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1. 개요
젠더 문제를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상 및 거기에 입각한 활동을 말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으로 인하여, 주류 페미니즘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진다. 일단은 여성이 겪는 특수한 문제가 존재함을 인정하고 그 문제의 해결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여성운동의 이론으로 분류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젠더 문제에 대한 뿌리를 마르크스주의에 두지, 페미니즘에 뿌리를 둔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이것이 여성해방과 궤를 달리한다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계급 인식을 여성에만 기반해서 두지 않는다는 것이지, 이론은 여성의 보편적 권익 향상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이론은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 현실에서는 '''노동계급의 여성해방 운동'''이라는 용어로 본인들의 사상과 활동을 표현한다. 앞의 표현들이 학계와 노동 현실에서도 명확한 표현이다. 어찌보면 이는 현실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너무 확고해서, 현실에서 "페미니즘"이란 이름을 가지고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여성해방론을 묘사하는 것이 그리 적절치 못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2. 배경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신성가족에서, 역사의 시대적 변화는 “자유를 향한 여성의 진보와 비례하며, 여성해방이 이루어진 정도가 인간의 보편적 해방을 측정하는 자연적 척도”라는 공상적 사회주의자, ‘샤를 푸리에[1] ’의 말을 인용하며 하부구조의 변혁이 자본주의 체제하의 가부장제로부터 여성해방을 낳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특히 엥겔스는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에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프롤레탈리아트 계급 여성의 일부일처제는 경제적 약자인 여성이 권력(부와 임노동력)을 거머쥔 남성에 노예 상태로 종속되는 것이라 평하며 여성은 가사노동력을 상품으로 하는 노동도구로 취급된다고 밝혔다. 이러한 노예 상태로의 귀속을 엥겔스는 ‘공공매매춘'이라고까지 표현하였다. 이 부정적인 가족관계는 남편은 임노동자, 아내는 살림 & 육아라는 자본주의적 생산 구조로 인해 발생하였고 이를 철폐한다면 프롤레탈리아트 계급의 여성 해방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하였다는 점에서 여성해방론이 전개되었다.
3. 사상
"남성에게 기댈 필요도, 남성들에게 예속될 필요도 없는 새로운 인생의 가능성에 마음을 여십시오. 가정은 여성을 종속시킬 뿐 아니라 비생산화함으로써 집단의 발전을 방해하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노동자 국가는 남성과 여성, 두 평등한 노동자가 자유롭게 결합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국가는 여성에게 일자리를 주고 아이를 돌볼 것입니다. 유치원과 탁아소에서 집단 활동은 아이들로 하여금 내 것, 네 것보다 모두의 것을 깨쳐 사유재산 관념을 갖지 않도록 해줄 것입니다."
「새로운 도덕과 노동계급」,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1918년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해방 투쟁은 부르주아 여성처럼 자기 계급의 남성에 맞서는 투쟁과는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전체 자본가 계급에 맞서 자기 계급 남성과 공동투쟁을 전개해야 합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은 자유로운 시장 경쟁 참여를 방해하는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기 계급 남성과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자본주의의 착취와 현대적 생산양식의 발전 덕분에 그와 같은 투쟁의 필요성이 없어졌습니다. 오히려 프롤레타리아 여성에 대한 착취를 막는 장벽을 새로이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에게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권리를 돌려주고 영원히 보장해야 합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궁극적 목표는 남성과의 자유경쟁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지배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은 자본주의 사회에 맞서 자기 계급 남성과 손을 잡고 싸웁니다.'''"
