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덕
1. 개요
인천 출신의 야구 선수 및 코치. 어째 감독대행의 경험이 많다.
2. 프로야구 이전
인천고등학교 시절인 1959년에는 경북고등학교 야구부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이끌어냈고 이는 결국 경북고등학교 야구부의 폐부를 이끌어낸다.
실업야구에선 농협 소속으로 맹활약. 73년에는 33세 노장의 몸을 이끌고 추계연맹전에서 승, 승률, 방어율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한다. 이후에도 코치를 거쳐 농협 감독으로 활동한다.
3. 프로야구 지도자 시절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창단 투수코치로 시작. 시즌 전부터 약체로 뽑히던 팀은 처절하게 몰락하고 4월 25일, 8:0으로 이기고 있다 11:12로 역전당한 OB 베어스와의 대첩을 계기로 박현식 감독이 경질당하고 이선덕이 감독대행으로 부임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만 KBO 1호 감독대행. 그에 대한 평가는 김은식 기자에 따르면 투수도, 타자도 마구잡이로 기용한 영양실조의 환자에게 극약을 주사해야 하는 가련한 돌팔이. 67경기 12승으로 승률 0.179를 기록한다.
82 시즌이 끝난 후에는 감독으로 김진영이 오며 다시 투수 코치로 복귀한다. 83년 시즌 와중에는 김진영 감독의 심판 폭행 사건으로 김진영이 구속되면서 이재환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으로 임명된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서면서 백인천이 삼미에 플레잉코치로 입단. 백인천과 사이 나쁜 이재환을 때어놓기 위해 이재환은 새로 만든 2군의 감독으로 임명되고 이선덕이 또 감독대행으로 임명된다. 이때는 선수겸 투수코치보조인 장명부와 사이가 좋지 않아 투수 교체로 인한 의견대립 때문에 관중들 앞에서도 다퉜을 정도.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김진영과는 달리 이선덕은 일본어를 하지 못하고 장명부는 한국어를 하지 못해 눈치와 손짓으로 작전을 받은 것도 불화의 원인이었던듯. 9월 2일에는 다시 박현식이 감독으로 오고 이선덕은 투수코치로 복귀. 시즌이 끝난 뒤에는 OB 베어스의 투수코치로 이적한다.
그 후 OB 투수코치로 활동하게 되며 87년에는 김성근이 간염수치 증가로 입원할 때 사이좋게 고혈압증세로 같이 입원한다. 88년을 앞두고는 박철순 2군 투수코치와 서로 보직 교환. 2군 투수코치가 된다. 89년에는 2군 감독인 이광환이 1군 감독으로 승격함에 따라 2군 감독대행으로 임명된다. 이로써 생애 3번째 감독대행. 90년에는 2군 감독으로 정식취임하나 이광환 감독이 경질 될 때 1군 투수코치로 임명된다.
90 시즌이 끝난 후에는 태평양 돌핀스 2군 코치가 되었고 다음 해에는 2군 감독이 되어 간만에 오랜기간 같은 보직을 맡게 된다. 95 시즌이 끝난 후에는 현대 유니콘스로 팀이 변경되고, 이선덕 본인은 쌍방울 레이더스 2군 감독으로 이적. 97년 시즌이 끝난 후에는 팀에 돈이 없어서 2군이 폐지되고 본인은 스카우트 책임자로 보직 변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