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1. 대한민국의 시인,국어학자
1905∼?
본관은 강릉. 평안북도 의주 출생이다. 국어학자 유창돈의 형이기도 하다. 그의 업적은 향가와 계림유사 해독을 통한 고대어연구, 속담연구, <용비어천가> 주해, 국어의 형성에 관한 연구 등 네 분야로 간추릴 수 있다.
선천 신성중학교와 1929년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거쳐 1933~1936년 일본 릿쿄대학을 다녔다.
2. 대한민국의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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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시사평론가. 1960년 7월 20일생 (64세). 시사평론가가 되기 전에는 진보적 사회학자였고 90년대 민주당 이부영의원의 보좌관이었다.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대학 재학 시절 운동권이었고 학보사 기자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본인 말로는 '''"자기 자신은 원래 방송보다는 글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정치 성향은 비문재인, 친안철수이다. 이는 자신이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인데, 지난 2017년 제19대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공개 지지 선언했던 글에서 아예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나는 '비문'이다."라고 밝혔다.#
친안철수 성향이긴 하지만, 자유한국당 및 우파 세력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이다. 방송 활동을 활발히 하던 2000년대 초중반에는 그래도 중립적인 포지션을 취할려고 노력했지만, 인터넷으로 활동무대를 옮기게 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대에는 노골적으로 보수정권을 비판하면서 정권교체를 부르짖었다. 경제분야에 있어서는 뚜렷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2011년 한미 FTA가 논란이 되었을때도, 이게 어느 쪽이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의견을 계속 내보였다. 국내정치, 인권, 언론의 자유 등에서는 명확하게 리버럴이지만 경제는 아예 관심이 없거나 시장친화, 기업친화적 일수도. 실제로 시사평론에서도 경제나 노동, 소비자 등의 문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전문 시사평론가, 전업 방송인으로서는 1세대에 해당하는 인물로 2000년대 들어서 대단히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2009년을 기점으로 방송계에서 소리 소문없이 사라졌다. 당시 촛불집회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높으신 분에게 찍혔다는 썰이 돌았지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시 김미화가 KBS의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하자 유창선이 나도 비슷하게 짤렸다면서 거들었지만, 시간만 끌다가 논란 자체가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진중권이 나도 마찬가지라면서 나서기도 했지만, 여기에 언급된 사람들 중 실제 블랙리스트 문서로 밝혀진 김미화 외에 블랙리스트로 증명된 사람은 없다. [1]
2009년부터 아프리카TV에서 유창선의 시사난타라는 개인방송을 시작하였다. 2012년에는아프리카TV BJ대상에서 시사부문 최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많은 시청자를 끌어모았으나, 개인사정인지 열정이 식은건지, 하다 안하다 하면서 방송이 지지부진해졌다. 중간에 몇달씩 방송을 쉬기도. 2011년에는 MBC에서 선보인 최초의 스마트폰 방송 손바닥TV에 고정출연하였다. 탐사보도로 유명한 이상호 기자의 손바닥뉴스에 게스트로 나와서 간단한 토크를 하는 것이었는데, 방송이 조금 뜰려는 찰나에 노조 파업으로 계속 질질 미루어지다가 어느 순간 프로그램이 사라지면서 자동 하차. 2015년 들어서 다시금 아프리카TV에서 주 1회 일요일 9시마다 꾸준히 방송을 하고 있다. 이때문인지 2015년 12월 22일 아프리카 시상식에서 '공신 강성태', '풍월량'와 함께 운영자가 뽑은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트위터는 사람들과 소통한다기 보다는 자신의 일정과 책을 홍보하는 창구로만 활용한다. 유창선 본인이 아프리카 방송에서 '140자에 맞춰서 글을 쓴다는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정청래 의원과 친분이 있어서, 인터넷 방송에서 자주 연결하기도 했다. 2018년 6월부터 미디어협동조합 국민라디오의 평일 오전 시사 프로그램 유창선의 유창한 시선의 진행을 맡고 있다.
2019년 뇌종양 진단을 받고 대수술을 받았으며, 다행히 SNS를 할 정도로 상태가 좋아진 듯.
홈페이지(유창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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