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자물리학/역사
[각주]
1. 개요
코펜하겐 학파와 아인슈타인의 대립 이후 물리학은 고전물리학에서 현대물리학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현대물리학은 양자역학을 토대로 다시 재편성되는 과정에서 전자기학의 개념과 양자역학의 개념을 합성한 입자물리학이라는 학문이 등장하였다.
폴 디랙은 양자역학과 특수상대성 이론을 통합하여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이는 전자의 움직임을 양자역학적으로 기술해 내는데 성공하였다.
이 디렉의 방정식 덕분에 수많은 입자물리학자 들은 원자 내부의 움직임을 계산해 내고 새로운 입자들을 예측해 내는데 성공하였다. 대표적인 성과물로서 나타난 것이 표준 모형이다.
표준모형에 대한 예측 이후 과학자들은 LHC를 비롯한 대형 입자가속기를 만들어 입자물리학 연구에 박차를 가했으며 중력자를 제외한 기본 입자를 모두 발견하였다.
2. 기본입자에 대한 변천사
과학자들은 원자의 존재가 증명된 후 원자의 구조를 파헤치며 세상을 이루는 기본 입자에 대한 연구를 진행 해 왔다. 관측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계산법의 개발로 과학자들은 점점 더 작은 입자세계를 관찰 할 수 있게 되었다.
2.1. 톰슨의 음극선 실험 - 전자의 존재
19세기 중후반, 방전현상을 일으키는 진공관 연구로 음극선이 발견되었고, 음극선이 자기장에 휘는 것은 확인하였다. 전기장에 의해 휘는지 확인되지 않아, 빛인가 아니면 입자인가에 대한 논란이 크게 대립하던 시기였다. 영국의 물리학자 톰슨은 유리관안에서 진행하는 음극선에 전기장을 가했을 때 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으로, 음극선이 전하를 띈 입자로 이루어진 다발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 극(+/-) 확인
톰슨은 음극선이 직진중인 경로에 전기장을 형성했다. 음극선은 (+)극의 방향으로 휘었으며 그 결과 톰슨은 음극선이 (-)극을 띤다를 사실을 알아 냈다. 이를 통해서 전자의 질량과 전하로 구성한 중요한 물리량 $$ e/ m $$을 측정해낸다. 만약 질량이 0 이라면 이 값은 무한대 값이 나올 것이며, 유한한 값을 가진다는 것은 질량도 유한하고, 전하량도 유한한 어떤 입자라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음극선을 이루는 입자의 전하량이나 질량을 정확하게 측정 할 수 있다면 다른 물리량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된 것이다.(이 때 까지 각각의 물리량을 음극선 실험으로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후 밀리컨의 유적실험으로, 우리가 아는 전자의 전하값이 측정된다.)
이후에 톰슨은 스토니가 먼저 만들어낸 용어인 전자(electron)를 채용해 음극선의 입자 이름을 붙인다. 동시에 가장 가볍고 작은 수소이온의 값과 비교하면 무려 1/2000 만큼 작은 값이며, 가장 가벼운 입자라고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음극선의 전자가 원자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라 결론을 짓는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원자모형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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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의 원자 모형인 푸딩 모형
그러나 이 톰슨의 푸딩모형은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러더퍼드의 알파입자 산란실험은 이 양성자에 전자가 건포도 마냥 박힌 푸딩모형이 틀렸음을 암시했다.
2.2. 러더퍼드의 알파입자 산란실험 - 핵과 전자의 분리, 양성자의 발견
톰슨의 제자인 러더퍼드는 얇게 편 금속박(Au[금])에 헬륨원자핵(He2+)를 발사하는 실험을 진행하여 양성자의 존재와 원자핵의 존재를 밝혀냈다.
- 알파입자 산란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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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포도 모형처럼 어떤 딱딱한 껍질이 있고, 그 껍질에 알파선의 입자가 부딪혀 튕겨져 나온다면, 러더퍼드가 진행한 실험의 결과를 설명할 수 없었고, 쿨롱힘으로 인해 알파선이 움직이는 궤적이 휜다고 보았을 때 비로소 실험결과와 맞다는 사실로 부터, 원자핵이 전하를 띈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에 더욱 높은 에너지의 알파선을 쬐는 것으로, 특정거리보다 더욱 가까워 졌을 때, 쿨롱힘으로 튕겨져 나온다는 것은 여전했지만, 실험데이터가 바뀐다는 것을 통해서 원자의 크기와 원자핵의 크기를 유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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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더퍼드는 이 실험으로 원자가 대부분 빈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운데 원자핵이 존재하고 전자가 그 주위를 행성마냥 돌고 있는 형태의 원자 모형을 설계하였다. 다만, 이 모형은 기존의 전자기학에 의해 반박되었다. 전하를 띈 물체가 가속운동을 하면 제동복사(bremsstrahlung)를 방출 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전하를 강제로 움직이게 하면 적게나마 빛이 방출한다는 뜻이다.
