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디랙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image]
1932년

1933년

1934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P. A. M. 디랙'''
에르빈 슈뢰딩거

수상자 없음
[image]
'''Paul Adrien Maurice Dirac
폴 디랙
'''
'''본명'''
폴 에이드리언 모리스 디랙
'''출생'''
1902년 8월 8일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브리스톨[image]
'''사망'''
1984년 10월 20일 미국 플로리다탤러해시[image]
'''국적'''
미국 [image]
'''직업'''
물리학자
'''분야'''
물리학
1. 개요
2. 업적
2.1. 페르미-디랙 통계
2.2. 기타
3. 말년의 물리에 대한 평
4. 이야깃거리
4.1. 수학과 과학에 대해 남긴 말들
5. 기타


1. 개요


영국[1]물리학자. 양자역학, 양자전자기학의 탄생에 있어서 큰 기여를 했다. 1919년부터 1921년까지 브리스틀 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1921년부터 1923년까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나중엔 미국에 와서 플로리다 주립대학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교수를 하다가 죽었고, 플로리다에 묻혔다.
엄청 유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나, 고양이 때문에 이름이라도 들어본 에르빈 슈뢰딩거라거나, 고등학교 화학책에 나오는 닐스 보어와는 달리 물리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디랙이 현대물리학에 남긴 업적은 눈부시다. 한 논문은 '디랙의 업적은 보어와 대등한 수준이고, 디랙을 능가하는 것은 오직 아인슈타인뿐이다.'라고 평했다. 20세기는 물리학의 시대였던지라 본인이 원했다면 어느 정도의 명성은 얻을 수 있었을 것이지만, 과묵하고 수줍음을 타는 성격 때문에 별로 유명해지지 못했다. 일례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기자가 따라왔다. 그러자 하이젠베르크가 '''디랙이 바로 옆에 있는 데도 불구하고 "디랙은 지금 인터뷰할 수 없다"라고 대신 거절해줬다.''' 원래 성격이 그랬겠지만 어릴 때 아버지가 프랑스어로 대화하는 것을 강요해서 프랑스어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으면 하지 않았다고. 아버지와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아서 노벨상 수상할 때도 어머니만 초대하고 아버지는 초대하지 않았다.

2. 업적



2.1. 페르미-디랙 통계


고전역학맥스웰 - 볼츠만 분포가 있다면 양자역학에는 페르미-디랙 통계와 보즈-아인슈타인 통계가 있다. 이 두 통계가 양자역학의 두 기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페르미-디랙 통계를 따르는 입자는 페르미온, 보즈-아인슈타인 통계를 따르는 입자는 보존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만 보아도, 이 통계가 입자들의 성질에 얼마나 많이 관련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2.2. 기타


자하(magnetic charge: 자기홀극 magnetic monopole 이라고도 한다)가 존재한다고 가정, 전자기장에 저장된 각운동량을 계산하였는데 그 값이 전하와 자하의 거리에 무관했다! 근데 양자역학에 의해 각운동량이 양자화되어 있으므로, '''우주에 자하가 단 하나라도 존재하면 전하가 양자화되어 있는 이유가 설명이 된다.''' [2]
브라-켓 표기법을 고안해 양자역학에서의 계산이나 서술을 한결 더 간단하게 만들었다.
최초의 양자역학 교재를 저술했다. 유명한 브라-켓 표기법도 여기서 나왔다.
그 이외에도 양자장론이나 QED(양자전자기학)에 혁혁한 공을 많이 세웠다. 양자장론과 양자전자기학도 창시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
1928년 상대론적 파동방정식을 발표했다. 이 방정식을 기존 물리학에 도입하면 모든 전자들이 에너지를 다 잃어 음에너지 영역으로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디랙(디락)의 바다'라는 개념을 이론에 도입했다. 디랙의 이론에 의하면 반물질은 디랙의 바다에 존재하는 거품들로 이루어져 있다.[3][4]

3. 말년의 물리에 대한 평


재규격화(renormalization)에 큰 반감을 표했다. 재규격화란 간단히 말하면 방정식을 풀었을 때 나오는 무한대나 진동으로 발산하는 점들을 무시하는 것을 말한다.[5] 디랙은 "제대로 된 수학이라면 조그만 숫자를 0으로 근사해야지, 무한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0이라고 해버리면 되나"라면서 이걸 비판했다. 이에 대해서는 라마누잔합 문서를 참조하면 된다.

