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 치즈코
[image]
1. 개요
일본의 사회학자이자 페미니즘 사상가
국내에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는 도서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교토대학 사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도쿄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2011년 명예 교수로 이름을 올렸다. 일본 국내의 여성 활동 지원과 단체 간 연결을 위해 NPO 법인 WAN(Women's Action Network)을 설립했다. 1994년 『근대가족의 성립과 종언』으로 산토리학예상을 수상하였다. 연세대학교 조한혜정 교수와 서간집 《경계에서 말한다》는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동시 출간되기도 했다.
2. 페미니즘 가치관
일본 황실부터, 매춘, 위안부, 결혼 제도 등 많은 것등을 망라하는 여성주의 주제들을 래디컬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에 기반한 독자적 관점으로 일관되게 접근한다. 다만 본인은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로만 지칭한다.
현재의 사회와 그 구성원들이 과거로부터 전례, 전승되어온 이른바 여성혐오를 내재화하고 거기에 종속된 것으로, 사회구조는 이를 사실상 난공불락의 수준까지 단단히 구축하고 지속시키는 기반이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펴고 있다. 대표적으로 동아시아 사회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근대적인 가족구도와 가족중심주의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이고[1] , 결혼하지 않는 것을 미혼이라 부르지 않고 비혼이라 표현하며, 결혼제도를 여성을 남성에게 철저히 종속시키는 일종의 수직적이고, 불평등한 노예계약이자 계급구도의 고착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본인도 비혼을 고수하고 있는 상태.
3. 대한민국에서의 입지
대한민국에서는 원래 이런저런 학술적인 부분의 성과와 저서들, 그리고 이미 과거에 한차례 번역된 에세이인 그녀의 저서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원제 : 女ぎらい―ニッポンのミソジニー )>를 통해, 알 만한 페미니스트들이나 페미니즘 비평에 관심이 많은 연구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다만, 일본 내에서는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의 범인인 가토 도모히로와 관련된 일련의 논평은 물론이고, 강경하고 일관된 주장, 매스컴을 꺼리지 않는 태도로 까와 빠가 많은 상태다. 이에 대해서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에서도 한 꼭지로 다룬다.
그나마 2015년 말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논쟁이 불붙으면서, 이것이 저자의 검찰 기소로까지 이어지자 일본의 진보적인 지식인 53명과 함께 검찰 기소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옹호한 것으로 잠깐 알려졌을 뿐이다. '작년 11월 일본에서도 간행된 『제국의 위안부』에는「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면적인 인식을 넘어 다양성을 제시함으로써, 사태의 복잡성과 배경의 깊이를 포착하여 진정한 해결의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를 골자로 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이후로, 페미니즘 이슈가 인터넷은 물론이고, 현실까지 한동안 떠들썩하게 만드는 상황에서 그녀의 주장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비록 관련 이슈 한정이지만 이래저래 현재 인터넷에서 주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사실상 이론적 레퍼런스라고 무방할 정도로 판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인물. 실제로 관련 이슈가 줄곧 언론에서 언급될 때, 관련 연구자들의 논평에서도 우에노 치즈코의 발언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았을 정도. 대표적으로 지명도 있는 여성학자 정희진은 경향칼럼에서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를 언급하며, 책의 주장을 그대로 복붙하는 수준으로 실어내기도 했다.
이 현상은 과거 전반적인 좌익운동권, 사회운동의 침체와 맞물려 관련학계에서도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 여성학 자체가 쇠퇴하고, 페미니즘의 전문적인 이론 자체가 대중과 멀어진 상태에서, 2010년대 들어 관련 이슈가 다시 폭발하고나자 새로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들의 이론적 토대가 급격히 요구되던 일련의 상황, 그리고 빡빡하고 어려운 이론서라기 보다는 상당히 직설적이고, 명쾌한 태도로 남성과 남성중심사회 전반을 비판하는 비교적 사이다스러운 에세이었던『여성혐오를 혐오한다』가 주목받은 것이 컸다. 게다가 우에노 치즈코 본인 스스로가 혐한, 반한 정서가 강한 우익들이나 민족주의적 태도와는 완강하게 선을 긋고 있고, 역사 수정주의와 아베정권의 불온한 움직임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 대한민국 여성을 비롯한 동아시아 여성들에 대한 동질의식 및 연대의식이 강한 인물이라는 점, 동경대 교수에 일본 사회학계에서 인증받은 네임드 페미니스트라는 권위까지 보유하고 있다는 점 또한 강력한 시너지를 일으켰다. 실제로 본인이 직접 사건 이후에 방한하여 이에 대해 논평하고, 강연하는 자리까지 가졌다.
