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쇼트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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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6ccff> '''이름'''
이준호(李準鎬, Lee Joonho)
'''국적'''
대한민국[image]
'''본관'''
경주 이씨[1]
'''출생'''
1965년 9월 7일, 서울특별시
'''학력'''
리라초등학교
동북중학교
서울고등학교
동국대학교 학사
단국대학교 대학원
'''신체'''
171cm, 65kg
'''종목'''
쇼트트랙
'''주종목'''
1000m, 1500m
1. 개요
2. 은퇴 이후
3. 수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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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쇼트트랙 레전드 김기훈과 함께 같은 시대에 선수생활을 했던 1세대 쇼트트랙 선수다. 김기훈만큼은 아니지만 그의 기량과 성적으로 보면 충분히 레전드급 활약을 펼쳤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원래는 스피드 스케이팅 단거리 종목 선수였는데 그 덕분인지 폭발적인 스피드와 파워를 갖추고 있었고, 순간 스피드와 지구력도 겸비한 선수였으나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와 파워보다도 더 중요한 기술과 경기운영능력 면에서는 김기훈에 비해 약간 떨어지는 편이었다.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1000m 동메달을 땄지만 금메달을 딴 자신의 2년 후배 김기훈에게 가려졌고, 5000m 계주에서도 김기훈이 막판 뒤집기를 해내면서 2인자 이미지가 굳어졌다. 하지만 이 때부터 이미 전명규의 에이스(김기훈) 밀어주기가 있었는데 이준호도 그 희생양 중 하나였으며[2] 결국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2002년 김기훈(전명규-한체대파)가 남자 대표팀을, 이준호(비한체대파)가 여자 대표팀을 맡으면서 파벌 싸움이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2. 은퇴 이후


코치로서는 행보가 좋지 못하다. 2002년에 맡았던 여자 대표팀 감독직을 1년도 안 돼서 내려놓게 되었고[3]2011년에는 승부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벌금형을 물었으며 2014년엔 화성시청 코치를 하던 중에 성추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를 당한 일까지 있었다. 또한 노선영의 코치를 맡았으나 개인 기록이 잘 빠져주지 못했다.
유일하게 평가가 좋은 쪽은 해설가로 활동하던 시기. 토리노 올림픽 당시 SBS의 전이경이나 MBC의 김동성보다도 훨씬 더 정돈되고 조리있는 해설로 호평을 받았고 안상미가 현재 SBS에서 해설가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와중에도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가끔씩 이준호의 해설이 거론될 정도. 물론 비판도 있는데 너무 화법이 직설적이라든지 혹은 비한체대 선수들쪽으로 조금 편파적인 해설을 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창 파벌 싸움으로 시끄러울 때 안현수를 깐 적도 있다. 하지만 안현수가 불참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에는 생각이 바뀌었는지 "안현수 같은 해결사가 없었서 아쉬웠다" 라는 발언을 했고,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그의 활약을 극찬함과 동시에 한 인터뷰에서는 한국은 국보급 선수를 잃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다만 안현수에 대한 그의 입장이 변한 시점은 전명규가 안현수의 가장 든든한 우군에서 가장 큰 적으로 돌변한 이후임을 간과할 수 없다. 대표적인 비한체대파이자 반전명규 인사인 이준호의 입장에서는 소치 동계올림픽 때 맹활약한 빅토르 안을 치켜세울수록 전명규의 입장이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사건이 많았던 지라 해설가로 복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3. 수상 기록


올림픽
<colbgcolor=#ffd700> 금메달
1992 알베르빌
5000m 계주
동메달
1992 알베르빌
1000m
세계선수권
금메달
1990 암스테르담
종합
금메달
1990 암스테르담
1000m
금메달
1990 암스테르담
1500m
금메달
1990 암스테르담
3000m S.F
금메달
1991 시드니
1500m
동메달
1991 시드니
종합
동메달
1992 덴버
종합
동메달
1992 덴버
3000m S.F
세계 팀선수권
금메달
1994 케임브리지
단체전
은메달
1991 서울
단체전
은메달
1995 조테미어
단체전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0 삿포로
5000m 계주
은메달
1990 삿포로
1500m
은메달
1990 삿포로
3000m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1989 소피아
500m
금메달
1993 자코파네
1000m
금메달
1993 자코파네
1500m
금메달
1993 자코파네
3000m
은메달
1989 소피아
1000m
은메달
1989 소피아
3000m
동메달
1993 자코파네
500m
[1] '호(鎬)'자 항렬로 따져봤을 때 한자가 같은 '호'인걸로 봐서 경주이씨일 확률이 높다.[2] 이 때문인지 선수 시절 둘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실력이 더 뛰어난 김기훈을 시기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3] 후임은 김소희와 최광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