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베이 회의

 

Congrès Solvay
1. 개요
2. 주요 회의
2.1. 제5차 솔베이 회의
2.2. 제6차 솔베이 회의


1. 개요


1911년부터 벨기에의 기업가이자 솔베이의 창립자인 에르네스트 솔베이가 개최한 국제 물리학, 화학 학회. 이 학회는 3년마다 열리는데 3년을 주기로 첫 해에는 물리학 학회가 열리고 두번째 해는 건너뛰고 세번째 해에는 화학 학회가 열린다.
가장 최근에 열린 물리학 학회는 2017년 제27차 회의이고 2017년 10월 19일부터 21일까지 브뤼셀에서 개최되었다. 가장 최근에 열린 화학 학회는 2016년 제 24차 회의로, 2016년 10월 18일부터 22일까지 브뤼셀에서 개최되었다.

2. 주요 회의



2.1. 제5차 솔베이 회의


가장 유명한 회기는 1927년 10월 개최된 제5차 솔베이 회의다. 이 5차 대회의 참석자 기념사진은 <인류 역사상 다시는 없을 정모>, 또는 <지상 최강의 정모>라는 짤방으로 인터넷을 돌아다닌다. 사진의 인물 전원이 과학사에 굵직한 업적들을 남겼으며 절반 이상인 '''17명'''(!!!)이 노벨상 수상자이다.[1]
약간 과장을 보태면, 오늘날 전세계 과학도들이 공부해야 할 내용들의 대부분이 이들 제5차 회의 참가자로부터 나온 셈이다. 확실히 과학사에서 이 시절만큼 천재적인 인물들이 많았던 시기는 드물다. 자신이 과학자로서의 꿈을 가지고 있다면 보고 있을 때 경외감이 절로 드는 사진.
이 회의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베르너 하이젠베르크불확정성 원리에 반대하면서,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이에 대해 닐스 보어는 "신이 주사위를 가지고 뭘 하든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라."는 말로 답하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은 (우주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아(God does not play dice).'''

닐스 보어 : '''아인슈타인 선생님, 신이 뭘 하든 무슨 상관입니까(Einstein, stop telling God what to do).'''

1927년 10월 29일, 제 2차 솔베이 회의 마지막 날. 닐스 보어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논리[2]

불확정성 원리가 옳음을 증명해내자.

관련지어서 인문계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중에서도 최고의 학자들을 모은 아테네 학당이 있다. 물론 그 그림은 상상화지만 충분히 인문계 최종보스들로 불리기도 한다. 다음 사진은 제 5차 솔베이 회의 때의 사진.
[image]
'''이름'''
'''주요 업적'''
(윗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오귀스트 피카르(Auguste Piccard)
피카르의 심해점과 성층권 기구[3]
에밀 앙리오트(Emile Henriot)
광학 분야로 전자현미경 연구의 시초이며 복굴절 및 분자 진동에 관해 연구
파울 에렌페스트(Paul Ehrenfest)
에렌페스트의 정리
에두아르 헤르젠(Edouard Herzen)
집적회로 기반
테오필 드 동데르(Theophile de Donder)
드 동데르의 열역학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
'''1933년 노벨물리학상''', 슈뢰딩거 방정식
줄스-에밀 버샤펠트(Jules-Emile Verschaffelt)
포화증기의 등온선 및 비중에 관한 연구, 양자물리학 연구
볼프강 에른스트 파울리(Wolfgang Pauli)
'''1945년 노벨물리학상'''. 파울리 배타 원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1932년 노벨물리학상'''.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랄프 하워드 파울러(Ralph Howard Fowler)
다윈, 파울러 방법
레옹 브릴루앵(Leon Brillouin)
브릴루앙 영역
(가운데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피터 디바이(Peter Debye)
'''1936년 노벨화학상'''. 디바이의 단위
마르틴 크누센(Martin Knudsen)
크누센의 흐름
윌리엄 로런스 브래그(William Lawrence Bragg)
'''1915년 노벨물리학상'''. 브래그의 반사[4]
헨드릭 안토니 크라머르스(Hendrik Anthony Kramers)
크라머르스-크로니히의 관계
폴 디랙(Paul Adrien Maurice Dirac)
'''1933년 노벨물리학상'''. 디랙 방정식
아서 콤프턴(Arthur Compton)
'''1927년 노벨물리학상'''. 콤프턴 계수, 콤프턴 산란
루이 드 브로이(Louis de Broglie)
'''1929년 노벨물리학상'''. 드 브로이의 파동
막스 보른(Max Born)
'''1954년 노벨물리학상'''. 보른의 관계식
닐스 보어(Niels Bohr)
'''1922년 노벨물리학상'''. 보어의 양자가설
(아랫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어빙 랭뮤어(Irving Langmuir)
'''1932년 노벨화학상'''. 랭뮤어, 표면화학
막스 플랑크(Max Planck)
'''1918년 노벨물리학상'''. 플랑크 상수
마리 퀴리(Marie Curie)
'''1903년 노벨물리학상''', '''1911년 노벨화학상'''.
자연방사능 연구와 폴로늄라듐의 발견
헨드릭 로런츠(Hendrik Lorentz)
'''1902년 노벨물리학상'''. 로런츠 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921년 노벨물리학상'''. 이론 물리학의 공헌과 광전효과의 발견.
폴 랑주뱅(Paul Langevin)
랑주뱅 방정식
샤를 외젠 게이(Charle-Eugene Guye)
전자의 질량과 속도를 실험을 통해 증명.
찰스 톰슨 리스 윌스(Charles Thomson Rees Wilson)
'''1927년 노벨물리학상'''. 안개상자
오언 윌런스 리처드슨(Owen Willans Richardson)
'''1928년 노벨물리학상'''. 리처드슨 방정식
인물 설명 출처


2.2. 제6차 솔베이 회의


이 회의에서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닐스 보어광자 상자를 이용한 사고실험을 통해 논쟁을 벌였고 보어가 아인슈타인에게 불확정성 원리가 참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1] 노벨물리학상이 15개, 노벨화학상이 3개이다. 수상자는 17명인데 노벨상 개수가 18개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마리 퀴리 때문.[2] 아인슈타인은 앞서 말한대로 과학은 확률이 아니라 인과관계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3] 땡땡의 모험에서 해바라기 박사의 모델이 된 인물. 본인은 직접 기구를 타고 인류 최초로 성층권에 도달했으며, 이 사람의 아들 자크 피카르는 심해 잠수정 '트리에스테'로 마리아나 해구에 잠수하여 2019년에 갱신될 때까지 인류 최심도 잠수기록을 세웠다.[4] 아들인 W. L. Bragg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했지만 당시 나이가 37세로 어렸기 때문에 솔베이 회의에는 초청받지 못하고 대신 참가자들의 사인이 담긴 엽서를 받았는데, 사실 브래그 법칙을 유도해낸 것은 아들쪽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속상해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