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철

 


'''구자철의 역임 직책'''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하대성
(2013)

'''구자철
이청용
(2013~2014)'''


이근호
(2014)
기성용
(2014)

'''구자철
(2014)'''


기성용
(2015)

'''구자철의 수상 이력'''
[image] '''도움왕'''
'''2009년'''

'''2010년'''

'''2011년'''
루이스
(전북 현대 모터스)

'''구자철'''
'''(제주 유나이티드)'''

이동국
(전북 현대 모터스)

[image] '''팬타스틱 플레이어상'''
'''2009년'''

'''2010년'''

'''2011년'''
이동국
(전북 현대 모터스)

'''구자철'''
'''(제주 유나이티드)'''

이동국
(전북 현대 모터스)

'''2010 K리그 베스트 XI '''
FW
김은중
FW
데얀
MF
몰리나
MF
윤빛가람
MF
'''구자철'''
MF
에닝요
DF
홍정호
DF
아디
DF
사샤
DF
최효진
GK
김용대

<color=#373a3c> '''알 가라파 SC No. 10 '''
'''구자철
具滋哲 | Koo Ja-Cheol
'''
'''출생'''
1989년 2월 27일 (35세)
충청남도 논산시
'''국적'''
[image] 대한민국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1]
'''신체'''
184cm, 76kg
'''등번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13번[2]
제주 유나이티드 - 7번
FC 아우크스부르크 - 19번[3]
알 가라파 SC - 10번
'''소속팀'''
'''제주 유나이티드 FC (2007~2011)'''
VfL 볼프스부르크 (2011~2014)
FC 아우크스부르크 (2012~2013 / 임대)
1.FSV 마인츠05 (2014~2015)
'''FC 아우크스부르크 (2015~2019)'''
알 가라파 SC (2019~ )
'''국가대표'''
76경기 19골 (대한민국 / 2008~2019)
'''SNS'''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colbgcolor=#ffcf03> '''본관'''
능성 구씨[8]
'''가족'''
부모님, 형 구자충
아내, 아들 (2014년 3월생), 딸 (2016년 10월생)
'''학력'''
충주중앙초등학교
대성중학교#s-2
보인고등학교
전주대학교 축구학과
'''주발'''
오른발
'''병역'''
병역특례[9]
'''종교'''
무종교[10]

1. 소개
4. 플레이 스타일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5.3. 통산 기록
5.3.1. 국가대표
6. 여담
7. 둘러보기

[clearfix]

1. 소개


구자철은 대한민국의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미드필더이다. 현재 카타르 스타스 리그의 알 가라파 SC에서 뛰고 있다.
강등권이였던 FC 아우크스부르크를 멱살캐리해 잔류시켰으며 마인츠 05에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이는 등 아시아 최고의 분데스리거 한명으로 평가받는다.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 '''

