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C
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 록밴드 '뜨거운 감자'에서 보컬과 기타를 맡았다. 김C라는 예명은 다른 각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 음악 활동을 하면서 윤도현이 본명인 김대원의 성이 김(金)이라 자신을 자연스레 김씨라고 부르던 것[2] 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씨는 김씨 성을 가진 불특정 다수를 의미하는 중의적 표현이라 자연스레 김C가 되었다.
2. 상세
강원도 춘천시에서 태어나 자랐다. 학창 시절에는 춘천고등학교에서 야구선수로 활동했으나[3] 체육특기생 대학 진학에 실패한 뒤[4] 방황하다가 '''강산에'''에게 음악을 배워 인생의 진로를 바꾸게 된다. 이후 1997년, 윤도현의 소개로 고범준과 함께 2인조 록밴드 뜨거운 감자를 2000년에 결성하여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춘천시에서 활동하던 작가 이외수를 닮았다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도 가까운 사이로 서로 연락하고 지낸다고 한다.[5]
2003년부터는 라디오 DJ로 활동했고, 2004년부터는 영화배우 활동도 약간 했다. 당시에 한창 뜨던 윤도현과 함께 쟁반노래방을 나가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같이 자리했던 김제동과도 친한 사이라 그야말로 물만난 고기처럼 놀았다
2006년 4월 후반(22일)부터 KBS 위기탈출 넘버원 고정 패널로 출연하기 시작하여 2006년 11월 초까지 활동했다.[6] 38회[7] 부터 첫 출연했는데 첫 출연치고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38회의 오구동성 공공의 답도 대부분 김C가 추측해서 정답을 맞추었다. 방청객들의 응원(김C! 김C! 김C! 김C!)은 덤...
2007년부터 KBS 1박 2일에 출연하기 시작하여 2010년 하차하기 전까지 약 3년 동안 1박 2일의 최전성기를 이끈다. 처음에는 이미지도 있고 본인도 말을 잘 하지 않는 등의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1박 2일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점차 1박 2일 내에서 달인, 브레인 등으로 대표되는 그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잡아가며 1박 2일이 최전성기를 누리는데 한 축이 된다. 대표적으로 동강 편에서의 복불복 김밥 먹기, 올림픽 특집에서의 배드민턴 백패스 등. 비록 예능감이 다른 다섯 명의 멤버에 비해 눈에 잘 나타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김C가 1박 2일 내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이었음은 부정하기 힘들다. 김C의 전임자였던 지상렬과 함께 했던 1박 2일의 경우, 6명 모두 중구난방인 모습이 강했다. 하지만 김C가 등장한 이후, 강호동을 중심으로 멤버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고 6명 모두 안정화가 되면서 사실상 최전성기를 열게 된다.[8][9] 거기에 김C가 하차하는 당시 1박 2일에서 강호동은 김C에게 스스로 정말 많은 의지를 했었다고 말할 정도. 또한 강호동은 다른 멤버들에게는 전부 편하게 막 대하고 했지만, 유일하게 김C에게만은 '김선생'이라는 호칭을 쓰며 친절하고 조심스럽게 대해주면서 예우해 주었다.[10] 김C가 하차하고 MC몽이 얼마 후 하차하면서 후임자로 엄태웅이 들어왔는데, 엄태웅 역시 예능에 적응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지만, 김C의 역할을 잘 수행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1박 2일이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한 것만 봐도 김C 특유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 이후 1박 2일은 2013년 겨울에야 시즌3로 재시작하면서 완벽하게 부활하게 된다.
2009년에는 야구부 경력을 살려 천하무적 야구단의 야구 감독도 맡는 등 1박 2일 외에도 다른 방송 활동도 많이 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그러나 40세가 된 2010년, 음악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1박 2일을 비롯한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뒤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11] 그 뒤 2012년에 이야기쇼 두드림의 진행자로 방송 활동에 복귀하였다.
외외로 꽤 잘 사는 집안이라고 한다. 학창시절에는 용돈도 상당히 두둑하게 받았고 쓰고 싶을 때마다 늘 쓰면서 살았는데, 성인이 되자마자 딱 끊겨서 한동안 힘들었다고 한다.[12] 또한 아버지가 홀로 김C와 그의 누나를 키웠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야구선수 출신임에도 대단한 축빠이기도 해서 2006년부터 2007년까지는 XTM에서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중계 해설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때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월드컵 참가국들의 전력을 분석하는 특집 코너를 진행하기도 했다. 호반의 도시 춘천 출신답게 동계스포츠에도 꽤나 일가견이 있어서 해피투게더 출연 당시에 학창시절엔 스케이트 선수로도 활동해 전국 빙상 선수권 대회에 강원도 대표로 출전한 적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2012년 이후로는 방송에 직접 출연하기보다 내레이션을 주로 담당하였다.
