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루카 팔리우카
1. 개요
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 리즈시절 삼프도리아와 1990년대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골키퍼였다.
2. 생애
볼로냐 FC 유스 출신이었으나, 부야딘 보슈코브 감독의 눈에 띄어 1987년 삼프도리아로 이적. 주전 골키퍼로 맹활약하였다.
특히 팔리우카는 90/91 시즌 리그 31라운드에 1위를 달리던 삼프도리아를 승점 4점 차이로 맹추격하던 리그 2위팀인 인테르를 상대로 치룬 경기에서 로타어 마테우스의 PK를 비롯해 14개의 슈팅을 선방해내는 인생경기를 벌임으로써 팀의 2:0 승리를 이끌어 팀의 해당 시즌 리그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팔리우카는 삼프도리아의 창단 첫 스쿠데토와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에 기여하며 1994년까지 삼프도리아에서 활약했다.
1994-95 시즌을 앞두고, 팔리우카는 이적료 700만$에 인테르로 이적, 97-98 UEFA컵 우승과 2년 연속 UEFA컵 결승 진출에 기여한다.
그러나 1999-2000 시즌을 앞두고 국가대표 골키퍼 자리를 놓고 경합했던 안젤로 페루치가 인테르에 입단하자 고향팀 볼로냐 FC로 이적해 세리에 B로 강등되는 2005-2006시즌까지 뛰며 노익장을 보여줬고, 2006-07시즌 아스콜리 칼초 1898 FC에서 '''역대 최고령 출장기록'''을 갱신한 뒤 현역에서 은퇴한다.
3. 국가대표 경력
삼프도리아에서의 눈부신 활약을 인정받아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때 처음 아주리 군단에 합류한다. 하지만 발테르 쳉가의 그늘에 가려 1경기도 출전하지 못했고, 1991년 6월 소련과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다. 이 후 치열한 주전 경합 끝에 1994 미국 월드컵 지역예선부터 주전 골키퍼 자리를 굳힌다.
그리고 대망의 1994 미국 월드컵. 팔리우카는 여기서 극과 극을 오가는 플레이로 아주리 군단을 자신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다. 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 레이 휴튼의 그림같은 왼발 로빙슛의 희생양이 되더니, 노르웨이와의 2차전에서는 아크까지 뛰쳐나와 상대의 역습을 막아내려다가 핸드볼 파울을 범해 '''퇴장'''당한다.[1] . 하지만 아리고 사키 대표팀 감독은 출전정지가 풀린 스페인과의 8강전부터 팔리우카를 재신임했고, 팔리우카는 사키 감독의 기대에 부응해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 120분을 무실점으로 넘긴 뒤, 승부차기에서도 브라질 1번 키커인 산투스의 킥을 막아내며 자신의 진가를 가감없이 발휘한다. 하지만 프랑코 바레시와 로베르토 바조의 킥이 홈런(...)이 되면서 2-3으로 패배, 다 잡은 우승컵을 놓친다.
이 후 안젤로 페루치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리고, 설상가상(?)으로 부폰과 톨도가 대두하면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팀 와일드 카드를 제외하고는 한동안 아주리 군단의 부름을 받지 못하다가 1998 프랑스 월드컵 직전에 페루치가 전치 1개월 부상을 입으며 국가대표에 재합류, 4년 전과 달리 안정적으로 수비진을 지휘하며 팀을 8강까지 이끈다. 하지만 프랑스와의 8강전에서 또 승부차기로 패했고[2] ,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와 작별한다.
4. 플레이 스타일
190cm의 장신에 운동능력까지 겸비한 이상적인 골키퍼였다. 아울러 페널티킥 방어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세리에 A 순혈(?) 골키퍼 중에는 최고 기록인 24세이브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