이런 사실에 입각해 보면, 원운동이란 중심부를 향해 가속운동을 끊임없이 한다는 뜻이며, 한바퀴 돌 때마다 빛을 방사하며 점차 원자핵 내부로 다가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원자핵으로 구성된 물질이 쪼그라드는 것은 본적이 없으며, 게다가 안정적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2.3. 보어의 원자모형: 궤도의 불연속성
보어는 원자의 궤도가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정수배로 (n=1, 2, 3 ....) 갖는 다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미끄럼틀처럼 궤도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계단처럼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떤 물리량이 연속적으로 이루어 지지 않고 조건에 만족하는 정수배로 딱딱 끊어진 상태를 '양자화 되어 있다.' 라고 표현 한다. 보어는 합리적인 원자모형을 제시하기 위해 아래의 두 전제를 설정했다.
1) 양자조건: 원자속의 전자가 양자화된 궤도에 있을 때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고 안정한 상태로 존재 한다.2) 진동수 조건: 전자는 양자화된 궤도를 도약할 때(n=x → n=x+1 or n=x+2 → n=x) 그 궤도의 주양자수가 아닌 에너지 차이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빛의 형태로 방출한다.
이러한 두가지 전제를 바탕으로 보어는 '껍질 이론'을 세웠다. 보어는 원자 내부의 에너지는 양자화 되어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양자화 되어있는 한 구간 구간을 각각 껍질이라고 부르며 이 껍질에만 전자가 존재 할 수 있고 껍질 사에는 전자가 존재 할 수 없다고 설명 했다. 또한 전자는 에너지를 가하면 본래 궤도가 아니라 상위 궤도로 이동하는 도약이라는 것을 하는데 이때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전자가 있는 궤도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가해야지만 전이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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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자 모형을 통해 선스펙트럼과 붕괴에 대한 모순을 둘다 설명 할 수 있었다. 원자핵에는 껍질이 없기 때문에 붕괴 할 수 없고 일정한 에너지대의 에너지만 흡수하여 도약 하기 때문에 연속적인 스펙트럼의 백색광이 들어오면 특정 파장의 에너지만 흡수하여 그 부분이 제외된 흡수 선 스펙트럼이, 방전관을 통해 특정 원소의 빛을 내게 되면 하위 껍질로 도약한 만큼의 에너지를 빛으로 방출하여 방출 선 스펙트럼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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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양자역학의 시작
보어는 가장 합리적인 모형을 생각해 냈지만 이 역시도 한계가 있었다. 보어가 설명하는 원자 모형은 수소원자를 기준으로 한다. 즉 원자핵 하나에 전자 하나가 도는 가장 단순한 모형이다. 그러나 금, 아이오딘 같이 다량의 양성자와 전자를 가진 다원자분자의 선스펙트럼을 설명하지 못했다고 우리나라 중등 과학교육과정은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부분은 대략적인 부분이고 사실은 보어의 대응원리에 의해 양자적인 현상을 기술하는데 모순이 발생하였다.
2.4.1. 대응원리(Correspondence Principle)
대응원리는 보어가 최초로 고전역학의 둘레를 깨고 양자적인 원리를 적용하여 원자모형과 전자의 움직임을 설명할 때 당시의 물리학자들이 지속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면서 보어 본인의 원자모형을 개선하면서 스펙트럼의 진동수만이 아니라 강도를 비롯한 다른 요소들을 측정하기 위해서 탄생시킨 원리이다. 내용은 껍질의 양자수(n=1 등으로 표현되던 양자수)가 극한으로 증가할 때 양자역학에 의하여 기술되는 계의 성질이 고전역학에서 다루던 결과와 동일하다는 원리이다.
