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드리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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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철학자, 사회학자. 주요 저서는 <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Simulacres et Simulation)>(국내에는 <시뮬라시옹>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다), <소비의 사회(La Société de consommation)>,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Pour une Critique de I'Economie Politique du Signe)> 등이 있다.현대적 사물의 '진짜 모습'은 무엇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도구로서가 아니라 기호로서 조작되는 것이다.
소비의 사회
보드리야르의 대표적인 이론인 '시뮐라시옹'은 1970년대 이후의 미디어 이론, 예술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미국의 현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2. 장 보드리야르의 이론체계
2.1. 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
프랑스어 시뮐라크르(simulacres)는 명사로서 단어 그 자체의 의미로는 모방, 모사의 의미를 가지나 보드리야르는 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시뮐라시옹(simulation)[2] 역시 '모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보드리야르의 시뮐라시옹은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이다. 시뮐라시옹은 시뮐라크르의 동사적 형태로 사용된다. 즉 시뮐라시옹은 '시뮐라크르를 하기'이다.'''시뮐라크르란 결코 진실을 감추는 것이 아니다. 진실이야말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숨긴다. 시뮐라크르는 참된 것이다.'''
전도서[1]
구체적으로 들자면 여러분이 가정에서 플레이하는 워 게임이나 FIFA 같은 시뮐레이션 게임들은 각각 실제 전쟁, 축구 시합을 모티브로 재구성하여 플레이어가 실제 전장이나 축구 시합중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게임을 만든 것이다.
보드리야르의 시뮐라시옹과 시뮐라크르 개념은 시뮐레이션이라는 본래 단어 뜻을 이용하고 확장한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간단히 요약하면,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아졌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보드리야르의 시뮐라크르는 흉내낼 대상, 즉 원본이 없는 이미지로, 이미 존재하고 있는 진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독자적인 하나의 현실이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시뮐라크르는 원본을 복사하는 것이었고, 시뮐라크르는 단순히 복제물이었지만, 현대사회의 시뮐라크르는 오히려 원본을 압도하며, 오히려 그 원본이 시뮐라크르의 이미지를 따르게 된다. 시뮐라시옹은 "원본도 사실성도 없는 실재, 즉 파생 실재(hyperréel)[3] 를 모델들을 가지고 산출하는 작업이다."[4] 이것만으로 이해하긴 어려우니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티비란 매체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중년 남성이 가지는 이미지는 없었다. 하지만 티비가 등장함에 따라, 사람들은 티비 속에서 중년 남성이란 이미지를 보게 되고 그것이 실재하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 결국 중년의 나이층에 해당하는 남성들은 티비가 만들어낸 중년이란 이미지에 따르는 관습을 현실에서 따라하게 된다. 사실은 중년이란 개념과 가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티비 속에서 나오는 중년은 모두 고용된 배우들이 연기한 것이다. 여기까지가 시뮬라크르에 해당하고 여기서 티비를 본 중년 남성들이 그 연기된 이미지, 가상의 이미지를 연극이 아닌 실제에서 따라하게 되는 것이 시뮬라시옹이다.
실제로 현대사회의 면면을 보면 이런사례들이 굉장히 많다. 가령 드라마 연기자의 옷차림을 따라하는 사람들,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따라하는 코스프레어들,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등 가상매체에서 나온 대사들이 유행어가 되어 현실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현상 등등 모두 보드리야르가 제시한 원본과 실제 사이에 역전된 위계 현상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보드리야르는 그 예로 미키 마우스와 디즈니랜드를 든다. 알려져 있다시피, 미키 마우스는 쥐를 모델로 한 것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미키 마우스와 쥐는 비슷한 점이 거의 없다. 두 발로 서서 사람처럼 걸어다니는 미키 마우스는 사실상 쥐와 별개의 존재다. 보드리야르는 이를 통해, 어떤 대상을 모델로 만든 복제물, 가상물이 1) 원본과의 연관성을 잃어버리고, 2) 원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글로 적어 놓으면 상당히 헷갈리는데, 영화 '''매트릭스''', 트루먼 쇼나 '''네트워크'''를 보면 한 방에 이해가 된다. 매트릭스 속의 등장인물들은 기계들이 인간을 배터리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가상 현실인 매트릭스를 실제 세상이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게다가 매트릭스 안의 세상이 바깥 세상보다도 더 '현실'적이다.[5] 트루먼 쇼에서 역시 제작진들이 트루먼의 삶을 TV 쇼로 만들기 위해 거대한 세트장을 그가 실제 세상처럼 여기도록 무수히 많은 노력을 하고, 실제로 트루먼은 하늘에서 조명 기구가 떨어진다거나 외부의 메시지를 받기 전까지는 이를 사실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네트워크에서 주인공은 반쯤 정신 나간 상태에서 현대 사회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판을 늘어놓지만, 방송사는 시청률을 뽑기 위해 그의 장광설을 오락 프로그램으로 편성한다. 매스 미디어가 대중에게 이미지를 떠먹이는 행태에 대한 비판이 대중에게 떠먹이는 또 하나의 이미지가 되는, 즉 시뮐라시옹의 범람에 대한 비판을 또 하나의 시뮐라크르로 만들어버린 기막힌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예로 들어보자. 미남 혹은 미녀를 폴리곤으로 만들어 시뮬레이션하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느낄까? 예를 들어 눈앞에 게임 캐릭터 '라라 크로프트'가 있다 쳐보자. 비교 사진 한쪽은 옛날 라라 크로프트, 폴리곤이 적어 각져보이고 남자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반면 2013년도 라라 프로프트는 폴리곤이 많고, 얼룩같은 요소까지 재현하여 '진짜 여자'처럼 보인다. 여기서 2013년도판 라라 크로프트의 본래 모델이 되어준 여자가 있었다고 쳐보자. 게임을 접하는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본 모델보다 게임 속 라라 크로프트를 더 매력적으로 느끼고, 게임 속 라라 크로프트가 더 가치있다고 느낄지 모른다. 현실 여자는 멀지만 게임 속 여자는 가까우니까. 이게 심해지면 도리어 게이머는 현실 여자에게 말을 걸려고 하기보다는, 그 여자를 본뜬 가상 여캐를 만들어서 그 여캐와 더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 하지 않을까?
