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그리아 핀인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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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전쟁 당시 소련군에서 탈영하여 핀란드군에 합세한 잉그리아인 병사
2. 역사
17세기 스웨덴 왕국이 러시아와 영토를 놓고 싸우며 발트해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루터교회를 믿는 핀란드인, 상당수를 잉그리아 지역(오늘날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 지역)에 정착시킨 것이 기원이다. 당시 해당 지역 원주민들은 토속 신앙 외에도 러시아 정교회를 믿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때문에 이 지역에서 루스 차르국이 영토 분쟁에서 우위를 가져가자, 스웨덴은 맞불 작전으로 이 지역에 루터교회를 믿는 핀란드인 일부를 정착시킨 것. 새로 이주한 핀란드인, 에스토니아인들 및 스웨덴의 영향으로 루터교회로 개종한 이조라인과 보디인들이 잉그리아에 이주한 핀란드인들과 동화된 것이 잉그리야 핀인의 기원이다. 1656년 당시 잉그리아 인구의 53.2%를 차지했던 핀인 인구는 스웨덴 통치 하에 계속 증가하여 1695년에는 73.8%에 달했다. 그러나 잉그리아 지역은 발트해에서 차가운 바람이 부는 척박한 지역으로 인구 부양력이 높지 않았고, 잉그리아 지역 거주민 자체는 2만여 명 정도에 불과하였다.
1703년 러시아 제국이 잉그리아 지역을 정복하고 뒤이어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이 지역에 건설되면서 잉그리아 핀인들은 잉그리야 지역 내에서도 소수 민족으로 전락하였다. 러시아 제국은 이들에게 다시 정교회를 전도하였고, 상당수의 잉그리아 핀인들이 잉그리야 지역을 떠나 아직 스웨덴 영토로 남아있던 핀란드로 이주하였다.
이후 핀란드가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고 핀란드 대공국이 루터교회를 믿을 권리를 포함해서 상당수준의 자치를 허용받으면서 잉그리아인들도 핀란드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핀란드어로 된 인쇄물들이 잉그리아에 보급되면서 잉그리아인들도 자체적인 인쇄물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1897년에는 잉그리아인 인구가 130,413명에 달했으며 1917년 러시아 혁명 직전에는 14만여 명 정도로 추산되었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잉그리아 핀인들은 핀란드의 지원을 받아 잠시 북잉그리야 공화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잉그리아 공화국은 독립을 유지하기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너무 가까웠다. 북잉그리야 공화국은 1920년 말 타르투 조약에 의거하여 어느정도의 자치권을 보장한다는 조건 하에 소련으로 흡수되었다. 1926년 통계 기준 114,831명의 잉그리야 핀인들이 소련 영내에 거주했다. 그러나 1928년 농업 집단화 과정에 부농 대숙청은, 자치권이 보장되었다던 이들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약 18,000여 명 정도의 인구가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당했다. 1935년에는 추가로 7,000여 명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1936년에는 약 2만여 명이 볼가 강 유역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는데 이는 겨울전쟁을 준비하기 앞서 국경 지역을 정리하려는 소련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 잉그리야인들이 이주하고 빈 자리에는 새로 러시아인들이 들어왔다. 1937년부로 잉그리아의 루터교회와 핀란드어 학교가 문을 닫고 핀란드어로 된 인쇄물과 라디오 방송이 중단되었다.
겨울전쟁, 계속전쟁 와중에 핀란드가 이 지역을 잠시 점령한 동안 잉그리아 지역에 남아있던 잉그리야 핀인 인구 상당수가 핀란드로 탈출하였으나, 이후 독소전쟁에서 승리한 소련이 계속전쟁으로 핀란드가 획득한 영토와 인구 모두 반환할 것을 요구하였고, 잉그리야 핀인 인구 대부분은 결국 소련으로 송환당했다. 겨울전쟁~2차대전 기간 동안 핀란드로 망명했던 잉그리아 핀인 중 약 4천여 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구는 소련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고, 소련 지배 시기를 거치며 각지로 흩어졌던 잉그리아 핀인들은 상당수가 러시아인 혹은 에스토니아인으로 완전히 동화되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대놓고 카자흐스탄, 시베리아로 대규모 강제이주가 이루어지진 않았으나 대신 문화가 비슷한 편이었던 소련 내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많은 인구가 이동되었기 때문이다.
3. 문화
핀란드어를 구사하지만 이조라어라고도 불리는 잉그리야어를 구사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오늘날에는 러시아 지배의 영향으로 상당수가 러시아어를 구사하며, 핀란드에 거주하는 인구는 핀란드인들이 흔히 그렇듯이 스웨덴어/영어도 함께 구사하는 편이다.
소련 지배 시기를 거치며 잉그리아 핀인 상당수는 러시아인과 완전히 동화하였고, 아직 잉그리아 핀인 정체성을 보전한 인구는 소수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2차대전 이후 핀란드에서도 소련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하여 이들의 존재를 적극 부각시키지 못했던 점도 컸다. 잉그리아인 상당수가 이주한 에스토니아의 경우 오늘날 잉그리아인 정체성을 가진 인구가 겨우 369명 남아있는 상황이며,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지에 각각 수백여 명 정도의 잉그라이인 인구가 남아있다. 오늘날에도 루터교회를 믿는 경우도 있지만 러시아 제국 지배 시기의 영향으로 정교회로 개종하거나 소련 시절의 영향으로 아예 종교와 무관하게 사는 인구가 더 많다. 핀란드로 이주한 잉그리야인들은 카렐인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핀란드 내 정교회 신자의 주요 구성원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