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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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오대십국시대의 십국 중 하나인 북한의 제4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
2. 생애
유계원은 본래 성이 하(何)씨로, 북한의 초대황제인 유숭의 외손자이며, 어머니는 유민의 딸이었다. 전대 황제였던 유계은의 아버지 설쇠는 아내와 만나는 시간이 없음을 원망하며, 술에 취해 유씨를 찔렀으나 죽이지 못하고 결국 자살하였다. 결국 유씨는 하씨에게 다시 시집을 가서 유계원을 낳았다. 이후 하씨와 유씨가 세상을 떠나고 유계원은 유계은과 함께 유숭의 아들이었던 유승균의 양자로 들어갔다. 당시 유승균이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유숭이 외손자들을 유승균에게 양자로 보낸 것이다.
968년에 유승균이 죽고, 그 해에 유계은이 즉위하였다. 하지만 유계은은 즉위한지 2달도 안 되어 후패영(侯覇榮)에게 살해당했고, 재상 곽무위(郭無爲)에 의해 황제로 옹립되었다. 유계원은 즉위 직후 요나라와의 관계 개선에 주력하였다. 하지만 유계원은 성품이 잔인하였고, 외할아버지인 유민의 아들들을 죽였다.
969년 북송의 태조 조광윤은 북한의 혼란상을 틈타 침공하려고 시도했으나, 유계원은 거란의 원조를 받아 북송의 침공을 격퇴하였다. 조광윤은 976년에 다시 북한을 공격하여 이때의 공격은 북송이 북한을 거의 압도한 상황이었지만, 태조가 죽는 바람에 북송의 군대가 회군할 수 밖에 없었다.
북송의 제2대 황제인 태종 조광의는 북한 정벌군을 다시 편성하여, 979년에 북한에 대한 정벌을 감행했다. 유계원은 다시 요나라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이때는 요나라의 군대도 패배하였다. 결국 유계원은 북송의 군대에 항복하였고, 북한이 멸망하며 오대십국시대도 막을 내렸다.
북한이 멸망한 이후 유계원은 북송 조정에서 팽성군공(彭城郡公)으로 책봉되었고 특진, 검교태사, 우위상장군의 관직을 받았다. 태평흥국 6년(981년)에는 개부의동삼사가 더해졌고, 옹희 3년(986년)에는 보강군 절도사가 되었다. 유계원은 992년[1] 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 중서령으로 추증되고 팽성군왕으로 추봉되었다.
3. 둘러보기
[1] 음력으로 순화 2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