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지금 우리가 사회적 약속이라고 믿는 언어는 서구, 백인, 중산층, 남성, 이성애자, 젊은 사람, 비장애인의 언어다... ''(중략)'' ...성별, 인종, 계급, 지식 자원 등에서 사회적 약자의 언어는 이미 지배 담론과 매체에 포섭되어 있다. 당연히 설득력이 떨어지고, 오해받고, '말더듬이 바보'에, 흥분하거나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 오랫동안 약자였던 집단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세상은 이들에게 요구한다. 너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세련되고, 우아하게 말하라고. 동시에, 네 주장은 시기상조이며 말하는 너의 존재가 무섭다고, 우리는 펜을 쓰는데 너희는 칼을 쓴다고 비난한다. 여성이나 유색인종이 그들의 시각이 반영된 언어로 말한다면, 사람들은 불편해하고 불쾌해한다. 게다가 가장 심각한 문제는 못 알아듣는다는 점이다."[1]
(pp.106-107)
- 정희진 (2015). 언어가 성별을 만든다. 김수기 편저, 여성 혐오가 어쨌다고? (pp.89-116). 현실문화, 서울.
나는 10여 년 전부터 대학과 시민단체, 정부 기관과 노동조합에서 여성학 강사로 일하고 있다. 상담, 인권, 사회운동, 폭력, 섹슈얼리티, 탈식민주의 등 기존의 분과 학문 체계를 횡단하는 다양한 주체들을 여성주의 시각에서 강의한다. 내 강의에 대한 반응은 크게 "어렵다", "재미있다" 두 가지다. 어려운 것과 재미있는 것은 반대가 아니라 연속선의 감정인데,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강사와 소통이 된 ('알아듣는') 순간, '난해함'이 쾌락으로 변하는 것을 경험한다.
흥미로운 것은, 내 강의를 쉽다고 평하는 사람들은 주로 전업주부, 폭력 피해 여성, 저학력 생산직 기혼 여성 노동자 등 일반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낮거나 침묵을 강요받아 온 여성들이다... ''(중략)'' ..반면 전문직 종사나 이른바 '여론 주도층 인사들'은 내 강의가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박사 학위를 소지한 어느 50대 남성은 내 강의를 듣고 "뇌가 고문당하는 것 같았다"라고 말하고, 어느 노동운동가는 "절벽에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라고 표현한다. 이런 내용과 비슷한 이메일도 종종 받는다. 그들에게 내 강의가 '어려운' 것은, 내가 관념적이거나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아무도 모르게" 현학적으로 말해서가 아닐 것'이다. 여성주의는 남성 언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사유 방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그들은 이제까지 "여성주의는 편파적이고 나는 객관적"이라고 믿고 있다가, 자신의 사고 역시 편파적이며 더구나 강자의 경험을 보편과 객관으로 믿어 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중략)'' ...이러한 상황은 이제까지 통용돼 온 지식과 언어가 누구의 삶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2013, 42-43
1. 개요
대한민국의 작가이자 여성학자다. 나이는 57세.
2000년부터 여성학 연구를 시작해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독립적 연구자 및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는 페미니즘 전문가이다.
2000년에 「'아내폭력' 경험의 성별적 해석에 대한 여성학적 연구 : 가족 내 성역할 규범을 중심으로」로 이화여대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5년에 낸 《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이란 책에선 분명 국가안보와 젠더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고 했다. 2019년에 「반미문학을 통해 본 식민지 남성성의 형성」 으로 이화여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출처 #
저서인 <페미니즘의 도전>은 한국 페미니즘 서적중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로 꼽히며, 원래 교과서 형태의 책은 아니지만 대학의 여성학 개론 수업 등에서 교과서로 많이 활용한다.[2] 2000년대 이후 한국 페미니즘 운동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 저술가이다. <페미니즘의 도전>은 2012년까지 14쇄를 찍고 지난해 2월에는 개정증보판이 나왔다."고 한다.# 한국 주류 페미니즘에 대한 문제를 분석하려는 목적에서 1차사료로 활용이 가능하다.
정희진은 스스로의 포지션을 "메타 젠더주의자" 라고 밝히고 있으며, 흔히는 평화학 연구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다양한 저작들에서 일관되게 "페미니즘은 하나의 인식론일 뿐" 이라는 언급을 하는 것으로 보아 페미니즘적 배경을 통해서 사회문제와 갈등, 섹슈얼리티, 소수자, 평등 이슈들을 다루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학제간 연구에 매우 비판적이며, 비슷한 맥락에서 지식사회학의 입장 이론(standpoint theory)에 의거하여 작금의 과학계가 남성적 문화에 경도되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언어가 사회적 구조와 계급, 젠더 및 권력을 구성하고 재현한다는 관점을 통해 접근하기를 선호하는데[3] 이에 대한 근거는 도나 해러웨이, 샌드라 하딩, 이블린 폭스 켈러 등의 다수의 논자들과 관계가 있으므로 관심이 있다면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탈식민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페미니즘의 주요 슬로건 중 하나인 양성평등에 대해서도 그것이 페미니즘의 이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판적이다.
