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헨 린트
1. 개요
요헨 린트는 오스트리아 국적을 내걸었던 독일인 레이싱 드라이버로 1970년 이탈리아 그랑프리의 연습 주행 중 사고로 사망했다. '''사후에 포뮬러 원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이 된 유일한 선수'''이다. 요헨 린트가 사망한 이후 남은 드라이버들이 꾸준히 그의 포인트를 따라잡으려 했으나 끝내 그 차이를 잡지 못하고 월드 챔피언으로 남게 되었다.
성적으로도 알 수 있듯이 무모한 드라이빙 스타일을 가진 당대 가장 빠른 드라이버였다.
포뮬러 원 이외의 레이싱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는데, 1965년 르망 24시에서도 우승한 전력이 있다. 그는 재키 스튜어트와 가까운 친구였다고 한다.
2. 생애
2.1. 제2차 세계대전 중 태어난 아이
요헨 린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의 마인츠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함부르크 폭격 중에 사망했기 때문에 그는 조부모가 있는 오스트리아에서 자라게 되었다. 린트는 그곳에서 모터스포츠에 입문하게 되었다. 살아 생전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았지만 그의 포뮬러 1 커리어는 오스트리아 레이싱 자격증으로 오스트리아 국적을 내걸고 출전했다.
2.2. 포뮬러 1
1964년 오스트리아 GP에서 Rob Walker Racing이라는 팀에서 브라밤 BT-11을 렌트하여 처음 데뷔하였다. 다음해 쿠퍼팀으로 이적해 브루스 맥라렌과 같이 팀의 메인 드라이버로 활약했다. 1968년 브라밤 팀으로 이적하였는데 이때부터 버니 에클레스톤이 그의 사실상의 매니저 역할을 했다. 1969년 로터스팀 소속으로 달리기 시작해 그해 시즌을 종합순위 4위로 마무리하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마침내 문제의 1970년이 시작되고 스페인과 벨기에, 오스트리아 GP에서만 리타이어 했을 뿐 5번의 GP를 우승하며 포인트 선두를 달렸다. 그러던 9월 6일 이탈리아 몬자에서 열린 그해 10번째 GP에서 연습주행을 하던 도중 경쟁자들이 다운포스를 낮추고 기록을 빠르게 당기자 그는 아에 에어로파츠를 떼고 RPM 리미트도 풀고 달리기로 한다. 5번째 주행에서 브레이킹 중에 전륜 브레이크 조인트가 부러지며 스핀한 경주차가 부실한 안전 배리어에 충돌하면서 목 부상을 당했고, 병원으로 이송 도중 숨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가 생전에 거둬놓은 포인트가 45에 달했고 그 뒤를 바짝 쫒던 재키 아이크스는 요헨 린트의 후임으로 Type 72의 콕핏에 앉은 에메르손 피티팔디가 미국 GP에서 우승해버리면서 결국 요헨 린트의 사후 챔피언 달성이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