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덕
李資德
(1069 ~ 1138)
1. 개요
고려의 문신. 청평거사 이자현의 동생으로, 이자겸과는 사촌간이다. 자는 관지(觀止). 사서에서는 공손하고 조심스럽고 효심과 우애가 있었으며, 학문과 불교를 좋아했다고 평한다.
2. 생애
유력 문벌인 인천 이씨 출신으로 음서를 통해 경시서승에 임명된다. 예종 6년(1111) 형부시랑으로 요나라에 천흥절(天興節, 황제 생일) 하례사로 다녀온다. 상서로 승진한 자덕은 청평산에 은거한 형 자현을 만나보려는 예종의 지시에 따라 형을 만나 남경의 행재소로 나오도록 부탁한다. 예종 17년(1122) 동북면병마부사에 오른다.
인종 원년(1123) 추밀원부사에 임명된다. 당시 추밀원에 함께 임명된 근신은 추밀원사 박승중, 동지추밀원사 김인규로 이자덕을 비롯해 모두가 이자겸의 당파였다. 인종 2년(1124) 어사중승 김부철과 북송에 사은사로 다녀온다. 화가 이 때 이녕(李寧)이 이자덕 등을 따라 북송에 들어간다. 이어서 공부상서 지추밀원사가 되고, 이듬해에는 참지정사, 중서시랑평장사에 임명된다.
그런데 요직에 오른 그 해인 인종 3년(1125) 5월, 반란을 계획했던 이자겸이 척준경에 의해 구금되면서 줄을 잘못 선 대가를 치른다. 이자덕과 김인규 두 평장사는 이자겸이 체포된 사실을 모르고 병력을 끌고 온 이지미와 합류해 병부에 들어갔다가, 순검에서 이지미를 체포하자 놀라 도망친다. 결국 난이 진압되고 이자덕은 황주사(黃州使)로 좌천돼 개경을 떠난다.
이자겸 당파가 받은 처벌은 다소 약했고, 이자덕도 곧 평장사로 복직한다. 인종 14년(1136) 다시 참지정사에 올랐으며, 이듬해 판호부사, 태자소보 등을 겸임한다. 인종 16년(1138) 68세의 나이로 죽는다. 인종은 하루 조회를 멈추고 장의(莊懿)의 시호를 내린다.
3. 가족관계
이자덕의 외조카 해주 최씨 최윤인은 공부상서 지추밀원사였던 외숙의 음서로 상서호부령 사동정으로 관직에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