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키 스튜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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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그레이엄 힐과 더불어 F1 종주국 영국의 가장 대표적인 월드 챔피언 '''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F1 드라이버.
선배이자 영웅이었던 짐 클락이 사망한 이후 그 바통을 이어받아 70년대 초반까지 F1을 지배했던 스타 선수였으며 티렐 팀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포뮬러 1 역대 선수를 줄세울 때에 언제나 6~10등 사이로 평가받는다. 1968년 뉘르부르크링에서 '''2위와 4분 차이'''로 우승하는 등의 전설적인 활약을 남겼다. 1973년에도 챔피언을 여유있게 확정한 뒤, 마지막 레이스인 미국 왓킨스 글렌에서 100경기째를 채우고 명예롭게 은퇴할 계획이었으나, 팀 동료이자 유망주이며, 본인의 뒤를 이을 챔피언으로 점찍어놓았던 프랑스의 프랑수아 세베르가 연습주행 도중 사고로 사망하면서 결선에 출전하지 않기로 결정, 그의 레이스 수는 99에서 멈추게 되었다. 은퇴 시점의 레이스 우승수인 27회는 당시 역대 최고 기록으로, 14년 뒤에서야 알랭 프로스트가 깨게 된다.
1966년에 스파-프랑코샹 서킷에서 급작스럽게 비가 오면서 사고를 당했는데, 천만다행으로 큰 부상은 없었으나 뜨거운 기름이 퍼붓는 차 안에 갇힌 상황이었다. 이런 스튜어트를 구해준 것은 트랙 마셜도 아니라 동료 선수들이었고, 그들은 장비도 없어 주변에 사는 주민에게 빌려서 스튜어트를 차에서 빼내야 했으며, 구급대가 오는 데에는 20분이 걸렸다. 죽다 살아난 스튜어트는 이후 GP 씬의 대표적인 안전 운동가가 되는데, 그는 언론 홍보활동과 선수 단체활동 등으로 서킷 주인들을 압박하여 나무를 치우고 배리어를 건설하며 마셜 인원을 확충하는 데에 앞장선다. 스튜어트 본인도 스티어링 휠에 비상시를 대비한 렌치를 달아놓고 자비로(!) 앰뷸런스와 구급대원들을 고용해 피트에 배치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사망자가 끊이지 않아 요헨 린트나 프랑수아 세베르 등이 죽어나가는 상황이 이어졌으니 스튜어트가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노력을 거쳐 현재의 F1과 기타 하위 레이싱 클래스들은 종목 자체의 어마어마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안전하게 변하였다.
은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F1계에서 활동했고, 아들과 함께 차린 스튜어트 팀이 1997년부터 1999년까지 포드의 후원을 받고 F1에 참가하여, 1999년에는 조니 허버트의 우승과 루벤스 바리첼로의 몇 번의 포디움을 위시해 매우 성공적인 성적을 거두어 팀순위 4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포드에게 완전히 팀이 넘어가 재규어 레이싱이 되었다가, 2004년 말에 레드불이 팀을 인수하면서 그 유명한 '''레드불 레이싱'''이 된다. 다만 스튜어트 본인은 이미 팀에서 손을 뗀 지 오래다.
2. 여담
- 타탄 캡과 롤렉스 선글라스, 그리고 장발의 조합을 활동시기부터 70이 넘은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으며, 1970년대 당시 일종의 패션 아이콘으로 등극하였다. F1의 열렬한 팬인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친분이 있으며, 1971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두 사람의 만남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챔피언의 주말>이 있다.
- 엄청난 성적과 레이싱 안전에 끼친 영향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에 기사작위를 받았다.
- Robbie Williams 의 노래 'Supreme' 뮤비의 관련 인물이기도 하다.
[1] 1970년 마트라 인터내셔널이 '티렐 레이싱 기구 (Tyrrell Racing Organisation)'로 개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