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치
Ötzi[1] / Oetzi[2]
1. 개요
그의 생전 모습.[3]
미라의 사진(미라화한 시신의 모습이므로 열람 주의 바람.)
1991년 9월 19일 이탈리아-오스트리아 국경 사이 알프스 산맥의 외츠 계곡에서 발견된 약 5300년 전(청동기 초기) 중년 남성의 자연 냉동 미라. 그의 생존 시대와 뛰어난 보존 상태 덕분에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며, 발견 당시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다.
현재까지 발견되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미라 중 가장 오래 된 미라이며, 또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미라로도 손꼽힌다. 외치라는 이름은 발견 지역의 이름을 딴 것이며, 별명은 "아이스맨(Ice man)"이다. 시신뿐만 아니라 가죽옷, 나무 활 등 썩기 쉬운 유물까지도 5300년 전 상태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초기 청동기 시대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더없이 귀중한 유해이다. 현재 외치는 이탈리아 볼차노의 남(南)티롤 고고학 박물관(South Tyrol Museum of Archaeology)의 영하 7도로 유지되는 무균 냉동실에 보관되고 있으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연구된 인간'으로서 아직도 계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2. 발견
독일인 등반가 부부인 헬무트 지몬과 아내 에리카 지몬은, 하산 도중 알프스 산맥 피나일봉(해발 3200m) 부근 외츠 계곡에서 얼음에 묻힌 채 상반신을 드러낸 시신 한 구를 발견했다. 당시 부부는 조난된 등산객이거나 1, 2차 대전중 낙오된 병사의 시신이라 생각하여(그런 사례가 종종 있었다.) 신고하였으나, 시신 발굴 중 가죽옷, 구리 도끼 등이 나오자 탄소연대 측정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는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무려 5300여 년 전 청동기 시대 사람의 미라'''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고고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고, 전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다.
당시 시신과 유품들은 도랑 형태의 두 바위더미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도랑안의 시신 위로 3m 두께의 눈과 얼음이 들어찼고, 그 위로 빙하가 덮여 시신과 유품들이 5천년이 넘도록 온전하게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시신은 빙하의 무게에 눌려, 두개골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납작한 모습이 되었다. 엎드린 상태의 시신은 왼쪽 엉덩이와 허벅지 살이 야생동물에게 뜯어먹혀 손실된 상태였다.
3. 신체
외치의 사망 당시 나이는 45세, 키는 160cm, 몸무게는 50kg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유전자 암호 분석결과, 검은 머리칼에 고동색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4] 혈액형은 O형이었고, 동맥경화에 취약했으며, 담석증이 있었고, 라임병(진드기에 감염되는 세균성 질환)에 감염되었으며, 대장에선 편충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심한 치아마모증과 치주질환 및 치조골 손상 등의 질환을 겪고 있었다.[5] 또 심한 관절염에도 시달리고 있었다. 위장에선 헬리코박터균이 발견되었다. 2016년 신문기사
4. 소지품
의류들은 일부가 소실되었으나, 재질과 원형을 알아내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 작은 도구들이 든 가죽가방과 바구니,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그릇.
- 도구: 사슴뼈 바늘과 끈, 뼛조각, 연필 모양의 뼈 공구, 부싯돌, 풀로 만든 칼집에 든 돌단도.
- 의류: 곰 가죽모자, 조각난 염소 가죽을 이어서 만든 가죽바지, 양가죽, 염소가죽으로 만든 코트, 풀로 엮은 망토, 소가죽으로 만든 가죽 신발끈, 건초를 채운 사슴가죽 신발. 관련기사와 복원사진
- 무기: 1.8m 길이의 주목나무 활(잉글리쉬 롱보우와 재질이 같다. 미완성)과 산딸나무, 가막살나무로 만든 돌화살 14개(미완성품 12개, 완성품 2개)가 든 노루 가죽 화살통(손상이 심함), 그리고 뼈 손잡이로 된 구리 손도끼(유럽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금속도구중 하나로, 순도 99.7%.).