4. 플레이 스타일


활동량, 탈압박, 시야, 패스센스, 판단력, 볼키핑, 볼터치, 민첩함, 득점력이 뛰어났던 한국 축구 역사 탑급 공격형 미드필더.[4] 그 중 탈압박 능력과 볼 터치는 분데스리가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독보적이었다.
구자철의 롤모델이 지단이다보니 지단을 보며 플레이를 연습했다고 하며 구자철의 실제 플레이도 지단과 유사한 결을 지닌다. 열악한 한국 축구 유소년 교육 환경에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기술과 감각을 지녔으며 동시에 헌신적인 플레이로 팀에 높은 영향력을 끼친다. 공헌도에 비해 평가절하되지만,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팀의 진짜 핵심 플레이어로 꼽는다.
본래 수비형 미드필더로 시작했지만, 뒤를 받쳐 주는 선수가 있을 때 발휘되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으로 주목받았다. 제주 시절 좋은 퍼스트 터치와 안정적인 볼 키핑, 힐 패스를 비롯한 감각적인 패스능력, 슈팅력으로 도움왕, 판타스틱플레이어선정, 최다 베스트11, 시즌 베스트11등에 호명되며 K리그를 말 그대로 씹어먹었다. 그 때 그의 나이 고작 21살.
이러한 공격의 윤활제 능력은 11-12시즌, 14-15시즌 아우크스부르크에서도 진가를 발휘하였고. 구자철은 사실상 팀의 에이스였다. 아우크스부르크시절, 안정적인 볼키핑으로 역습의 템포를 조절하거나, 원터치 패스로 역습의 흐름을 유지하는 플레이는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
기성용에 비해 건장함은 떨어지지만 신체 밸런스와 순간 스피드가 더 뛰어나고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움직임이 좋으며 숏 패스, 중거리슈팅 능력도 갖추고 있어 공격형 미드필더로서도 훌륭했다. 2011아시안컵 당시 이러한 공격능력이 십분 발휘되어 득점왕을 수상하였다. (당시 나이 22살.).
국가대표팀에서 기성용이 안정적인 후방빌드업으로 팀의 볼 점유를 높이는 미드필더라면, 구자철은 감각적인 패스로 역습 템포를 살리는 미드필더이자 기성용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더 강한 압박을 이겨내고 볼을 소유하거나 팀원들의 패스 선택지가 되거나, 상대의 빌드업을 방해하기 위해 부지런히 뛰거나 때에 따라선 2선 중앙, 톱으로 올라가 득점을 노리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패널티 박스 침투는 3선 미드필더로 시작한 선수치고는 상당했기 때문에 대표팀 경기가 고구마처럼 답답해질때 한방을 기대하고 쓰는것. 다만 이게 잘 안풀리는 경우 수비력이 좋지못한 기성용에게 과부하가 걸리는 부작용이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미친듯이 뛰며 이런 상황을 커버했지만 나이가 들며 부상이 잦아지고 신체능력이 떨어지면서 대표팀 말년에는 비판을 받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사실 한국 국가대표팀의 경기에선 본인의 장기가 두드러지진 않았다. 한국 국가대표팀의 경기는 상당수 내려앉은 아시아팀을 상대로 하는 경기다 보니 좋은 방향전환패스와 이따금씩 들어오는 압박을 벗겨내는 턴을 보여주는 기성용. 과감한 패스와 드리블로 기회를 창출하는 이청용이 더 돋보일 수 있는 경우가 많았고, 구자철의 장점인 원터치패스, 볼키핑, 활동량, 시야 등은 라인을 끌어올리려는 강팀을 상대로 할 때 돋보였다. 대표적인 예시로 아우크스부르크시절, 2014월드컵 러시아전, 2018월드컵 독일전을 들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졌던 잦은 무릎 부상으로 인해 재능을 만개하진 못 했으나, 높은 프로의식으로 극복하고 유럽 빅리그에서 오랜기간 플레이하며, 심지어 아우크스부르크 역대 레전드 베스트11에 랭크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 AFC 아시안컵 득점왕: 2011
  • K리그1 베스트 XI: 2010
  • K리그1 도움왕: 2010
  • K리그1 팬타스틱 플레이어상: 2010
  • K리그 올스타전 MVP: 2013
  • 아우크스부르크 역대 베스트 XI: 2020

5.3. 통산 기록



5.3.1. 국가대표


  • 2019년 1월 16일 기준
연령
출전

U-17
0
0
U-20
16
5
U-23
16
5
A대표
76
19
종합기록
108
29
  • 골 기록
'''날짜'''
'''장소'''
'''상대팀'''
'''결과'''
'''대회명'''
2010.1.9
요하네스버그
잠비아
2:4 패
친선경기
2010.2.7
도쿄
홍콩
5:0 승
2010 동아시안컵
2011.1.10
도하
바레인
2:1 승(멀티골)
2011 아시안컵
2011.1.14
도하
호주
1:1
2011 아시안컵
2011.1.18
도하
인도
4:1 승
2011 아시안컵
2011.1.28
도하
우즈베키스탄
3:2 승
2011 아시안컵
2011.6.7
전주
가나
2:1 승
친선경기
2011.11.15
베이루트
레바논
1:2 패
2014 월드컵 3차예선
2012.6.12
고양
레바논
3:0 승
2014 월드컵 최종예선
2013.9.6
인천
아이티
4:1 승
친선경기
2013.10.15
천안
말리
3:1 승
친선경기
2014.6.22
포르투 알레그리
알제리
2:4 패
2014 월드컵
2015.3.27
대전
우즈베키스탄
1:1 무
친선경기
2015.10.8
쿠웨이트 시티
쿠웨이트
1:0 승
2018 월드컵 2차예선
2015.11.12
수원
미얀마
4:0 승
2018 월드컵 2차예선
2016.9.1
서울
중국
3:2 승
2018 월드컵 최종예선
2016.11.15
서울
우즈베키스탄
2:1 승
2018 월드컵 최종예선
2017.11.14
울산
세르비아
1:1 무
친선경기

