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성

 

'''도서명'''
Le Deuxième sexe(프)
The Second Sex(영)
'''발행일'''
1949년
'''저자'''
시몬 드 보부아르
(Simone de Beauvoir)
'''출판사'''
Gallimard
'''ISBN'''
9782070205134(1권)
978207020514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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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출간 배경
3. 목차 및 주요 내용
3.1. 1권: 사실과 신화(Les faits et les mythes)
3.1.1. 여성의 본질: 태생적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3.1.2. 인류 역사와 여성의 지위
3.1.3. 여성성에 대한 숭배
3.1.4. 작가들과 지식인들의 여성 비하 유형
3.2. 2권: 체험(L'expérience vécue)
3.2.1. 전생애에 걸쳐 만들어지는 여성
3.2.2. 여성들의 자기정당화
3.2.3. 여성해방의 길
4. 세간의 반응
5. 둘러보기

... 여성은 남성과의 관계에서 '''한정되고 달라지지만,''' 남성은 여성에게 그렇지 않다. '''여성은 우발적 존재이다. 여성은 본질적인 것에 대해 비본질적이다.''' 남성은 주체이다. 남성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여성은 타자이다.''' 비본질로서의 여성이 본질로 복귀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기 힘으로 그러한 반전을 이루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 《제2의 성》 1권, p.23

[1]

1. 개요


1949년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시몬 드 보부아르의 대표작이고,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 계보상에서는 장 폴 사르트르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간주되는 문헌.
출간 후 1953년에 영문판으로 번역되었으며, 프랑스에서보다 오히려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물론 프랑스에서도 마냥 무시받은 것은 아니라서, 출간 이후 50년 동안 프랑스에서만 100만 부가 팔려나가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심지어 1984년에는 영화화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실존주의의 시각이 아닌 사회경제적 시각에서 다시 분석한 속편의 집필을 고려하였으나, 작업량이 너무 버거워서 포기했다고(…).
제목은 본래는 《다른 성》으로 하려 했으나, "동성애자가 '제3의 성' 이라고 불린다면, 둘째 성은 남성이라기보다는 여성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제목을 변경했다고 한다.
이 책에 괜히 "바이블" 어쩌고 하는 찬사가 쏟아지는 것이 아닌 것이, 아래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항대립의 세계관, 성기환원주의에 대한 비판, 성녀-창녀 이분법, 젠더라는 개념과 사회화로서의 여성성, 비출산 운동, 낙태 찬성론, 모성신화에 대한 비판, 자기타자화에 대한 비판 등 '''현대 페미니즘의 주축을 이루는 굵직한 담론들이 거의 전부 이 책의 영향 하에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트위터 등지에서 새롭게 제시되는 듯한 슬로건들조차 이미 보부아르가 다 제시했던 주장들을 시대에 맞게 변주해서 내놓는 것에 불과하다고 느껴질 정도.
오래전 책이지만 세계적으로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고 있으며 국내에도 이미 1970년대에 번역서가 나왔다. 정작 프랑스 철학계에는 이 사실이 꽤 최근까지도 알려지지 않았었다는 듯. 서점에서는 을유문화사 조홍식 역서 등을 참고할 수 있으며, 변광배 교수의 해설서는 1,000페이지에 달하는 원문을 정독하는 어려움 없이도 대량의 주석과 함께 좀 더 쉽게(?) 책의 요지를 풀어 설명해 주고 있다.

2. 출간 배경


2차 대전 당시 프랑스에는 사회적 변화가 생겨났다. 전쟁 및 이후의 재건을 겪으며 여성들의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해졌고, 전쟁에 참여한 이래 남성들의 부족으로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용인되었으며, 독일의 침공을 견뎌내는 데 여성들이 군수공장 등등에서 제 역할을 다해준 것에 대한 영향으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된 것. 결과적으로 여성인권, 일-가정 양립 등의 이슈들이 프랑스에서 사회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때 작가 보부아르는 전후에 팽배해 있던 무신론실존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당시 인기를 끌고 있던 다른 학문적 흐름들인 정신분석학공산주의는 단호하게 거부했다[2]. 실제로 장 폴 사르트르실존주의는 이 책의 철학적 기반에 있어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고 평가된다.
1945년에 프랑스에서 여성참정권이 보장되는 등 점차적으로 여성인권이 하나하나 갖춰지고, 가톨릭공산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여성운동이 전개되고 있었으나, 보부아르는 그쪽과 거의 연이 없는 상태에서 '''어쩌다가''' 여성문제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여성들이 흔히 겪는 "편견차별"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다가 페미니즘의 바이블로 여겨지는 책을 쓰는 대박을 친 것.

