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육군)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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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相薰
1933년 6월 26일~
1933년 6월 26일 충청북도 청주군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등과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이다. 대위였던 1961년 5.16 군사정변이 벌어지자 전두환과 함께 육사 생도의 쿠데타 지지행진을 이끈 바 있다. 이후 32사단장, 3군단장 등을 거쳤다. 전두환 정권 때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대장)을 지냈다. 전역 후에는 장관급인 국가안보회의 비상기획위원장에 임명됐다. 그가 장관급에 임명되자 하나회 내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상훈은 군에 있을 때 하나회의 라이벌 조직이었던 청죽회의 회원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국방부 장관에도 하나회의 핵심, 정호용 대신 비하나회인 이기백이 되었기에 불만은 더욱 컸다. 이상훈의 중용은 지나치게 커진 하나회의 목소리를 줄이기 위한 전두환의 포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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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재임 시에는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을 지냈다. 재임 중에 통칭 '818계획'으로 불리는 군 조직 개편안을 추진하여 합동참모본부를 종전의 군사자문 기구에서 육-해-공 3군의 작전부대에 대한 최고 지휘권을 행사하는 최고 군령기구로 강화했다.[1]
1992년 KBO 총재에 취임했다.
이후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재향군인회 회장을 지냈다. 재임 중 참여정부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추진이 논란이 되자 다른 예비역 장성들과 함께 반대 집회에 참여했다.[2]


[1] 818 계획은 1990년 국군조직법 개정으로 현실화되었고, 정호근 육군 대장이 3군 총괄 군령권을 행사하는 첫 합참의장에 취임했다.[2] 이상훈은 국방장관 재임 중에는 작전권 환수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는 당시 대통령이던 노태우의 공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