즉 양자적인 함수를 기술하기 위한 어떤 값에 극한을 취하면 그 결과는 고전역학에서 기술하던 함수의 결과와 같은 값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2.5. 현대의 원자모형 - 오비탈
보어의 수소원자모형 제안이후 플랑크, 보른,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디랙 등 쟁쟁한 유럽-미국 물리학자에 의해 양자역학이 연구 되었다. 지속적인 연구에 의해 현대의 원자모형은 불확정성의원리를 기본으로 하는 확률모형이 되었다. 불확정성의 원리를 간단히 기술하자면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히 측정이 불가능 하다는 원리이다. 즉 이전의 원자모형처럼 전자가 어떤 껍질에 있다라고 특정하는 것은 양자역학적으로 보았을 때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이에 물리학자들은 슈뢰딩거의 파동함수를 기반으로 하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고려한 오비탈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오비탈은 전자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률로 표현한 원자 모형이다. 이때 확률이나 위치는 슈뢰딩거의 파동함수의 결과값을 따른다.
쉽게 설명하면 "전자가 어디쯤 있다." 라고 설명하는 원자 모형이다. 이전의 원자껍질은 k l m n으로 가는 단일 껍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비탈은 s오비탈, p오비탈 같이 특정한 오비탈을 가진다. 이게 무슨말이냐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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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모형을 오비탈 모형이라고 한다. 보면 한 오비탈의 여러가지 형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의 모형에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s오비탈도 사이즈별로 1,2,3~n까지 있다. 이런 오비탈 모형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자의 위치를 기술한다.
이전의 원자모형은 "k껍질에 전자가 두개 있다." 라고 말했다면 오비탈 모형은 "s오비탈에 원자가 총 4개가 있는데 s1에 2개 s2에 두개가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각 오비탈에 들어가는 전자는 옥텟규칙에 만족하게, 전자의 스핀방향이 파울리 배타원리, 훈트규칙에 맞게 배치되게 된다.
이 원자모형을 통해 물리학계는 가장 모호한 방법으로 전자의 위치를 가장 정확하고 알맞은 방법으로 기술 할 수 있었다.
2.6. 양자역학과 입자물리학
양자역학의 연구로 새로운 원자모형을 개발한 한편 입자물리학분야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계기가 되었다. 솔베이 회의이후 양자역학 이론이 받아들여지고 물리학계가 재편성 되는 도중 입자물리학계에는 응집물질 물리학에 비해 많은 물리학자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2.6.1. 디랙
1927 폴 디랙 은 특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한 방정식을 발표했다. 이 디랙의 방정식을 통해서 입자물리학자들은 원자 내부를 계산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표준모형이 확립되어가고 있다.
2.7. 중성자, 그리고 새로운 소립자들의 발견
위와 같이 많은 논쟁 끝에 성공적으로 원자의 구조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는 가운데 몇 가지 의문점들 역시 생겨났다. 그 중 하나로 원자의 질량이 원자핵의 질량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원자핵의 질량이 양성자 질량의 정수 배에 거의 가깝다는 사실로부터 새로운 중성 입자의 존재가 대두되고 있었다. 사실 이걸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로 원자핵 안에 여분의 전자가 들어 있어 양성자들을 묶어주는 상황을 생각할 수 있고 실제로 1920년 대에는 이게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그 좁은 원자핵 안에 그 가벼운 전자가 오래 있을 수 없다는 것을 1930년대 들어 알게 되었다. 그 즈음, 새로운 중성 입자가 발견되었는데[1] , 이 입자의 정체에 대해 논의가 이어진 끝에 1932년 채드웍이 이 입자는 양성자와 비슷한 질량을 가진 중성 입자라는 사실을 밝혀내어 원자핵을 구성하는 또다른 입자의 존재를 밝혀내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중성자가 발견된 것이다.
