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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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現 지도자.'''놋신''', '''캐넌 슈터'''
전남 드래곤즈 레전드.
9대, 11대 감독을 맡았으며 2020시즌 기술고문으로 팀에 복귀했다.
2. 클럽
숭실대학교를 졸업하고 1993년 실업 축구 팀인 한국주택은행 축구단에 입단하였다. 이후 1995년 전남 드래곤즈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면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첫 시즌에 16골 6어시스트를 기록하여 득점왕과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전남에서 선수 생활 대부분을 보내며 153경기 48골을 기록하였다. 전남 구단에서는 2002 시즌 후 노상래에게 현역에서 은퇴하여 코치로 활동해 줄 것을 제안했으나, 노상래는 현역 의지를 내비치며 전남에서 방출되었다. 이후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 리그 진출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2003년에 새로 창단하게 되는 대구 FC의 창단멤버로 입단하게 된다.
시즌 내내 허덕이던 팀에서 9월 21일에는 로만 지발라와 전반 25분만에 교체 투입하여, 상대팀 수비진을 달고 다니며, 팀의 오랜만에 승리에 기여하거나 10월 1일 대전 시티즌 전에서는 이상일과의 패스 플레이로 도움을 기록하는 등의 활약을 펼치며, 고참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시즌중 40-40 클럽에 가입했다.
2004년에는 41번으로 등번호를 확정하며 터키로 팀과 함께 전지훈련을 떠났다.
시즌 개막 후 인천 유나이티드 전의 5:0 승리에 기여하는 한 골을 넣기도 하고 4월 넷째주 금주의 키카로 선정 되기도 했다.
그리고 2004년 8월 18일 제주 유나이티드 전에서 은퇴식을 가지기로 했다.
이날 가졌던 은퇴식은 평일 + 우천 크리로 2,875명의 관중이 모인 가운데 치뤄진, 일명 눈물의 은퇴식으로 종종 회자된다.
3. 국가대표
1995년 성인 대표에 데뷔하였고, 통산 25경기에 출장해 6골을 기록하였다.
4. 지도자 생활
4.1. 코치
은퇴 후 2005년 김희태축구센터 코치와 2007년 아주대학교 축구부 코치를 맡으며 본격적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2008년 전남 드래곤즈의 코치직을 맡았으며 2012년 강원 FC의 수석코치를 잠시 맡았다. 2012년 8월부터 전남 드래곤즈의 수석코치로 부임하였다.
2014 시즌, 크리즈만을 영입할 때, 에피소드가 있다. 크리즈만의 경기 영상이 전남 사무실에 도착하고 전남 보드진은 그의 영상에 찬사를 보냈으나 전남의 사장 박세연이 실제 모습을 봐야지 영입을 확정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노상래가 직접 크로아티아로 가서 그의 활약을 지켜봤다. 또한 오르샤 선수의 능력을 확인하고 추후에 꼭 스카웃할 것을 마음 속에 담고온 일화도 있다.
4.2. 전남 드래곤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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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하석주 감독이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후 후임으로 전남 드래곤즈의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구단 최초로 구단 선수 출신 감독이 되었다.
이후, 국가대표팀에서 물러난 김태영을 수석코치로 임명하는 등, 자신의 팀을 만들고 있는 중. 특이한 것은 노상래와 김태영이 동갑인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4] , '''팀 골키퍼인 김병지와도 동갑이다.''' 심지어 생일로 따지면 김병지 > 김태영 > 노상래이다. 감독이 수석코치보다 늦게 태어나고, 수석코치가 선수보다 더 늦게 태어난 것.[5]
나이에 비해 동안이라서 한때 전남에서 선수로 함께했던 김봉길 전 인천 감독은 노상래에게 "얼굴 금방 상할 거다"라고 말했을 정도...
2016 시즌에는 시즌 초반 9경기에서 1승 4무 4패에 그치면서 팀이 11위까지 떨어지는 등 부진한 성적이 계속되자 결국 5월 5일 인천전 무승부 직후 인터뷰에서 사퇴를 암시하는 말을 하였다. 팀이 부진한 건 맞지만 그 책임을 모두 감독에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고 팀의 레전드를 떠나보내는게 쉽지 않은 일이기에 전남 팬들이랑 프런트는 만류했고, 결국 프런트의 끈질긴 설득으로 자진사퇴를 취소하고 그대로 팀을 지휘하게 되었다.
하지만 팀은 크게 좋아지지 않았으며, 6월까지 부진은 이어지면서 17경기 동안 단 3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팀에 시즌 중반 합류한 자일과 토미가 맹활약하고 전술을 포백에서 스리백으로 전환하면서 후반기에 팀 성적이 급상승했고, 상승세를 이어가며 감독과 선수들의 노력으로 '''창단 첫 상위 스플릿 진출 성공'''의 위업을 달성해냈다!
2016 시즌 스플릿 A에 진출해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 가능성이 생김으로서 AFC에서 요구하는 P급 지도자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노상래 감독이 시즌 중반 수석코치로 내려가고 P급 지도자 자격증을 소유한 FC서울 코치 출신 송경섭 감독으로 영입되었다. 물론 이는 형식적인 조치로서 송경섭은 바지감독이고 수석 코치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비선감독으로 팀을 이끄는 형식이었다.[6]
AFC의 감독 규정 완화로 인하여 2017 시즌부터 다시 감독직에 복귀했지만 시즌 초반 리그 4경기 연속 무승을 거두며 불안하게 시즌을 시작했다.
