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류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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紫劉輝
1. 소개
2. 작중 행적
2.1. 고생길
2.2. 종극
3. 성격


1. 소개


채운국 이야기의 등장인물. 이런저런 말이 따라붙긴 하지만 본작의 남주인공 격인 인물이다. 갈수록 안습하고 무능한 모습을 보아는데, 이건 사실 성격 문제. 출중한 외모를 지녔으며 문무에 모두 능한 여러모로 '''엄친아'''다. 나이는 1권 당시 19세, 17권에선 21세. 성우는 세키 토모카즈, 한국어판은 김일.[1] 김서영.
채운국의 신왕으로 선왕 자전화의 막내 아들. 위로 형이 다섯이나 있었고 어머니가 전부 달랐으며 더욱이 그의 어머니가 류휘를 매우 학대한데다[2] 형제들까지 괴롭히는 통해 매우 암울한 유년 시기를 보냈다. 그를 지탱해준 것은 서고에서 일하던 홍소가와 형제 중 유일하게 자신에게 친절히 대해준 둘째 형 청원공자 뿐이었으나 청원공자가 유폐당한 뒤 하루의 반을 울며 보냈다고 한다.[4]
그런 와중 선왕이 사망하고, 유폐된 뒤 실종된 청원공자를 제외한 다른 형제가 모두 처형되면서 유일한 왕위계승자가 되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2. 작중 행적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즉위했으나 본인은 그걸 원치 않았고, 상술한 대로 언젠가 돌아올 형(청원공자)를 위해 후궁도 들이지 않고 정치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 가까운 남자들을 침대로 끌어들인다는 소문이 돌면서 게이라는 소문이 퍼진다.
그 의혹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조정삼사가 열심히 의논하여 가난하지만 학식이 드높으며 예절이 철저한 홍가의 직계 홍수려를 '''임시 후궁'''으로 데려와 왕을 갱생시키자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 때 들어온 홍수려를 보고 류휘는 '''한 눈에 반하게 된다.''' 더욱이 그녀가 자신이 존경하는 홍소가의 딸이자 명석함과 곧은 마음가짐 등 여러 장점을 가진 인물이라는 걸 알게 뒤 한층 마음이 커진다. 류휘는 홍수려에게 설득당해 왕으로서 정치에 참여해 훌륭한 왕으로서 입지를 다져나가고, 자신을 위해 힘낸 수려를 위해 그녀의 소원이었던 여성관료제를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결국 통과시키는데 성공한다.
본인은 형인 청원공자를 몹시 존경하며 자신이 청원공자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지만 청원공자를 아는 사람들은 류휘가 더 좋은 군주라고 보고 있다. 청원공자는 인간불신에 편협한 성격 등 의외로 왕에 어울리지 않는 인격적 결함이 많기 때문. 그럼에도 초반에 게이 의혹과 멍청한 왕이라는 의혹이 퍼진 건 순전히 자신이 의도했기 때문이며, 게이 의혹은 그냥 단순히 밤에 혼자 자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다만 수려가 들어오기 전에 '''할 건 다 해봤다'''고 한다. 그래서 십삼희는 류휘에게 내숭떨지 말라고 한다.
심성이 상당히 여린 것에 비해 조정에 있는 관료들은 하나같이 유능하고 무시무시하기 그지없어 새로운 사건이 터질 때마다 곤란을 겪는다. 관료들에게 주눅드는 걸 보고 있노라면 누가 왕인지 헷갈릴 정도. 약간 정과 사를 구분 못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본인이 자각하면서도 저지른 거였고, 후반에 가선 고쳐진다. 그렇다보다 그를 신뢰하는 신하들이 왕을 안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발악을 한다. 하지만 1권에서 언급되는 '''최상치(最上治)'''라느니 하는 말을 볼 때 역사에선 매우 좋게 평가되는 명군이 되는 듯. [5]
왕위에 오를 거라 전혀 기대되지 않았던 탓인지 왕가에만 내려오는 지식 같은 거에 대해선 거의 모른다.[6] 일단 이 문제는 필요할 때 누구가 가르쳐 주거나 관련자가 가르쳐 준다거나 해서 해결한다.
홍수려를 좋아하지만 수려가 꿈꾸는 여성 관리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정작 후궁으로 들이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 있다. 후궁으로 강제로 데려오면 그녀의 꿈을 무시하는 게 되고, 그렇다고 결혼한 채 관료로 놔두는 것은 권력구조가 파괴되므로 말이 안 되기 때문. 더욱이 수려 본인이 류휘에게 크게 마음을 비치지도 않았기 때문에 더욱 입장이 안타깝다. 작중에서 수려가 고독한 왕인 류휘를 안타깝게 생각하긴 해도 사랑한다는 직접적인 묘사가 없었기 때문. 다만 이는 본인의 몸 상태를 안 수려가 무의식중에 감정을 억누른 탓이기도 하다.[7] 작중 묘사를 고려했을 때 수려에게 반한 남성들 중 그녀의 마음을 얻을 인물로 가장 가능성이 있으나 이어지기에 가장 어려운 관계이기도 하다.
일단 본인이 수려만을 마음에 두고 한결같은 일편단심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비 하나만을 들이겠다고 선언했다가 이걸 역으로 이용당해 어쩔 수 없이 채칠가 중 남가의 십삼희를 후궁으로 들였으며, 결국 홍수려에게 결혼 허락을 받지 못할 경우 심삼희를 비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하게 된다.

