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용

 


'''정호용의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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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25대 국방부 장관
정호용
鄭鎬溶 | Chung Ho-yong
'''
<colbgcolor=#ff0000><colcolor=#ffffff> '''출생'''
1932년 9월 10일 (91세)
경상북도 대구부 신정
(現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본관'''
연일 정씨#
'''재임기간'''
제25대 육군참모총장
1983년 12월 16일 ~ 1985년 12월 15일
제45대 내무부 장관
1987년 1월 21일 ~ 1987년 5월 26일
제25대 국방부 장관
1987년 7월 14일 ~ 1988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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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0000><colcolor=#ffffff> '''배우자'''
김숙환
'''자녀'''
슬하 4녀
'''학력'''
대구남산초등학교 (졸업)
경북중학교 (졸업)
경북고등학교 졸업 / 32회)
서울대학교 대학원 (화학공학 / 석사)
국방대학교 (행정학 / 학사)
한양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 석사)
건국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 박사)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13''', '''14'''
'''경력'''
일해재단 연구원
제45대 내무부 장관
제25대 내무부 장관
제13대 국회의원(대구 서구 갑)
제14대 국회의원(대구 서구 갑)
'''군사 경력'''
'''임관'''
육군사관학교 (11기)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55년 ~ 1985년
'''최종 계급'''
대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육군참모총장
'''주요 보직'''
육군제50보병사단장
육군특전사령관
육군제3야전군사령관
'''참전'''
베트남 전쟁

1. 개요
2. 생애
3. 대중매체에서
4. 선거 이력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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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군인, 관료, 정치인, 내란사범.

2. 생애


1932년 9월 10일 경상북도 대구부 신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서 태어나 대구남산초등학교,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후일 육군사관학교의 동기가 되는 노태우는 경북고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오랜 친구이자 동창이었는데 경북고등학교-육군사관학교 동기로 김복동도 있다.[1]
1951년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25 전쟁육군에 병사로 입대하여 참전하였다. 그 뒤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해 1955년 육군사관학교를 11기로 졸업하고 육군 소위임관했다.[2] 1964년 전두환, 노태우, 손영길, 김복동 등과 사적 모임인 하나회 조직에 참여하였다. 1977년 특전사 참모장을 거쳐 소장으로 진급하였고 1978년 제50보병사단 사단장이 되었으며 1979년 12.12 군사반란 이후 정병주의 뒤를 이어 육군특수전사령관에 취임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광주서울을 세 차례 오가면서 공수부대에게서 보고를 받거나 현장 상황을 확인했다. 1980년 5월 27일 '상무충정 작전' 직전 육군본부로부터 가발수류탄 등 군수품을 지원받아 현지의 공수부대에 제공했는데 이때 폭동 진압 명령자라는 논란이 있었다. 1981년 대장으로 진급하였고 1981년 12월 제3야전군사령관이 되었으며 1983년 12월 황영시의 뒤를 이어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했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때리느냐'''[3]

1985년 12월 예편한 다음 일해재단 연구위원에 임명되었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초기 수습책으로 김종호의 뒤를 이어 내무부 장관에 임명되었다가[4] 4개월 만인 1987년 5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축소 의혹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 등에 의해 폭로되면서 민심 수습 차원에서 개각이 일어나 노신영 국무총리, 장세동 국가안전기획부장 등과 함께 경질되었다. 6월 항쟁6.29 선언 이후인 1987년 7월 국방장관으로 내각에 복귀하여 전두환이 퇴임할 때까지 재임하였다. 짧은 재임 기간 때문에 국방장관으로서 눈에 띄는 치적은 없었지만 해병대 사령부의 재창설이 실현된 것 정도가 그나마 기억될만한 성과.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구직할시 서구 갑에서 출마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여소야대 국회에서 대한민국 제5공화국 비리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청문회로 사회 여론이 공직 사퇴 요구를 제기하자 결국 1990년 1월 8일에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이후 명예 회복을 위해 자신의 지역구 보궐 선거에 다시 출마했지만 정치적 부담을 느낀 노태우 정부의 압력에 의해 후보직에서 다시 사퇴했다. 1992년 다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자유당 문희갑 후보를 꺾고 당선되자 후에 민주정의당의 후신 민주자유당에 복당하였다. 이후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의 대통령 선거 운동을 도왔으나 김영삼 정부의 과거 청산 작업에 따라 1996년에 다시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혐의로 구속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옥 중에서 대구광역시 서구 갑에 출마하였으나 2위로 백승홍에게 석패하였다.