6. 여담


  • K리그와 올림픽 대표팀 시절까지는 팬들 사이에서 멘탈이 좋다는 칭찬이 많았다. 그러나 런던 올림픽 이후 대표팀에서의 부진과 홍명보호에서의 해외파 파벌 논란 이후 실제로는 멘탈이 형편없는데 팬들이 과대 포장된 것 아닌가 하는 말이 나온다. 언론 플레이나 팬 서비스가 좋다고 프로 선수로서 멘탈이 좋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 2014 브라질 월드컵 졸전 직후의 경험 드립이나 부진을 지적하는 여론에 대해 관심 없다는 식의 인터뷰를 해서 팬들에게 크게 실망을 주기도 했다.
  • 친정 팀 제주 유나이티드K리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비시즌 기간에는 반드시 제주를 방문하고 지역 방송에서 해설을 자처하기도 하며 런닝맨 등 여러 미디어에 출연했을 때에도 K리그에 대한 언급을 잊지 않았다. 또한 해외 생활을 마친 후 반드시 국내 무대로 돌아와 은퇴하겠다고 공언을 하여 제주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선수이다.
  • 2012 런던 올림픽을 전후해 그의 오글거리는 인터뷰가 화제가 되어 구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실제로 동료 선수의 부모님이 쟤는 무슨 말을 저렇게 느끼하냐고 하자 원래 그런 형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 외에 트위터에서 좀 심하게 진지한 멘션을 했다가 절친 기성용에게 까이는 일도 종종 있다.
  • FC 서울넬루 빙가다 감독의 추천으로 2010 서울과의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 호날두 에이전트 쪽에서 경기를 보러 왔었다고 한다. 이 에이전시는 축구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에이전트 중 하나인 조르제 멘데스의 회사다. 호날두 뿐만 아니라 무리뉴 및 거물 포르투갈 선수들과 스타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거대 에이전시다.
  • 구자철인데 KOO라고 쓰기 때문에 캡틴 쿠라고도 부른다.
  • 구자철의 아버지가 국가유공자이고 형은 스스로 ROTC로 병역 문제를 해결하면서[5] 동생 구자철에게 병역면제의 혜택을 밀어줬기 때문에 6개월간 공익근무만 이행한다면 군문제가 해결된다고 한다.# 근데 정작 본인은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에서 동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았다.
  • 올림픽 동메달을 취소당할 뻔했다. 2012년 올림픽 남자 축구 3, 4위전에서 구자철은 박종우와 같이 독도와 관련된 세리모니를 하려고 했는데 구자철의 경우는 주위의 코칭 스텝들이 문제를 일으킬 만한 행동을 하면 안된다고 말렸기 때문에 그냥 만세만 부르고 끝났다. 하지만 박종우는 독도 세리모니를 하는 바람에 박종우 혼자서만 동메달 수여가 보류되었다. 나중에 받긴 했지만.
  • 어린 시절 전투 비행단에서 자랐다고 한다. 아버지가 공군 장기 부사관 출신이었다고. # 이 인연 때문인지 공군 홍보대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 어째서인지 구자철이 기록하는 골들을 보면 평범하지 않은 자세나 상황의 골들이 많다. 그래서 일단 넣으면 멋있게 넣는다는 식의 반응이 많다. 이는 기본적으로 구자철이 침투나 쇄도 능력이 좋고 피지컬 역시 이런 쪽으로는 상당히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넘어졌다 벌떡 일어나는 속도는 가히 월드클래스(...).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벌떡 일어나는 움직임에 수비가 자주 당한다.