2.1. 고생길


권수가 지나면 지날수록 신하들로부터 제대로 비를 들이라는 압박을 받아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등, 이야기가 진행될 때마다 자류휘가 아닌 왕으로서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참으로 불쌍한 인물로, 1권에서 왕으로서의 권리와 업무를 방치한 주제에 왕으로 복귀한 뒤엔 너무나도 유능하게 군다라는 초반부 독자들의 평가가 무색할 정도로 점점 무능한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 초반기에는 수려 덕에 정신을 차린 후 숨겨둔 명석함으로 국정 전반을 제대로 이끌고 있는 듯 보이지만, 뒤로 갈수록 1권에서 저지른 업무 방치에 대한 대가가 처절할 정도로 그대로 돌아오며[8], 국정을 제대로 처리한 듯 보였던 부분들도 사실 대관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모자라고 잘못된 선택을 한 부분이 많았음이 드러난다. 초반부가 꿈과 희망이 가득한 분위기였던 것은 어디까지나 생각이 짧은 주역들의 생각 위주로 서술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왕의 능력을 서서히 키울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설상가상으로 그가 신뢰하는 인물들은 멀리 떨어지거나 가까이 있어도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기에 더욱 그렇다. 직위 해제 당한 남추영이강유가 대표적이며, 이 둘을 가까이한 것 자체가 실책으로 까인다. 그러나 애초에 이 둘을 류휘의 측근으로 보낸 건 소 태사다.
한마디로 여러모로 좋지 못한 상황에 처해 더욱 고생하는 셈. 남주에 다녀오며 각오를 바로잡았지만 그 이후로 능력 밖의 상황이 터지면서 사실상 1권 초반의 상태와 비슷해진다. 차이라면 1권에서는 양위를 염두에 둔 행동이었고, 후반부는 눈뜨고 왕위 뺏기게 된 상황(...). 그 상황에서 그를 유일하게 돕고 있는 홍수려조차 자신의 명령에 의해 관리를 그만두고 후궁에 들어올 상황에 처하자 스스로를 매우 자책하고 있다. 그 와중에 주위의 신하들이 너무 멋지고 유능하고 폭풍간지를 보이고 있어 점점 존재감을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 안습.
그럼에도 문무 양반에 뛰어나며 두뇌가 명석하고, 동시에 자신의 사람들을 보살피는 인덕을 지녀 성군으로서의 자질이 충만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작중에서 유난히 고생을 많이 하는 데다 수려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그녀가 그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것, 주변 상황이 너무 어려워 수려와 이뤄지는 게 요원해 보이는 것도 불쌍해 보이는 데 한몫을 한다.
그에게 있어 가장 영향력이 큰 건 단연 홍수려이며, 그와 수려의 관계는 이 소설의 엔딩을 결정지을 향방이기도 하다. 만약 홍수려가 일찍 죽거나 다른 사람과 이루어지는 엔딩이 된다면 선왕인 자전화와 똑같이 될 것[9]으로 보일 정도로 '''홍수려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크다.'''
왕계는 류휘 본인이 목격하고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모친의 죽음과 관련한 일련의 사건의 극히 드문 목격자 중 한 명으로서, 이러한 자류휘의 사랑을 두고 그의 부모 모두를 닮은 성정이라서 그런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부친인 자전화가 끝까지 귀희 한 사람만을 사랑했던 사실이나, 모친인 제6빈이 다른 후궁들과 달리 오직 자전화의 사랑만을 원하고 그로 인해 반쯤 미쳐버렸던 점을 감안하면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2.2. 종극