'''사적 소유가 여성을 억압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하며 사적 소유가 존재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남녀 불평등을 결정하고 있으므로, 여성 해방의 방법으로서 사적 소유 해체에 초점을 맞춘다. 핵심은 '''가사노동과 육아의 전면 사회화, 안정된 고용과 주거 보장, 사회 보장 혜택 확대'''이며 이를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서 (군대, 경찰, 법원, 교정시설 등등을 통한) 사적 소유의 방어 기구인 부르주아 정부를 분쇄하고, 프롤레타리아 정부를 수립하여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철폐하는 프롤레타리아 사회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모든 인민들이 성별에 상관없이 안정된 고용과 주거를 보장받아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가사노동과 육아는 프롤레타리아 정부(가 100% 지분을 갖고 운영하는 공공기관 혹은 공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맡아서 해결해 준다면, 더 이상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고, 여성의 몸과 남성의 경제력이 맞교환됨에 따라 일어나는 상호 종속적 관계 역시 소멸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다만 현 체제 내에서의 부분적 개혁도 부정하지는 않는다."부르주아 여성들은 자신들의 특수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한다. 그들은 언제나 남성과 대립하며 남성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한다. 그들에게 현 사회는 두 개의 주된 범주로 나뉘어 있다. 바로 남성과 여성이다. 남성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모든 권리를 누린다. 문제는 평등한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다. 노동계급 여성에게 여성 문제는 이와 상당히 다르다. 정치의식 있는 여성은 현 사회가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고 인식한다. 각 계급은 특수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부르주아지와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는 상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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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데즈다 크룹스카야, 라보트니차 창간호, 1914
참고로 이들은 서프러제트 운동 때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중산층 중심의 페미니즘이라고 비판했고[2] , 래디컬 페미니즘의 탄생 이후엔 자신들과 반대되는 관념론에 기반을 두고 있고 성적 억압도 하는 래디컬 페미니즘과는 천적으로, '''반동적'''이라며 일관된 반대 입장을 취한다.
실제로 이들은 자유주의 페미니즘, 상호교차성 페미니즘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성별은 물론 성 정체성, 성적 지향, 심지어는 '''나이'''에 이르기까지 성적 자기판단 능력이 있는 전 노동인민의 성적 욕망을 긍정하고, 다양한 성적 표현물들이나 (다른 인민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전제 하에서) 인민의 자유로운 성적 욕망 표현과 추구에 대한 검열과 억압을 반대한다.
성폭력, 성범죄,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해서는 여성문제가 아니라 인민의 권리에 대한 문제로 간주한다. ''''여성을 강간하면 안 되는 게 아니라 인간을 강간하면 안 되는 것이다''''라는 말이 이들의 입장을 잘 반영한 문구라 할 수 있다. 성범죄의 근본 원인은 자본주의를 포함하는 계급 사회에서 찾는다. 자본주의가 낳는 착취와 이로 인한 물질적 결핍, 소외가 범죄로 이어지는 것이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보장을 확대하고 안정적인 고용과 주거를 보장해야 성범죄도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남성의 성적 욕망이 성범죄를 낳는다 선전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남성혐오 선동에는 당연하게도 반대한다.
또한 성범죄 가해 지목자에 대해서도 무죄추정의 원칙과 증거주의, 죄형 법정주의,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같은 사법적 권리가 철저하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범죄 피해 호소자의 일방적 주장만을 근거로 가해자라 규정하는 것은 단순히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뉴라이트도 울고 갈 수준의 파시즘적 발상"'''이라고 주장한다. 출처. 앞의 표현은 이 출처에서 인용한 것이다.[3]
성매매에 대해서는 역시 이것이 사적 소유의 산물이고, 사적 소유가 철폐되지 않는 한 사라질 수 없다고 여긴다. 성매매란 것이 존재하는 현실은 궁극적으로 임금노동이 없는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하긴 하지만[4] , 임금노동이 존재하는 이상은 성매매 당사자들(구매자와 판매자 모두)에 대한 처벌에 반대하며 비범죄화를 주장한다. 때려잡을 거면 '''여성들을 성매매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악덕 포주나 때려잡으라'''는 것은 덤이다.
대표적인 사상가에는, 여성으로는 클라라 체트킨,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실비아 팽크허스트가 있고 남성으로는 블라디미르 레닌, 레프 트로츠키를 위시한 여러 사회주의 혁명운동가들이 있다.[5] 의외로 로자 룩셈부르크는 본인이 여성임에도 여성해방론 관련 저작은 별로 남기지 않았고, 또 특별히 여성 문제만을 다루는 운동에 참여하거나 공헌하지도 않았다.
