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소왕(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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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전국시대 위나라의 제5대 군주. 제3대 왕. 위양왕의 아들. 위안희왕의 아버지. 이때부터 전국사군자 중 하나인 신릉군(信陵君)이 등장한다. 제나라에서는 맹상군, 연나라에서는 연소왕이 악의를 대장군으로 삼아 제나라를 쳐 70여개 성을 점령하였다. 열국지에서는 위애왕(魏哀王), 위소왕이라고 나와 혼란을 준다.
2. 재위 기간에 있었던 일
위소왕 원년(기원전 295년), 진(秦)나라의 국위(國尉) 사마착(司馬錯)이 위나라를 공격하여서 양성(襄城)을 취했다.
위소왕 2년(기원전 294년), 위나라와 진나라가 싸웠으나 또 위나라가 패했다.
위소왕 3년(기원전 293년), 위나라는 한(韓)나라와 힘을 합해 진나라에 맞섰다. 이에 진나라에서 명장 백기(白起)를 보내 이궐(伊闕)에서 싸워 위군이 12만 병력을 잃으며 대패하니, 이것이 이궐 전투였다.[1][2]
위소왕 6년(기원전 290년), 위나라에서 진나라에 화친을 청하였는데, 그 조건은 위나라가 하동(河東)의 400리 땅을 떼어서 진나라에 바치는 조건이었다. 위소왕은 할 수 없이 그대로 하였다.
위소왕 7년(기원전 289년), 진나라가 대량조(大良造) 백기와 객경(客卿) 사마착을 보내어 위나라를 치고, 크고 작은 성 61개를 취했다.
위소왕 9년(기원전 287년), 진나라 군대가 위나라의 신원(新垣)과 곡양(曲陽) 땅을 차지했다.
위소왕 10년(기원전 286년), 제나라가 송나라를 멸망시키고, 송강왕(宋康王)을 죽였다. 그리고 위나라의 온읍(溫邑)에 매장했다.[3]
위소왕 12년(기원전 284년), 제나라가 송나라를 같이 친 위나라, 조나라, 한나라, 초나라에게 땅을 주지 않자[4] , 연나라는그 틈을 타서 위나라, 한나라, 조나라 즉 삼진(三晉)과 함께 제나라를 쳤다. 이때 연나라 군대가 제나라의 수도 임치에 이르렀다. 같은 해에 위소왕은 진소양왕과 주나라의 도읍인 낙양(洛陽)에서 회맹했다.
위소왕 13년(기원전 283년), 진나라가 위나라의 안성(安城)을 함락시켰다. 그리고 진군은 대량(大梁)에 이르렀다가 물러났다.[5]
위소왕 19년(기원전 277년), 위소왕이 죽고 아들인 위어(魏圉)가 뒤를 이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위안희왕(魏安僖王)이다.
[1] 이것으로 위나라는 신릉군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었다. 그 외에 이름있는 장수는 진비(晉鄙) 뿐이었다.[2] 여담이지만 백기는...[3] 이것을 굳이 쓴 이유는 위나라도 이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이다.[4] 알짜배기 땅을 몽땅 제나라가 가지고, 그 나머지를 분배했다는 말도 있다.[5] 그만큼 위나라가 진나라를 상대하기 힘들 정도로 약해졌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