2.1. 철학적 배경: 무신론실존주의


'''※ 이 단락은 r.1 기준으로 철학 비전공자가 이해한 바를 토대로 정리된 것이므로, 철학 전공자 분들의 많은 수정 부탁드린다. '''
시몬 드 보부아르의 무신론적 실존주의 사상은 그녀의 에세이인 '모든 사람은 혼자다'에 구체적으로 드러나있다.
보부아르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무신론실존주의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르면, '''1)''' 인간 행동을 안내해 줄 초월적 가치는 없다. '''2)''' 존재에는 이유가 필연적으로 따르지 않으며, 존재의 최후의 목표는 존재의 근거(주체성)를 만드는 것이다. '''3)''' 실존은 본질보다 앞선다. 즉, 창조된 것은 본질이 실존보다 앞서지만, 창조되지 않은 것(인간)은 실존이 본질보다 앞선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을 창조함으로써 실존한다.
이 철학적 관점에 따르면, 모든 개인은 실존으로부터 무한한 자유와 선택의 기회를 가지며, 개인 간의 만남은 결국 주체성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개인이 자신에게 주체적이기 위해서는 타자를 객체화할 수밖에 없는데, 그 타자의 입장에서도 똑같이 상대방을 객체화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갈등은 이후 각자의 노력에 의해서 도덕을 통하여 해소되어 갈 수 있다.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페미니즘과 연결시키기 위한 노력은 보부아르가 주장한 바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타자화, 그리고 여성에 대한 여성들 스스로의 자기타자화"''' 로 구체화되었다. 보부아르에 따르면, 여성의 열등함은 여성의 본질 때문이 아니며 남성들의 타자화에 의한 것이다. 이때 여성들은 자신을 창조(실존)하기 위한 자기초월의 작업에 전념할 수도 있지만, 자기타자화를 통해 객체로서의 삶에 안주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여기서의 주체와 객체 사이에는 본디 대등한 관계가 존재하며 이는 항상 불평등한 맥락인 것만은 아니지만, 남성과 여성 사이에 대등하지 못한 관계가 형성된 것은 여성들의 자기타자화 때문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결국 보부아르는 "여성들은 유사 이래 아무것도 스스로 쟁취하지 못했다" 고 개탄했으며, 페미니즘의 당위성은 여기에 있다고 보았다.
이런 배경에 입각하자면, 수많은 여성들은 "나는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다. 많은 수가 여성의 특성(여성성)은 본질적인 것이라는 점에 입각해 답하지만, 인간의 본질보다 실존이 앞선다는 '''실존주의에 따르면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여성의 본질을 규정한 것은 정작 여성 본인들이 아니라 남성들이었다. 이 지점에서 보부아르는 풀랭 드 라 바르(Poulain de la Barre)의 유명 어록을 인용하는데, 이 어록에 따르면 "남자가 여자에 대해 쓴 모든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남자는 당사자인 동시에 판단자이기 때문" 이라고 한다. 남성들은 여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아예 처음부터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

3. 목차 및 주요 내용


《제2의 성》은 총 2권으로 구성된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1권: 사실과 신화'''
  • 서론
  • 숙명
    • 생물학적 조건
    • 정신분석적 견해
    • 유물사관의 입장
  • 역사[3]
  • 신화
    • 1장
    • 2장
      • 몽테를랑, 또는 혐오의 빵
      • D.H.로렌스, 또는 팔루스의 자존심
      • 클로텔과 주님의 여종
      • 브르통, 또는 시
      • 스탕달, 또는 진실의 로마네스크
    • 3장
'''2권: 체험'''
  • 서론
  • 형성
    • 유년기
    • 젊은 처녀
    • 성에 입문
    • 동성애 여자
  • 상황
    • 결혼한 여성
    • 어머니
    • 사교 생활
    • 매춘부와 첩
    •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 여자의 상황과 성격
  • 정당화
    • 나르시시즘의 여자
    • 연애하는 여자
    • 신비주의 여성
  • 해방을 위하여
    • 독립한 여성
  • 결론
이 책 전체의 핵심 내용을 세 문장으로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대의 여성운동이 아래의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 책은 그야말로 오늘날의 페미니즘의 알파에서 오메가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 남성이 주체요, 본질이요, 제1의 성이요, 지배하는 우월한 존재이고, 여성이 객체요, 비본질이요, 제2의 성이요, 예속된 열등한 존재라는 생각은, 남녀의 본질적 측면 때문이 아니라 그저 사회적으로 만들어져 온 것이다.
  • 여성의 삶이 이처럼 열등하게 된 것은 고금을 통틀어 보더라도 여성들 본인들이 자기타자화를 통해 남성중심적 사회에 예속되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 여성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서는 여성들 본인들이 일어나서 이 억압적 사회구조를 바꾸어야 하며,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 역시 바로 이것이다.

3.1. 1권: 사실과 신화(Les faits et les mythes)


우선적으로 보부아르는 제일 먼저 '''여성의 조건'''에 대해 기존에 관념적으로 공유되던 생각인 "여성의 본질"에 대해 논박하는 것으로 1,000페이지에 달하는 긴 에세이를 시작한다. 남성은 원래, 당연히, 어쩔 수 없이 주체가 되고, 여성은 원래, 당연히, 어쩔 수 없이 객체가 된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화이며, 이는 현대[4]에 각광받는 생물학정신분석학,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뒷받침되거나 혹은 방조되어 왔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볼 때에도, 여성들은 어느 순간부터 타자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는 유목사회, 농경사회,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세, 계몽주의, 프랑스 대혁명,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났지만 남성-주체, 여성-객체의 구도 자체는 변화하지 않았다. 지금껏 여성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라는 것. 이런 환경 속에서 많은 저술가들과 작가들, 문필가들의 저작들에서는 남성중심적인 사회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데, 이를 종류별로 강조하기 위하여 보부아르는 당대 유명한 인물 다섯 명을 골라서 그들의 '''저술 활동''' 속에 녹아 있는 젠더 감수성의 현주소를 고발하였다.

