수의 삽질도 한몫했다. 근본적으로 능안수는 왕계의 사상보다 왕계 본인을 더 중요시했던 것이 패인이 되었던 것.[9] 사실 류휘의 승리가 결정되었을 때 자살하려고 했는데 능안수가 저지했다. 각종 삽질을 벌이는 능안수를 다른 측근들이 냅두고 있던 건 왕계가 자살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억지로 저지할 만한 건 능안수 뿐이었기 때문.[10] 능안수의 입장에서는 그저 과거의 약속을 지키러 온 것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