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센
[clearfix]
1. 개요
'''Land Hessen, 헤센 주 '''
독일의 16개 연방주 중 하나로, 독일 중부에 자리잡은 주, 면적은 21,110km², 인구는 6,077,000명(2006년 기준)이다. 주도는 비스바덴이지만 최대 도시는 프랑크푸르트이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 연방 시절 연방 의회가 소재한 도시이기도 하며, 독일 유수의 대도시이며, 여전히 대도시인 만큼(...) 헤센 주의 정치,경제의 중심이다. 1차 대전 종전까지 독일 제국의 한 부분을 차지하던 헤센 대공국에서 기원했으며, 헤센-카셀 지역과 헤센-다름슈타트 지역,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지역이 합쳐져서 헤센 주가 되었다. 다만 헤센 대공국과 오늘날 헤센 연방주는 행정 구역의 범위에 있어 약간 차이가 존재하는데, 헤센 대공국의 일부였던 라인헤센(Rheinhessen) 지역이 옆 주인 라인란트-팔츠로 편입되었기 때문. 헤센이라는 지명은 로마 제국 시기 이 일대에 거주하던 게르만족의 한 분파인 카티(Chatti) 족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독일어의 모체인 고지독일어는 약 5~8세기경 몇몇 자음이 변형되는 현상을 겪었다. 이를 고지독일어 자음변형 현상이라고 하는데, 이 때 ㅋ(/k/) → ㅎ(/x/), ㅌ(/t/) →ㅅ(/ss/) 로 바뀌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여기서 chatti가 hessi 또는 hesse로 바뀌었을 거라고 학자들은 추측한다.
2. 역사
온난한 기후 덕에 기원전 5만년 경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이후로 켈트족이 이곳에 살다가 기원전 1세기 무렵에는 게르만족의 한 분파인 카티족이 이곳에 거주했다. 다만 정황상 이 카티족은 토이토부르크 전투의 패배 이후 로마군에 의해 추방된 것으로 추측된다. 아직도 카첸푸르트(Katzenfurt)등 카티족의 이름을 딴 지명이 남아 있다.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로는 프랑크 왕국의 영역에 속하였으며 프랑크 왕국 시기까지는 튀링겐 주와 하나로 통합된 상태이다가 신성 로마 제국의 성립 이후인 13세기에 헤센 방백령이라는 명칭으로 처음 독립된 행정구역이 된다.
이후 종교개혁 시기에 헤센 방백 필리프 1세가 마르틴 루터에게 뻑가면서 개신교로 개종했고, 작센 선제후와 더불어 카를 5세에 대항하는 유력 제후가 되었다. 필리프 1세 사후 헤센 방백령은 헤센-카셀 / 헤센-다름슈타트 / 헤센-라인펠스 / 헤센-마르부르크 네 개의 영역으로 분리되었고, 이 중에서도 헤센-카셀과 헤센-다름슈타트가 가장 힘이 강했다. 당시 헤센 방백국의 통치자인 필리프 1세가 마르틴 루터가 자식들을 차별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그대로 이행하여 분할상속하여 네 아들에게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의 영향권인 헤센 방백령이 아니더라도 장자상속 특권이 있는 건 선제후만 가능하고 다른 제후들은 장자이하 차남급들은 성직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 두 헤센은 사사건건 으르렁거렸는데, 같은 가문이어도 영지 조정문제를 두고 다툼이 잦았기 때문이다. 카셀은 루터파에서 다시 칼뱅주의 개신교를, 다름슈타트는 여전히 루터교회를 지지했다. 심지어 30년 전쟁 기간에도 카셀은 개신교 진영을 지지하고, 다름슈타트는 가톨릭 진영을 지지했을 정도. 