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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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춘추시대 위(衛)나라의 15대 군주. 위장공의 아들. 위환공의 아우. 위군 주우의 이복 동생. 그는 젊은 시절 형나라에 인질로 있다가 석작(石碏)의 도움으로 형 위 환공을 죽인 위군 주우를 죽이고 위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그러나 며느리가 될 사람을 차지하고 집안 관리도 못해 아들을 둘이나 죽게 만드는 패륜적인 일을 저질러 위나라의 국력이 약화되는 원인을 만들었다.
2. 생애
2.1. 즉위 전
위 선공은 젊은 시절 태자인 형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위 환공이다.
위 환공 16년(기원전 719년), 공자 주우가 위 환공을 죽이고 위후가 되었으나 상대부 석작이 진환공(陳桓公)과 함께 위군 주우를 살해하고 형(邢)나라에에 인질로 간 공자 진을 세우니 그가 바로 위 선공이다.
2.2. 즉위 후
2.2.1. 정나라와 강화하다
위 선공 원년(기원전 718년), 4월 정나라가 위나라 교외를 침범했다. 위나라 사람들은 남연국 사람들을 거느리고 정나라를 쳤다. 이에 정나라의 대신 채중, 원번, 설가가 3군을 거느리고 남연군과 맞섰고 공자 만백과 공자 자원을 보내 남연국의 후방을 치게 했다. 이에 남연국 사람들은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 6월, 공자 만백과 공자 자원이 호뢰관에서 연나라 군대를 쳐부쉈다. 당시 위(衛)나라 성(郕)나라의 침입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위나라는 성나라를 치고 있었다.
위 선공 4년(기원전 715년), 봄 제나라의 군주 제희공이 송나라, 위나라 양국과 함께 정나라와 강화를 위한 회맹을 준비했다. 송상공은 위나라에 예물을 요구했다. 위선공이 그것에 동의해 견구에서 비공식 회맹이 열리고 위나라와 정나라는 강화했다.
2.2.2. 정나라와의 계속된 전쟁
위 선공 6년(기원전 713년), 가을 위나라와 채나라, 성나라는 주나라 천자의 동의없이 송나라를 쳤다. 7월 5일 정나라 군대는 노나라의 교외에 머물렀다. 위군, 송군은 정나라를 쳤고 채나라 군대는 대나라의 후방을 노렸다. 8얼 8일 정나라는 대나라를 포위했다. 8월 9일 위나라, 송나라, 채나라 3군이 합치지 못해 정나라가 대나라를 이겼고 3국의 군대를 포로로 잡았다.
위 선공 10년(기원전 709년), 위 선공이 제 희공과 포 땅에 회맹했다.
위 선공 12년(기원전 707년), 주환왕이 정 장공에게 경사직을 박탈해 다시는 주 왕실에 입조하지 않았다. 주 환왕은 정 장공의 주 왕실을 무시하는 행보에 진노하여, 위나라, 채나라, 진(陳)나라 3개국의 병사를 거느리고 정나라를 쳤다. 정 장공이 친히 그것을 막으러 갔다. 주환왕이 중군을 거느리고 괵공 림보에게 우군을 거느리게 하고, 채군과 위군이 돕게 했다. 그리고 좌군은 주공 흑견이 거느리게 하고 진(陳)군이 돕게 했다. 반대로 정나라 공자 자원의 건의를 받아들여, 만백에게 우군을, 채중에게 좌군, 고거미에게 중군에서 정장공을 호위하게 했다. 그 교전에서 정나라가 이겼을 뿐만 아니라 축담은 주 환왕의 어깨에 화살을 명중시켰다.[1]
위 선공 14년(기원전 705년), 위나라는 정나라와 함께 제나라를 쳐 맹읍과 상읍을 쳤다. 주 환왕은 맹읍, 상읍의 백성을 겹 땅에 옮기게 했다.
위 선공 17년(기원전 702년), 위, 제, 정 3국과 노나라의 낭 땅에서 교전을 벌였다.
위 선공 18년(기원전 701년), 위, 제, 정, 송 4개 나라가 회맹했다.
위 선공 19년(기원전 700년), 11월 병술일 위 선공이 죽었다. 시호는 선(宣)이었다.[2] 위 선공이 죽고 세자 삭이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위 혜공이다.[3]
2.3. 후계자 문제
위 선공이 나라를 잘 다스린 편이지만, 후계자 문제를 막장으로 처리해 국력을 약화시킨 과오가 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이러하다.
위 선공은 아버지 위 장공의 첩인 이강(夷姜)과 사통하는 사이였다. 그 사이에 공자 급(伋: 일명 급자(急子))을 얻어 우공자에게 가르치게 했다. 이강을 총애해 공자 급을 태자로 삼았다. 그리고 그 이강은 공자 검모(黔牟)와 석을 낳았다.[4]
훗날 위 선공은 제나라 여자 선강(宣姜)을 아내로 맞았다. 그리고 아들인 공자 수(壽)와 공자 삭(朔)을 얻었다. 그로 인해 이강에 대한 애정이 식어 이강은 자결했다. 그 틈을 노려 선강과 공자 삭은 태자 급자를 비방했다. 그리고 급자가 제나라의 사신으로 파견할 때 선강과 공자 삭은 계책을 써서 무사들을 도적으로 위장해 급자를 제거하려 하였다. 이에 공자 수는 태자 급자를 돕기 위해 그것을 알렸으나 급자가 듣지 않자 몰래 태자의 의장과 복장을 하고 도적들에게 가서 대신 죽었다. 이에 급자는 공자 수가 가는 길에 자신을 대신해 도적들에게 죽을 것을 알고 그리로 가서 자신을 밝히고 같이 죽어 공자 삭이 태자가 되었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