3.1.1. 여성의 본질: 태생적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여성의 본질이 어떻게 '''열등한 것으로''' 정의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보부아르는 당시 인기를 끌던 세 가지 관점으로부터의 예상 답변을 각각 정리하고, 이에 대한 논박을 시도하였다.
첫째로,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보면 열등한 성별(sex)로서의 여성이 본질적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러 디테일한 부분은 생략하고 보부아르의 반론만을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우선, 자웅이체와 유성생식이 꼭 자웅동체나 무성생식보다 '우월' 하다고 볼 수는 없으며, 이는 진화론의 관점과도 맞지 않고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자연주의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2)''' 또한 1940년대까지의 연구로 미루어 보건대, 동물계에서 암컷이 수컷보다 '열등' 하다고 볼 수 있는 학문적 근거는 갖춰지지 않았다. '''3)''' 이에 더해, 여성의 본질은 자궁에 있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여성들은 초경부터 폐경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자신의 신체가 객체가 되는 경험을 하면서 '암컷의 굴욕감' 을 느끼기는 한다. 그러나 인간은 부단히 스스로를 창조하며 실존하려는 존재이므로, 자신에게 자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들이 열위로서의 여성성을 기꺼이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여성에게 주어진 이러한 생물학적 조건만으로는 여성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종속적 위치를 정당화하지도 못하고 설명하지도 못한다.'''
둘째로, '''정신분석학'''적인 차원에서 여성의 열등함이 학문적 근거를 갖출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서도 보부아르의 반론만을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정신분석학은 여성의 성욕(리비도)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여성 담론에서의 나름의 의의를 갖지만, 남성의 리비도를 규범으로 규정하고 여성의 리비도는 일탈로 치부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2)''' 정신분석학은 남성을 원형으로 삼는다. 여성이 자신을 '성기가 잘려나간 남성' 으로 자각한다는 프로이트의 관점은 철저히 남성중심적인 시각이다. 왜냐하면 여자아이들이 실제로 남성의 성기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것은 5살 즈음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것도 동경이 아닌, 단순히 호기심이나 징그러운 느낌, 연약해 보이는 느낌만을 가질 뿐이며, 그걸 동경이라고 엉뚱하게 해석하는 게 잘못이다.[5] 마찬가지로 딸이 아버지를 선망하는 것 역시 남근선망 따위가 아니라, 아버지가 갖는 우월한 사회적 지위와 가부장으로서의 위치에 대한 선망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3)''' 성욕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실존을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해야 한다. 물론, 부모의 수유와의 분리 이후 상실감을 경험한 유아는 주체성을 회복할 기회를 모색하는데, 남성은 자신의 성기를 주체화함으로써 자신의 주체성을 회복하지만, 여성은 다른 무언가를 자기 몸에서 발견할 수 없기에 자기 자신을 객체로 정의한다는 식의 설명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확실한 것은, '''여성이 남성의 생식기 구조와 자신의 몸을 비교하는 건 그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며, 이를 가지고 여성의 열등함을 설명할 수도 없다.''' 남근의 유무를 두고 여성의 사회적 운명이 결정된다는 건 비약이다.
셋째로, '''엥겔스의 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여성의 본질을 규명하려는 시도가 있다. 인간이 동물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현실이라는 엥겔스의 관점은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또한 "원시공산주의에서는 남녀가 평등했지만 잉여가치와 사유재산의 출현으로 여성이 종속당했으며, 계급투쟁을 통해 평등을 회복할 수 있다" 는 《가족의 기원》 역시 그럴듯한 설명이다. 그러나 보부아르에 따르면 이 역시 한계를 갖는다. 사유재산이라는 제도가 어떻게 이행되고 정착될 수 있었는가? 여성의 종속 문제를 왜 꼭 정치경제적인 관점으로만 설명해야만 하는가? 이는 프로이트의 성적 관점과 같은 비판에 직면하게 되지 않는가? 결국 이 관점 역시 보부아르를 만족시킬 만큼 '''정당화될 수 있는 설명이 되지 못한다.'''
이들을 모두 짚어본 보부아르는 자신의 무신론실존주의를 활용하여, 여성 문제를 "존재하는 자가 실존의 근거를 보여주기 위해 자기를 초월하여 주체성을 모색하는 과정" 에 비추어 접근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제안했다. 즉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모종의 이유로 인해 열등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실존주의의 인식의 렌즈를 활용한 주체와 객체의 논리를 대입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는 것이다.'''

3.1.2. 인류 역사와 여성의 지위


이 장에서 보부아르의 목표는 선사학 및 민속학의 성과를 실존주의의 관점에서 재고하는 것이었다. 보부아르에 따르면, '''역사 속 그 어떤 때에도 여성은 단 한 번도 제1의 성이 되었던 적이 없었다.''' 모든 인간이 주어진 여건 속에서 주체적으로 자기창조를 해 나가는 존재라는 실존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이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하다. 즉, 여성의 자기초월과 실존은 생식(출산)이라는 숙명에 의해 좌절된 반면, 남성의 자기초월과 실존은 생명을 빼앗는 힘을 통해 달성되었으며 그 결과 생명을 재생산하는 여성을 종속시켰다는 것.
우선적으로 '''유목사회'''와 '''농경사회'''에 대해 보부아르가 고찰한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유목사회에서 남성의 우월성은 제도적으로 공인되지 않았기에 아직 약했지만, 농경사회에서는 가부장적 제도를 통해 이것이 공인되었다. 레비스트로스의 관점을 빌어, 보부아르는 "대지와 자연을 여성으로 본 초기 농경사회" 가 흔히 알려진 것처럼 여성의 황금시대라는 생각을 반박한다. 이것은 모성에 대한 숭배일 뿐, 여전히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보부아르에 따르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는 남성들이 도구의 제작과 자연관찰을 통해 얻은 지식 등을 통해 점점 더 농경의 우연성을 제거하기 시작하면서 가속화되었다. 노동이 남성의 삶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 여성은 점차 남성에게 신비적 권위를 잃어 갔다. 남성들은 여성의 열위를 주장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그들이 정립한 체제 속에 여성을 편입시키려 노력했다.
다음으로 '''국가사회''' 속 여성의 위치에 대해 보부아르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고대 국가사회에서 여성은 상속물로서 취급되었다. 어릴 때에는 아버지의 재산이고, 나이가 들어서는 남편의 재산이었다. 보부아르의 표현에 따르면 "여성들은 영원히 미성년자" 였다. 특히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시인 시모니데스(Simonides)나 극작가 메난드로스(Menandros)와 같은 인물들이 공공연히 여성을 멸시하는 언급을 했고, 로마 시대에는 법률적으로는 여성에게 오히려 상당한 권위를 주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실질적인 권력을 갖지 못했다.
중세시대에 들어, 기독교 이념은 여성을 압제하는 데 기여했다. 봉건제도는 여성을 남편에게 종속시키는 것과 동시에 봉토에도 종속시켰다. 중세 무훈시의 귀부인과 궁정 여인들의 우아한 이야기는 이제는 그저 껍데기만 남은 도덕의 보상에 불과했다. 상황은 르네상스가 되어도 나아지지 않아서, 이 시기에 여성들의 입지는 일견 개선된 듯 보이나, 여전히 특권계급의 일부 귀족 여성들에게만 허용되었을 뿐이었다. 17세기, 살롱 위주의 사교계 활동을 통해 여성들은 상당한 자유를 누렸으나, 실상 이는 세계의 발전의 흐름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담소를 나누는 것에 불과했다. 계몽주의 시기에도 백과전서파와 같은 일부 남성들은 남녀평등과 유사한 아이디어를 내놓았지만 이것이 여성의 성취는 아니었다. 여성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 속에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함으로써, 이번에도 여성들은 어떤 성취도 경험하지 못했다. 그나마 제정된 여성인권의 법률은 군국독재 시절에 제정되었고, 나폴레옹 법전은 프랑스 여성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다. 이후 콩트 드 생시몽(Comte de Saint-Simon)이나 클레르 바자르(Claire Bazard), 빅토르 위고(Victor Hugo) 등의 인물들이 나타나서 여성해방적 아이디어를 내놓았지만 전부 이상화된 여성에 대한 감상주의적 태도에 그쳤을 뿐이었다. 다시 시간이 흘러 산업혁명 이후, 여성은 생산활동에 참여하면서 어느 정도 더 나은 입지를 누렸지만 일-가정 양립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여성들은 언제나 그랬듯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이는 체념과 복종이라는 전통적인 여성성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낙태와 산아제한은 꽤 늦게 이루어진 근래의 일이었다.
보부아르는 역사 전체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위의 항을 차지해 온 것에 대해서 '''"여성들이 가부장적 권력에 아첨해 왔기 때문"''' 이라고 지적한다. 남성들은 분명 지금까지 여성들에게 추상적 권리를 보장하며 그나마 달래어 왔지만, 이는 구체적 현실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성들에게 명목적으로 부여된 추상적 권리가 구체적 현실과 일치하기 위해서는, 여성 본인들이 자기초월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 즉 실존하는 주체로서의 삶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3.1.3. 여성성에 대한 숭배


