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키 사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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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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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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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시절.
'''이름'''
이리키 사토시 (入来 智)
'''생년월일'''
1967년 6월 3일 (57세)
'''국적'''
일본
'''출신지'''
미야자키현 미야코노죠시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9년 드래프트 6위 긴테쓰 버팔로즈 지명
'''소속팀'''
긴테쓰 버팔로즈 (1990 ~ 1996)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96)
긴테쓰 버팔로즈 (1997~1998)
요미우리 자이언츠 (1999~2000)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1~2002)
두산 베어스 (2003)
라뉴 베어스 (2004)
1. 개요
2. 선수 생활
2.1. NPB 시절
2.2. KBO 시절
2.3. CPBL 시절
3. 연도별 성적
4. 기타
5. 관련 문서


1. 개요


일본의 前 프로야구 선수. 일본 프로야구, 한국 프로야구, 대만 프로야구 3개 리그에서 활동했던 저니맨이며 KBO 리그 역사상 첫 일본인 선수다.

2. 선수 생활



2.1. NPB 시절


고교 졸업 후 사회인야구팀에서 뛰다가 1989년 긴테쓰 버팔로즈에 6위 지명을 받고 프로야구 선수가 된다. 입단 후 5년간 불펜투수 겸 임시 선발로 뛰다가 1996시즌 중반에 포수 요시모토 료와 맞트레이드되어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이적했다. 히로시마에서는 딱히 기회를 받지 못하며 6경기 등판에 그쳤고, 시즌 후 다시 요시모토와 트레이드되어 긴테쓰로 돌아가게 된다.
1999년 동생인 이리키 유사쿠[1]가 뛰고 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면서 요미우리 구단 역사상 최초의 형제 선수로 기록되지만, 1999년에는 22경기 출장에 그쳤고 2000년에는 아예 1군에 올라오지 못하면서 시즌 후 방출되었다. 그리고 2001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입단했는데, 여기서 이리키는 10승 3패 평균자책점 2.85의 성적을 거뒀다. 마찬가지로 그 해 13승을 거두면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동생 유사쿠와 함께 올스타전에도 출장했고, 센트럴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맛보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2년에는 1승 3패 평균자책점 6.66으로 크게 부진했고, 결국 시즌 후 방출 통보를 받았다.

2.2. KBO 시절


2003 시즌을 앞두고 이리키는 두산 베어스와 계약을 맺으며 (재일교포를 제외한)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일본인 선수로 등록된다. 김인식 감독은 진필중KIA 타이거즈로 이적하면서 비게 된 마무리 자리를 이리키에게 맡길 계획이었으나 이리키는 마무리 자리에서 썩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김인식 감독은 마무리 투수를 구자운으로 바꾸는 대신 이리키를 선발 투수로 전환시킨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보직 변경이었으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리키는 선발 전환 후 리그 최다인 5번의 완투를 기록하는 등 이닝이터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즌 중반 합류한 마크 키퍼와 함께 선발진을 이끌었다. 시즌 성적은 39경기(5완투 1완봉) 7승 11패 5세이브 평균자책점 3.74. 다만 재계약은 하지 못하면서 한국 무대를 떠나게 된다. 승운이 좀 없었던 것을 빼면 훌륭한 성적이었지만, 이 시절 선수를 평가하는 기준은 투승타타였던지라 10승을 못 거둔 것이 컸다.
굉장히 공격적인 투구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2.3. CPBL 시절


2004년 이리키는 대만프로야구 팀 라뉴 베어스(現 라쿠텐 몽키스)와 계약을 맺었다. 11경기 4승 6패 평균자책점 3.39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시즌 중에 퇴출됐고, 시즌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3. 연도별 성적


<color=#373a3c> 역대 기록[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03
두산
39
159
7
11
5
0
3.74
155
17
53
9
87
1.31
<color=#373a3c> '''KBO 통산'''
(1시즌)
39
159
7
11
5
0
3.74
155
17
53
9
87
1.31

4. 기타


  • 첫째 동생인 이리키 유사쿠는 현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3군 투수 코치를 맡고 있으며 막내동생 이리키 히로유키도 야구선수였다. 단 히로유키는 프로에 진출하진 않았다.
  • 동생 유사쿠와 일본프로야구 통산 승수가 35승으로 동일하다. 심지어 커리어하이도 2001년 시즌인거까지 같고 그해 올스타전에서도 나란히 등판했다.
  • 박명환야구TV에서 잠깐 언급됐다. 맥주와 여자를 좋아했다고 한다.
  • 프로에 입단하면서 결혼했다가 이혼했고, 은퇴 후 학생 시절에 만났던 여자친구를 다시 만나 재혼했다고 한다. 은퇴 후에 전처에게 줄 위자료와 본인의 낭비벽 등으로 생활고를 겪고 일용직을 전전하는 등 고생하고 있었는데 이때 도와준게 지금의 아내. 아내 덕에 처남이 운영하는 도시락 체인점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몇년 후 그만두는 등[3] 여러가지 일을 했다가 때려쳤다 하면서 아내에게 의존하는 삶을 사는 바람에 아내가 결국 본업인 미용실까지 그만두면서 남편을 재취업시키고자 했다고 한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한평생 야구만 해왔기 때문에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 지를 모르겠다고. 현재는 처남이 운영하는 도시락 체인점에서 다시 일한다는 말이 있다.

5. 관련 문서


[1] 이쪽도 저니맨이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마이너리그(뉴욕 메츠, 토론토 블루제이스 산하 마이너)-요코하마 베이스타즈를 거쳤다. 여담으로 2006년 메츠 스프링캠프에서 약물검사에 걸리며 50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아 일본인 야구선수로서는 최초로 도핑 규정 위반으로 징계를 받은 선수가 되었다.[2]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3] 튀김 등 각종 요리를 할 때 이것저것 주의를 받는 것을 못 견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