4. 이야깃거리


디랙은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이야깃거리로도 매우 유명하다. 극단적으로 논리를 중시하는 태도와 소극적인 성격이 재밌는 일화를 많이 낳았기 때문.
  • 디랙의 과묵함 때문에 디랙의 동료들은 한 시간에 한 마디 하는 것을 1디랙이라 정의했다.
  • 디랙의 말의 대부분은 "네" "아니요" "모르겠습니다" 였다.
  • 저녁을 먹다가 다른 사람이 "바람이 많이 부네요"라고 하자 일어나서 문을 열더니, "정말이네요."라고 확인을 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 부모님과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오죽하면 '나는 부모란 원래 자식을 아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형이 죽었을 때)부모님이 슬퍼하셔서 놀랐다' 라는 얘기도 했다고...
  • 디랙이 (城)에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손님이 이 성에는 자정에 귀신이 나온다고 말을 하자 디랙이 되묻길, "자정이라는 게 그리니치 표준 시간 기준인가요, 서머타임 기준인가요?" [6]
  • 많은 과학자들처럼, 디랙도 다른 과학자들이 발표를 할 때 졸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코펜하겐에서 오스카르 클레인니시나 요시오가 클레인-니시나 공식의 유도를 발표하고 있었는데, 칠판에 적힌 것과 논문에 적혀 있는 것이 다르다는 지적을 했다 (부호 하나가 틀렸었다). 그러자 니시나가 확인을 하더니, "논문에 있는 게 맞습니다. 제가 유도하면서 부호 실수를 하나 했나 보네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디랙이 한쪽 눈을 뜨더니, "홀수 번 실수했겠지!"라고 했다.
  • 디랙의 문장은 간결하고 분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닐스 보어가 논문을 쓸 때 계속 문장을 고치고 고민하면서 "이 문장을 어떻게 끝내야 될지 모르겠네."라고 했더니 디랙이 말하길, "나는 끝마칠 줄 모르는 문장은 시작하지 말라고 학교에서 배웠네만."
  • 토론토 대학에서 디랙이 강연한 후 질문을 받았는데, 누가 "디랙 교수님, 칠판 왼쪽 위에 있는 방정식을 어떻게 유도하셨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디랙, "그건 질문이 아니라 코멘트로군요. 다음 질문?"
  • 이것도 위와 비슷한 에피소드인데, 디랙이 칠판에 수식을 적던 중 디랙답지 않게 실수를 했다고 한다. 한 학생이 "교수님, 2번 방정식이 이해가 안 됩니다."라고 말했으나, 디랙은 계속 수식을 써내려갔다. 못 들었다고 생각하고 학생은 다시 얘기했으나, 이번에도 디랙은 계속 수식을 쓸 뿐이었다. 이러자 다른 학생이 "교수님? 학생이 질문하고 있는데 왜 계속 무시하십니까?"라고 하자, "아, 질문이었어? 그냥 선언하는 줄 알았지..."
  • 코펜하겐의 한 파티에서, 디랙이 여자의 얼굴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최적의 거리가 있다는 이론을 폈다. 거리가 무한대라면 여자가 보이지 않을 것이고, 거리가 너무 가깝다면 눈의 주름이나 피부 결함이 잘 보이기 때문에 흉해보인다는 것이다. 러시아 물리학자 조지 가모프가 "이봐, 폴. 자네는 여자 얼굴을 가장 가까이서 본 게 얼마나 가까이였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디랙이, "아." 하더니 팔을 60cm 정도 떨어뜨린 후, "이 정도?"라고 답했다.
    • 러시아 물리학자 표트르 카피차가 디랙한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을 읽어보라고 빌려줬다. 디랙이 책을 돌려줄 때 어땠냐고 물어보니까, "괜찮은 책이네. 하지만 한 장(章)에서 작가가 실수를 했어. 한 날에 해가 뜨는 장면이 두 번 나오더군."