여성은 이브인 동시에 성모 마리아이다. 여성은 우상이자 하녀이며, 생명의 원천이자 암흑의 세력이다. 진리의 소박한 침묵인가 하면 기이하고 교묘하기도 하며, 수다이기도 하며 거짓말이기도 하다. 여성은 의사이며 마술사이다. 여성은 남성의 먹이이며, 남성이 파멸하는 씨앗이다. 여성은 남성에게는 없으며 남성이 갖고 싶어하는 전부이며, 남성의 부정이고, 남성의 존재 이유이다.

- 《제2의 성》 1권 中

보부아르는 이제 여성성에 대한 숭배로서의 '''여성신화'''를 지적한다. 여기서 신화란, 의식이 아무리 파악하려 해도 끝까지 도피하려 하는 초월적 이념으로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여성들의 모습을 어떠한 영원한 형태의 모습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회는 여성들에 대해서 특정한 허상(이미지)을 투사함으로써 가부장제를 견고히 한다. 그 기원은 창세기의 이브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 이미지는 모순적이고 해석하기에 종잡을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남성에게 여성은 두려움의 대상이기에 '''미화가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해 남성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씌워 놓은 거짓 이미지들은 다음의 것들이 있다.
  • 생명수태와 재생산에 관련된 허상: 여성은 생명을 품고 창조하는 존재이다?
쥘 미슐레(Jules Michelet), 성 프란체스코 등이 숭배하고 찬양한 여성성은 인간의 근원, 양육자, 생산자로서의 여성이며 자연 그 자체이다. 그래서 여성을 대지에 비유할 때, 남성은 종종 '밭을 갈고 씨앗을 심는' 농부에 비유된다. 하지만 생명의 상징은 죽음의 상징을 연상시키고, 그와 동시에 여성은 혼돈과 암흑, 불결의 속성도 갖는다. 남성들은 여성의 생산력을 찬양할 때 외경심을 갖고 찬양하며, 그 찬양을 통해 여성의 역할을 좁히고 위치를 특정하여 소유물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 여성의 생식기에 대한 금기: 여성은 보호받고 소중히 다루어야 하는 몸을 지닌 존재이다?
여성의 외부 성기를 사회가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길 꺼리는 것은 여성성에 대한 가부장적 사회의 공포이다. 여성은 관계 시에 수동적이지만, 남성의 성기를 상징적으로 '죽인다' 는 점에서[6] 여성의 성기가 공포스럽게 느껴지게 되었다. 타자가 가공할 힘을 갖고 있을 때, 남성은 무조건적 억압이 아닌 '길들임' 을 통해 타자를 소유하고 싶어한다.
이와 같은 여성성의 찬미는 우선적으로 그 여성이 종속적 역할을 수락하는 선언을 해야만 가능하다. 여성들은 패배를 인정함으로써 남성들이 수여하는 권리를 회복한다. 남성들은 이런 여성들에게 순종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지배를 획득한다. 어머니가 갖는 여성성은 그 신비스러운 힘마저도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거룩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보부아르는 남성들이 장모(丈母)에게는 그런 숭배를 하지 않음을 들어 모성혐오 역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하녀들 역시 '아이처럼 상냥하고, 자상하고, 자애롭고, 순박하며, 헌신적인' 이미지를 갖는다.
  • 얌전한 소유물로서의 허상: 여성은 남성의 손길이 닿기를 기다리는 존재이다?
보부아르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비유하자면, 남성들에게 있어 여성은 부드러운 반죽과도 같다. 남성의 손길이 가는 대로 얌전하게 빚어지는 동안, 남성은 그 여성을 온전하고 철저하게 소유함을 확인한다. 그러나 너무 쉽게 뜻대로 빚어지는 재료보다는 다소간의 저항이 있는 재료를 더 선호한다(…). 그것이 남성들의 정복욕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 남성을 인정하는 여성으로서의 허상: 여성은 남성의 강함을 확인해 주어야 할 존재이다?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자신들을 인정해 주는 역할을 담당할 것을 요구한다. 자신의 행동과 판단에 대한 가치평가를 여성이 내려주기를 바라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의 가치와 무게를 확인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여성들은 흔히 신과도 같은 판단자가 된다. 자신의 강함을 확인해 줄 여성을 남성들은 '만들어냈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을 감히 평가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여성이 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여성에게 강한 측면과 약한 측면을 모순되게 요구하는 경향은 마침내 '정숙하고도 요염한 아내' 와 같은 허상으로 나타나고, 이를 여성이 받아들였을 때 남성들은 도리어 여성이 신비스럽고 변덕스러운 존재라고 결론짓는다.
그런데 실상, 신비는 여성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보부아르에 따르면, 남녀 모두가 신비를 갖고 있으며 원래 변덕스럽고 양면적인 모습이 있다. 이를 여성의 전유물로 치부하는 것은 남성중심적인 사고이다. 보부아르는 "만일 여성이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특권을 갖고 있는 사회라면 그 신비가 역전되어 남성의 것이 될 수도 있음" 을 언급하면서 (pp.381-382) 신비가 특정 성별에 필연적으로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역시나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전제하였다.