결말에선 '''마침내 수려와 결혼했다.''' 결혼 후의 상황을 보아 완벽한 해피엔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류휘의 입장에선 긴 짝사랑이 이루어진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
황해를 퇴치한 왕계가 군대를 거느리고 귀환하자 어렸을 때 그를 만났던 것[10]을 기억하고는 더 이상의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 소수의 측근[11]만을 데리고 귀양에서 홍주로 도망쳤다. 이때 왕계의 추격군을 피해 산속에서 길을 잃고 계곡에 빠져 동사할 뻔했다가 지나가던 노인 덕분에 목숨을 건졌는데, 그 답례로 옥새[12]에 버금가는 왕의 신물인 보검 간장을 준다. 다행히 자정란, 남추영, 홍소가 등과 재회해 홍주로 피신한 후 홍주 주목 앞에서 전쟁은 하지 않을 것을 뚜렷이 천명한다. 그의 예상대로 봄을 지난 후에 만나자는 왕계의 친서가 닿으나, 의식이 없는 채 관 속에 누운 수려를 탈취당하고, '수려를 되찾고 싶으면 왕계에게 무조건 양위하라'는 협박편지를 받기에 이른다.
해가 바뀌어 봄이 오자 왕계와 담판을 지으러 5만 군대와 함께 자주로 향했고, 낭연청자정란의 활약으로 수려의 안전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5만 군대를 홍주까지 물린 후 홍주군에 맞춰 5만 군대를 동원한 왕계 앞에 남추영, 홍수려만을 동반하여 대치, 왕위를 넘기라는 제안을 거절한다. 그 옛날의 약속대로 일대일 검술대결을 벌여 그의 칼을 두 동강내 이겼으나 왕계의 군이 자신을 죽이려 달려들고, 그로 인해 온 나라가 전란에 휩싸일 것을 염려해 '날 죽여야 피가 그칠 것' 이라며 막야를 던졌으나, [13]
그동안 소식이 끊겼던 각주의 지원군이 자주로 집결해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었다. 왕계, 손능왕, 능안수 등 반역도당의 수괴들을 죽이지 않고 용서하는 등 왕의 그릇이 매우 큰 대인배 인증.[14]
마지막 권에서는 '''10년의 기다림 끝에''' 32세가 되어서야 수려와 혼인하게 된다. 10년동안 비도 안 들이고 버틴 걸 보면 수려에 대해서는 대단한 근성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수절하던 10년 내내 수려에게 아예 외면당한 건 아닌 모양인지, 류휘가 마음을 열기 시작한 수려를 두고 '새침하던 고양이가 따르게 된 기분'이라고 표현한 대목도 있다. 혼인 후 1년간 두 사람은 화목한 신혼을 보내지만, 행복은 길지 않아 류휘는 '''딸 하나를 얻은 뒤 상처하고 만다.'''
왕으로서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나라를 부흥시킨 창주에 비견될 성군으로 평가받으며 채운국에 태평성대를 가져온 위대한 왕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으며, 수려와 류휘의 딸이 채운국의 여왕이 되었다고 한다.
해골을 청하다의 마지막 외전 겨울의 꽃에서 그의 마지막을 알 수 있는데 딸 중화가 16살이 되던 해 쓰러졌고 그대로 생령 상태로 중화와 함께 채운국을 여기저기 여행다녔다. 그리고 2년 후 숨을 거두기 직전 소요선[15]에게 간장으로 두드려맞고 정신을 차리고 2년을 더 살다가 중화가 20살이 되던 해 봄 왕으로서 마지막 일을 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나이는 향년 53세.

