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질(질병)
1. 기본정보
痢疾, dysentery
이질은 시겔라(Shigella)균[1] 에 의해 발병하는 세균성 이질과 열대지방에서 주로 발생하는 아메바에 의한 아메바성 이질이 있다. 대장과 소장을 침범하는 급성 감염성 질환으로 제1군 법정 전염병이다. 환자 또는 보균자가 배출한 대변을 통해 구강으로 감염되며, 매우 적은 양(10∼100개)의 세균도 감염을 일으킨다. 대표적 증상이 피가 섞인 피똥을 싸는 것이므로 소설 등에서는 등장인물이 피똥을 싸는 것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무서워 공포에 휩싸이는 것으로 흔히 묘사된다. 그래서 이질을 적리(赤痢) 라고도 일컫는다. 하지만 피똥을 싸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1억 6500만 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환자 중 69%가 소아), 2000년대 이전에는 이 중 0.5%가 사망하는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최근에는 세균성 이질로 인한 사망자수가 감소하였다. 국내에서는 2000년에 2,462명의 환자가 발생한 이후 발병률이 꾸준히 줄어 2007년에는 131명의 환자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 국외유입 사례가 많이 나오는 추세라 현재도 연간 100명대의 환자가 나오고 있다.[2] 발열, 구역, 복통, 그리고 후증(잔변감)을 동반하는 소량의 점성, 혈성 설사가 흔한 증상이다.
2. 원인
위생상태가 개선된 현대에서는 잘 걸리지 않는 병이지만, 대개 시겔라 보균체의 '''대변'''에 있는 균이 식수나 음식, 손이나 생활을 통해 입으로 들어가서 발생한다. 그래서 대변 후나 음식을 조리하거나 먹기전에 손을 잘씻고 물과 음식을 잘 끓여 먹으면 감염을 줄일 수 있다. 과거에는 학교, 군대, 교도소 등 밀집된 인원이 수용된 장소에서 많이 걸리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2000년 이전만 해도 발병자수가 1000명 가량 되었는데, 이후로 감소하였다. 현재는 후진국에 여행 갔다온 사람들 위주로 발병하고 있다.
위생적이지 않은 화장실 환경, 비위생적 식수나 부엌 등 음식조리 환경, 화장실과 식수원이 인접해있다든가 대변을 비료로 주어 경작하는 채소 등 대부분 식수나 음식 또는 손이나 손톱, 문 손잡이 등 생활환경이 대변에 오염되어 전염된다. 또 배변 후 손씻기를 게을리 한다든가 음식을 조리하거나 식사하기 전에 손을 씻지 않는다든가 손가락을 빤다든 하는 비위생적인 환경이나 습관이 이질의 주요원인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티푸스와 함께 전근대적 군대나 감옥 등 집단 수용시설, 가난한 하층민, 유랑민이나 개척 이주민, 부랑자, 거지 등 비위생적 생활환경으로 인한 질병의 대표였다. 이질 때문에 군대가 큰 타격을 입어 전투도 않고 물러나는 등 전쟁을 좌우하기도 했다.
인도는 화장실 문화가 없어서 13억 인구 중 5억은 집에 화장실이 없고 야외에서 대소변을 해결하기 때문에 이질이 매우 흔한 질병이다. 하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질 발병률이 높다고는 할 수 없다. 같은 인도인도 이슬람 인도인들이 오히려 더 가난한 편이지만 이들은 종교적 이유로 손을 자주 씻고 화장실에서만 용변을 보는 등 위생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에 힌두 인도인보다 이질 발병율이 월등히 낮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인도는 국가적인 사업으로 화장실 보급운동을 벌여 마을마다 화장실을 건설하고 있으며 화장실 1억 개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같은 당뇨병이라도 관리가 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20년 뒤, 30년 뒤, 40년 뒤 사망이 갈리듯 개개인의 습관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아프리카는 더욱 심각하여 오랜 내전 등으로 생활 기반 등이 황폐화된 데다가 가뭄 등으로 흙탕물조차도 감지덕지하며 마셔야 하는 상황이기에 사람들이 무방비하게 이질에 노출되어 있고 거기에 사람들이 위생 등에 무지하고 현대 의학을 불신하기에 한 번 이질이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 실제로 슈바이처가 랑바레네 지역에 번진 이질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이런 원주민들의 행동 때문에 굉장히 고생했다. 수 차례 경고도 하고 윽박도 질러봤지만 그다지 먹혀들지 않았다고.
특히 17세기 초, 30년 전쟁 때에는 영국군이 프리드리히 5세의 군대를 지원해 유럽대륙에 오면서 이질도 같이 퍼졌는데, 수많은 독일 주민들이 이질과 티푸스로 고생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 백년전쟁 당시 아쟁쿠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잉글랜드의 국왕인 헨리 5세도 계속 프랑스를 침략하던 도중 이 병에 걸려 죽었다. 프랑크 왕국의 뚱보왕 루이 6세도 1137년 이 병으로 죽었다.
잉글랜드는 16세기를 전후해 여기저기 탐험을 많이 했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중앙아메리카 지역에 이질이 발생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1세의 맹장(猛將)인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 역시 탐험을 하다가 파나마 근처에서 이질로 사망했다.
일본군 역시 태평양 전쟁 당시 이질로 상당한 고생을 했는데,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봐도 이질로 죽어나간 병사가 나올 정도다. 심지어 전간기에도 항공모함에서 이질이 도는 사태가 몇 차례 발생했다. 이질은 과거 군대에서는 항상 따라다녔던 동반자 같은 질병이었던 셈. 미국 역사에서도 서부개척시대에 동부에서 서부로 통하는 오리건트레일을 통해 이주하던 서부개척민들의 마차 행렬을 괴롭힌 대표적인 질병이기도 하다.
물론 현대에는 위생상태가 많이 개선되어 이럴 일이 없지만, 아직도 후진국에선 발병률이 높은 병이다. 한국에서도 연간 100여 건 이상 발병하는데 3/4은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후 발병하고 있다. 동남아 여행 때에는 특히 식수 위생에 신경을 써야한다.
3. 증상
발열, 구역, 복통, 때로는 독소혈증, 구토, 후증(잔변감)을 동반하는 설사가 주요한 증상이다. 일반적으로 변에 혈액, 점액, 고름이 섞이는 경우가 많고, 약 1/3은 수양성 설사(물 설사)를 한다. 소아는 경련을 보이기도 하며, 균혈증은 대개 발생하지 않는다. 증상이 없거나 가벼운 증상으로도 나타난다.
4. 치료
수분과 전해질 보충 등의 대증요법과 환자 본인의 의지와 적응력을 지지하는 지지요법이 중요하다. 항생제는 이질의 이환 기간과 중증도를 경감시키고, 균의 배출 기간을 단축시켜 중증인 경우나 집단시설 등에서 집단 치료가 필요한 경우 사용한다. 다제 내성균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항생제는 분리된 균이나 감수성 검사 결과에 의해 선택하고, 지사제나 소화관 운동 억제제는 금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