정희진은 관련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왔으며 여성학계에서 인정받는 여러 저술들을 써낸 페미니즘 전문가이다.
정희진은 관점의 편향성과 모순, 근거 없는 주장과 논리적 비약, 다른 분야의 비전문성 등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1.1. 학력
1.2. 경력
2.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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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사상을 한 줄로 요약해주는 문장이다. 위의 기사 또한 그녀의 평소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나타내고 있다.''' "남성들은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성차별 구조에서 가해자의 위치에 있다." '''
지금은 잊힌 일이지만,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에 쓴 글 중에 '''한국 사회는 동성애 사회이다'''라는 도발적인 표현을 담은 글이 있었다. 남성들이 끼리끼리 뭉쳐 여성을 배척하는 것을 동성애에 비유한 것인데, 성소수자 회원들이 많은 듀나 게시판에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http://www.djuna.kr/xe/oldmain/9345675
과거 칼럼니스트 김규항이 <부르주아 페미니즘>을 비판했다가 여성계가 무차별적으로 좌파 마초로 몰면서 조리돌림을 한 사태가 있었는데, 당시에도 의견을 주도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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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에는 '한남과의 사랑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강의를 연다. 여기서 물론 '한남'이란, '한남충'이라는 특정 사이트 용어에서 나온 그 '한남'이 맞다.
영화 '청연'이 대중들로부터 외면받은 이유가 여성이 주인공이어서라느니, 여성혐오 탓이라느니 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씨네21 기사도 바로 이 사람이 쓴 글이다.
3. 논란과 비판
3.1. 스스로의 선언과 모순되는 근본주의
그의 대표 저작 중 하나인 '''페미니즘의 도전''' 머릿말에서 다음과 같이 밝혀 왔다.
2020년 8월 17일 한겨레 기고문에서 정희진은 조국 사태, 윤미향과 정의연 사건, 박원순 성추행 사건을 다루면서 모든 것을 하나의 잣대로 본다고 비판했다. 정희진이 말한 그 하나의 잣대에는 젠더 문제도 들어간다. 2020년 8월 17일 네이버-한겨레신문 [정희진의 융합] 정의연, 박원순, 조국 사건은 같다?인간은 누구나 소수자이며, 어느 누구도 모든 면에서 완벽한 '진골'은 없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성별과 계급뿐만 아니라 지역, 학벌, 학력, 외모, 장애, 성적 지향, 나이 등에 따라 누구나 한 가지 이상 차별과 타자성을 경험한다.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 속에서 자신을 당연한 주류 혹은 주변과 동일시하지 말고, 자기 내부의 타자성을 찾아내고 소통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논지를 전개함에 있어서 단지 젠더의 틀로만 세상을 바라보며, 여성만이 타자성을 경험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근본주의적 태도를 아주 강하게 가지고 있다.세 사건을 동일하게 보는 것은 환원주의(reductionism, 還元主義)의 대표적 사례다. 환원주의를 우리말로 옮긴다면, 모든 문제가 하나의 출구로 빠지는 ‘깔때기(수렴) 이론’ 혹은 “돌고 돌아 언제나 제자리”쯤 될 것이다. 하나의 잣대로 세상을 평정해 버린다. 인간이 겪는 문제는 모두 계급 문제, 젠더 문제, 분단 문제, 언론 문제, 교육 문제, 부동산 문제, 기후 문제, 인성 문제…라는 식의 논리다. 초기 마르크스주의와 일부 페미니즘도 환원주의였고, 이는 변화하지 않는 어느 지식이나 피할 수 없는 경향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사회의 주요한 갈등축을 젠더로 삼는다고 해서 반드시 근본주의라고 할 수 있는지, 즉 침묵 내지 소극적 태도가 곧 근본주의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3.2. 일반화와 정체성 이중잣대
2020년 8월 19일 경향신문 기고문에서 정희진은 진중권의 86세대 비판에 분노를 쏟아냈다. 정희진은 진중권이 다양한 86세대를 하나로 일반화했으며, 민주화 세대로 정체성을 지어 일반화한다고 비판했다. 2020년 8월 19일 네이버-경향신문 [정희진의 낯선 사이]내가 진중권 글에 분노한 이유
그러나 평소 다양한 남성과 여성을 성별로 정체성을 지어 남성을 가해자, 여성을 피해자로 일반화한 것이 정희진이다.권력층에 가까운 서울지역 대학 출신 일부 86세대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일반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글은 틀렸다.