이 사상의 형성에는 카를 마르크스의 절친이었던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많은 공헌을 했다. 엥겔스는 저서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과거 모계사회였던 인류는 농업을 통해 부계사회로 바뀌었다는 이론을 최초로 주장했다. 그는 또한 마르크스주의를 적용해 유산계급 혹은 소생산자 계급 남성의 여성억압의 원인을 남성이 재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재산을 확실히 자기 자식에게 상속하고자 여성을 지배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보았으며, 따라서 그에 대한 해결책을 상속할 재산 자체가 없는 노동계급에 의한 사회혁명을 통해 사적 소유를 철폐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때문에 반공 운동에서는 페미니즘과 공산주의를 한 세트로 묶어서 공격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그러나 골 때리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바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일찌감치 주류 페미니즘과 결별하며 관계를 끊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의 핵심 인물인 클라라 체트킨과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모두 주류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다. 심지어 실비아 팽크허스트의 경우 어머니와 언니가 자유주의 페미니즘 노선을 따른다는 이유로 결별하기까지 했다.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은 페미니즘에 대해 비판적일 뿐만 아니라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공식 논평에서 이 바닥 최악의 욕인 반동이란 말이 나올 정도면 말 다 한 셈이 아니겠는가?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에서는 현 시점에서 가부장제는 거의 몰락했고 그 잔재만이 있을 뿐이라 주장한다. 비유하자면 '''역사의 강물에 휩쓸려 익사한, 그러나 아직 완전히 소멸하지 않은 채 악취를 풍기며 썩어 가고 있으므로 빨리 건져내서 땅에 묻어야 하는 시체''' 정도로 간주한다는 이야기다. 가부장제는 전자본주의 사회(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동아시아식 생산양식)의 산물이고, 전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 노동자가 됨에 따라 가부장제가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가 임금노동을 통해 (전자본주의에 비해서는) 여성에게 더 나은 삶과 사회적 지위를 약속하지만, 그래도 사적소유와 착취가 존재하기 때문에 완전한 여성해방과 성 평등에는 도달하지 못했으므로 '''사적소유 자체를 분쇄함으로서 가부장제의 마지막 잔재까지 싹 다 쓸어 없애고 완전한 여성해방을 성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사노동에 있어서는 남녀간의 분담이 아닌 온전한 폐지를 주장한다. 가사노동이라는 부불노동의 형태는 자본주의 체제이기에 발생하는 것이고 10월 혁명 이후의 소련을 보면 알겠듯이 생산구조 방식의 변혁에 따라 고사해야될 대상인 것이다.
4. 실천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이후 볼셰비키는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 계급 여성의 해방을 위한 구체적 정비를 이어갔다. 대표적으로 구 로마노프 왕조에서 관습법적으로 성행한 정략혼, 매매혼 제도를 철폐하고 자유결혼, 자유이혼 원칙을 선언하였다[6] .
또 혼인과 이혼에 대한 교회의 권한[7] 을 박탈하고 이교도 간의 혼인을 허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승려, 사제, 정교회 및 이슬람 금욕주의자(수사)들의 혼인을 허용해주었다. 이른바 종교혼주의를 폐지한 것이다.
소비에트 정부 출범 이후로는 국가신분행위등록사무소(ЗАГС, 작스)에 등록한 혼인만 인정하여, 법률혼주의를 세계 최초로 채택한 국가가 되었다.
부처 차원으로 제노텔(Xenotel, 여성부)을 설치하였고 산모의 낙태를 허용하였으며 공동식당, 공동탁아소의 설치로 여성의 전유물이던 가사노동을 온전히 철폐시키는데 주력하여 여성의 사회 진출을 적극 장려하였다.
5. 오해
5.1.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억압을 외면한다?
