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현(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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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尙炫
1960년 03월 02일 ~
1960년 경상남도 거제군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시민운동가, 정당인이다.
1960년 거제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태어난 이상현 대표는 거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 중학교 3학년 때 부산으로 전학을 가서 1975년 송도중학교, 1978년에 대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9년에 고려대학교에 들어가 1학년 때부터 학생운동에 투신하여 구속과 제적을 당했으며, 또 1980년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연루되어 수배와 구속을 당하는 등 전두환 군사정권에 정면으로 맞서 민주화운동을 하였다.
노동자들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1991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쟁의국장을 거쳐 1994년부터 초대 민주노총 조직국장을 역임하는 등 10여년 간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당시에 민주노조 진영이 중소기업 중심의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사무직 중심의 업종회의, 대기업 중심의 현대그룹 노동조합총연합, 대우그룹 노동조합협의회, 쌍용그룹노동조합협의회 등으로 나누어져 있던 상황에서 민주노조 총단결을 주창하며 민주노조 진영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였고 전국의 수천 개 노동조합을 순방하며 대의원대회의 결의를 바탕으로 민주노총에 가입시키기 위해 노력을 하였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활동에도 참여했다. 1992년부터 1993년에 걸쳐 참여연대를 만드는 과정에서 김중배 전 문화방송 사장,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등과 함께 초동 주체로 참여하여 당시에 이미 상당한 기반을 확보하고 있던 경실련에 필적하는 진보적 시민운동단체를 만들기 위한 논의 과정에 관여하였다.
권영길 대표와 함께 2000년에 민주노동당을 창당하여 당 대변인, 권영길 대표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으나 2011년에 선거 부정사건이 벌어지고 종북 문제로 당이 엄청난 내홍을 겪는 과정을 목격하며 진보정치에 염증을 느껴 민주노동당을 탈당했다.
특히 민주노동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조직위원장을 맡은 이 대표는 권영길 대표와 함께 전국의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등을 순방하며 당원 가입운동을 지휘하였고 그 후에는 당 대변인을 맡아 MBC 100분토론, KBS 심야토론 등에 출연하였다.
그 후 2012년에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본부의 시민캠프 공동대표로 합류하여 양대 노총과 시민단체를 포괄하며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선거를 도왔으며, 대통령 선거 후에는 안철수 대표의 새정치추진위원회에 결합하여 시민사회위원장을 지냈다.
이상현 대표는 2000년부터 글로벌 시대에 갈수록 그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다국어 통,번역 회사를 설립하여 16년 간 회사를 이끌어 오며 전 세계 50여개 국의 전문 통,번역사들과 함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과 산업통상자원부, 여성가족부, 해외문화홍보원 등 공공기관의 다국어 통,번역을 진행하였다.
李尙炫
1960년 03월 02일 ~
1. 소개
1960년 경상남도 거제군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시민운동가, 정당인이다.
2. 학력
3. 경력
- 2013 5.18민주 유공자
- 2007 민주화운동관련자
- 2015 - 현 새정치성북포럼 대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북갑 예비후보자
- 2013 - 전) 새정치추진위원회 시민사회위원장
- 2012 - 전) 제18대 민주통합당 대통령후보 시민캠프 공동대표
- 2000 -2002 전)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 비서실장
- 2000 -2004 전) 민주노동당 대변인
- 2011 - 전) 진보대통합시민회의 공동대표
- 2011 - 전) 인터넷방송 ‘Think TV’ 진행자
- 2004 -2005 전) 온라인 복지전문기업 ‘웰포유’ 대표이사
- 1994 전) 참여연대 발기인
4. 생애
4.1. 성장기
1960년 거제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태어난 이상현 대표는 거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 중학교 3학년 때 부산으로 전학을 가서 1975년 송도중학교, 1978년에 대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4.2. 학생운동가로서의 활동
1979년에 고려대학교에 들어가 1학년 때부터 학생운동에 투신하여 구속과 제적을 당했으며, 또 1980년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연루되어 수배와 구속을 당하는 등 전두환 군사정권에 정면으로 맞서 민주화운동을 하였다.
4.3. 노동운동가로서의 활동
노동자들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1991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쟁의국장을 거쳐 1994년부터 초대 민주노총 조직국장을 역임하는 등 10여년 간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당시에 민주노조 진영이 중소기업 중심의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사무직 중심의 업종회의, 대기업 중심의 현대그룹 노동조합총연합, 대우그룹 노동조합협의회, 쌍용그룹노동조합협의회 등으로 나누어져 있던 상황에서 민주노조 총단결을 주창하며 민주노조 진영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였고 전국의 수천 개 노동조합을 순방하며 대의원대회의 결의를 바탕으로 민주노총에 가입시키기 위해 노력을 하였다.
4.4. 시민운동가로서의 활동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활동에도 참여했다. 1992년부터 1993년에 걸쳐 참여연대를 만드는 과정에서 김중배 전 문화방송 사장,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등과 함께 초동 주체로 참여하여 당시에 이미 상당한 기반을 확보하고 있던 경실련에 필적하는 진보적 시민운동단체를 만들기 위한 논의 과정에 관여하였다.
4.5. 정당인으로서의 활동
권영길 대표와 함께 2000년에 민주노동당을 창당하여 당 대변인, 권영길 대표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으나 2011년에 선거 부정사건이 벌어지고 종북 문제로 당이 엄청난 내홍을 겪는 과정을 목격하며 진보정치에 염증을 느껴 민주노동당을 탈당했다.
특히 민주노동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조직위원장을 맡은 이 대표는 권영길 대표와 함께 전국의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등을 순방하며 당원 가입운동을 지휘하였고 그 후에는 당 대변인을 맡아 MBC 100분토론, KBS 심야토론 등에 출연하였다.
그 후 2012년에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본부의 시민캠프 공동대표로 합류하여 양대 노총과 시민단체를 포괄하며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선거를 도왔으며, 대통령 선거 후에는 안철수 대표의 새정치추진위원회에 결합하여 시민사회위원장을 지냈다.
4.6. 기업가로서의 활동
이상현 대표는 2000년부터 글로벌 시대에 갈수록 그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다국어 통,번역 회사를 설립하여 16년 간 회사를 이끌어 오며 전 세계 50여개 국의 전문 통,번역사들과 함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과 산업통상자원부, 여성가족부, 해외문화홍보원 등 공공기관의 다국어 통,번역을 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