…중략…
민주주의는 추구하는 과정인데 ‘민주화세대’라는 정체성이 말이 되는가? 더구나 이를 일반화하여 비판하는 진 전 교수와 같은 시각은 더욱 위험하다. 민주화세대라는 통칭은 민주화세대에 의한 민주화세대의 차별, 즉 성차별, 지역차별, 계급차별을 은폐한다.
이 기사에서는 특이하게도 평소의 정희진답지 않게 기득권을 비판하면서 그 기득권자에 남성만이 아닌 여성도 넣었다.
한편 진중권은 정희진의 이 기사를 공유하며 비판한 후2020년 8월 19일 페이스북 진중권 1, 2020년 8월 17일 한겨레 기고문 중 박원순 관련한 부분 역시 문제삼았다. 2020년 8월 19일 페이스북 진중권 2그의 비판 대상 중 ‘실제 운동권’이 아니었던 이들도 많다.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이 학벌권력만으로 86운동권으로 ‘위장’해 배지를 달거나, 586 나이만으로 각계에서 민주화세력으로 행세하는 남·녀가 많다.
이후 2020년 8월 24일 진중권이 페이스북에 정희진을 다시 비판했다. 2020년 8월 24일 페이스북 진중권
진중권은 정희진이 하나의 증상이라며, 보상을 요구하지 말라고 했더니, 언제 보상 받았냐며 엉뚱하게 민주화운동으로 목숨을 잃은 분들 얘기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희진 등 정치권 86세대가) 존재는 이미 사회의 기득권층이면서 의식은 아직도 민주열사. 자기들의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데에 타인의 희생을 사용한다면서, 정치권 86세대의 전형적인 허위의식이라고 했다.
진중권은 며칠 전 정희진이 투고한 경향신문에 자신의 투고문을 통해 정희진을 좀 더 자세히 비판했다. 2020년 8월 24일 다음-경향신문 [진중권의 돌직구]그의 분노가 생뚱맞은 이유
진중권은 정희진이 화가 난 이유에 대해 “권력층에 가까운 서울지역 대학 출신 일부 86세대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일반화했기 때문”으로 보면서,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중권은 평균적 문해력을 가졌다면 자신의 글이 86세대 중에서 ‘민주화’를 팔아 권력이 된 집단을 겨냥한 것임을 알 거라고 함으로써 정희진이 평균적 문해력을 가지지 못했다고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또 진중권은 2020년 8월 17일 한겨레 기고문에서 정희진 조국·윤미향·박원순 사건에 대해 “세 가지 사건은 배경도 다르고, 팩트 여부도 규명되지 않았다. 아니, 규명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가해자가 아니라는 얘기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의미다.” 라고 한 것에 대해 '한마디로 그냥 덮어두자는 얘기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진중권은 '이게 정희진 분노의 참된 원천이 아닐까'라고 추측했다. 정희진은 “진 전 교수가 말하는 86세대에 여성은 없다.”고 한 것에 대해 진중권은 '정의연의 윤미향 의원은 여성이 아닌가? 박원순 사건 때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 부른 남인순 의원은 여성이 아닌가? 그리고 저 세 사건을 UFO처럼 미확인의 영역으로 두자는 정희진씨는 여성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이후 진중권은 나라에 희생하고도 보상을 거부하는 모범이 되는 86세대를 언급하면서 그들은 조국·정의연·박원순 사태에 모두 분노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에 반해 정희진은 이 세 사건 때 “나 역시 할 말이 많았지만 ‘표현의 자유’도 용기도 없었다”고 고백했다고 진중권은 말했다. 그러나 진중권은 그때 표현의 자유는 차고 넘쳐서 온갖 망언의 성찬이 벌어지고, (박원순) 성추행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까지 벌어졌기에 정희진에게 부족했던 것은 한 줌의 ‘용기’라고 했다. 즉 정희진의 비겁함을 지적한 것이다.
또 진중권은 정희진의 글이 횡설수설하는 것은 존재가 모순에 처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그래서 진중권은 정희진의 분노는 정희진 자신을 향해야 했지, 진중권에게 투사할 일은 아니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진중권은 자신의 글을 읽는 것이 정희진에게 해방서사의 상징계에 가려져 있던 실재계와 조우하는 외상적 체험을 제공했다면, 자신의 글쓰기는 할 일을 한 것이라고 했다. 무의식은 깊은 데에 감추어져 있는 게 아니고, 정희진이 쓴 글의 표층에 드러나 있으나 정흐진은 그걸 그만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고 주장했다.
3.3. 한겨레 메갈리아 옹호 기고문 논란
자세한 내용은 한겨레/비판#s-5문서 참조.
3.4. 갠지스 강과 콜레라에 대한 잘못된 글 기고
2016년 9월 2일에 <목욕물을 마시는 나라>라는 제목의 글을 한겨레에 기고했는데, 인도의 전직 핵물리학자로 환경 생태운동가로 활동중인 반다나 시바의 저서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어 넣었다.