  • 운동선수치고 언변이 좋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끊김이나 더듬거림 없이 유창하게 말을 술술 해 나간다. 독일어로 유창하게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한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박주호의 자녀들인 박나은, 박건후를 데리고 다닐 적에 독일어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 12/13 시즌 아우쿠스부르크에서 뛰던 시절 프랑크 리베리와 충돌했던 사건이 유명하다. 기사 구자철이 리베리의 공을 뺏으려 하면서 발을 높이 들어 허벅지를 찍었고, 리베리가 공을 되찾으려는 과정에서 정강이를 가격하는 상황이 되었다. 넘어진 구자철을 보며 리베리는 손을 들며 사과의 제스쳐를 보였으나 구자철이 일어나서 달려들었고 막는 과정에서 구자철의 얼굴을 밀쳐냈다. 구자철도 지지 않고 뺨을 때렸고 이에 리베리가 다시 주먹으로 구자철 얼굴을 강하게 밀었다. 심판은 구자철에게 옐로카드, 리베리는 레드카드를 꺼내 퇴장시켰다. 국내 네티즌들의 기억과는 달리 구자철은 절대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유튜브 채널 개설 후 구자철은 당시 리베리와 충돌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 채널 이름은 구자철 offical[6] 대표팀,분데스리가 시절 각종 썰들을 풀거나 현재 뛰고 있는 카타르 리그에서의 경기 후 비하인드 에피소드, 대표팀 동료들과의 토크 등등 다채로운 컨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분데스리가, 대표팀 시절 썰은 대부분 본인이 과거에 작성한 일기장을 읽으며 그 시절을 회고하는 과정에서 툭툭 튀어나오는데 A대표팀 주전수준의 엘리트 프로선수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유럽 빅리그의 주전경쟁이 얼마나 힘든지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 야구에도 소질이 있다. 주 포지션은 투수. 독일 선수시절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투구를 했으며 가끔 사회인야구도 했다고. 자신의 유투브에서는 100Km/h대의 구속을 찍으며 2개 이닝을 무실점으로 막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 재활훈련 도중 알게된 야구선수 손아섭과도 친분이 있고 같이 유튜브 영상을 찍기도 했다. 이와 별개로 본인이 좋아하는 팀은 롯데 자이언츠가 아닌 고향을 연고로 하는 한화 이글스이다.
  • FC 아우크스부르크 역대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랐다! 특히 강등권 시절 구자철의 멱살 캐리로 강등권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그 후에도 여러 활약을 펼치며 팀에서나 팬들로부터도 레전드 대접을 받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자신의 유튜브에서 마인츠 시절 감독이던 토마스 투헬을 언급했는데 처음으로 1대1로 밥을 먹은 선수이자 이적 후, 처음으로 투헬에게 인사를 한 선수였다고 언급했다. 투헬 항목에 써 있듯이 투헬은 선수 관리 면에서 상당히 문제가 있는 감독으로 유명한데[7] 그런 투헬도 구자철은 상당히 마음에 들어한 듯 하다.

7. 둘러보기




[1] 공격형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소화할 수 있다.[2] 2019년 구자철이 은퇴한 이후로는 백승호가 잠정적으로 쓰고 있다.[3] 허나 11/12 시즌 첫 임대를 갔을때는 14번을 달았다. (임대 연장한 12/13 시즌은 7번)[4] 프로에서 처음 주목받기 시작한 당시에 위치는 3선 미드필더였지만 그 당시에도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공격적인 부분이 장기인 중앙미드필더 취급이었고 2011년 아시안컵에서 조광래가 과감하게 2선 중앙에 올려쓰고 난뒤부터는 사실상 2선 중앙과 때에 따라서 톱을 오가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굳어졌다. 물론 소속팀에서 3선을 아예 안뛴건 아니지만 그때도 자주 올라가는 역할이었다.[5] 2012년 6월에 전역[6] 슛별친으로 시작했지만 2020년 6월 구자철 offical로 이름을 변경했다.[7] 그나마 마인츠와 도르트문트를 거치면서인지 PSG와 첼시에서는 상대적으로 선수 관리를 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