- 기타: 가죽끈에 꿴 상태의 버섯들을 가지고 있었다. 발화제 겸 연료인 말굽버섯(불이 잘 붙고 오래 탐)과 함께, 의료용으로 자작나무 버섯(얇게 썰어서 일회용 반창고로 사용할 겸 진통제로 복용. 근대에서야 그 효능이 알려짐)도 가지고 있어서, 5천년 전에도 나름의 의학지식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 먹다남은 훈제 혹은 염장 고기의 뼛조각과 비타민 보급용으로 보이는 자두씨도 지니고 있었다.
5. 직업
CT촬영 결과, 상체에는 다부진 근육을 가지고 있었으나 무리한 흔적이 전혀 없는 대신, 무릎과 엉덩이의 고관절, 요추 하부, 발목에 관절염이 있었다. 특히 무릎과 고관절은 연골이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이는 외치가 농업에 종사하지 않았고, 뭔가를 짊어지고 줄곧 걸어다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위장에선 여러 종류의 꽃가루[6] 와 함께, 두 차례에 걸쳐 섭취한(마지막 식사는 사망 30분전) 밀알, 야채, 야생염소의 일종인 아이벡스 고기, 붉은 사슴 고기가 발견됨에 따라(대식가였다고 한다.), 사냥꾼으로 종사하면서 물물교환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6. 사망 원인
최초 발견 시에는 동사했거나 아사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이후 연구결과, 외치가 왼쪽 어깨아래에 박힌 돌화살촉에 치명상을 입었으며[7] , 뒤통수에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이 직접적인 사망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8] 또한 오른손에도 공격을 막다가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 함께 발견된 화살촉과 칼, 의류에서는 4명분의 혈흔이 발견되어 현재는 타살, 전투 중 전사로 추정하고 있다.
7. 부족과 조상
위의 사실들로 인해 외치가 수렵 및 채집 생활을 하던 부족에 속해있었는지, 아니면 그보다 더 발전된 농경 사회의 부족이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지만, DNA를 추출하여 각 시대 유골들의 유전자와 비교한 결과, 농경 부족 사회속에서 살아가던 사람임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외치의 조상 또한 외치가 태어나기 2천년 전에 터키에서 유럽으로 이주, 정착한 초기 농경부족이었음이 밝혀졌다. 이는 당시 수렵부족이 농경부족에 밀려났음을 시사한다.
또한 착용하고 있던 의복과 소지품 다수가 양, 염소 등 가축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과, 수렵문화에선 나올수 없는 구리 도끼, 위장에 들어 있던 음식물 중 고기 외에도 밀알이 많이 섞여 있었음도 외치가 농경 사회 안에서 살아간 사람이었음을 뒷받침한다. 하플로그룹은 K1f.
8. 최초의 문신 미라
또한 외치는 문신이 새겨진 채 발견된 최초의 미라이다. 원래는 남아메리카의 친초로 미라가 가장 오래된 문신 미라였으나, 탄소측정상의 오류가 발견되면서 외치가 가장 오래된 문신 미라가 되었다. 해당기사
외치의 몸 구석구석에 새겨진 백여 개의 문신은 발견 당시부터 학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MRI와 엑스선 등으로 정교한 분석을 한 결과 외치의 등 아래 쪽 관절들의 마모 상태(특히 무릎 쪽)가 심한 것으로 보아 심한 관절염을 앓고 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문신들은 특히 관절염이 심했던 부위들에 몰려서 새겨져 있었고, 담석증이 확인된 부위인 하복부에도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이는 문신을 주술적 치료 용도로 사용했음을 보여 준다. 2019년 6월 16일 서프라이즈에선 문신을 침을 놓은 자국으로 해석했다.