이 글은 한겨레 온라인판에 등재된 후 수많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알다시피 갠지스 강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콜레라가 창궐한 지역으로 분석되고 있으며, 인도와 방글라데시를 거치는 갠지스 강 일대는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콜레라 환자가 발생한다. 그런데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아무런 비판 없이 사실인 것 처럼 확신한 후 그대로 옮겨 담아 기고한 것. 이 일이 있은 지 며칠 후,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은 9월 6일자 한국일보에 문제의 글은 사실이 아님을 피력하는 글을 기고했다. 근데 이 낭설은 의외로 널리 퍼져 있는지, 한국의 다른 매체는 물론 갠지스 강을 다룬 외국 다큐에서도 진지하게 다룬 바가 있다(...)....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갠지스 강에 관한 이야기다(8장). 갠지스는 다른 강처럼 정화 능력만 가진 것이 아니라 세균을 죽여 부패를 방지하는 광물질로 가득 차 있다. 갠지스에서는 콜레라균이 3~5시간 안에 죽는다. 때문에 콜레라 희생자를 포함하여 수많은 주민의 시체가 버려지고 수천명이 목욕하는 강물을, 힌두교인들은 안전하게 마실 수 있다고 확신한다(223쪽). 사실이냐고? 사실이다. 이것은 현대 미생물학이 증명해야 할 과제지, 아무 문제 없이 사는 그들을 신기하게 볼 문제가 아니다..
3.5. 군사무기에 대한 무지
2016년 10월 7일에 "민주공화국은 인간쓰레기가 없어진 사회"라는 제목의 글을 경향신문에 기고했는데, 미국과 북한의 군사력을 비교하며 잘못된 지식을 피력해 논란이 되었다.
"아이왁스"라는 이 신비의 무기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두고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했는데, 아마도 AWACS를 잘못 말한 것일 거란 의견이 중론. 문제는 AWACS는 링크된 항목명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공중조기경보통제기이지, 초고성능 첩보위성 따위가 아니다....미국에 아이왁스라는 것도 있죠. 미국만 가지고 절대 팔지 않는 건데, 진짜 영화처럼 미국 핸드폰으로 평양의 표지판이 찍힌다는 거에요. 지금 우리 둘이 회의하고 있는 것도 다 찍혀요. ...
또한 바로 그 아래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사정거리가 500km라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북한은 은하 로켓을 이용해 인공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해 ICBM을 제작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정거리 500km의 미사일은 북한의 SLBM이나, 스커드 개량형의 사거리를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쪽이건 지금의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지식에 근거한 말을 언론에 퍼뜨리고 있다....북한은 사정거리가 500㎞ 어쩌고…. 미사일을 쏘면 동해 바다에 빠지죠. 지금 그것을 가지고 싸우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맨날 그래요. 500㎞를 갖고 있는 나라하고 1만 2,000㎞를 갖고 있는 나라하고 뭘 싸우냐고. ...
해당 항목 참조.... 맨주먹으로 싸웠던 백병전(hand to hand) 시대에, 무기를 뜻하는 ‘arm’과 육군(보병)을 뜻하는 ‘army’라는 말이 유래했다. 얼굴을 맞대고 싸웠던 시대에는 팔 길이가 긴 사람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몸이 곧 무기였던 시대에 화살은 손과 팔의 확장이었고, 소총은 눈과 이빨의 확장이었다. 총알은 직선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발사된다. 총을 쏘려면 조준기가 필요하다. 즉 눈이 좋아야 했다.
3.6. 'Fucking USA'의 뜻이 미국 여성을 강간하자?
경향신문에 쓴 칼럼의 일부 문구인데, 칼럼의 전체적인 수준이 떨어지는 건 둘째치더라도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 당시 미군에 대한 반발의 의미에서 사용되었던 'Fucking USA'가 '미국 여성을 강간하자'라는 의미라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했다. 이 때문에 "명색이 교수라는 사람이 기초적인 영어 지식도 아예 없는 게 아니냐"는 비웃음을 샀다. #참조
3.7. 노벨상 수상'''작'''?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저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평하며 '만일 노벨 평화문학상이 있다면 이 책은 최초의 수상'''작'''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노벨상은 논문이나 저서에 수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물론 잘 몰랐다고 반발할 수도 있지만, 여성학 분야의 사람이 여성들에 대한 책을 평하면서 부정확한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충분히 비판받을 만하다.
4. 저서
-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 페미니즘의 도전
- 정희진처럼 읽기
4.1. 편저
- 한국 여성인권 운동사
- 성폭력을 다시 쓴다
4.2. 공저
- 여성주의 학교 간다
- 근대의 경계에서 독재를 읽다
- 남성성과 젠더
- 저항하는 평화
-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