3. 성격


작중 최고의 통수.
다소 여리고 미성숙한 면이 있긴 해도 근본은 상냥하며 온화한 덕에 주변인으로부터 훌륭한 왕이 될거라는 평가를 받으면 실제로도 성군이 된다.
그러나 그의 상냥함은 암울했던 어린시절에서 비롯된 애정 결핍 때문에 미움받기 싫다는 이유로 자신의 성향을 다른 사람에게 맞춰가면서 자기 자신의 실제 소망 대신 다른 사람이 원하는 모습으로 있으려 하는 것일 뿐[17], 실제로는 엄청 꼬이고 이기적인 성격이다. 형인 청원 공자와 비교하면 잘 보이는데, 청원이 인간 불신에 편협하다곤 해도, 굉장히 올곧으며 책임감 강하고 포용력도 상당하다.[18] 사실 이런 면모에 대한 건 작품 초반에도 어느 정도 나왔었다. 청원 공자를 찾겠다고 그렇게 땡깡을 피워놓고서는, 순수하게 자신을 도와주려는 수려를 만나자 바로 갈아타서는 형 찾는 것도 포기하고 업무 복귀를 해버린다.
[1] 어른의 사정으로 성우자격 정지를 당한 이후 맡은 얼마 안 되는 애니메이션 배역. 여담으로 세키 토모카즈와 김일 모두 애천사전설 웨딩피치 한국어 더빙판에서 이그니스로 출연한 적이 있다.[2] 기생 출신이라 명문가 출신의 규수였던 다른 후궁들과 달리 지지 세력이 없었고, 류휘를 낳고 나서 유일한 장점이었던 미모조차 퇴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다른 후궁들과 달리 그녀가 원했던 건 자전화의 사랑, 단 하나 뿐이었던데다 내세울 것도 없다 보니 미모의 퇴색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3] 송 태부라든가, 심지어는 가끔 자전화가 정체를 숨기고 나타나 그를 굴린 적도 있다. 덤으로 자전화의 경우에는 검술 가르친다고 올 때는 항상 막내 아들을 울리고서야 끝나곤 했다고.[4] 나중엔 그를 찾으러 궁을 떠나려는 시도까지 했지만 실패했는데, 그 당시 떠나는 걸 막은 게 현재의 대장군들이라고 한다. 가르친 인물이 인물[3]인지라 일반 사병들로는 어림도 없고 대장군이 나서서 막아야 했다.[5] 그렇긴 하지만 보통 저 단어가 뜻하는 대로 태평성대를 이룬 것은 아니다. 재위 기간 내 한 순간도 결코 평탄하지 않았던 치세였다고 하며 그 덕에 자정란과 남추영이 요절했음이 마지막 외전에서 밝혀졌다. 참고로 이 기간이 최상치라 하여 정치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혼란스러웠던 이유는 다름아닌 왕계의 죽음에 있었다. 항목 참고.[6] 상술했다시피 자류휘는 애초에 주변의 무관심과 학대 속에 방치된 채 자랐다. 게다가 그나마 자주 들르며 그를 보살펴 주던 청원 공자가 귀양을 간 뒤로는 돌봐주는 사람도, 이런 것을 가르쳐 줄 사람이 전혀 없었다. 왕족으로서의 기본 지식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7] 뒤로 갈수록 수려가 자주 '류휘에게 사랑받으며 후궁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같은 식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 짐작 가능하다. 수려의 사정에 관해서는 홍수려 문서의 해당 항목 참조.[8] 거의 국운이 좌지우지될 수준의 큰 사안이 많았다.[9] 자전화는 자신이 사랑했던 단 한 여인을 잃은 후 후궁을 들이지만 누구도 사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10] 죽음의 위기에 처한 왕계를 목격하고, 왕계로 하여금 살아남기 위해 성을 떠나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결심을 하게 만든 것이 바로 류휘. 당시 왕계에게 그의 것이라는 막야를 돌려주려 했으나 왕계는 후일을 기약하고 사양한다.[11] 남추영, 홍소가, 고한승, 황자룡 및 마지막까지 류휘에게 충성을 맹세한 근위병들.[12] 도망칠 때 이걸 놓고 나갔다고 한다. 정유순이 챙겨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이에게 주기 위해 보관하고 있었다.[13] 산속에서 류휘를 구해준 외팔이 노인은 왕계가 가지고 있던 명검을 만든 장인이었는데, 과거에 왕계가 자전화에게 쫓기던 걸 구해줬을 때 그가 답례로 말이며 돈이며 죄다 내놓았음에도 검과 갑옷만은 필요하다며 내놓지 않았던 걸 언급하며 거리낌없이 간장을 준 류휘와 비교했다. 왕계는 다시금 싸우기 위해 검과 갑옷을 보관했지만, 류휘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라도 전쟁은 막을 것이었으므로 필요 없다며 내놓은 것. 즉 왕 된 자로서 전쟁에 대한 마음가짐이 다른 것을 보여준 셈.[14] 물론 실제로는 죽였을 경우의 후폭풍을 감당 못해서이지만.[15] 소요선은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졌다가 강유의 아들이 국시를 볼 적에 돌연 나타나 장원급제를 했다고 한다. 이후 남용련처럼 행방불명 상태로 있다가 류휘가 죽기 직전에 돌연 나타나 류휘를 간장으로 패서 깨웠다고.[16] 자전화가 류휘에게 왕실의 비밀들에 대해 가르친적이 없는 걸 보면, 그도 류휘를 꽤 오랫동안 후계로 고려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17] 왕계와 자전화는 이걸 꿰뚫어 보았었고, 그것이 그들이 류휘를 왕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했던 이유 중 하나인 듯하다.[16][18] 류휘는 자기를 괴롭힌 형제들을 엄청 싫어하지만, 청원은 형제들이 자신을 죽이려 들었는데도 별 악감정이 없다. 자신을 저버린 부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