2013년에는 무한도전 가요제 - 자유로 가요제에 출연하여 팀 이름 병살[13] 로 정준하와 팀을 이루었다. 못친소에도 나온 적은 있지만, 1박 2일 이후 예능 프로그램에는 오랫동안 잘 출연하지 않아서인지 굉장히 어색한 표정과 몸짓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조정치와 같이 듀오로 앉아있기만 해도 미친 존재감을 선보였다.
이후 김C는 후술할 이혼 사건으로 인해 상당한 타격을 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김C의 사생활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이야기를 하여 음악에 싫증이 생길 정도로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다고 이후 인터뷰했다. 이 때문인지 방송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는데, 방송국에서 김C를 못 나오게 막았기 때문. 덕분에 나중에는 먼저 연락이 오면 아예 "상부에 내가 나와도 되는지 물어보라"고 먼저 되묻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그렇게 이야기해서 상부에 확인을 하면 돌아오는 답변은 "죄송합니다. 안 될 것 같습니다."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우리나라가 혼란스러웠을 때, 방송국 사람들이 방송장악에 맞서 싸울 때는 또 내게 지지하는 인터뷰를 해달라고 부르더라. 당연히 했다. 하지만 본인들이 힘들 때는 나의 지지를 원하면서 내가 힘들었을 때는 출연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여하튼 강제적인 공백기 동안 음악에 싫증이 난 김C는 모든 걸 내려놓고 새로운 악기를 만지기 시작했고, 독일에서 지내며 전자음악에 관심이 생겨 공부를 상당히 많이 했다고 한다. 디제잉을 하며 사람들이 자신의 가정사나 사생활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음악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좋았다고도 밝혔다.
현재는 취미생활로 요리를 하며 살고 있는 듯 하다.
김C의 캐릭터성 등 기타 이야깃거리는 '뜨거운 감자' 문서에 자세히 나와 있다.
1박 2일 제주 국도여행편에서 언급된 바로 과일 귤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한다.
3. 사건사고/논란
3.1. 불륜(간통) 논란
2014년 8월 4일에 협의이혼을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2010년 10월 경 베를린으로 오랫동안 떠나 있으면서부터 불화설이 있어왔고, 그러다가 2013년 이혼하여 2014년 8월 당시에는 작업장 근처에서 혼자 살고 있었으며 두 자녀는 전처가 돌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혼 소식 하루만에 결혼을 전제로 스타일리스트와 열애를 하고 있다는 기사가 터졌다. 사실 이혼을 한 건 2013년이고 그 전부터 불화로 인한 합의이혼 절차에 들어선 상태였지만, 기사의 타이밍이 '이혼하자마자 다른 여자를 만나는거냐, 이미 불륜이었던거냐.'는 반응이 나오기 딱 좋았다. 게다가 그동안 김C는 방송에서 가정적인 이미지로 많이 비춰졌었고, 특히 김C가 무명 때 돈 한 푼 못 벌던 시절부터 김C를 위해 헌신해 온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이미지 때문에 비난이 한층 더 심했다. 김C의 아내는 김C가 무명시절부터 같이 고생했던 사람이었고, 그는 결혼 이후로도 7년 동안이나 별다른 수입이 없어서 아내가 회사를 다니며 가장으로서 역할을 해냈다고 한다. 김C 열애 인정, 사생활이지만 도덕적 비난 피할 수 없는 이유 김C 본인도 야심만만2에서 무명 시절의 피눈물 나는 고생 이야기를 하며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었다.
게다가 뜨거운 감자의 <시소>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는 불륜을 풋풋하면서도 절절하게 그린 내용인데, 배두나가 분한 여주의 직업이 스타일리스트인 김C의 애인 직업과 동일하다며 본인 이야기를 각색한 작품[14] 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았다. 전처와의 큰 불화설이 있었던 2010년에 나온 곡이라 더더욱.
당시 김C와 소속사 모두 개인 사생활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고, 김C의 전 아내 쪽에서도 별다른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일이 그렇듯 루머는 확대재생산 되었고 사실상 대중들에게 비호감으로 찍히면서 방송 활동에서 반강제적인 공백기를 맞이해야 했다. 2018년에 뜨거운 감자 이름으로 '중력의 여자'란 디지털 싱글을 발표했고, 이후 허핑턴 포스트와 한 인터뷰에서 '나의 이혼이 당신의 어디를 아프게 했냐'며 그간의 심정을 토로했다.