  • 표트르 카피차와 디랙이 카피차의 집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카피차의 아내 안냐 카피차는 옆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는데, 이야기가 끝난 후에 디랙이 안냐한테 매우 흥분된 상태로 말을 걸었다. "안냐, 내가 네가 스웨터를 만드는 방법을 보면서 생각을 좀 했는데 말이야, 내가 뜨개질의 위상기하학적인 측면에 관심이 생겨서 생각을 해 봤어. 뜨개질을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다가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냈지. 하나가 네가 쓰고 있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가," 그 다른 방법을 손가락으로 보여주며, "이거야." 그러자 안냐가 네가 발견한 "새로운 방법"은 여자들은 잘 알고 있으며, 안뜨기라고 불린다고 대답했다.
  • 디랙의 아내는 마르짓 위그너(Margit Wigner, 1904~2002)[7]라는 헝가리인 여성이었다. 1934년부터 만나기 시작해 3년 만에 결혼했다. 거의 모든 면에서 대척점에 있었으나 결혼까지 갔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나서야 디랙이 "생애 첫 번째 연애편지"를 썼는데, 그 이전에는 여자 친구의 질문에 대해 표 형식(tabular form)으로 답했다고 한다.
  • 아내와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 더. 디랙이 결혼했다는 걸 몰랐던 옛 친구가 디랙의 집에 왔는데 매력적인 여성이 차를 나르더니 소파에 앉는 것을 보고 놀라자, 디랙이 "이분은... 이분은 위그너 동생이야."(This is... this is Wigner's sister)라고 말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사실 이 이야기는 약간 와전된 것으로, 가모프가 이 일화에 대해 디랙의 부인에게 묻자, 디랙이 실제로 말한 건 "위그너의 여동생을 소개하겠네. 지금은 내 부인이야."(Allow me to present Wigner's sister, who is now my wife.)라고 확인해주었다.
  • 물리학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문학에 재능이 있었다. 오펜하이머가 괴팅겐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어느 날 디랙이 와서 말하길, "오펜하이머, 자네가 시를 쓴다는 소리를 들었네. 나는 어떻게 물리학 발전에 기여하는 것과 를 쓰는 것이 병행될 수 있는지 모르겠네. 둘은 완전히 반대거든. 과학에서는 이전에는 아무도 몰랐던 사실을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로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고, 시는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을 아무도 못 알아듣는 말들로 표현하는 것 아닌가."
  • 1929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디랙이 일본에 있는 회의에 가려고 배를 같이 탔다. 둘 다 20대였지만 하는 짓은 판이했는데, 하이젠베르크는 여자들한테 계속 작업을 걸고 춤을 췄고, 디랙은 누가 말을 걸어오거나 하는 사회적 대화를 고통스러워했다고 한다. 디랙이 하이젠베르크에게, "왜 춤을 춰?"라고 물었다. 하이젠베르크가, "괜찮은 여자들이 곁에 있을 땐 즐겁거든."이라고 답했다. 디랙이 잠시 생각하더니, "하지만 베르너, 여자들이 괜찮은지 어떻게 미리 알지?"라고 되물었다.
  • 1927년 솔베이 회의에서 물리학자들끼리 종교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디랙은 은 인간이 자연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에 상상해 낸 산물일 뿐이며, 종교가 존재하는 것이 인류에게 별로 유용하지 않고 오히려 악하다는 논지로 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 말을 듣더니 가톨릭교였던 볼프강 파울리는 처음에는 침묵하다가, 동료들이 의견을 묻자, "뭐, 우리 친구 디랙도 종교가 있어. 그 종교의 첫 번째 교리는 '신은 없고 디랙이 그의 예언자다[8]'지." 이 말을 듣자 디랙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웃었다고 전해진다.
  • 근데 세월이 흐르면서 위의 종교관과는 달리 생각이 많이 바뀐 듯하다. 불가지론자가 된 건지 진짜 종교인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신의 존재에 대해 점점 호의적이고 유의미하게 생각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후반부

