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우옌꽝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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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트남의 남자축구선수.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 부임한 이후, 한국에도 잘 알려진 선수 중 한 명이다. 이름의 한문 독음은 완광해(阮光海)다.
2. 클럽 경력
하노이에서 태어나 하노이 FC 소속 유스 클럽에서 쭉 뛰었으나, 프로 데뷔는 사이공 FC에서 했다. 사이공에서 1년 간 뛰면서 13경기에 출전해 4골을 넣었다. 2016년에 자신이 유스 시절 뛰었던 하노이로 되돌아와 현재까지 하노이 소속으로 활약 중이다.
2018시즌은 24경기 9골 9도움 기록. 시즌후 V리그 베스트 일레븐, 베트남 최우수 선수상인 골든볼을 수상했다.
현재 베트남에서 가까운 시일내 해외리그 이적이 유력한 선수중 한명으로 일본 J리그, 카타르 스타스 리그, 타이 리그1, 호주 A-리그, 중국 슈퍼 리그, 한국 K리그등 아시아내 여러 리그에서 노리고 있다. 실제로 K리그1의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꽁푸엉 영입 전 꽝하이를 1순위로 두고 제의했으나, 개인 협상 과정에서 꽝하이가 인천에서의 정기적 출전이 어려울것 같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2월 1일 라 리가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10일 입단 테스트를 받는다는 뉴스가 떴지만 꽝하이 본인이 "알라베스 입단 테스트는 찌라시다. 나도 집에서 가족이 물어보길래 알았다"며 부정했다.
2019년 초에는 부진을 보였다. 클럽이나 국대, 연령별 대표 들락날락 거리며 잔부상에 시달려도 하노이나 대표팀이나 꽝하이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 쉴 수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것도 7월 말부터는 회복세를 보였다.
해외이적루머는 그 뒤에도 끊이지 않고 나왔다. 꽝하이 본인은 하노이를 AFC컵 우승시키고 생각해 보겠다고 밝혔지만, 일단 리그 우승은 이뤘는데 AFC컵 4강에서 북한 4.25한테 탈락[2] 에 하노이 FC가 AFC 규정위반으로 인한 라이선스 미발급으로 2020 AFC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이 박탈되면서 이적 가능성이 높아졌다.
6월까지는 부진했지만 7월부터 그 부진을 다 만회하며 리그 우승에 공헌해서 2년 연속 골든볼을 수상했다.
3. 국가대표 경력
2011년 14세에 U17 대표팀 데뷔를 시작으로 연령별 대표를 거쳐 2017년 6월 13일 요르단과의 경기에서 성인 대표로 데뷔한다. 2018년 AFC U23 챔피언쉽에서 5골을 넣으며[3] 베트남의 준우승을 이끌었고,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하여 조별리그 파키스탄전 선제골, 일본전에선 결승골을 넣으며 팀의 4강행을 이끌었다.[4] 2018 AFF 스즈키컵에서도 3골을 넣으며 베트남의 스즈키컵 우승에 기여했다.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조별리그 최종전 예멘과의 경기에서 엄청난 프리킥골을 넣으며 베트남이 2-0으로 승리해 16강 와일드카드 진출에 기여했다.8강 일본전에서는 전반 마지막에 일본 수비의 실수로 나온 1대1 찬스를 날렸다.
4. 플레이스타일
왼발잡이로 발목힘이 좋아 킥력이 상당히 날카로워 득점, 도움에 모두 능하다. 작은 체구임에도 수비가담이나 활동량, 체력이 상당히 좋고 동남아시아권 선수 치고는 괜찮은 피지컬 경합능력을 갖춰서 전방압박 수행 능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압박과 역습을 강조하는 박항서 감독 부임 이후 꾸준히 공격진의 한 축으로 출전하고 있다. 베트남 축구팬들은 꽝하이를 박항서 전술의 핵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베트남 대표팀에서는 주로 오른쪽 윙포워드로 출전하며, 간혹 중앙미드필더로도 출전한다.[5]
윙어 플레이시에는 중앙으로 침투하는 인사이드 포워드처럼 움직이며, 직접 슛도 시도하지만 주로 번뜩이는 패스를 찔러주는 찬스메이킹에 강점을 보인다. 다만 윙어치고 주력이 좋지 않은 편이라 스피드를 이용한 측면돌파는 자주 시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대표팀에서의 역할을 보면 빌드업을 전담하는 경우가 많다. 현 베트남 대표팀은 라인을 적절히 내리고 수비벽을 두껍게 치다가 공격 시에는 빌드업을 최대한 간결하게 하여 상대편의 넓어지는 뒷공간을 몇번의 터치만으로 골을 만드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이 전술에서 수비 시에는 많은 활동량으로 압박에 참여하고, 인터셉트한 직후 많이 거치지 않는 패스작업 중에 키패스를 찔러주는 꽝하이가 핵심이다.
단점은 수비 가담의 적극성에 비해 수비력 자체는 미흡한 부분이 많다. 특히 앞서 서술한 좋지 않은 주력으로 인해 발이 빠른 상대 선수를 놓치거나 위치 선정 미스의 빈도가 높다. 그리고 왼발에 비해 오른발은 잘 못쓰는 편이라 오른발을 써야할 상황에서도 무리하게 왼발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5. 혹사
베트남 남자 축구계의 신동으로 10대부터 각종 대회에 차출되고 있다.