모든 남성을 젠더 권력자이자 사회구조적 가해자로 여기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 전제 자체가 지극히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 '남성인 개인'에 의해 '여성인 개인'이 억압받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나지만 그걸 근거로 모든 남성은 사회구조적 가해자이고 모든 여성은 사회구조적 피해자라 단정짓는 것은 논리적으로 오류투성이일 따름이다. 오히려 남성인 개인에 의해 여성인 개인이 억압받는 사례만 과도하게 과장, 부각시키고 동성인 개인 간의 억압이나 거꾸로 여성인 개인에 의한 억압은 애써 축소, 외면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이야말로 객관성을 의도적으로 내팽개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개인들 간에 발생하는 억압과 폭력을 외면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분명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은 남→여든 남→남이든 여→여든 여→남이든 개인들 간에 발생하는 억압과 폭력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특정 성별의 문제로 왜곡하면서 성적대를 부추기는 것을 반대하며, 그 근본적 원인이 자본주의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이 근본적 원인을 뿌리뽑고자 하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국가와 혁명(1917)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우리의 도덕감각과 ‘인권 감수성’ 그리고 그와 관련된 ‘정치/계급 감수성’은 지금 심각한 이상증세를 보이고 있다. 이 사회의 주된 억압이 남성에게서 나온다는 비과학적 인식이 횡행하고 있다. 그리하여 여성의 억압과 피해만 과장 부각된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잘못은 작은 잘못도 용납되지 않고 잔인하게 그 책임을 묻는다. 한편 남성과 남성 사이, 선배-후배 사이의 폭력이나, 여성이 남성에게 가하는 폭력엔 둔감하기 짝이 없다. 출처
우리는 ... 개별적 인간들의 위법행위가 있을 수 있고 ... 따라서 그러한 위법행위를 억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첫째, ... 그것은 ... 문명한 사람들끼리는 싸우는 사람들을 만류하거나 여자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언제나 간단하고 용이한 것처럼 무장한 인민 자신이 그렇게 간단하고 용이하게 수행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둘째, 사회적 공동생활의 규칙들을 위반하게 되는 위법행위의 근본적인 사회적 원인은 대중에 대한 착취와 그들의 궁핍, 빈곤이다. 이 주된 원인을 제거하면 위법행위는 필연적으로 '사멸'하기 시작할 것이다.
5.2. 여성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만 맡기고자 한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노동계급 정치에 대한 몰이해의 결과 모든 사회문제에 대해 '이윤을 만들어 내는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통해 지배자들을 압박하는 것이 해결책이다'라고 거의 녹음기 틀어놓다시피 하는 클리프주의자들을 기준으로 판단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클리프주의자들은 노동자 파업 투쟁을 무슨 도깨비방망이 내지는 '''무안단물(...)'''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남한 운동판에서 클리프주의자들의 쪽수가 또 어지간히 많은 게 아니라서 유독 이들의 선전이 크게 들리기도 한다(...) 때문에 남한에서 레닌주의를 표방하는 경향들 중 클리프주의가 가장 우세한 경향으로 자리를 잡았고, 그 결과 클리프주의의 입장이 마치 마르크스 레닌주의 그 자체와 혼동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르크스 레닌주의 노동계급 운동의 혁명적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노동계급 운동은 '''노동자당을 통해 의식화, 조직화된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하고 사적 소유를 철폐하는 것'''을 추구한디. 클리프주의자들처럼 파업투쟁을 무안단물마냥 모든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신성화하는 것은 레닌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의 희화화일 뿐이다... 사실 레닌의 대표 저작 중 하나인 '무엇을 할 것인가'(1902)가 바로 이런 경향을 대차게 깐 글이다.
클리프주의자들의 근본도 근거도 없고 거의 신앙에 가까운 파업투쟁 만능론과 달리, 마르크스 레닌주의 노동계급 정치운동은 ① 노동자당을 건설하고, ② 이를 통해 노동자들을 계급의식과 과학으로 각성시키며, ③ 이렇게 각성하고 단결한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고, ④ 조직화된 노동계급이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⑤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자 한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여성해방론은, 이러한 일련의 테크트리를 통해 여성 차별과 억압의 원인이라고 여기는 사적 소유를 철폐함으로써 여성해방의 물질적 전제조건인 가사노동과 육아의 사회화, 안정적인 고용과 생활 보장, 임금 차별 철폐 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절대 파업투쟁이라는 무안단물을 뿌리면 여성차별이 뿅 하고 사라진다(...)고 선전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당연하게도 이런 과정 속에서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가 남성우월주의, 여성혐오나 래디컬 페미니즘, 남성혐오 같은 후진적 의식을 극복하고 서로에 대한 존중심을 갖고서 단결해야 함을 주장한다. 남한 운동판에서 쪽수를 바탕으로 물량공세를 벌이고 있는 클리프주의자들의 조악한 파업만능론이 분명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을 한때 표방했'''던'''[8]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의 전부는 아니다.
