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쇼트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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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계 정상급을 자랑하는 한국 쇼트트랙 신화의 시초를 장식한 인물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강릉 선수촌장으로 임명되었다.
2. 선수 경력
이승훈과는 반대로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쇼트트랙으로 전향한 케이스에 속한다.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 선수로 활동하던 고등학교 시절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했다가 선발된 것이다. 참고로 이 때 1984년에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은 최초로 시행된 국가대표 선발전으로, 김기훈은 선발전을 거쳐 선발된 최초의 쇼트트랙 국가대표 멤버이기도 하다.
종목을 바꾼 데 대한 어려움도 있었으나 태릉선수촌에서의 혹독한 훈련과 당시 정상급 쇼트트랙 선수들의 비디오를 구해 분석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1500미터 금메달을 획득하며 세계 쇼트트랙계에 화려하게 우뚝 선다.[1] 이어 이듬해 소피아에서 열린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금메달 3개를 쓸어담았다.
잠시 인대 부상으로 대표팀 에이스 자리를 이준호에게 넘겨주기도 했었으나 지독한 의지로 재활에 매진한 끝에 다시 국가대표에 선발되고,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게 된다. 이 대회 1000미터에서 김기훈은 선배이자 라이벌인 이준호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하며 정식종목 기준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5000미터 릴레이에서는 에이스의 상징인 마지막 주자로 출전하여 이후 김기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날내밀기'''로 극적으로 캐나다를 꺾고 팀에 금메달을 안겼다. 당시는 개인전이 1000미터 한 종목밖에 없었긴 하지만 나름 전종목 석권을 달성했다. 마지막 코너에서 인코스의 좁은 틈을 파고들고 날내밀기로 역전하는 마지막 장면에선 소름이 돋지 않을 수가 없다.[2] 당시 계주 경기에 출전한 국가대표 멤버들은 김기훈을 비롯해 모지수, 송재근, 이준호로, 공교롭게 넷 모두가 이후 국가대표 지도자를 거친다는 공통점이 있다.
올림픽 이후 미국 덴버에서 열린 1992 세계선수권에서 '''전종목을 석권하며 5관왕'''이라는 금자탑을 쌓으며 '덴버의 연인'이라는 별명도 얻은 김기훈은 2년 뒤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도 출전했다. 이 때 당시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아 세대교체론까지 제기되고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김기훈은 보란 듯이 1000미터에서 신예이자 자신을 이을 차세대 에이스 채지훈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 '''올림픽 쇼트트랙 최초의 한종목 2연패'''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후 1998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다 은퇴하는데 이 때 나이는 31세였다.
3. 은퇴 이후
울산과학대학교 교수와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안현수의 부재로 전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던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대표팀이 상당히 좋은 성적을 냈던 뒤에는 김기훈의 지도가 있었다.
여러모로 현대 쇼트트랙의 발전에 지대한 공로를 끼친 인물로, 과장 약간 보태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형태의 쇼트트랙은 직간접적으로 김기훈이 완성했다'''라고 해도 된다. 예컨대 쇼트트랙 하면 떠오르는 장면 중 하나인, 왼발을 빙판에서 떼고 오른발만으로 코너를 도는 자세를 처음 고안한 것이 김기훈이다. 또한 아웃코스 추월만이 일반적이던 당시 쇼트트랙계의 상식을 깨고, 코너를 돌자마자 인코스로 추월한 후 아웃코스로 빠지며 코너를 돌고 다시 인코스를 차지하는 소위 '''호리병 주법'''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지금은 정석이지만 당시에는 혁신적인 발상으로, 끊임없이 연구와 자기 발전에 힘썼기에 가능했다. 또한 선수들이 코너링 시에 빙판에 짚는 왼손과 빙판 사이의 마찰력을 늘리기 위해 장갑에 에폭시수지를 부착하는데, 이것도 이준호와 김기훈이 선수 시절 장갑에 본드를 붙인 것이 시초이다. 피니쉬라인 통과시에 양 스케이트 날이 빙판에서 떨어지면 안된다는 규정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도 한다.[3]
안현수를 국대 초기에 집중적으로 지도해 당대 최고의 선수로 키워냈다. 여기에 있어서 다른 선수들에게는 지도를 소홀히 함으로써 한체대파와 비한체대파의 파벌 갈등에 책임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2005년에 안현수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대표 선수들이 코치의 차별대우에 반대하며 집단으로 태릉 입촌을 거부한 사건이 있었다.
우습게도 한국에서는 악당이 된 아폴로 안톤 오노가 김기훈을 보고 쇼트트랙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쇼트트랙을 시작했다고 한다.
2021년부터는 뭉쳐야 쏜다에 섭외되어 출연 중이다.
4. 수상 기록
[1] 당시 쇼트트랙은 시범종목이었다.[2] 이같은 날내밀기 기술은 지금은 볼 수 없다. 피니쉬 장면을 자세히 보면 김기훈과 캐나다 선수 모두 뒷발이 빙판에서 떨어져 있는데, 현재는 피니쉬라인 통과시 스케이트날이 빙판에서 일정 정도 이상 들리면 실격이 주어진다.[3] 직접적인 계기는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당시 전이경의 금메달이었다. 당시 전이경은 양 스케이트날이 모두 들린 상태로 날을 내밀어 피니쉬라인을 통과했다. 위쪽의 1000미터 결승전 영상을 봐도, 김기훈과 캐나다 선수 둘 다 똑같이 날들이밀기 피니쉬를 하고 있다. 전이경의 경우와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