특히 저자가 의도했건, 아니건, 미소지니라는 다소 밋밋하고 학술적인 단어가 출판사에 의해 논쟁적일 수밖에 없는 여성혐오라는 단어로, 그리고 『여성혐오: 일본의 미소지니(女ぎらい - ニッポンのミソジニ-)』란 원제가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는 제목으로 번역된 결과 굴러간 스노볼링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2] 저자가 에세이를 통해 강경하게 남성들의 태도를 비판하고, 여성혐오를 문제화하고 있기는 하나, 원래 여성혐오는 남성 중심 사회의 구성원이 지닌 지적 편향성이나, 판단의 근거의 근원으로서, 고쳐야하고, 고칠 수 있는 문제적 요소로 지적되는 일종의 가치중립적인 단어였다. 사실 지금 통용되고 있는 이 단어의 현재 의미는, 성차별, 성억압 개념을 망라하는 영단어 Sexism과 훨씬 더 가까우며, 이 두 단어 사이의 경계도 불분명하다. 이코노미스트 지에서는 미소지니와 이 단어 사이의 사실상 차이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경계가 불분명함을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이 단어에 대한 비판적 주장들 또한, 여성혐오 남용에 대한 비판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내용상의 강경함이나, 여성혐오를 지니고 있는[3] 남성에 대한 풍자, 조롱, 비난을 서슴치않는 저자의 태도와 이를 거침없이 받아들인 페미니스트들이 결합되고 나자, 사실상 '''여성혐오=용서할 수 없는 근원적인 악, 혹은 차별의 원죄'''의 등식이 성립되고 있으며, 이것이 여성혐오란 단어를 놓고 벌이는 논쟁과 토론들이 격렬하게 맞붙는 원인이 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남성혐오는 성립하지 않는다.', '여성혐오란 여성을 제2의 성으로 놓는 모든 행동과 태도를 뜻한다.', '여성혐오는 공기와 같아서 남녀 모두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등, 관련 이슈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익히 들어온 주장들이 이 에세이와 저자의 입을 통해서 나온 것들이다.
4. 저서
국내발매작만 기입.
- 스커트 밑의 극장 [4]
- 90년대의 아담과 이브
-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 내셔널리즘과 젠더
- 여자놀이
- 경계에서 말한다
- 화려한 싱글, 돌아온 싱글, 언젠간 싱글
- 결혼제국
- 근대가족의 성립과 종언
- 싱글 행복하면 그만이다
- 여성혐오를 혐오한다[5]
- 여자들의 사상
5. 여담
2019년 도쿄대 입학 축사가 화제가 되었다. 기사
매우 인상적인 축사라, 대한민국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번역하여 올렸다. #1, #2입학 축하드립니다. 여러분은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어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습니다.
-여학생들이 놓인 현실
그 선발시험이 공정하다고 믿고 여러분은 의심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만약 불공정하다면 분노가 솟겠죠. 하지만 지난해 도쿄의과대학 부정 입시가 발각되어 여학생과 재수생에게 차별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문부과학성이 전국 81개 의과대와 의학부를 조사한 결과 여학생 입학의 어려움, 즉 여학생의 합격률에 비해 남학생의 합격률은 1.2배 높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도쿄의과대는 1.29배, 최고치는 준텐도대 1.67배, 상위권에는 쇼와대, 니혼대, 게이오대 등 사립 대학이 줄을 이었습니다. 1.0보다 낮은, 즉 여학생이 들어가기> 쉬운 대학은 돗토리대, 시마네대, 도쿠시마대, 히로사키대 등 지방 국립 대학 의학부가 있습니다. 참고로 도쿄대학 이과 3류는 1.03배, 평균보다는 낮지만 1.0보다는 높은 이 수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통계는 중요합니다. 통계를 근거로 고찰이 성립되니까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합격하기 어려운 것은 남학생이 성적이 우수하기 때문일까요? 전국 의학부 조사 결과를 공표한 문부과학성 담당자가 이런 코멘트를 남겼습니다.‘남학생 우위의 학부, 학과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이공계나 인문계도 여학생이 우위한 경우가 많다’. 이것은 의학부를 제외한 타 학부에서는 여학생 입학>의 어려움이 1 이하라는 것, 의학부가 1을 넘는 것은 납득될만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사실 각종 데이터에서 여학생의 편차치(학력 검사 결과)가 남학생보다 높은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여학생은 재수를 기피하기 위해 여유를 갖고 지원하는 학교를 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도쿄대학 입학자의 여성 비율은 장기간에 걸쳐 ‘20%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18.1%로 작년도를 밑돌았습니다. 통계적 편차치 정규 분포는 남녀차가 없기 때문에, 남학생보다 우수한 여학생이 도쿄대 입시를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4년제 대학 진학률에도 성별에 의한 갭이 있습니다. 2016년도 학교 기본조사에 의하면 4년제 대학 진학률은 남자 55.6%, 여자 48.2%로 7%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는 성적의 차이가 아닙니다. ‘아들은 대학까지, 따른 단기대학(2년제)까지’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성차별의 결과입니다.
