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스 전투

 

1. 개요
3. 제2차 이소스 전투(서기 194년)
4. 제3차 이소스 전투(서기 622년)


1. 개요


남부 아나톨리아의 이소스(Issus) 평원에서 벌어진 전투. 역사상 총 3회의 이소스 전투가 존재한다. 모두가 유럽의 서방 세력과 중동의 동방 세력 간의 대결이었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전자가 후자에 대해서 3번 모두 이겼다. 기원전 301년 안티고노스와 셀레우코스-리시마코스 연합군 간의 전투는 입소스 (Ipsus) 전투이다. 헷갈리기 쉽다

2. 제1차 이소스 전투(기원전 333년)


세 번의 이소스 전투 중 가장 유명한 전투. 마케도니아 왕국알렉산드로스 3세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3세의 대군을 상대로 망치와 모루 전술을 사용하여 승리한 전투이다.

3. 제2차 이소스 전투(서기 194년)


로마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동방의 대립황제 페스케니우스 니게르와 맞붙은 전투. 통칭 2차 이소스 전투.
콤모두스 황제와 페르티낙스 황제 사후 혼란에 빠진 이탈리아 반도를 제압하고 참제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를 살해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율리아누스를 비롯한 다른 경쟁자들을 무너뜨리는 동안 동방에서 세력을 유지하고 있던 시리아 총독 출신의 참제 니게르를 쓰러뜨리기 위해 동방으로 진군한다. 원래 세베루스와 니게르는 페르티낙스 황제 사후 거의 비슷한 시점에서 제위를 참칭하였기에 둘의 정통성은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하지만 세베루스는 이 시점에서 제국의 주요 전선인 레누스(라인) 강 전선과 다누비우스(도나우) 강 전선의 정예군대를 모두 장악하고 원로원과 로마 시민들의 지지까지 확보하여 정통성과 실력을 모두 증강시킨 데 반해, 니게르는 제위 참칭 당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서기 193년 니케아 전투에서 패한 니게르는 서기 194년 이소스 평원에서 세베루스 군대와 결전을 치르게 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세베루스 황제는 역사학자 디오 카시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실전 경험이 풍부한 12개 군단을 거느리고 있던 데 반해, 니게르 휘하에는 실제 전투능력이 의심스러운 6~9개 군단밖에 없었고, 니게르가 선전했다고 하나 이러한 전력의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이소스 전투에서 패배한 니게르는 안티오키아로 도주하지만 곧 살해당했고, 세베루스 황제는 비로소 세베루스 왕조의 첫번째 황제이자 로마의 단독 황제로 군림하게 된다.

4. 제3차 이소스 전투(서기 622년)


동로마 제국 황제 헤라클리우스사산조 페르시아 제국과 맞붙은 전투. 통칭 제3차 이소스 전투. 헤라클리우스 황제는 약 5만의 병력을 에게 해를 통해 수송하여 페르시아 군대를 급습, 이소스 평원에서 페르시아군을 격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