3.1.4. 작가들과 지식인들의 여성 비하 유형


여기서 보부아르는 당시 유명세를 얻고 있던 다섯 명의 작가들의 저작들을 논의하면서, 이들이 그려내는 여성이 어떤 이미지로 나타나는지, 실존주의의 관점에서 어떤 해석과 설명이 가능한지를 논의한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다섯 명 중 스탕달을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은 모두 남성중심적 사회의 풍조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으나, 저마다의 관점의 차이는 존재했다. 그리고 스탕달은 보부아르가 보기에도 만족스러울 만큼 여성에 대한 타자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 앙리 몽테를랑(Henry Montherlant)
영웅호색. 남성우월주의적 영웅주의. 남성은 초월자이자 비상하는 존재, 여성은 남성의 발 밑에서 구르는 존재로 묘사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적일 따름이며, 애인은 그저 노예근성에 빠진 기생충으로 표현했다. 여성의 가치는 그저 육체 그 자체로서만이 의미가 있으나, 남성이 설혹 여성의 육체를 탐한다 해도 이는 남성의 우월함을 증명할 뿐이며 노리개 놀음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보았다.
  • 데이비드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양자대립. 양극 사이의 균형 잡힌 타자화. 남성과 여성은 서로를 전혀 이해할 수도 없고 지배할 수도 없으며 순종할 수도 없다는 것이 이 사람이 바라보는 남녀관이다. 이상적인 관계는 자기타자화가 만연한 관계처럼 묘사했다. 성 갈등은 상대방을 무리하게 정복하려 할 때 발생하며, 남성과 여성이 연결되는 유일한 기회는 남성의 성기가 여성에게 삽입될 때뿐이다. 생명의 상징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에게 주어진다는 것도 그의 특징 중 하나.
  • 폴 클로델(Paul Claudel)
열위로서의 여성에 대한 유신론적 옹호. 가부장제 및 신론(神論)과 같은 주어진 질서 내에서 여성은 긍정되고 정당화되었다. 그에 따르면, 여성은 신의 피조물이므로 존중받아야 한다. 여성이 가치를 갖는 이유는 가족 내에서 남편에게 해야 할 도리를 다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따라서 그의 관점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열위 항을 차지하는 것 역시 긍정되고 더 나아가 신성화될 수도 있다.
  •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
중개자로서의 여성. 여성은 남성이 진리와 소통하는 통로로서 작용하며, 미(美)를 추구하는 남성이 그 아름다움을 만나게 되는 계기라고 한다. 여성은 남성에게 세상의 경이와 만날 수 있게 하는 블랙박스일 따름이다. 브르통은 여성이란 주체적으로 존재하는 무엇이 아니라 남성에 대한 도구적인 여성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암묵적 전제를 깔고 있다.
  • 스탕달(Standhal)
모범사례. 여성에 대한 일체의 타자화가 없음. 여성을 어떤 이미지에도 밀어넣지 않으며, 주체적으로 스스로를 창조하며 실존하는 여성관을 보여주었다. 남성과 여성 간 관계는 동등한 자유와 자유가 만난 상호성으로 묘사되었다. 더불어 여성의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양성 간의 생산적인 관계를 그려내어, 남성들의 경험이 위협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스탕달은 보부아르가 인증한 사실상의 "페미니스트" 로 분류될 수 있다.

3.2. 2권: 체험(L'expérience vécue)


2권에서 보부아르는 여성이 구체적으로 어떤 삶의 양상들 속에서 만들어져 가게 되는지를 막대한 분량을 할애하여 기술한다. 특정 여성 개인의 체험인 것은 아니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지간한 여성들이라면 한 번쯤은 어느 정도는 겪어 보았을 일들을 통해서 여성이 어떻게 열위 항으로서의 위치를 받아들이며 사회화가 진행되는지를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레즈비언에 대해서 주체-객체의 실존주의적 논리를 들어 평가하는 것도 독특한 점.
이후로 보부아르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처지를 애써 정당화하려 하는지 몇 가지의 가능한 경우를 들어 논의하고, 마지막으로 여성을 열등하게 '만들어 가는' 사회를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제안하면서 글을 마친다. 전체 규모가 1,000페이지에 달하는 거대한 에세이에서 유독 문제에 대한 처방에 해당하는 최종장의 경우 불과 50페이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은 혹자에 따라서는 아쉬운 점이 될 수도 있겠다.