여담으로, MC몽이 과거 1박 2일 전라남도 담양군 편에서 김C에게 "형은 (김C) 바람 좀 피지 말아요 좀. 압구정동에서 매일 다른 여자와 술 마신다는 제보가~!"라고 말했었다. 이 외에도, 2007년 해운대 편에서는 (김종민 잠정 하차 이후) 여자 멤버가 들어와야 된다고 말을 하거나, 2009년 나주 편에서는 은지원이 국악고 애들이 편지 보냈다고 말하자, 김C만이 바로 관심을 보이며 옆에 붙는다든지 영광편에서는 이수근은 난 여자가 있는데~' 라고 하거나 은지원이 '(리액션은) 본인이 여자에게 하는만큼 해라' 라고 말하는 것들을 보면 당시에도 여자를 밝히는 듯한 모습은 꽤 있었다.
4. 방송 활동
- 위기탈출 넘버원 (2006) : 38회[15] 부터 64회[16] 까지 고정 게스트로 출연.
- 1박 2일 (2007.10 ~ 2010.6)
- 천하무적 야구단 (2009)
- 이야기쇼 두드림 (2012)
- 심장이 뛴다[17] (2013)
- 뮤직쇼 (2013 ~ 2014)
- 여행생활자 집시맨 (2016 ~ 2017) : 내레이션도 하고 끝부분에서는 직접 출연했다.
- 지진 흔들리는 한반도 (2013)
5. 광고
- 플래너스 마이엠넷 (2004)
- 델몬트 망고 • 포시즌 • 화이트 구아바 (2004)
여담으로, '1박 2일 129회'때 머슴 & 야외취침 복불복으로 제기차기를 앞두고 긴장하는 김C에게 이수근은 '구아바' 때를 생각하라고 조언해준다. 덕분인지 김C는 혼자서 29개를 찬다. 엠씨몽, 이수근보다 더 많이 찬 기록이다.
- 후지FDI (2004)
- 남양유업 불가리스 프라임 (2004)
- (주)시안 에이스샤시 (2004)
- 롯데제과 금동자 (2004)
- 현대금속 락앤롤 (2004)
- 보건복지부 건전 음주문화 캠페인 (2006)
- 금호아시아나 공익캠페인 (2008)
-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2009)
- 월드호텔&투어스 호텔패스닷컴 (2009)
- 두산 사람이 미래다 캠페인 (2010)
- 오리온 마켓오 (2010)
- SK커뮤니케이션즈 C로그 (2010)
- 질병관리본부 (2013)
- 벼룩시장 구인구직 (2013)
6. 홍보대사
[1] 프로필상.[2] 김C는 윤도현에게 윤씨라 호명.[3] 이 때의 인연으로 프로 선수 중에서 동기생인 이숭용과 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4] 야구 불모지 소재의 학교였던 탓에 춘천고등학교 야구부의 실력은 전국에서도 주로 하위권에 꼽히던 수준이었다. 전국 무대에서 8강 이상을 나가야 대학 진학의 길이 열리는 국내 학원 야구의 시스템을 감안하면 춘천고 출신으로 체육특기생 진학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다. 참고로, 춘천고 야구부는 2007년을 끝으로 해체되었다.[5] 그로 인해 2008년경 1박2일 6인체제 초창기에 강원 화천편을 감성마을에서 촬영하기도 했다.[6] 위기탈출 넘버원 역대 고정 게스트 기준으로 조형기, 김현철 다음으로 최장 기간 활동했다.[7] 2006년 4월 22일 방송분[8] 방송에서 김C의 개인적인 코멘트가 나오는 경우는 적지만 '수도를 모르는 것이 어떻게 무식하냐?'는 의견에 김C는 그건 무식이 아니라 섭섭한 것이라고 하거나, 강호동이 MC몽의 서커스를 듣고 핀잔을 주면 바로 가요계의 펠레라는 식으로 코멘트를 남겼다. MC몽도 챙기고, 강호동의 방송 분량도 손수 만들어 주는 걸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9] 의외로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실이 있는데, 이승기의 '허당' 캐릭터를 잡아준 게 바로 김C다.[10] 다만 이 부분은 다른 멤버들과 달리 김C가 강호동과 한 살밖에 차이가 안 나기 때문인 탓도 크다.[11] 글만 보면 독일로 가서 음악을 공부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서 풀밭에 누워있기만 했다고 한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문득 하고 싶은 것이 떠오르면 그게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고.[12] 본인이 진행하던 라디오 김c스타일에서 밝히길 음악을 한창 시작하던 시절에 기차역 옆에 컨테이너 같은데서 살았다고한다... 이게 낭만적이어 보이겠지만 기차가 지나갈때마다 시끄럽고 바닥이 울려대서 너무 곤욕스러웠다고[13] 원래는 더블플레이였지만, 뜻은 '병든자와 살찐자'라는 뜻의 병살로 바꾼다.[14] 시소의 엔딩 크레딧에 'STORY BY KIM C'라고 기재 되어있다.[15] 2006년 4월 22일[16] 2006년 11월 4일[17] 내레이션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