9. 여담
- 외치는 처음에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 대학에서 보관했었으나, 발견 지점이 이탈리아 국경 안쪽 95m 지점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1998년 현재의 남티롤 고고학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 외치를 처음 발견한 지몬 부부는, 외치가 엄청난 뉴스거리가 되고 발견장소가 관광지로 발전하자 주 정부에 보상을 요구했다. 주 정부는 '외치를 보관하는 비용이 더 든다'며 항소했으나, 오랜 법정공방 끝에 결국 법정은 지몬 부부의 손을 들었다.
- 이후 공교롭게도 헬무트 지몬(67)은 산행을 떠났다가 조난당해 2004년 10월 23일 시신으로 발견되었고(신문기사), 이후 외치와 관련된 6명의 학자, 구조대원 등이 잇따라 사망함에 따라 '아이스맨의 저주'라는 괴담이 떠돌기도 했다. 물론 외치 조사와 관련된 이는 7명이 아니라 수백 명에 이른다.
- 연구가 진행되던 과정에서 외치의 고환은 발견했으나 음경 부분이 보이지 않아 성불구자설, 도난설 등 온갖 헛소문이 떠돌기도 했었다. 결론은 그냥 미라화되면서 쪼그라들어 보이지 않았던 것.
- EBS 프로그램 '세계의 눈'에서 '냉동인간 재탄생하다'라는 제목으로 외치에 관한 영상이 방영되었다. 해당영상 냉동미라 외치에 대한 사실들과 그 복제품의 제작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담고 있다.(2016년 10월 16일 방영 / 44분).
- 연구결과, 위장에서 현대인에게도 위염, 위궤양의 원인이 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이 발견되었다. 2016년 신문기사
- 외치 발견 25주년을 기념하여 발표된 연구로, 외치의 목소리를 디지털로 복원해내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복원한 외치의 음성
- 2019년 6월 16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
- 다큐멘터리 '세계의 눈'에서 외치에 관한 내용을 심도있게 다루었다. 해당 회차 링크, 제목은 '냉동인간 재 탄생하다'였다.
- 2020년 2월 15일 차트를 달리는 남자 171회 미스테리 사망 사건 회차에서 ‘외치의 저주’에 대해 다루었지만 현실과 달리 과장된 부분이 일부 존재한다.
[1] 독일어 표기. 다만 이 표기를 두고 그냥 '독일어'라 칭하기가 모호한 것이, 최초 발견지는 독일어권인 오스트리아 인근이며, 이탈리아를 포함해 확장 로마자(기호가 추가된 로마자)를 쓰는 다른 유럽 언어들도 'Ötzi'라는 표기를 주로 사용한다. 인터넷내에서는 모국어에 관계없이 이 'Ötzi' 표기와 아래의 영어식 표기가 혼용되고 있다. 한국어로는 발음의 괴리가 있으나, 로마자 표기 없이 '외치'로 부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2] 영미권 표기.[3] 아래에 링크된 미라의 모습과는 달리 생전의 모습을 두개골을 비롯한 남은 유해를 통해 추정해 재현한 것으로, 그냥 원시시대 백인 아저씨의 모습이다.[4] 당시에는 푸른 눈의 유전적 형질이 나타나지 않은 시기였다고 한다.[5] 이는 빵이나 시리얼 죽같은 탄수화물로 인해 여러 우식질환이 유발된 상태로, 발달한 농경문화를 보여준다. 다만 제분기술의 부족으로, 이 음식들은 상당히 거칠었을 것이다. 신문기사 참조[6] 적어도 사망 48시간 전 내내 산속을 걷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7] X-레이로 2001년에 발견. 2007년 CT촬영으로, 뒤에서 견갑골을 뚫고 박힌 돌화살이 좌쇄골하대동맥을 파열시키고 쇄골 아래에서 멈췄음을 알게 되었다. 관련뉴스 이 경우 10~15분 이내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된다. 아래 발표가 있기 전까진 이것이 직접적인 사망원인으로 여겨졌다.[8] 유럽아카데미 미라 및 아이스맨 연구소(EURAC)에서 2013년 발표. 신문기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