4.1. 수학과 과학에 대해 남긴 말들


이쪽은 수학이나 과학에 대한 신념이 담긴 간지 인용문. 위의 일화와 인용문을 모두 읽어보면 디랙이라는 인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디랙은 물리학자 중에서도 수학적인 면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했다. 아인슈타인이나 파인먼은 물리적 직관을 좀 더 강조하는 쪽.[9]

A good deal of my research in physics has consisted in not setting out to solve some particular problem, but simply examining mathematical equations of a kind that physicists use and trying to fit them together in an interesting way, regardless of any application that the work may have. It is simply a search for pretty mathematics. It may turn out later to have an application. Then one has good luck.

내가 한 물리 연구의 상당수는 특정한 문제를 풀기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니라, 수식이 가질 응용 같은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물리학자들이 쓰는 수식들을 관찰하고 그것들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조합하려 한 것뿐이었다. 그저 보기 좋은 수식을 만드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이 물리적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 그렇게 되면 운이 좋은 것이고.

God used beautiful mathematics in creating the world.

[10]

은 이 세상을 아름다운 수학으로 창조했다.

I consider that I understand an equation when I can predict the properties of its solutions, without actually solving it.

나는 방정식을 실제로 풀지 않고도 그 해의 성질에 대해서 예측할 수 있을 때에야 방정식을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I learnt to distrust all physical concepts as the basis for a theory. Instead one should put one's trust in a mathematical scheme, even if the scheme does not appear at first sight to be connected with physics. One should concentrate on getting interesting mathematics.

나는 이론의 기초를 세울 때는 모든 물리적 개념을 믿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기보다는 수학적 체계를 믿어야 한다. 설사 그 체계가 처음에는 물리와 연관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여도 말이다. 우리는 흥미로운 수학을 얻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I think it is the general rule that the originator of a new idea is not the most suitable person to develop it, because his fears of something going wrong are really too strong…

일반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린 사람은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데에 적합하지 않다. 그는 구체계를 벗어나는 것을 여전히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It is more important to have beauty in one's equations than to have them fit experiment... It seems that if one is working from the point of view of getting beauty in one's equations, and if one has really a sound insight, one is on a sure line of progress. If there is not complete agreement between the results of one's work and experiment, one should not allow oneself to be too discouraged, because the discrepancy may well be due to minor features that are not properly taken into account and that will get cleared up with further developments of the theory.

방정식은 실험결과와 일치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이 더 중요하다. 만약 우리가 아름다운 방정식을 만들려고 하고, 정확한 직관을 가지고 있다면, 실패한다는 것은 어렵다. 만약 실험과 이론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다면, 기죽을 것 없다. 왜냐하면 그 차이는 이론에서 제대로 고려되지 않는 별 중요치 않은 요인에 의한 것이고 이론을 발전시킨다면 금방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Mathematics is the tool specially suited for dealing with abstract concepts of any kind and there is no limit to its power in this field.

수학은 모든 종류의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기에 적합한 매우 유용한 도구이며 이 계열에서 수학의 능력은 무한하다.

Pick a flower on Earth and you move the farthest star.

지구에서 한 송이를 꺾으면 우주 끝에 있는 별들도 움직인다.

중력을 표현하는 글이다.

The fundamental laws necessary for the mathematical treatment of a large part of physics and the whole of chemistry are thus completely known, and the difficulty lies only in the fact that application of these laws leads to equations that are too complex to be solved.

물리학의 대부분과 화학의 전 분야를 수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본적인 법칙들은 모두 알려졌으므로, 우리가 이런 분야들의 현상을 모두 정확히 수학적으로 기술할 수 없는 것은 이들 법칙들을 적용한 방정식들이 풀기에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The mathematician plays a game in which he himself invents the rules while the physicist plays a game in which the rules are provided by nature, but as time goes on it becomes increasingly evident that the rules which the mathematician finds interesting are the same as those which nature has chosen.

수학자는 자기가 만든 법칙으로 게임을 하고, 물리학자는 자연이 고른 법칙들로 게임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학자가 흥미를 느끼는 법칙들은 자연이 고른 법칙들이라는 것이 매우 선명해진다.

The only object of theoretical physics is to calculate results that can be compared with experiment... it is quite unnecessary that any satisfactory description of the whole course of the phenomena should be given.

이론물리학의 유일한 목표는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는 값을 계산하는 것 뿐이다. 현상의 총체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Theoretical physicists accept the need for mathematical beauty as an act of faith... For example, the main reason why the theory of relativity is so universally accepted is its mathematical beauty.

이론물리학자는 수학적 아름다움을 하나의 신념으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상대성이론이 이렇게 인정받는 것은 그 수학적 아름다움 때문이다.

There are, at present, fundamental problems in theoretical physics … the solution of which … will presumably require a more drastic revision of our fundmental concepts than any that have gone before. Quite likely, these changes will be so great that it will be beyond the power of human intelligence to get the necessary new ideas by direct attempts to formulate the experimental data in mathematical terms. The theoretical worker in the future will, therefore, have to proceed in a more direct way. The most powerful method of advance that can be suggested at present is to employ all the resources of pure mathematics in attempts to perfect and generalize the mathematical formalism that forms the existing basis of theoretical physics, and after each success in this direction, to try to interpret the new mathematical features in terms of physical entities.