사실 이 당시만 해도 루터파와 칼뱅파 사이에 골이 깊었던 때라 루터회 도시가 가톨릭 진영에 들어가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후 헤센-카셀 지역은 1803년 레겐스부르크 제국회의 결과 나폴레옹에 줄 선 대가로 방백에서 선제후로 승격되었으며, 헤센-다름슈타트 지역은 1806년에 헤센 대공국으로 승격된다. 그런데 헤센-카셀 지역이 1866년 7주 전쟁에서 줄을 잘못섰다가 망했어요. 헤센-카셀 지역은 나사우 공국, 프랑크푸르트 자유시와 함께 통폐합되어 헤센-나사우 구역으로 프로이센에게 편입당하면서 그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후 헤센 지역의 명맥은 헤센-다름슈타트, 즉 헤센 대공국에 의해 계승된다. 사실 헤센 대공국도 합병될 처지였으나 러시아 황후가 헤센 대공가 출신이라서 사위 덕에 합병은 면하고 북부 홈부르크 지역만 북독일 연방에 강제로 가입한다. 북부지역은 명목상 헤센 대공의 통치령이었으나 북독일 연방의 맹주 프로이센에서 보낸 관료들이 통치했기 때문에 프로이센의 영토나 다름없었다. 헤센 대공국이 할 수 있는 거는 이제 얌전히 프로이센의 말을 잘 듣는 것이었고 보불전쟁에서 프로이센을 열심히 후원한 데 이어서 직후 탄생한 독일 제국에 참가한다. 다만 이것은 단순히 프로이센에게 눌린 것 뿐만이 아니라 보불전쟁 직전 있었던 엠스 전보 사건이 독일 내 민족 감정을 폭발시켜서 자발적으로 프로이센을 후원한 면이 크다. 프로이센의 라이벌 바이에른 왕국에서조차도 보불전쟁 시기 프로이센을 돕자는 여론의 목소리가 드높았을 정도이니.
이후 1차 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끝나면서 독일 내 다른 왕국들과 마찬가지로 헤센 대공국도 폐지되고 공화정 형태의 연방 주로 바이마르 공화국에 존속하게 된다. 2차 대전 종전 후에는 프랑스군과 미군이 이 지역의 점령군으로 주둔하게 되는데, 프랑스가 점령하였던 라인헤센 지역은 서독의 건국과 함께 라인란트-팔츠 주로 편입되었고, 미군이 점령하였던 헤센-다름슈타트와 헤센-나사우 지역은 통합 헤센(Groß-Hessen) 지역으로 합쳐진다. 이 통합 헤센 지역이 바로 오늘날의 헤센 주.
헤센 주 동부의 풀다(Fulda) 지역은 냉전 시절 군사적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풀다 시 자체는 옛 동독-서독 국경지대에 인접한 한적한 소도시에 불과하지만 이 곳은 독일 본토 전체를 아우르는 교통의 요지였다. 만약 소련군을 비롯한 바르샤바 조약군이 유럽을 공격할 경우 진격로의 핵심은 당연히 독일 본토가 되는데, 그 독일 본토의 진격로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루트가 바로 이 풀다였다. 풀다를 통과하면 서독의 수도인 본으로 직행할 수 있고, 또 프랑스, 벨기에 등 서유럽 지역으로 진격하는 루트 중 가장 빠르고 편한 길이 이 풀다를 통과하는 루트였다. 이 때문에 풀다를 반드시 장악해야 했다. 그래서 이 진격로를 두고 풀다 갭(Fulda gap)이라는 용어도 있었다.
3. 사회
3.1. 경제
중, 근대 시대의 헤센은 자체적인 경제기반이 부족했기 때문에 '''자국군을 외국의 전쟁에 파견하고 그것을 통한 대금을 국가의 주 수입원으로 삼기도 했다'''. 그렇다. '''현실에 존재했던 용병 국가'''였던 셈이다. 군인이 국가의 수입원이다 보니 헤센의 인구는 엄격히 관리되고 질적으로 수준높은 군대가 되었으며, 한때는 전 국민의 7%가 군인이었을 정도. 특히 영국이 헤센군을 자주 고용했었는데, 미국 독립전쟁에 고용된 헤센군은 미국인들이 치를 떨 정도의 실력자들이었다. 미국은 이들에게 정착할 땅을 준다며 탈영을 종용했고 일부는 이 방식을 통해 비공식으로 군사고문으로 고용하기도 했기에 한동안 미국에서 '''헤센인=용병'''으로 정착되기도 했다. 슬리피 할로우의 헤센 용병도 여기서 모티브를 따온 것.