3.2.1. 전생애에 걸쳐 만들어지는 여성


여성이 '형성되는' 것이라는 보부아르의 젠더 개념에 따르면, 여성의 삶은 자기초월과 창조의 과정이 아니라, 그저 사회적으로 요구되고 예정되어 있는 수순을 하나씩 때가 됨에 따라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여성은 평생에 걸쳐 '''자신의 열등함을 받아들이고, 실존적 주체로서의 권리를 포기'''하면서도, 심지어 이를 씁쓸한 마음으로 기뻐하도록 사회화된다.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보부아르는 주어진 현실 속에서 여성이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모든 경험들의 공통적 측면들을 강조한다.
먼저 '''유년기'''의 경우, 어린이가 부모의 수유를 마치고 분리된 이후 부모를 기쁘게 하고 보상을 받는 과정에서 '''후천적 속성으로서의 여성성의 첫 학습'''이 이루어진다. 소년들은 자주와 독립을 교육받으며 그것이 자신의 우월성의 원천임을 확인하나, 소녀들은 의존과 연약함이 허용되는 양육을 받는다. 소년들은 주체의 일부인 성기에 자기를 투사하지만, 소녀들은 객체의 한 종류인 인형에 자기를 투사한다. 즉 인형놀이는 소녀들이 스스로를 객체화해야 인정 받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과정인 셈. 체계적 교육을 통해, 소녀들은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을 기다려라" 는 메시지를 배워 간다.
이후 '''사춘기'''의 경우, 소년들이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신체적 변화를 받아들이는 반면, 소녀들은 대개 자긍심보다는 공포에 질려서 신체적 변화를 받아들인다. 이는 섹스출산에 대한 공포, 자신을 해칠지도 모르는 남성에 대한 공포 등을 포함한다. 소녀들은 초경의 경험을 자신이 더럽혀진다는 위험 신호처럼 느끼고, 섹스를 상상할 때에는 '''소년들이 흔히 갖는 정복감의 환상이 아니라 "뚫림, 찢김" 과 같은 파괴적 이미지의 공포를 경험한다.'''
여성이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된 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남성은 성숙한 신체를 통하여 자기초월과 성취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세계를 향해 주체적, 능동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은 '''수동성을 내재화'''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세계 속에서 혼란과 압박, 불안을 느끼고, 자신의 객체로서의 가치를 깨닫기 위한 일환으로써 몸치장을 하고 '''남성에게 잘 보이려 애쓰게 된다.''' 그 외에 여성은 다른 방법으로 나르시시즘에의 탐닉, 노인 남성과의 사랑, 동성 간의 사랑, 자신의 여성성을 거부하는 자해, 인간 사회로부터의 도피 등을 시도할 수 있지만, 이는 모두 주체가 될 용기가 없는 자신에 대한 기만적 행위에 불과하다는 게 보부아르의 평가다.
여성의 '''첫 성경험'''은 보부아르의 분석 중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축에 속한다. 성욕의 해소가 주체로서의 자기에 모순되지 않는 남성과 달리, '''여성에게 첫경험은 대체로 폭행의 의미를 갖게 된다.''' 침대는 군사 용어가 난무하는 전쟁터가 되고, 제압하는 자와 제압당하는 자가 존재하는 투기장이 된다. 남성은 섹스에 있어서 매우 공격적이고 이기적이며, 여성은 남성이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채로 첫경험에 임한다. 남성은 첫경험을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하지만, 여성은 '''걱정과 불안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섹스가 시작되면 여성은 자신이 걱정해 왔던 객체로서의 수치를 자신의 몸으로 생생하게 경험하게 된다. 이로써 여성은 첫경험 이전까지의 자신의 모든 삶으로부터 급격하고 격렬한 방식으로 '단절' 되며, 완전히 새로운 자신으로서 유리되고 만다. 그리고 남성들은 이를 꿈에도 모르는 채(…) 자신의 애인에게 있어 첫경험이 몹시 황홀한 시간이었을 거라고 지레짐작한다. 그러나 보부아르가 보기에 남녀 간의 원만한 섹스는, 남성중심적이고 작위적인 기교가 아니라 남녀에게서 자연히 드러나는 매력을 바탕으로 한 상호적 관용에서 시작한다.

"(여성의 질은)... 남자가 개입해야만 성적 욕구의 중심이 된다. 그리고 그 개입은 '''일종의 폭행의 성격을 띤다.''' ...''(중략)''... 그녀를 처녀에서 여자로 바꾸는 것은 폭력이다. 그래서 처녀성을 '빼앗는다' 느니 처녀의 꽃을 '꺾는다' 느니 하는 말이 있다. 이런 처녀성의 상실은 계속해서 발전하는 원만한 결말이 아닌 '''과거와 급격하게 단절하는 것이며, 새로운 과정의 시작이다.'''