현재, 이론물리학에는 그 답이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개념들을 지금까지 변해온 것보다 훨씬 더 극적으로 변화시킬 근본적인 문제들이 있다. 높은 확률로 이 변화들은 인간 지능의 한계를 넘어설 것이며 따라서 이 새로운 개념들은 실험으로 수행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론가는 더 직접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 가장 강력한 방법은 순수수학의 모든 도구를 사용해 현존하는 이론물리학의 기초를 수학적으로 일반화하고, 그 후에는 그 새로운 수식을 물리학적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Age is, of course, a fever chill

that every physicist must fear.

He’s better dead than living still

when once he’s past his thirtieth year.

나이는 모든 물리학자들이 두려워하는

열병과 오한이라네.

서른이 넘은 물리학자는

죽는 편이 행복하지.

물리학자는 정신적 능력이 최고조에 달한 젊은 나이에 성과를 이뤄내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담은 시. 그 폴 디랙이 시를 썼다는 게 믿겨지지 않겠지만...[11]

5. 기타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사도중 하나인 레리엘이 내부에 디락(디랙)의 바다를 갖고 있다는 언급이 작중에서 나온다. 에바 초호기이카리 신지는 레리엘과 교전 중 이 디락의 바다에 집어삼켜져 갇히게 된다. 완전히 음에너지로 꽉 찬 곳에 들어간 시점에서 에바를 구성하는 입자가 쌍소멸하며 폭발해야 마땅하겠지만 나중에 멀쩡히 기어나온다. 미디어에서 과학 개념을 차용할 때 흔히 그러듯 이름만 따오고 특성들은 무시한다. 가이낙스나디아에서 별의 계승자를 최종화 제목으로 했는데, 디랙의 바다도 별의 계승자 4에서 내부 세계를 추론하며 나오는 용어다. 아마 여기서 따온 게 아닐까 생각된다.
원래 꿈은 전기기술자였다고 한다.[12]

[1] 아버지는 스위스 출신[2] 놀라운 결과이지만 의외로 학부 전자기학 수준에서 증명이 가능하며 Griffith 등의 책의 연습문제로 나와있다.[3] 미치오 카쿠 저, <불가능은 없다> p.296-297[4] 다른 물리학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양전자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했을 때 거센 공격을 받았다. 학회에 출두할 때 마다 "그래서 양의 전자는 찾았소?" 같은 비아냥을 듣기도. [5] 이걸 적용하면 모든 자연수의 합을 구하면 -1/12가 나오고 모든 소수의 곱이 4π^2이라는 결과가 나온다(???)[6] 사실, 이는 자정에 귀신이 나온다는 말 자체가 터무니없음을 쉽게 논증할 수 있는 적당한 말이다.[7]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유진 위그너의 여동생이다.[8] 잘 알려진 이슬람의 신앙고백 "알라 이외의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그의 예언자다."의 패러디.[9] 아인슈타인과 파인만은 이론 물리학자였지만 실험을 매우 중요시했고 실험을 통해 정당화될 수 없는 물리학 이론에 매우 비판적이었다.[10] 흔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에 근거한 인격적 신의 개념보다는, 아인슈타인이 말했던 증거와 논거를 기반으로한 자연적 신이나 우주의 규칙을 지칭하는 것에 가깝다.[11] 이 시를 디랙이 썼다고 되어 있는 곳이 많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디랙의 전기를 쓴 Helge Kragh나 Graham Farmelo는 이 시를 디랙이 썼다는 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편이고. 그리고 이 시 자체는 괴테파우스트 중 한 구절을 살짝 바꿔쓴 것이라고 Helge Kragh가 지적했는데, 파우스트 중의 원래 구절은 다음과 같으며
Gewiß! das Alter ist ein kaltes Fieber
Im Frost von grillenhafter Not.
Hat einer dreißig Jahr vorüber,
So ist er schon so gut wie tot.
32년에 보어 연구소에서 보어의 제자들이 공연했던 파우스트 패러디 연극의 대본을 보면, 디랙 역의 대사 중에 바로 이 시가 있다 (독일어).
Gewiß! Das Alter ist ein kaltes Fieber,
Das jeden Physiker bedroht!
Hat einer dreiß Jahr vorüber,
So ist er schon so gut wie tot!
[12] 김용규,'설득의 논리학',웅진지식하우스,2007,p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