최근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말랄라 유사프자이 씨가 일본을 방문하여 ‘여성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했습니다. 파키스탄에서는 중요하지만 일본과는 무관한가요. ‘어차피 여자니까’ ‘그래봤자 여자니까’라며 찬물을 끼얹고 발목을 잡는 것을 aspiration의 cooling down 즉 의욕의 냉각 효과라고 합니다. 말랄라 씨의 아버지는 ‘어떻게 딸을 키웠는가’라는 질문에 ‘딸의 날개를 꺾지 않도록 해왔다’라고 답했습니다. 말 그대로 딸들은 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날개를 꺾여 온 겁니다.
그렇게 도쿄대학에 진학한 학생을 기다리는 것은 어떤 환경일까요. 타 대학과의 미팅에서 도쿄대학 남학생은 인기가 있습니다. 도쿄대학 여학생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학 어디야?’라는 질문을 받으면 ‘도쿄, 의, 대학…’이라고 답한답니다. 왜냐면 ‘도쿄대학’이라고 말하면 기피하기 때문이랍니다.왜 남학생은 도쿄대학생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데 여학생은 대답을 주저하는 걸까요. 왜냐면 남성의 가치와 우수한 성적은 일치하지만, 여성의 가치와 우수한 성적 사이에는 괴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어릴 때부터 ‘귀여움’을 기대받습니다. 그런데 ‘귀여움’이란 어떤 가치일까요? 사랑받고, 선택받고, 보호받는 가치에는 상대를 절대로 위협하지 않는다는 보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은 자신의 성적이 우수한 것과 도쿄대생인 것을 숨기려 하는 겁니다.
도쿄대 공학부와 대학원의 남학생 5명이 사립대 여학생을 집단으로 성적 능욕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가해자 남학생은 3명이 퇴학, 2명이 정학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을 모델로 삼아 히메노 카오루코라는 작가가 ‘그녀는 머리가 나쁘니까’라는 소설을 썼고, 작년에 그것을 테마로 학내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그녀는 머리가 나쁘니까’라는 것은 취조 과정에서 실제로 가해자 남학생이 내뱉은 말이랍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 도쿄대 남학생이 사회에서 어떤 시선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도쿄대에는 지금도 도쿄대 여학생은 실질적으로 가입할 수 없고 타 대학 여학생만 가입할 수 있는 남성 동아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학생이었던 반세기 전에도 비슷한 동아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반세기 지난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니 놀랐습니다. 올 3월에 도쿄대학 남녀공동 참여 담당 이사, 부학장 명으로, 여학생 배제는 ‘도쿄대 헌장’이 내세우는 평등 이념을 반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다닌 학교는 표면적 평등 사회였습니다. 편차치 경쟁에 남녀별은 없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할 시점에서 이미 보이지 않는 성차별이 시작됩니다. 사회에 나가면 더욱 노골적인 성차별이 난무합니다. 도쿄대학 또한 유감스럽지만 그 예의 하나입니다.
학부에서의 약 20%인 여학생 비율은, 대학원 석사 과정에서 25%, 박사 과정에서 30.7%가됩니다. 그 후의 연구직을 보면 조교 여성비율은 18.2%, 준교수 11.6%, 교수직 7.8%로 낮아집니다. 이것은 국회의원의 여성 비율보다 낮은 수치입니다. 여성학부장, 연구과장은 15명 중 1명, 역대 총장에 여성은 없습니다.
-여성학의 선구자로서
이런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 40년 전에 생겼습니다. 여성학이라는 학문입니다. 지금은 젠더 연구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제가 학생일 때 여성학이라는 학문은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없었기 때문에 만들었습니다. 여성학은 대학 밖에서 생겨 대학으로 진입했습니다.