- 《제2의 성》 2권 中

일부 여성들은 이러한 폭력적인 섹스를 걱정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동성애에 탐닉하기도 한다.[7] 자신의 관점을 따라, '''보부아르는 동성애가 선천적이라고 믿지 않으며,''' 생리적 조건은 그저 하나의 상황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객체로서의 수치 없이 사랑을 구현하려는 하나의 시도이며, 남성에 의한 숙명적 지배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일견 남성적으로 보이는 것은 남성에 대한 동경이나 모방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성에 대한 거부의 결과'''이다. 하지만 보부아르가 보기에, 이들은 동성애를 선택하고도 남성과의 관계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한다. 레즈비언 간의 섹스는 거울상의 형태를 가지며, 지배나 제압이 아닌 상호적 관조의 양상을 띠게 된다. 종합적으로 레즈비언은 여성이 내린 하나의 '선택의 결과' 일 따름이며, 숙명적이라거나 태생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다음으로 여성들이 '''결혼하여 아내가 되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보부아르가 보기에 결혼은 주체로서의 남성과 객체로서의 여성을 고착화시키는 나쁜 제도다. 결혼을 통해 여성은 남성에게 '주어지지만' 그와 동시에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보장받게 된다. 여성에게 결혼이 행복이 아님이 자명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남편을 가능한 한 까다롭게 고르려 하지만, 어차피 누구와 결혼해도 행복해지기 어렵다. '''자유가 없으면 사랑도 없지만, 여성들은 허울만 좋은 '사랑' 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고 남성에게 예속되는 길을 선택하고, 관습으로서의 결혼은 결코 사랑을 보장하지 않는다.''' 결국 많은 아내들이 단지 연극 내지는 의무방어전으로서의 섹스만을 하게 된다. 아내가 주체가 될 것처럼 보이는 유일한 영역이 가사노동이지만, 실상 이는 자기초월과는 무관한 시시포스의 형벌이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다. 결혼의 비극은 남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의 문제 때문이다.
여성이 '''어머니가 되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8] 자녀 출산이 여성에게 가장 큰 기쁨이라는 주류 사회의 생각과는 달리, 보부아르는 "계급적 범죄" 로서의 낙태를 합법화할 것을 주장했다. 보부아르가 보기에 남성들은 낙태 합법화를 반대할 때 생명의 가치를 주장하지만, 정작 자신의 여성에게는 낙태를 권유하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인다. 임신의 경우, 여성들은 자기 자신을 향유할 기회를 얻지만 그와 함께 거북함과 수치심을 함께 경험한다. 분만 중의 고통에 대해 주류 사회가 모성의 근원으로 추앙하는 것과 달리, 보부아르는 무통분만에 찬성했다. 모성애 역시 본능적인 것이 아니며,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시선은 매우 복합적이고 기묘하기에, 심지어 보부아르는 때로 어머니는 자녀에게 위험한 존재라고까지 주장했다. '''모성애는 어머니를 기쁘게 하지도, 자녀를 기쁘게 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요지는, 자녀 양육은 어머니 한쪽에게만 맡기기에는 너무나도 무겁고 중차대한 문제라는 것이다.
가정을 꾸린 여성들의 사회생활은 전업주부로서 여성들이 나름대로의 주체가 되려는 노력이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점차 자기 자신을 대상화시키고 사물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화장은 여성이 남성의 시선을 통해서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기만적 의미를 가진다. 여성의 불륜과 간통은 (물론 불신과 파국을 낳는 심각한 범죄라는 점은 인정하나) 그것이 자신의 선택인 한, 여성이 추구하는 자유가 담겨 있다고 본다.
일부 여성들은 성매매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매춘은 주류 사회에서 "정숙한 여성이 그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난잡한 여성이 필요하다" 는 논리 하에 허용되어 왔다. '''매춘은 결혼 미만으로 끔찍한 제도'''인데, 왜냐하면 매춘과 결혼은 여성의 굴종이라는 점에서는 모든 것이 같지만, 매춘은 최소한의 사람 취급도 못 받기 때문이라고. 대부분의 매춘부들은 본인의 욕정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부조리와 혼란, 그리고 빈곤 문제 때문에 그 길에 빠져들었다고 평가되어야 한다. 심지어 대중매체의 스타 연예인에서부터 궁궐의 시녀에 이르기까지, 마치 주체가 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은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의 한 종류일 뿐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의존적이듯, 이들 역시 누군가(대중)에게 의존적이기 때문. 게다가 이런 첩들은 실존하는 주체로서의 자기초월의 가망조차도 없다.
마지막으로 여성들의 '''노년기'''의 경우, 이 이야기는 결국 배드 엔딩으로 흐른다. 여성은 그리 늙지 않았을 때 이미 그나마의 존재의 의의인 성적 매력을 상실한다. 즉, 생애의 남은 절반을 어떠한 희망도 없이 살아가야 하는 것. 폐경은 때로 월경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을 주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늙어간다는 공포감을 심어 준다.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며 후회와 비탄을 느끼고, 마침내 40-50대에는 남성에 대한 격렬한 성욕을 보임으로써 자신을 구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수태력을 상실하고 나서야 여성은 비로소 진정한 주체로서의 자유를 얻으나, 이미 어떠한 권리도 희망도 없는 상황이라 이런 자유는 무의미할 따름이다.''' 아들을 통해 대리만족하려는 마음 역시 며느리의 존재로 좌절되며, 손자녀의 출생은 할머니의 죽음과도 같은 의미를 갖는다. '''노인이 된 여성은 삶의 어느 국면에서도 언제나 자신이 무용지물이라는 걸 깨달을 뿐'''이며, 회한과 아쉬움 속에 죽어갈 뿐이다.
이 장의 구성은 마치 오늘날의 여성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82년생 김지영》 의 구성과도 유사하게 보이기도 한다.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지만, 다수의 여성들이 삶 속에서 순차적으로 마주하는 다양한 삶의 양상들을 복합적으로 겹쳐서 구성했다는 점, 여성이 삶 속에서 성취해야 할 일들이 그저 연령에 맞추어져서 사회로부터 강요되기 십상이라는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적 시계(social clock)가 여전히 여성들에게 강력한 효과를 갖고 존재함을 보여준다.

