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현의 러브레터
1. 소개
2002년 4월 6일부터 2008년 11월 14일까지 KBS2에서 방송되었던 심야 음악 프로그램으로 이소라의 프로포즈의 후속 프로그램이다. 제목은 일본 영화 러브레터에서 따왔으며 후속 프로그램은 이하나의 페퍼민트와 유희열의 스케치북.
2. 방송 내용
2.1. 방송 초기
이소라의 프로포즈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음악 프로그램이었지만, 내면에는 잡음이 많았다. 특히 MC인 이소라가 자신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가수들(특히 립싱크를 자주 하는 가수들) 이 나오면 말도 없이 촬영을 펑크내고 잠적하는 일이 계속 벌어졌고, 이로 인해 제대로 녹화를 진행하기가 힘들어졌다. 결정적인 계기로 2002년 1월 12일 god가 특집으로 출연했을 때 이소라가 리허설, 메이크업까지 다 마치고 녹화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촬영을 펑크내고 방송국을 이탈함으로써 KBS는 더 이상 이소라에게 진행을 맡기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고, 새 MC와 새 형태의 음악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뒤 프로포즈는 2개월여간 계속 방영되다가 2002년 3월 23일 이소라가 방송 중 하차 선언을 하면서 프로포즈는 그렇게 3월 30일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프로포즈가 종영되자 KBS는 당시 뜨고 있던 락보컬 윤도현을 MC로 섭외, 2002년 4월 6일부터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시작하면서 심야 음악방송의 대를 이었다.
당시 윤도현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해서 프로그램에 섭외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2002년은 알다시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말기였고, 캐스팅 과정에서는 어떠한 정치성향이나 개입도 들어가지 않았다.
초창기 2002~2003년까지는 '''이소라의 프로포즈 연장판'''과도 마찬가지였다. 상품 소개도 똑같았고, 세트 분위기나 코너, 그리고 크리스마스 특집 구성도 비슷했다.[3]
200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이소라의 프로포즈의 기존 틀에서 탈피해서 여러 코너와 세트 분위기를 바꾸었고 주5일제 실시와 맞물려서 방송요일을 옮겼다.
보통 가수나 그룹 3, 4팀을 초청해서 음악을 듣고 윤도현과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토크가 진행되었으며 중간중간 코너들이 들어갔다. SD로 방영되던 시절에는 당시 신인이던 김제동이 진행하던 '리플해주세요', 특별한 초대, 성우 김상현의 마음속의 멜로디, 삐딱이 김C의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등이 있었다.
2.2. HD 방송 시절
방송 후반기인 2007년 9월 KBS홀에 본격적으로 HD 장비가 설치되면서, 그 해 9월 7일 263회부터 HD 방송 체제로 들어갔다. 이 시기에도 SD 방송을 하던 때와 크게 진행 방식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다만 2008년 6월부터 종영 때까지 코너가 없어진 것이 특징이었다.
3. 평가
1990년대 초반과 후반에는 각각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와 이문세 쇼 - 이소라의 프로포즈가, 2010년대에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있다면 2000년대에는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심야 음악 프로의 대를 잘 이었으며, 또한 다른 음악 프로그램과 달리 알려지지 않은 가수들이나 인디 밴드등을 자주 초청해 그들은 소개하는 시간을 마련함으로써 실력이 있는 가수들을 발굴해내는 기회를 마련했다.
또한 아이유가 신인 시절에 나왔고 황치열도 2007년도에 나왔다. 시청률은 비록 높지는 않았지만 심야 시간대 인걸 감안하면 생각보다 잘 나오기 때문에 광고도 잘 팔려서[4] VJ특공대, 부부클리닉 사랑과전쟁과 더불어 금요일 밤 KBS 2TV의 광고판매를 책임지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래서 부부클리닉이 끝나고 나서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나올 때까지 광고를 최소 15분 가까이 봐야 윤도현의 러브레터 본방을 사수할수 있는 수준.
그리고 MC 윤도현의 가창력을 기반으로 게스트와 만들어낸 콜라보들 또한 아직도 회자되는 무대가 많을 정도로 큰 호평을 받았다. 사전 준비된 무대 외에도 즉흥으로 이루어지는 무대도 많아 신선했다는 평가.
4. 사건 및 사고
4.1. 윤도현, 김제동 강제 하차 논란
2008년 11월 14일,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종영되면서 김제동과 함께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것에 대해 "'''혹시 정부에 압력을 받은 것 아니냐?"'''라는 의혹에 시달렸다. 실제로 윤도현의 러브레터 마지막회에서 그는 YB 멤버들과 함께 It Burns의 한국어 버전인 '빨간 숲속'을 불렀는데, 가사가 사회 비판적인 내용이라 뭔가 압력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후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실존했는 사실이 알려져 이들의 하차도 압력으로 인한 하차로 기정사실화 되었다.
5. 코너
윤도현의 러브레터 중간중간에 들어가는 코너다.
'''김제동의 리플해주세요(2002. 11. 23~ 2005. 04. 29)''' - 가장 인기 많았던 코너. 그리고 대구광역시에서 구장 MC를 보고 있던 김제동을 3사에서 활약하는 인기 방송인으로 만들어준 코너다. 매주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몇 건 뽑아서 김제동이 거기에 답을 달아주는 형식의 코너였는데, 당시 대구에서 올라온지 얼마 안 된 김제동의 찰진 사투리와 입담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그 후 김제동은 3사 방송사의 러브콜을 받고 해피투게더, X맨을 찾아라, 야심만만 등에 출연하면서 여러 방송사에서 활약하는 인기 방송인이 되었다.
특별한 초대(2005. 07. 01~ 2006. 03. 31) - 매주 한 분야의 인기인들을 초대하는 코너로 가장 짧았다.
성우 김상현의 마음속의 멜로디(2006. 03. 03~ 2008. 11. 14): 리플해주세요 다음으로 인기가 많았던 코너이자 장수한 코너. 윤도현의 러브레터 마지막회까지 진행되었다. 시청자 게시판의 사연을 성우 김상현이 읽고 그 사연과 어울리는 음악을 소개해주는 코너였다.
6. 여담
- 윤도현은 1회부터 종영할 때가지 일종의 유행어로 "여러분은 지금 매끄러운 진행을 자랑하는 윤도현의 러브레터와 함께하고 계십니다"라는 멘션을 밀었다. 물론 그의 진행이 매끄럽지 못한 것은 자타공인의 사실이다...
[1] 다만 심야프로그램 특성상 광고를 죄다 프로그램 앞부분에 편성했기 때문에 실제 방송시작 시간은 12시 반이었다.[2] 여타 프로그램에 비해 HD 방송 송출이 늦었던 이유는 당시 녹화를 했던 KBS홀이 2007년 9월이 다 되어서야 HD 장비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이는 2000년 KBS홀을 지을 때 HD 방송의 계획이 없어 HD 장비를 설치하지 않은 탓이다.[3] 2002 크리스마스 특집은 아예 이소라의 프로포즈 2000 크리스마스 특집과 구성이 똑같았다.[4] 원래 2000년대 당시에도 평일 심야시간대 KBS2, MBC, SBS 광고는 잘 팔렸다. 당시 한국방송공사에서 심야시간대 광고를 묶어파는 방식을 체택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