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더비

 

'''갈라타사라이 SK
Galatasaray S. K.
'''
'''페네르바흐체 SK
Fenerbahçe S. K.
'''
'''크탈라르 아라스 데르비(Kıtalar Arası Derbi)'''
1. 개요
2. 유래
3. 사건사고
4. 다른 종목


1. 개요


터키어: Kıtalar Arası Derbi
영어: The Intercontinental Derby
터키 쉬페르리그 팀으로서 이스탄불을 연고지로 둔 갈라타사라이 SK페네르바흐체 SK가 벌이는 더비 매치를 뜻한다. 베식타슈 JK파티흐 카라귐뤼크 SK도 이스탄불 팀이긴 하지만, 보통은 저 두 팀 간의 대결을 말한다. 터키 쉬페르리그 최대의 더비 매치로 이름이 높다.
첫 경기는 1909년 1월 17일 경기로 갈라타사라이가 2-0으로 이겼으며, 2020년 9월 27일 경기까지 모두 392번 경기를 치렀다. 가장 최근에 열린 392번째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났다. 통산 상대 전적은 380전 146승 124무 124패인 페네르바흐체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2. 유래


1905년에 창단된 갈라타사라이와 1907년에 창단된 페네르바흐체는 서로 창단 멤버들이 판이하게 달랐다. 갈라타사라이는 주로 오스만 제국 귀족들로 이뤄졌던 반면에 페네르바흐체는 사병 및 하급 장교들로 이뤄진 군인들이 주축이 되어 창단됐다.[1] 그러다 보니 초창기엔 갈라타사라이가 재정이나 여러 요소에서 앞서면서 페네르바흐체를 압도했다.
일단 공식적인 첫 경기는 1909년 1월 17일 친선 경기였는데 갈라타사라이가 2-0으로 이겼다. 그 뒤로도 갈라타사라이가 7전 전승에 무실점으로 압도하다가, 1914년 1월 4일 8번째 경기에서 페네르바흐체가 4-2로 처음으로 이겼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점수 차가 난 경기는 1911년 2월 12일 경기로 갈라타사라이가 7-0으로 이겼던 경기이며, 페네르바흐체는 2002년 6월 11일 리그 경기에서 6-0으로 이긴 게 가장 크게 이긴 경기이다.
돈 많은 귀족 팀과 가난한 군인 팀의 격돌이다 보니 처음부터 감정이 쌓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꼭 그런 건 아니라고 한다.[2] 오히려 이스탄불 리그 시절인 1950년대만 해도 서로 사이좋게 응원하고 지면 승자에게 격려하는 응원을 보이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image]
1913~14 시즌 챔피언십에서 경기를 벌이기 전, 양 팀 선수들끼리 모여 찍은 사진.
그러던 것이 1960년대 리그 1(뒤에 터키 쉬페르리그로 개편)으로 자리를 잡고 차츰 서로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TV란 매체의 등장과 같이 리그 민영화가 진행되면서 이런 경쟁을 언론과 기업들이 유도했다는 비난도 있다. 그러나 이런 비난이 어찌 됐든 엄청나게 뜨거운 반응을 불러오며 팀 내 수익에 엄청나게 영향을 끼쳤다.
다만, 더비 경기라는 것 자체가 대부분 이렇게 '의도는 좋았다'로 시작하긴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갈수록 차이는 드러나기 마련이고 결국에는 감정 싸움으로 변하게 되며 라이벌전으로 자리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형제 간에도 우월감이나 열등감이 생기는 판국에 동향 팀들이야 더 말할 것 없다. 맨체스터 더비도 처음에는 사이좋게 웃으며 경기를 하던 관계였다. 세계 각지 스포츠 더비들 상당수가 비슷한 역사를 거쳤다.

3. 사건사고


2013년 5월 12일에 열린 374번째 더비 경기 직후, 집으로 돌아가던 페네르바흐체 팬이자, 20세 청년이었던 부락 이을드름 군이 갈라타사라이 팬이었던 유수프 오[3]라는 사람과 시비가 붙어 몸싸움을 벌이다 칼에 맞아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용의자 유수프는 사건 발생 이틀 후에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이스탄불의 섬유 공장에서 일하는 전과 3범(폭행 치상 등) 노동자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에서 10여 명의 페네르바흐체 팬과 시비가 붙어 몰매를 맞던 중 정당방위 차원에서 휘두른 칼이 이을드름 군을 찌르게 되었고, 상대를 죽일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 이후로 터키 축구계 전반에 걸쳐 자성하는 분위기가 일어나면서 응원 문화 개선을 기대할 수 있었으나, 베식타슈 서포터들의 9월 경기장 폭동 사태 이후로 없던 얘기라도 된 듯 13-14 시즌 내내 터키 축구계에서 연일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파쏘리그(PASSOLIG)'라는 축구 관람 사전 등록제 겸 실명제까지 도입했으나 크게 개선되지는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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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식타쉬 JK, 페네르바흐체 SK, 갈라타사라이 SK서포터가 뭉친 모습. 이스탄불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저 시기에 게지공원 재개발과 관련하여 반정부 시위가 일어날 때 저 두 팀의 서포터와 베식타슈 서포터가 함께 연합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름하야 Istanbul United.

4. 다른 종목


갈라타사라이와 페네르바흐체는 축구 말고도 농구, 수구, 배구, 조정, 장애인 휠체어 농구, 육상, 승마, 요트, 트럼프 카드 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포츠 팀을 가지고 있기에 이 팀 소속 선수들도 맞붙으면 더비가 일어난다. 이런 점은 유럽의 다른 유명 라이벌들도 마찬가지이다. 단, 대다수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축구를 제외하면 농구가 가장 인기가 많은데, 농구에선 주로 아나돌루 에페스와 페네르바흐체가 경쟁하고 있고 갈라타사라이는 우승권에서 멀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1] 참고로 베식타슈노동자들 위주로 창단됐다.[2] 실제로 초창기부터 계층 갈등이 격화된 사례로는 엘 수페르클라시코영원한 적들의 더비 등이 있다.[3] 여기서 '오'(O)는 터키어로 '그'를 뜻하는 3인칭 주어로, 번역하자면 '유수프 아무개'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사건 관련 기사를 낼 때 피의자나 피해자를 '김모 씨' 등으로 표기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