'''우리가 남이가'''[5]

정호용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과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수 차례나 광주광역시와 서울특별시를 오갔으며 정호용은 특전사령관이었기 때문에 특전사 소속 부대의 잔혹 행위를 둘러싸고 훗날 책임론이 제기됐다. 1989년에 열린 광주특위 청문회에서 정호용은 당시 특전사 소속의 진압 부대들은 당시 광주 상무대에 있던 전투교육사령부에 배속됐기 때문에 자신의 책임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신군부는 공식적인 지휘 계통을 무시하고 사조직 하나회의 인맥에 의한 명령을 내리는 일이 빈발했고 실제 재판에서 이것이 밝혀진다. 1996년 1월 5.18 광주민주화운동 검찰 수사 결과 정호용이 5.17 내란에서의 내란 모의 참여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과정에 관여했다는 것이 밝혀졌고 이에 따라 1997년 4월 대법원은 정호용에게 내란 모의 참여죄와 내란 목적 살인죄 등으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image]
1997년 문민정부가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를 사면하면서 석방된 정호용은 별다른 활동 없이 지내다가 2002년에 종친인 정몽준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돕기도 했다. 2015년 경북고등학교 시절 절친이었던 이맹희의 빈소에 방문해서 너무 일찍 갔다고 통곡하기도 했다. 2019년 12월 12일 12.12 군사반란 40주년이었는데 전두환 前 대통령, 최세창 前 대장 등과 같이 호화만찬을 즐기면서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3. 대중매체에서


[image]
  • 2005년에 MBC에서 방영된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배우 윤승원이 역할을 맡았다. 외모상으로는 실제 인물과 별로 닮은 편이 아니었는데, '특전사령관', '경상도 출신'이라는 이미지를 반영해서 경상도 사투리를 즐겨 쓰는 호탕한 사나이 타입의 캐릭터로 나왔다.[6]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장세동과 대립각을 세우고, 박철언과 함께 노태우의 조력자 역할을 했다. 또한 대통령이 된 전두환에게도 둘이서만 있는 자리에서 유일하게 반말을 사용하는 등 극 중에서 전두환과 노태우 둘을 모두 친구로 대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인물로 나온다. 드라마 방영 후 당사자인 정호용은 전두환, 이학봉, 황영시, 최세창보다도 내성적인 자신과는 매우 다른 인물로 묘사되었다며 유감섞인 평을 했는데 목소리도 실제로 크지 않고 굉장히 내성적이며 얇은 저음톤이라 윤승원과는 거리가 멀다.

4. 선거 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서 갑)

'''52,847 (54.3%)'''
'''당선 (1위)'''
1990. 1. 8 의원직 사퇴
1990
1990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대구 서 갑)[7]

-
후보사퇴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서 갑)
'''50,533 (51.5%)'''
'''당선 (1위)'''
민주자유당 입당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서 갑)
19,583 (26.8%)
낙선 (2위)
옥중출마

5. 둘러보기




[1] 경북고등학교 32회로 노태우, 정호용, 김복동 외에도 김윤환 국회의원, 이맹희 제일비료 회장, 이상경 대구은행장이 있으며 동기생은 약 130명이다.[2] 전두환과 노태우가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생이다.[3]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거짓 해명을 하며 한 말. 5.18 당시 발포 명령자로 의심되며 적어도 5.18에 깊이 연관된 그가 한 말이라는 것이 유머 포인트.[4] 당시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때리느냐"라는 망언을 남기기도 했다.[5] 대구광역시에서 김영삼제14대 대통령 선거 선거운동을 도우면서 한 말이다. 하지만 김영삼 집권 후 토사구팽되었다.[6] 노태우가 쓰리 허 수석들 일명 "허 가" 허 가들이 우릴 물로 본다고 말하자 "뭐 물?! 크하하하하하하핳 야! 물은 너 아니가?! 크하하하하하하핳..."하는게 웃음 포인트[7] 전임자 정호용(본인 맞다) 의원직 사퇴로 발생한 선거. 이 당시는 소위 맹형규법이라 불리는 법이 제정되기 전이어서 본인의 사퇴로 벌어진 재보선에 본인이 재출마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