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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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현직 축구 지도자이다. 노상래와 함께 데뷔하자마자 득점왕을 차지한 유이한 선수다.
현재는 대신중학교에서 감독을 하고 있다.
2. 선수 시절
2.1. LG 치타스 입단
U16, U19, 올림픽 대표팀까지 거친 엘리트 선수였던 임근재는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올림픽 대표팀에서 연속 골을 터뜨려 프로 팀들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1991년 올림픽 대표팀이 임근재의 2골을 활약을 앞세워 LG와의 연습경기에서 4:0 대승을 거두자 더욱 주목받았고, 그 후에도 서정원과 함께 올림픽 대표팀의 주포로 활약해 끊임없는 관심을 받았다.
그러던 와중 1992 시즌을 앞둔 드래프트에서 서정원, 김병수, 정광석, 신태용 등 올림픽 대표팀 출신 대어들이 불참을 선언했고, 임근재는 그나마 드래프트에서 믿고 뽑을 만한 유일한 선수였다. 1991 시즌 꼴찌였던 LG 치타스의 지명을 받고 프로에 데뷔했다. 이 때 서정원도 LG에 입단했는데, 서정원이 1순위 지명을 받았고 임근재는 3순위 지명을 받았다. 2순위는 올림픽대표팀 GK 김봉수. 그 밖에도 K리그 6개 구단의 피튀기는 스카우트 전쟁이 있었지만 주제에서 벗어나므로 생략하겠다.
역대급 스카우트 경쟁을 증명하듯 1992 시즌 신인들의 활약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는데, 신태용은 신인왕을, 홍명보는 리그 MVP를 수상했다. 임근재 역시 1992 시즌에 10골로 득점왕을 차지하여 이름값을 증명했다. 신인이 득점왕을 차지한 첫번째 사례이며, 이 기록은 1995년 전남 드래곤즈의 창단 멤버로 입단한 노상래가 2번째로 기록하게 된다.
프로에서는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임근재였지만, 역대급이었던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 최종 명단에 드는 데 실패했다. 한솥밥을 먹던 서정원은 올림픽 때문에 프로에서는 활약이 부족했지만 올림픽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국가대표팀에서도 승승장구했고, 미국 월드컵에도 무리없이 출전하게 된다.
2.2. 너무나 빨랐던 은퇴
하지만 너무 빨리 빛을 본 탓일까. 170cm의 작고 왜소한 체격의 임근재는 피지컬의 한계를 넘지 못했고, 스타일이 간파되어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1993 시즌 3골, 1994 시즌 2골에 그쳐 해가 갈수록 점점 초라해져 갔으며 감독의 구상에 들지 못했고, 돌파구를 모색하고자 포항으로 이적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프로 5년차를 맞이하던 1996 시즌에 너무나 허무하게 은퇴하고 말았다.
3. 지도자 생활
임근재는 유소년 지도자로서 훌륭한 재능을 가졌는데, 정조국, 조재진, 구자철, 서정진, 유병수 등 많은 골잡이들을 프로로 이끌었다. 특히 구자철은 J2리그 진출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임근재 감독이 제주 유나이티드의 정해성 감독에게 구자철을 추천하여 제주에 입단할 수 있었다.
K3리그 팀 서울 유나이티드의 창단 감독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