즉 이러한 오해는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을 표방하는 여러 경향 가운데 하나는 맞지만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 전체에 대한 것이 될 수는 없다. 분명히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을 통해 사적 소유를 철폐함으로써 가사노동과 육아를 사회화하고 안정적인 고용과 생활을 모든 인민들에게 보장하고자 하는 노선도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 안에는 존재하며 '''오히려 이것이 레닌, 트로츠키, 체트킨, 콜론타이, 룩셈부르크 등등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활동가들의 노선에 더 가깝다.''' 모든 페미니스트가 메갈, 워마드를 옹호하는 게 아니듯 모든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자가 근본도 없는 사이비에 불과한 파업만능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파업만능론은 오히려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을 통한 사적소유 철폐'''를 기각하거나 유보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요지는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과 사적소유 철폐를 통해 여성해방의 물질적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는 노선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주류 미디어가 할리우드 유명인사 등을 포함하여 직장에서 성희롱에 대해 심각하게 알리기 시작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여성해방론자들은 누군가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물신주의적 시선에 의해 상품화되는 걸 '''반대'''한다. 하지만 서비스산업 저임금 여성노동자에 대한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성희롱은 별로 흥미를 끌지 못한다는 사실과 계급적 불평등이 존재할 때 성희롱과 폭행을 당할 위험이 더 크다는 현실에 주목하는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테레사 메이, 앙겔라 메르켈과 같이 소위 성공(?)한 부르주아 정치인들은, 젠더는 정치 강령보다 (노동여성의 이해와) 덜 밀접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들 아래에서 보통 노동여성들 삶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그들은 여성평등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실제 행동은 현상유지를 위한 것이다. 계급을 초월하여 여성의 단결을 이루려는 시도는, 가난한 노동계급 여성의 이익을 부유한 지배계급 여성에게 종속시킬 뿐이다. '''지배계급 여성은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편견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사회질서로부터 상당한 이익을 얻는다.'''
6. 자유주의 페미니즘과의 관계
고전적인 자유주의 페미니즘, 즉 일명 서프러제트와는 많이 갈등했었다. 왜냐하면 서프러제트는 상류층 여성만을 위한 페미니즘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프러제트 때 독일의 맑스주의자이자 정치인이었던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을 보면, 이를 잘 엿볼 수 있다.
물론 현대의 자유주의 계열(전미여성기구 등)과 교차 계열은 래디컬 페미니즘의 급진성과 19세기~20세기의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상류층 중심 페미니즘이라는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블랙 페미니즘이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등 많은 분파의 페미니즘을 수용했기에 아래의 래디컬 페미니즘에 비해선 비판이 매우 덜하다. 오히려 리버럴 페미니즘이나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의 경우에는 '''낙태권 쟁취나 여성에 대한 사회보장 확대와 같이 여성 노동인민의 이해관계 증진에 도움이 되는 이슈에 관해서라면 부분적으로 협력할 수도 있다'''고 여기며 실제로 그렇게 한다.“‘남성 특권’에 맞선 투쟁에서는 사자처럼 행동하는 부르주아 여성들은 대부분 참정권을 얻고 나면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반동 진영의 유순한 양이 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하도 래디컬이 페미판을 다 먹어 버려서 그 해악이 무지막지한 통에[9][10]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이 졸지에 페미니즘 비판 이론의 일종처럼 되어 버리긴 했는데(...) 물론 리버럴이나 상호교차성 페미니즘도 부르주아 페미니즘이기에 그것도 그것대로 비판하기는 하지만, '''특정한 개별 이슈에 대해서는 제한적으로 공조할 가능성'''을 엄연히 항상 열어 두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것. 이를 공동전선이라고 하는데 여성운동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사회 운동의 기본 방법론 중 하나이다.