4반세기 전 제가 도쿄대학에 부임했을 때 저는 문학부에서 3명 째 여성 교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성학을 교단에서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여성학을 시작해보니 이 세상에는 풀지 않은 의문투성이었습니다. 왜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일이라고 정해진 걸까? 주부란 무엇일까? 생리대나 탐폰이 없었던 시대에 월경 용품은 뭘 사용했었던 걸까? 일본 역사에 동성애자는 있었던 걸까? … 누구도 조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선행 연구라는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무얼 해도 그 분야의 선구자, 제일인자가 될 수 있었던 겁니다.
오늘날 도쿄대학에서는 주부 연구, 소녀만화 연구, 섹슈얼리티 연구를 해도 학위를 받을 수 있지만, 그건 우리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투쟁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를 움직이게 한 것은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사회의 불공정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학문에도 벤처가 있습니다. 쇠퇴해 가는 학문이 있으면 새롭게 발흥하는 학문이 있습니다. 여성학은 벤처였습니다. 여성학뿐만 아니라 환경학, 정보학, 장애학 등 다양한 새로운 분야가 탄생했습니다. 시대의 변화가 그것들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변화와 다양성에 열려있는 대학
말하지만, 도쿄대학은 변화와 다양성에 열려 있는 대학입니다. 저 같은 사람을 채용하고 이 자리에 세운 것이 그 증거입니다.
도쿄대학에는 국립대학에서 두 번째인 재일한국인 교수 강상중 씨도, 고졸 교수 안도 타다오 씨도 있었습니다. 또한 시청각중복장애인인 교수 후쿠시마 사토시 씨도 계십니다.
여러분은 선발되어 이곳에 왔습니다. 도쿄대생 한 사람에게 드는 국비 부담은 연간 500만엔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4년간 훌륭한 교육학습 환경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훌륭함은 이곳에서 가르친 경험이 있는 제가 보증합니다.
여러분은 노력하면 그 대가가 돌아온다고 생각하고 여기까지 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서두에서 부정 입시를 언급한 것처럼 노력해도 공정하게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회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력하면 대가가 돌아올 거라고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여러분 노력의 성과가 아닌 환경 덕분이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오늘날 ‘노력하면 대가가 돌아온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여러분 주위 환경이 여러분을 격려하고 등 떠밀어주고 손을 잡고 끌어올려주고 이룬 것을 평가하고 칭찬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노력해도 대가를 얻지 못하는 사람, 노력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 지나치게 노력해서 마음과 몸이 망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력하기 전부터 ‘그래봤자 너는 안 돼’ ‘어차피 나 같은 건’이라며 노력할 의욕을 상실해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노력을 부디 자신이 이겨내기 위해서만 쓰지 마십시오. 좋은 환경과 능력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비하하기 위해서가 아닌 그런 사람들을 돕기 위해 쓰십시오. 힘을 빼고 저산의 약함도 인정하고 서로 도우면서 사십시오.
여성학을 낳은 것은 페미니즘이라는 여성운동이지만 페미니즘은 결고 여자도 남자처럼 굴고 싶다거나 약자가 강자가 되고 싶다는 사상이 아닙니다. 페미니즘은 약자가 약자의 모습 그대로 존중받는 것을 요구하는 사상입니다.
-도쿄대학에서 배우는 가치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의 이론과는 다른 예측 불가능한 미지의 세계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정답이 있는 知를 추구해 왔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을 기다리는 것은 정답이 없는 물음으로 가득 찬 세계입니다. 학내에 다양성이 왜 필요하냐면, 새로운 가치란 시스템과 시스템 사이, 다른 문화가 마찰하는 곳에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학내에 머무를 필요는 없습니다. 도쿄대학에는 해외유학과 국제교류, 국내 지역 과제 해결과 관련된 활동을 서포트하는 시스템도 있습니다. 미지를 찾아 다른 세계에도 뛰어드십시오. 다른 문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도쿄대 브랜드가 전혀 통용하지 않는 세계에서도,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세계에서도, 설사 난민이 되어서라도 살아갈 수 있는 知를 체득했으면 합니다.
대학에서 배우는 가치란 이미 아는 知를 습득하는 것이 아닌, 지금까지 아무도 본 적이 없는 知를 만들어내기 위한 知를 습득하는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知를 만들어내는 知를 메타 지식이라고 합니다. 그 메타지식을 학생들이 체득하게 하는 것이 대학의 사명입니다.
도쿄대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020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 리스트에 일본인으로는 유일하게 이토 시오리 씨가 포함되었는데[6] , 그 추천사를 우에노 교수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