2014년에 17세의 나이로 U-19 동남아 챔피언십, AFC U-19 챔피언십에 들어갔고, 2015년에는 사이공 FC 임대로 2부 리그서 성인 무대 데뷔, 동시에 유스 리그와 SEA GAMES 남자 축구, U-19 동남아 챔피언십 출전, 2016년 하노이에 복귀하자마자 바로 주전 멤버로 뛰면서 동시에 AFC U-19 챔피언십과 U-19 동남아 챔피언십에 출전했다.
2017년부터는 하노이로 복귀 후 26경기에 출전(5골)[6] 했고, 여기에 연령별 국대로 5월 U-20 월드컵 코리아, 1달뒤 6월 시리아전 국대 데뷔, 8월 SEA GAMES 남자 축구, AFC U-23 챔피언십 예선, U23 태국 M150 컵에 출전했다.
2018년에는 1월 AFC U-23 챔피언십, 리그 출전, 3월 A매치 중동 원정, 다시 리그 출전, 7월 U-23 친선 대회로 치뤄진 비나폰 컵,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리그 출전, 11월 2018년 AFF 스즈키 컵에 출전했다.
2019년에는 아시안컵, 리그 출전, 3월 U-23 출전, 리그, 6월 킹스컵 출전, 리그, 9월 1경기 국대, 1경기 U-23, 리그, 10월 국대, 11월 국대에 월말부터 SEA GAMES 출전했으며, 곧바로 한국 전지훈련에 참가했다.
'''2017년부터 리그에 U-23, 성인 국대까지 다 뛰었고, 제대로된 휴식을 취한적도 없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엄청난 혹사를 기록했던 이동국에 맞먹는 수준이다.
2020년도 빡빡하다. 1월 AFC U-23 챔피언십에, 3월부터 월드컵 2차 예선 차출이 예정되어 있고, 11월에는 스즈키컵도 있다.
하지만 베트남에선 대체 카드가 전무한데다, 박항서식 축구 전반에 대한 이해도도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뺄 수조차 없다. 이것 때문에라도 베트남의 축구 팬들이 꽝하이의 해외 진출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해외로 나가면 일정 조율이 어려워지거나 해외 리그 소속팀 출전기회가 떨어지니그만큼 더 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19 판데믹 사태로 리그가 중단됨에 따라 쉴 수 있게 되었다.
6. 기타
LG 전자 베트남 광고모델이다. 2018년 U-23 대회 이후 LG와 계약했다. 이거 말고도 여러 광고를 찍는등 현 베트남 광고계의 블루칩으로 꼽힌다. 2019년 7월까지 부진할때는 지나친 광고 촬영때문에 까임요소를 제공했다.
168cm에서 성장이 멈췄다는데 그 원인을 어렸을때 잘 못먹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17세부터 사귄 연예인 여자친구가 있다.
여동생이 있는데 꽝하이보다 먼저 결혼했다.
동명이인 1985년생 응우옌꽝하이가 있다. 그 역시 데뷔시절부터 천재로 불리며 베트남 축구의 1차 전성기인 2000년대 후반을 풍미한 선수였다. 하지만 2010년대부터 부진, 향수병, 부상등으로 급격히 추락하면서 2016년에 은퇴했다. 현재는 고향에서 양계장을 하면서 평범한 날을 보내고 있으며 이름마저도 12살 어린 1997년생 꽝하이에게 묻혀 거의 잊혀진 선수가 되었다.
2020년 초반까지는 박항서호의 핵심이자 여러 일화에서 나오는 프로정신들이 알음알음 알려지며 한국팬들에게서도 꽤 호감가는 선수였지만, 이후 일부 국뽕 맞은 개념없는 FC 베트남들의 "기술은 손흥민보다 꽝하이가 우위"라는 식의 글과[7] 한국내 유튜브 렉카들의 악의적 번역, 또한 코로나바이러스 판데믹 당시의 국민감정 악화등으로 비호감으로 떨어지면서 선배 꽁프엉과 똑같은 한국내에서 경멸적 존재가 되고말았다.
2020년 12월, 구단주의 발표에 따르면 K리그와 J리그의 여러 구단에서 오퍼가 왔다고 밝혔다
[1] 쯔놈[2] 두경기 다 무승부였지만 종합스코어 2-2로 4.25가 원정골 우선원칙에 따라 결승행에 올랐다.[3] 이 중에는 호주전 결승골, 카타르전 멀티골도 있다.[4] 특히 일본전 결승골은 역사상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베트남이 일본을 이긴 첫 경기가 되어 의미가 더욱 컸다.[5] 본래 이 자리에서 고정적으로 출전하던 르엉쑤언쯔엉이 시야나 볼 배급 면에서는 꽝하이보다 한 수 위지만, 쯔엉은 수비 가담이나 활동량에서 약점이 있어 비슷한 수준 내지 강팀과의 경기에선 버로우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최근엔 꽝하이가 중미로도 많이 기용되고 있다.[6] 이 시즌은 1월에 개막했다[7] 베트남도 한국과 비슷한 환경이라 FC 코리아같은 부류가 기승을 부린다. 이들도 마찬가지로 베트남 정통 축구팬들에 나라 망신 그만 시키라고 수없이 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