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먼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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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제42대 부통령.
2. 생애
1948년 당시 미네소타 연방상원의원 선거에 도전하던 휴버트 험프리의 선거캠프에 참여하며 20세의 나이에 처음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1952년, 1954년, 1958년 미네소타 주지사 선거캠프에도 참여하여 정치 커리어를 쌓다가 1960년 32세의 나이로 미네소타 주 검찰총장에 선출되었으며 이후 1966년 미네소타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된 후 1972년 재선에 성공한다.
1976년 미국 대선에서 지미 카터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부통령이 되었고, 1980년 미국 대선에서도 카터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했으나, 지미 카터가 로널드 레이건과 러닝메이트 조지 H. W. 부시에 패배하면서 부통령에서 퇴임하였다.
1984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이 둘과 다시 대결했으나 76년 대선보다 더 큰 표 차로 패했다. 먼데일 측 부통령 후보는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 후보이던 제럴딘 페라로로 그를 앞세워 진보적 가치를 증명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중도층의 반감을 사서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의 기록적인 패배를 당했다.
당시의 예상을 벗어난 압도적인 패배에 본인과 민주당 모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고. 먼데일이 이긴 곳은 '''고향'''인 미네소타와 골수 친민주당 지역 워싱턴 D.C(먼데일이 85%(!) 득표). 선거인단 수로 따지면 525 대 13이다. 먼데일은 개표 최후반 미네소타에서 간신히 4천표차(0.18%)로 승리를 확정지었는데, 미네소타에서도 히스패닉의 압도적 지지[1] 가 없었다면 결과가 뒤집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레이건은 미국 50개 주에서 모두 이길뻔''' 했다(...)[2] 당시엔 NBC 등 개표방송을 하던 주요 언론들이 공화당을 파란색으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아서, 레이건은 이 승리 이후 "수영장 대통령"이란 별명을 얻었다.
다만 선거인단 확보자 수가 아닌, 유권자 개개인의 투표를 기준으로 하는 총 득표수(popular vote. 즉, 직선제 기준)로 따지면 레이건 58.8%, 먼데일 40.6%로 나타났다. 투표한 사람 10명 중 4명의 지지를 받은 셈이니, 생각보다 선거인단 차만큼 큰 표차는 아닌 셈.[3]
하지만 8년 뒤 민주당인 빌 클린턴이 조지 H. W. 부시를 누르고 집권에 성공하면서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주일 미국 대사로 지명되었다.
2002년, 다시 한번 자신의 홈그라운드인 미네소타에서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도전하였으나 공화당 놈 콜먼 후보에게 2.2%p 차로 석패했고 그대로 정계를 은퇴했다. 18년만에 다시 갑작스럽게 선출직에 도전하게 된 비화가 있는데 당시 원래 민주당 후보였던 폴 웰스턴이 비행 사고로 선거를 10일 남겨 놓은 상태에서 사망하게 되면서 급작스럽게 미네소타 민주농민노동당[4] 의 지명을 받아 출마하게 된 것.
그래도 지명도를 바탕으로 불의의 사고로 주어진 짧은 선거운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잔여 지지세를 규합해 선거 직전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51 대 45로 앞섰으나, 정작 당일 선거에서는 패배하고 말았다. 이후 정계 은퇴를 선택했다.
3. 선거 이력
4. 여담
당시 대선에서 레이건은 고령의 나이가 문제가 되고 있었는데[5] , 먼데일과 레이건의 대선 1차 토론 당시 위대한 소통가란 별명을 가지고 있던 레이건답지 않게 유독 횡설수설하며 토론을 망쳐 국민들의 이 점이 실제 불안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2차 토론회에서 다시 사회자가 이 점을 지적하며 나이 문제를 지적하자 "전 나이를 가지고 문제를 삼지 않을 것을 이 자리에서 약속드립니다. 상대 후보가 너무 젊고 경험이 부족하다는걸 절대 정치적으로 공격하지 않겠습니다."라며 재치있게 받아쳤고 먼데일 본인마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풍문으로는 이 토론회 직후 아내에게 이미 대선에서 패배할 것을 직감했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미친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쓰며 언제 핵무기를 발사할지 모르겠다며 우려를 표했다.
퇴임 후 40년 가까이 생존중인 최장수 부통령인데 우연인지 '''먼데일이 대통령으로 보좌했던 지미 카터도 역대 최장수 대통령이다.'''
[1] 로널드 레이건은 포클랜드 전쟁에서 전폭적으로 영국과 마거릿 대처를 지지했었고, 이 때문에 히스패닉은 민주당에 몰표를 줬다. 당시만 해도 히스패닉의 인구 비중이 적은 편이라 선거에 큰 영향은 못 미쳤지만.[2] 워싱턴 DC는 연방 직할령이기 때문에 주가 아니다.[3] 물론 전국 득표 기준으로도 보통 1대1 선거에서 더블스코어(10%) 이상은 참패라고 봐야 하지만 워낙에 선거인단 수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다보니...[4] 미네소타에서 민주당의 지위를 대신하고 있는 지역 정당으로 연방 단위 선거에서는 민주당 당적으로 출마한다.[A] A B 대통령 후보는 지미 카터[5] 1차 취임식 당시에도 이미 만 69세의 나이였다. 먼데일은 1984년 대선 당시 만 56세로 비교적 젊은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