현재는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독일 내 금융업의 중심지다. 유럽중앙은행, 독일 연방 은행, 독일 증권거래소, 도이체방크, 코메르츠방크 등등 독일 내 거의 모든 금융 기업이 이 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덧붙여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역시 일대의 경제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으며 칼 차이스, 라이카, 폭스바겐 등도 이 곳에 공장을 두고 있다. 거기에 특이하게도 이탈리아 제과기업인 페레로가 이 주에 위치한 슈타트알렌도르프(stadtallendorf)라는 지역에 공장을 지었다. 킨더 초콜릿이 여기에서 생산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는 독일에서 꾸준히 재정적으로 풍족한 지역이다. 니더작센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역은 20세기 후반 제조업이 조금씩 후퇴하면서 위기를 맞았었고, 반면 바이에른은 1970년대까지 다른 주의 세금을 먹어치우다 이제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다.
3.2. 정치
기민당과 사민당의 지지가 고른 편으로, 독일 내에서 대표적인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이다. 금융업계가 많은 특성 탓에 신자유주의 성향인 자민당도 다른 지역보다 높은 지지율을 얻는 곳. 최근에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해 녹색당이 제3 정당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헤센 주의회에서 기민당과 녹색당이 연정으로 집권하고 있다.
3.3. 사법
1946년 주 헌법으로 사형제를 허용했지만 1949년부터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연방 기본법(Grundgesetz)이 사형제도를 금지함에 따라 현재는 실시하지 않는다. 원래 이렇게 연방 헌법과 주 헌법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상위개념인 연방 헌법을 따르는 게 규칙이다. 그리고 2018년 11월 2일 주 의회 선거와 함께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해당 조항을 폐지함으로써 사형제가 완전히 폐지되었다.
3.4. 문화
- 개신교가 38%, 무종교가 37%, 가톨릭이 24%로, 인구 비율은 얼추 1대 1대 0.8 정도를 보이고 있다. 개신교는 헤센주 서부인 나사우[2] 지역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고, 가톨릭은 동부인 풀다에서 강세를 보인다. 프랑크푸르트는 가톨릭이 소폭 더 높다.#
- 지방 특유의 사투리를 헤시쉬(Hessisch)라고 부르는데, 헤시쉬는 독일 표준어에 비해 자음이 약화되는 특징을 보인다. 가령 T는 S로, K는 H로, P는 B로 바뀌는 식. 예를 들어 독일어로 사과는 Äpfel[3] 이라고 하는데 이 곳에서는 Ebbel이라고 발음하는 식. 영어가 된다면 이 영상을 참고하자.
- 독일 제국 성립 이후로도 40여년간 독자성을 유지한 헤센 대공국 영역(지금의 헤센에서는 남부 일대)에서는 헤센 대공국이 당시 대영제국 및 러시아 제국의 황실과 혼인 관계를 맺었던 탓에 신고전주의적이면서도 제국스러운 위풍당당한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는데 반해, 북부의 헤센-나사우 일대에서는 프로이센 스타일의 문화재가 많이 남아있다.
- 또한 헤센 지역은 20세기 초반 아르누보, 독일어로는 유겐트 양식(Jugendstil, 유겐트슈틸)의 중심지였던 탓인지 각종 전시회도 잦은 편. 제 1 도시인 프랑크푸르트의 오페라 하우스와 도서전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 헤센 지역 사람들은 단도직입적이라는 편견이 있다.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말한 독일인들의 특징 ―융통성이 없고 말을 돌려 말하지 않는다 등―은 헤센 사람들의 스테레오 타입이다. 물론 현대처럼 지역 간 교류나 이사가 많은 상황에서 무의미해졌다.
4. 행정구역
3개 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5. 주요 도시
6. 관련 문서
-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 SV 다름슈타트 98
- SV 베헨 비스바덴
- 키커스 오펜바흐
- 하슘: 헤센 주의 이름을 따서 이름지어졌다.
- 헤센 대공국
- 헤센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