인천과의 리그 5라운드에서는 변화를 꾀하며 2016시즌 후반기 전남에 상승세를 안겨준 스리백 대신 포백으로 전환했고, 레프트백 현영민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라이트백 이슬찬을 레프트백으로 이동시키는 급진적 변화를 취한 결과 마침내 리그 첫 승을 거두었으며, 연이은 울산전에서는 5:0 대승을 거두면서 리그 2연승을 거두었다.
현영민은 2017시즌 측면 수비 상황에서 여러번 흔들렸는데, 문제는 라이트백 최효진까지 만 34세의 적지 않은 나이로 좌우 측면의 기동력과 체력에 문제가 있었고, 그러한 탓에 전남의 스리백은 상대 측면 공격에 자주 노출되면서 노상래는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는데, 베테랑 현영민을 중앙 미드필더로 배치해 중앙 지역에 안정감을 높이고, 포백 전환 상황의 수비 숫자 문제도 잘 해결했다.
측면 구성 역시 변화를 주었는데, 라이트백 이슬찬이 레프트백으로 뛰고, 본래 레프트백 자원이던 신인 최재현을 우측면 공격수로 배치했다는데, 주로 쓰는 발과 반대 자리에 배치된 두 선수는 크로스 패스가 아니라 슈팅을 시도하기 좋은 동선에 자리하면서 이는 자연스럽게 골로 이어졌다.
사이드백 출신인 최재현이 우측면 공격수로 나서면서 화력 뿐 아니라 측면에서 최효진이 공격으로 가담할 때 수비 커버 부분에도 도움이 됐고, 최효진은 중앙 전방 지역으로 치고 올라가 김영욱, 최재현 등과 좋은 콤비 플레이를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승세는 오래 가지 못했고, 계속되는 팀의 부진으로 강등권에서 겨우 살아남자 시즌 종료 후 사임 의사를 밝혀 전남을 떠나게 되었다.
4.3. 부산 아이파크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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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다가 2019 시즌을 앞두고 부산 아이파크의 공격 코치로 합류하게 되었다. 감독은 전 수원 FC 감독인 조덕제, 그리고 같이 선임된 코치는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인 이기형이라서 초호화 코치진으로 불리며 주목을 받고 있다.
P급 라이센스를 준비할 때 함께 방을 쓰며 축구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등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그때 노상래가 조덕제 감독에게 기회가 되면 함께 하고 싶다고 먼저 제시했다고 하며, 조덕제 또한 노상래가 다른 팀 감독일땐 코치로 들어가겠다며 서로 약속했다고 한다.
한편 부산에 합류하면서 2007년 아주대에서 이어서 다시 한번 조덕제 감독을 보좌하게 되었으며, 1년간 팀을 잘 지도하며 부산의 승격을 이끌었다.
2019시즌을 끝으로 1부리그 승격이라는 결실을 맺었으니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고 판단, 부산 코치직에서 물러났다.
4.4. 전남 드래곤즈 기술고문
2020시즌을 앞두고 전남 드래곤즈의 기술 고문으로 부임한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곱지 못한 시선 역시 존재하는데, 최근 몇년동안 K리그 구단이 감독 경질시 팀 전력강화실장이나 기술고문 등을 신임 감독이나 대행으로 선임했었기 때문이며 노상래는 전남의 전임 감독이었기 때문에 이번 노상래의 기술고문 선임을 두고 일부에서는 전경준 감독이 물러날 것을 대비한 것 아니냐는 주장 역시 나오고 있다.
4.5. 울산 현대 유소년 디렉터
2021시즌을 앞두고 울산 현대의 유소년 디렉터로 부임한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5.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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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5월 25일 오후 1시 46분 피파 온라인 3에서 선수로 K리그 더 클래식 2차 선수 업데이트가 됐다고 밝혔다. K리그에서 활약한 일부 2002년 한일 월드컵 멤버들과 현재 K리그 클래식 및 K리그 챌린지 감독들이 추가되었다. 거기에서 노상래 감독이 선수로 만들어져 있다. 구체적인 스탯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 K리그 페널티킥 성공률 100%의 보유자이다. 28번의 기회 중 28번 모두 성공하였다. 성공률 100%는 20회 이상 페널티킥을 시도한 선수들 중 유일한 기록이며, 2020년 3월 기준 K리그 누적 페널티킥 성공률이 80%가 안되는걸 보면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 알 수 있다.
- 작은딸 노지원양은 전남 드래곤즈의 원정 경기까지 따라갈 정도의 열렬한 팬이며 심지어 구단 페북에서 모습을 비추기도 한다. 행여나 구단 페북에서 조우하게 되면 고소미에 주의하자
[1] 음력 1970년 12월 15일#[2] 전남 드래곤즈[3] 대구 FC[4] 김태영 코치 역시 노상래 감독과 마찬가지로 대학 졸업 후 실업팀(국민은행)에서 뛰다가 전남의 창단 멤버로 들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5] 참고로 FC 서울의 감독인 최용수는 아예 김병지보다 3세 어리다.[6] 이렇게 일이 복잡해진 원인은 P급 지도자 자격증은 A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낸 후 반드시 2년 이상의 코칭 경력이 필요하고 신청후 발급까지 1년이 소요되어서 준비를 해도 금방 얻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며, 취득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만 천만원 가까이 소요되는 등 상당히 취득하기 어려운 자격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