다만 양성자-전자로 구성된 원자핵 모델이 폐기되고 양성자-중성자로 구성된 원자핵 모델이 대두되면서 또다른 의문이 생겨났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의문인데, '''모두 양성 전하를 띄거나 중성인 입자들이 어떻게 원자핵이라는 그 좁은 영역 만에 뭉쳐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의문 때문에 양성자-전자 원자핵 모델이 오랫동안 지지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여기서 가장 자연스러운 답은 '''전자기 상호작용 외에 다른 힘이 존재하여 이 힘으로 인해 양성자와 중성자가 묶여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힘은 원자핵 안의 좁은 영역에서만 작동하고 그 바깥으로 가면 그 세기가 빠르게 감소하는 힘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때까지 중력과 전자기력만 관측되어 온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테니. 사실 프로카 방정식[2] 같은 걸 통한 수학적 논의는 이미 있어 왔고, 특히 이 방정식으로 기술되는 힘의 매개 입자는 질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밝혀진 상황이었다. 유카와 히데키는 1935년에 이러한 사실을 원자핵 내부에 적용시켰고 특히 앞서 양성자-전자 원자핵 모델을 무너뜨렸던 그 불확정정 원리를 거꾸로 이용해 이 입자의 질량이 200 MeV 정도일 것으로 예측했다.[3] 이 질량이 양성자와 전자 질량의 (로그 스케일에서) 중간 쯤 된다는 점에서 이 입자의 이름을 중간자(meson)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예측에 들어 맞는 입자인 파이온이 발견됨에 따라 유카와 히데키의 이론이 맞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한편 유카와의 이론으로부터 제안된 새로운 상호작용을 강한 상호작용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이다. 전자기력보다는 분명 강한 녀석이라서 붙여진 이름.
그런데 이 입자가 발견되는 과정에서도 전혀 예기치 못한 발견이 이루어졌다. 1936년, 실험물리학자 데이비드 앤드류에 의하여 파이온보다 뮤온 입자가 먼저 발견된 것이었다. 질량은 대락 106 MeV/c2로, 유카와가 예측한 질량과 비슷해서 처음 발견되었을 때에는 중간자로 오인받았으나[4] , 아이작 라비[5] 가 진행한 추가 연구를 통해 이 입자는 강한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전혀 다른 타입의 입자. 다만 연구가 거듭될 수록 더 무겁고 수명(2 μs 정도)이 짧다는 것만 제외하면 전자와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입자가 발견된 게 얼마나 뜬금 없었는지, 라비는 이걸 두고 '''"누가 이거 주문한 거야!(Who ordered that!)"'''라 말했다고.(...)
그 외에도 다른 영역에서 다양한 입자들의 존재가 예측되었고 관측이 이루어졌다. 중성미자의 발견은 어찌 보면 극적인데, 그 발단이 된 실험의 결과가 참 난감한 것이었기 때문. 베타 붕괴로 나온 전자와 남겨진 핵의 에너지와 운동량을 관측한 실험이었는데, '''붕괴 전 에너지, 운동량의 총합과 붕괴 후 에너지, 운동량의 총합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바로 난리가 났는데, 물리학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던 에너지 보존 법칙과 운동량 보존 법칙이 정면으로 위배되는 상황이었기 때문. 이때, 그 유명한 파울리가 1930년에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무엇이냐면, '''베타 붕괴가 이루어질 때 전자 외에 아주 가벼운 질량의 중성 입자가 같이 생성된 것'''이라는 제안. 실제로 데이터를 보면 이러한 예측이 잘 들어맞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전자보다 훨씬 더 가벼운 중성 입자라 관측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는데, 당시 지식과 기술로는 관측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정도. 그래서 파울리는 이 제안을 두고 "나는 감히 관측될 수도 없는 입자를 가정한 죄를 저릴렀다"라고 자조했다고.[6] 하지만 이 '관측될 수 없는 입자'는 결국 1956년 C. 코완(Clyde Cowan)과, F. 라이너스(Frederick Reines) 등에 의하여 수행된 실험을 통해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 이 소식은 전보를 통해 당시 CERN에 있던 파울리에게 곧바로 전해졌으며, 파울리는 동료들과 그 자리에서 와인 한 궤짝을 비웠다고.