7. 래디컬 페미니즘과의 관계
이들은 래디컬 페미니즘과 대적한다.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로 자본주의 체제를 분쇄하기 위해서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표현되는 노동계급의 장벽을 초월한 연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노동계급의 단결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남성 전체를 잠재적 가해자, 젠더 권력자로 매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둘째로 대다수의 노동계급 남성들은 여성 차별적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 결과적으로 손해이고, 여성 차별로 인해 득을 보고 있거나 볼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설령 그러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여성에 대한 사회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차별과 억압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식은 마르크스 레닌주의 노동자당을 통해 계급의식과 과학적 세계관으로 각성하고, 전체 노동계급의 단결을 추구하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다. 물론 남성을 적대시하는 부르주아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입장을 취한다.
대안우파에서는 래디컬 페미니즘이 마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이쪽에서 주장하는 페미니즘은 여성들도 동등하게 노동 등의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쪽에 가깝다.
8. 사회주의 페미니즘과의 차이점
사회주의 페미니즘과의 차이점은 남성 전체를 잠재적 가해자, 젠더 권력자로 여기는 반가부장제적 성향이 있나 없냐의 차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다른 모든 페미니즘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페미니즘 또한 노동계급의 분열을 획책하고 남성 노동자들을 여성해방 이슈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입장이다. 오히려 그쪽을 더 대차게 까는데, 그 이유는 래디컬 페미니즘은 어차피 부르주아들이라서 그러는 게 당연한 것이지만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사회주의의 탈을 쓰고서 페미니즘이라는 부르주아 사상을 갖다가 진보 민중운동을 어지럽히는 '''사문난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기성 개신교(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등)에서 기독교와는 아예 무관한 대순진리회보다 개신교의 변종인 신천지를 더 대차게 까고, 이슬람교에서 아예 인격신을 믿지 않는 불교보다는 같은 유일신교인 크리스트교에 대해 더 악감정이 큰 것과 같다.
9. 관련 단체
이러한 성향의 대표적인 사회운동 단체로 트로츠키주의 노선의 볼셰비키그룹, 좌익공산주의 노선의 노동해방투쟁연대(노해투)[11] , 생디칼리즘에 가까운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 전선(노동전선), 현실사회주의 성향인 노동사회과학연구소(노사과연)이 있다. 클리프주의 성향의 노동자연대는 박근혜 퇴진 운동 전까지는 소위 '성적 대상화'나 '성 상품화' 같은, 이성애적 욕망과 성적 지향을 죄악시하는 래디컬 떡밥을 일부 수용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과 사회주의 페미니즘 사이를 왔다갔다했으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로는 노골적 친워마드 성향의 래디컬 페미니즘 노선으로 급선회했다.
다만 래디컬 페미니즘을 어떻게 볼지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주의를 추구하는 정파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갈린다. 과거 노동자연대는 페미니즘의 일부로서 존중하고 인정하는 가운데 정중하게 대하며 대화와 토론을 통해 무엇이 더 여성해방에 도움이 되는가를 이야기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고[12] , 볼셰비키그룹은 이것은 페미니즘도 뭣도 아닌 일개 사회 병리 현상에 지나지 않으며 일간베스트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약자를 향해 증오와 조롱의 어휘를 내뱉는 데서 쾌감을 얻는 '''반동'''적 행태라는 입장이다. 현장 조직투쟁을 중요시하는 노동전선과 마르크스 레닌주의 이론 연구 및 학습을 중요시하는 노사과연은 노 코멘트였으나 2019년 이후 TIRF, TERF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노해투는 비판적이긴 하나 그 의의는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 속한 정당은 현재 남한 정치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이란 이름을 사용하나 법적으로는 노동운동 단체인 사회변혁노동자당이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단, 내부의 사운위나 학생위는 래디컬 페미니즘에 가깝다. 정확히는 사운위나 학생위는 골수 래디컬 페미니즘은 아니고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래디컬 페미니즘의 중간인데 그것도 개별 인원에 따라 조금씩 성향이 다르다.
참고로, '페미니즘'으로 분류되는 것을 본인들은 극도로 꺼리는 분위기다. 최근 들어 나타난 경향이 아니라 이미 100여 년 전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클라라 체트킨 시절부터 해당되는 이야기다. 대신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13] 이나 '노동계급의 여성해방 운동'[14]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그렇게 불러 줄 것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