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븐 카시르
1. 개요
이븐 카시르(ابن كثير / Ibn Kathir, 1300년 ~ 1373년)는 이슬람의 율법학자로 오늘날 가장 권위있는 쿠란 주해서를 낸 저자이자 이슬람 역사학을 대표하는 역사학자이기도 하다. 전체 이름은 '이마두딘 아불피다 이스마일 빈 우마르 빈 카시르 빈 다우 빈 디르 알쿠라시 알하슬리 알부스라위 알디마슈키 알샤피이(عمادُ الدين أبو الفداء إسماعيل بن عُمر بن كثير بن ضَوْ بن درع القرشي الحَصْلي البُصروي الدمشقي الشافعي)'이다. 이 가운데 이마두딘(신앙의 기둥)은 라카브, 아불피다(피다 아범)는 쿤야에 해당하므로 본명은 이스마일이다.
2. 상세
시리아의 부스라에서 태어났으며, 다마스쿠스에서 이슬람 신학자로 활동하던 이븐 타이미야의 제자가 되었다.
이븐 카시르 본인은 샤피이파의 아타리 신학을 따르는 편이었으나 한발리파의 이븐 타이미야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1] 이 덕분에 그의 쿠란 주해서에서는 근본주의적인 색체가 강한 편이다. 다른 한편으로 수피즘을 싫어한 이븐 타이미야의 영향 덕분에 그의 역사서는 근거도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많이 제거되는 순기능도 있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도 이븐 카시르의 역사서들은 철저한 고증에 바탕을 둔 명저로 평가받는다.
근본주의 성향을 가진 학자였지만,[2] 유대교와 기독교 관련 사료들도 꼼꼼하고 충실하게 참고한 역사서술로도 유명한 학자이다. 그러나 오늘날 출간되어 보급되는 영어판 판본에는 현대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와하브파 학자들이 아랍어에서 영어로 번역하는 와중에 유대교와 기독교 관련 사료를 인용한 내용 중 많은 양이 잘려나갔다. 아랍어 축약판도 마찬가지인 모양. 서기 313년 로마제국에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대해서 중세에서 기독교권이나 이슬람권이나 한결같이 찬양 일색이던 당시, 이븐 카시르가 후에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자들이나 에드워드 기번보다도 콘스탄티누스를 극딜한게 눈여겨볼만한데, 그의 저작에서 콘스탄티누스가 정치적인 이유로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언급하고 미트라교 신앙과 기독교 신앙 사이에서 이중신앙 생활을 한 점에 대한 냉철한 비평도 읽어볼 수 있었다. 로마 제국의 기독교 공인과 그로부터 수십년 후 기독교 국교화[3] 이후 헬게이트를 경험한 유대인 역사학자들의 기록을 이븐 카시르가 꼼꼼히 참고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저작들은 범위가 천지창조부터 심판의 날, 이스라엘인 예언자들의 이야기와 예언자 무함마드의 이야기, 꾸란이 기록되던 당시의 자세한 시대상황 같은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역사학보다는 신학이나 비교종교학에 해당할 만한 내용이 더 많지만, 여타 선배 이슬람 역사가들의 저서들을 자세하고 분석하고 비교한 내용도 기록해 놓은 덕택에 사료로써의 가치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3. 여담
생애 말년에는 시력을 잃은 상태에서도 하디스 분류 작업을 했다. 당시 주변 제자들이 하디스를 읽어주고 대신 필사해준 것도 있지만, 그 자신이 평생 이슬람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 쿠란 전체와 상당 분량의 하디스를 통체로 암송한 상태여서 실명한 상태에서도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1] 이븐 타이미야는 이슬람 사변 철학자들과 격렬하게 논쟁을 벌인 걸로 유명한 사람이었기에, 한발리 법학파가 아닌 학자들도 이븐 타이미야의 어록과 저술을 읽는게 대세였다고 한다.[2] 역사서 서술 중간중간에 유대인을 저주하는 문장을 집어넣는다던지...[3] 테오도시우스 황제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