또다른 종류의 입자들이 발견되었다. 뮤온을 발견한 데이비드 앤드류는 그 전에 이미 엄청난 발견을 한 바 있다. 그는 고에너지 감마선을 매질에 투사하여 방출된 결과물의 궤적을 안개상자를 통해 얻었는데, 그 중엔 전자도 있지만 동시에 '''전자와 궤적 모양은 거의 똑같지만 방향이 정반대'''인 궤적을 얻었다. 즉, 질량과 전하량 크기는 똑같지만 전하량의 부호가 정반대인 새로운 입자인 것이다. 양전자, 즉 최초의 '''반입자'''가 발견된 것이다. 이 반입자는 사실 디랙이 예언한 바 있는 입자이다. 디랙이 상대론적 양자역학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디랙 방정식을 발견했는데, 이 디랙 방정식의 결과를 해석하다 보면 반입자의 존재가 유도된다.[7] 이 공로로 앤드류는 1936년에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2.8. 더 많은 소립자들, 입자 동물원
이렇게 해서 원자 내부를 비롯한 여러 수수께끼들이 풀리는 것으로 보였다. 여기다 파인만, 슈윙거, 도모나가가 양자전기역학을 완성하여 진정한 상대론적 양자역학으로 원자 세계를 다룰 수 있게 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끝이 나려면 아직 멀었다. 뮤온을 필두로 '''아무도 주문하지 않은''' 입자들의 발견이 대거 쏟아지게 된 것이다. 파이온과 유사한 성질을 갖는, 즉 강한 상호작용을 하는 중간자들을 관측했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그것도 모자라 '''양성자보다 더 무거운''' 입자들도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입자 가속기의 발전에 힘입은 것인데, 그 전까지는 방사성 동위원소나 우주선 같은 한정된 자원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것들이 이제 그보다 높은 에너지의 반응을 통해 보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 많은 입자들이 발견되어 페르미는 이를 두고"내가 이 많은 입자들을 다 외울 수 있다면 진작에 식물학자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8]
3. 현대의 입자물리학과 표준모형 개발, 우주론
3.1. 입자가속기
현대 물리학에서는 거대강입자 가속기 LHC 등 입자가속기를 이용하여 새론운 원소 및 원자를 구성하는 입자를 발견하고 있다. 이 LHC에서 발견 된 입자중 가장 유명한 입자가 힉스 보손이다.
[1] 이 과정에서 그 유명한 마리 퀴리의 딸인 이렌 졸리오퀴리와 그녀의 남편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가 중요한 역할을 해내었다. 이 중성 입자를 특정 물질에 투사시켰을 때 높은 에너지의 양성자가 튀어나온다는 것이고, 이는 이 입자를 감마선이라고 가정했을 때 잘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다. 그 중성 입자가 우리가 아는 그 중성자라는 것을 '''거의 밝힐 뻔한 상황'''까지 간 것이다. 다만 마지막 유효타는 채드웍이 챙겨갔다. [2] 맥스웰 방정식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어떤 여분의 항이 더 붙어 있다. 이 항의 이름은 다름 아닌 '''질량항'''. 이 항이 존재하기에 매개 입자의 질량이 0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3] 200 MeV라는 수치를 계산하는 방법은 무척 간단하다.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위치의 불확정도와 운동량의 불확정도를 곱한 게 $$\hbar$$ 보다 크거나 같아야 하는데, 원자핵의 크기인 1 fm (= 1015 m)로 위치의 불확정도를 정하면 운동량의 불확정도의 최소값이 200 MeV/c임을 알 수 있다. 이게 곧 이 입자의 에너지가 가장 작을 때의 에너지라고 보면, 상대성 이론에 따라 그게 곧 질량이므로 이 입자의 질량을 200 MeV/c2로 볼 수 있다.[4] 그래서 한동안 '''뮤온 중간자'''라고 불리워졌다.[5] 핵의 자기 모먼트에 대한 연구로 1944년도에 노벨상을 받으신 분이다. 이 분 덕에 지금의 MRI가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곧 소개될 그의 한 마디만 봐도 그렇고 뭔가 유쾌한 양반이었다고.[6] 다만 이건 농담 삼아 한 말일 가능성이 큰 게, 이 제안을 편지 형식으로 부치기 직전 파울리는 어떤 사교 댄스 클럽에서 즐겁게 춤을 추고 있었다고 한다.(...)[7] 디랙의 바다를 이용한 해석으로 유명하다. 다만 이건 현대 입자물리학에서 더 이상 통용되는 방식이 아니며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다. 양자장론의 해석에 따르면 디랙의 바다 같은 걸 도입하지 않아도 디랙 방정식이 기본적으로 복소장(complex field)이라는 사실로부터 반입자의 존재가 유도된다. 양자장론 문서 참고.[8] 이 말은 한 학생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는데, 그 학생이 다름 아닌 뮤온 중성미자를 발견하고 쿼크-렙톤의 세대 개념을 정립시킨 레온 레더만(Leon Lederman)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