3.2.2. 여성들의 자기정당화


남성억압적 사회를 살아가면서 여성들은 자기방어 및 자기정당화를 시도하게 된다. 보부아르는 이런 방법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 나르시시즘, 사랑, 그리고 종교적 신비에 대한 탐닉을 들고 있다.
먼저 '''나르시시즘'''의 경우, 이 역시 여성의 본질적 특성이 아닌 선택의 결과라고 보아야 하지만, 그러나 자기타자화의 하나일 뿐임은 유념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일견 자기 자신을 주체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물체로서 욕망하는 것이다.''' 남성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으나, 여성은 물체로서의 자신의 신체를 우상화한다.
다음으로 '''사랑'''의 경우, 남성에게 사랑이란 자기창조와 초월의 방편 중 하나이지만 여성에게는 '''삶의 전부이자 운명 그 자체'''로 간주된다. 거듭 언급하지만 이는 본질적 특성이 아니라, 여성들이 수동적으로 이성을 대하기를 '배웠기' 때문이라고. 우월하고 강한 존재(남성)에게 예속되고 보호받는 가녀리고 무기력한 존재(여성)로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과정이 바로 보부아르가 말하는 사랑의 실체다. 남성의 품 속에서 어린아이처럼 되는 것은 '''또 다른 자기비하이고 객체화에 불과하다.''' 그만큼, 남성을 사랑하는 여성은 남성이 약한 존재가 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상대방 남성을 신성화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함께 정당화한다. 결국 여성은 사랑받지 못한다면 무의미한 존재가 되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교적 신비주의'''는 일명 '천국과의 혼례' 라고 할 수 있다. 종교활동과 초월적 신비에 대한 투신을 통해 자신의 실존을 구현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탐색하는 것인데, 지상의 남성들 중 누구도 완벽하지 못하기에(…) 신과의 관계를 통하여 완벽하게 강한 남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의 속성이 완벽하다는 것은 그만큼 그 신이 지고한 주체가 됨을 의미하며, 그런 신에게 투신한다는 것은 '''그만큼 철저하게 자기를 객체화한다는 의미다.''' 이들에게는 하늘 그 자체가 거울이 되는 것. 결국 이 역시 진정한 주체가 되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보부아르가 판단하기에 여성의 자유는 보장되지 않는다.

3.2.3. 여성해방의 길


보부아르가 진단하기에, 현대 프랑스에서 여성해방을 위해 투표권의 확대 등 많은 개선이 있어 왔으나, '''경제적 독립'''이야말로 여성이 주체가 되기 위한 최우선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남성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이상,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은 예속적 삶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갈등하게 되는 경험을 피할 수 없다. 교육의 불평등, 남성들의 적의, 사회적 지지의 부족, 스스로의 열등감 등이 여성들의 자기초월을 저해한다는 문제도 존재한다. 일부 여성 예술가들은 자신을 발견하고 주체성을 되찾기도 하지만, 이들을 제외하면 여성들은 객체로서 살아간다.
보부아르는 '''여성성은 상황의 문제이며, 영원하지 않고, 본질적이지 않음'''을 힘주어 말한다. 그녀는 남성의 억압과 여성의 예속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과도기적 현상이며, 여성에게는 반드시 더 밝은 미래가 기다릴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 우선은 여성들이 남성들의 저항에 대비하고, 여성들이 예속을 통해 얻는 달콤한 보상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4. 세간의 반응


프랑스의 수많은 지식인들과 논객들이 공공연히 이 책을 비난했으며 저자는 '제1의 성' 에 속하는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훈계와 충고가 담긴 편지를 받았다. 이들은 저자에게 성적 불만족을 치유하는 것이 당신의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진단' 했다고. 정작 여성 독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사이다처럼 풀어내면서 그 이면의 문제를 철학적 근거를 통해 제시하는 이 책의 논리에 크게 공감했다는 데서 상당히 대조된다.
이때 주요 비판론자로는 프랑소와 모리악(Francois Mauriac), 알베르 카뮈 등이 있으며, 심지어 바티칸 교황청에서는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미성년자들뿐 아니라 성인들도 이 책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이미 저자가 대립각을 세운 바 있듯이, 공산주의자들도 "여성해방은 계급해방에 의해 자연히 따라온다" 고 주장하며 저자를 반박했다.
2권에서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강조된 모성신화 비판론에 대해서는 보부아르 본인이 어머니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아이를 낳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머니의 마음을 아는 것인 양 떠들지 마라"는 등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각고의 노력으로, 프랑스에서 1975년에 낙태가 합법화되었다. 그 외에도 여성 진영에서는 여성문제에 대해 보부아르가 서술한 문체 자체가 자신과는 별 관계가 없다는 듯한 태도로 의심될 수 있다고 지적했고, 책 제목이 현실개선의 의지보다는 현실긍정의 느낌을 준다는 점도 언급했다. 보수적인 관점을 가진 독자들은 이 책이 비현실적으로 급진적인 제안을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 외의 비판으로는 지나치게 장 폴 사르트르에게 의존하여 논리가 전개되는 것 같다는 등의 비판도 잇따랐다.
반면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와 같은 소수의 좌파 지식인들은 저자에게 적극 찬동하고 옹호했다. 이 책에 대한 긍정적인 서평은 초기의 반발이 다소 가라앉고 난 시점에 많아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전보다 침착한 평론은 이 책이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으로 넘어간 뒤 미국의 논객들이 평론한 바가 프랑스어로 번역되면서 역수입된 것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즉 우선적으로는 미국에서 뜨거운 호응을 받았고, 미국에서 이 책을 바탕으로 논의한 내용이 프랑스로 넘어가면서 프랑스 지식인들도 뒤늦게 이 책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기 시작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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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문서는 r.1 기준으로 변광배 교수의 해설서를 크게 참조하였다. 패러프레이징의 한계 또는 내용상의 오류가 있을 경우 해당 문장의 삭제 혹은 교정바람.[2] 프로이트를 비판하며 나온 것이 여성학의 시작이라고도 본다. 그리고 마르크스적 페미니즘이라는 분파가 따로 있다.[3] 장절 구분 없는 다섯 단락으로 구성됨[4] 즉 이 책이 저술되던 20세기 초중엽을 의미한다.[5] 보부아르에 따르면, 물론 소변을 보는 자세의 차이 등에서, 남근이 여성의 수동성에 영향을 주었을 수는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보더라도 여성의 열등함이 선천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6] 즉, 소위 말하는 바기나 덴타타(vagina dentata)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7] 이 문단에서 서술하는 동성애에 대한 논의는 보부아르의 철학적 관점이 짙게 반영된 것으로, 현대에 퀴어학 등에서 공유되는 담론들과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8] 이 지점에서 당대 여론을 가장 불편하게 했으며, 가장 극심한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