보드리야르가 지적하려 했던 것은 이런 문제였다. 즉 오늘날 사회에서는 가상물이 현실보다 더 가치 있는 듯 떠받들어진다는 것이다. 또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현실과 가상을 구분 못한다'''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이것이 사람들을 수동적, 순응적으로 만든다고 보고 불쾌해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는 현대 사회가 상품이 아닌 광고를 소비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상품의 기능이나 유용성이 아니라 뽀대나는 겉보기만 보고 좋아라 한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만화 계집이나 전자 계집과 결혼하려는 사람들을 보드리야르가 만났다면 아마 심하게 한마디했을 것이다.우리는 당신들이 아는 전부예요. 당신들은 우리가 내뱉는 환상을 믿기 시작하시는 겁니다. '''TV가 현실이고 당신들의 삶은 가짜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TV가 하라는 대로 따라하고만 있어요! TV 말대로 차려입고, TV 말대로 먹고, TV 말대로 애를 키우고, 심지어 TV가 시키는 대로 생각하고 있어! 이건 집단 광기[6]
야, 이 미친놈들아! 하느님 맙소사, '''당신들이 진짜라고! 우리가 가짜란 말이야!'''[7][8]
보드리야르는 또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뮐라시옹이 특히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으로 이 개념을 가지고 깐 것이 디즈니랜드와 걸프 전쟁.
디즈니랜드는 엄밀히 말하면 허상이다. 하지만 디즈니랜드에는 피터팬이나 후크 선장으로 분장한 사람들이 나와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진짜인 듯마냥' 말이다.[9] 그런데 사람들이 거기서 얻는 게 뭘까? 뭔가에 만족하고 유용한게 있기 때문에 괜히 비싼 돈 주고 디즈니랜드 들어가서 또 비싼 돈 주고 과자 사먹고 놀이기구 타고 하는 것 아닌가? 보드리야르 입장에서는 이런 꼴이 우스웠을 것이다. 게다가 그 디즈니랜드가 기업이 뒤로 저지르는 각종 악행을 감추는 역할을 한다는 것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보드리야르가 이들 사례를 통해 일갈하고자 했던 부분은 그것이 허상이라는 것 자체가 아니라 '''명백히 '허상'과 '허상이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었다. 이러한 입장은 그의 "디즈니랜드는 미국 자체가 거대한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에서 잘 드러난다. 즉, 디즈니랜드는 애써 '진짜인 듯' 굴지만 누가 보기에도 환상이다. 그러나 디즈니랜드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이들조차 자신 주변에 놓여져 있는 수많은 미디어 매체들까지 허구 혹은 환상일 것이라고 비판적으로 사고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보드리야르는 CNN의 걸프 전쟁 보도를 보고 '걸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깠다. 보드리야르가 말하고자 했던 건, 'CNN 보도에서 나오는 전쟁 이미지는 실제 전쟁과 다른데, 대중 시청자들은 이를 진짜 전쟁인마냥 여긴다'는 것이다. 시청자는 마치 전쟁 영화나 게임 화면 보듯 전쟁을 '관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청자들이 보도 화면을 보고 공감이나 연민을 느꼈나?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화면에 나온건 어디까지나 미국 측 입장일 뿐(미국 함정에서 발사되는 토마호크 미사일, 야간에 바그다드에 떨어지는 미사일 화면 등), '''실제로 그 미사일이나 총탄에 맞는 피해자 입장은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됐다.''' 우리는 디즈니랜드와 같은 의도적 환상과 걸프전 보도와 같은 '현실적인 것'은 아주 구분된 무언가라고 생각하면서 비판적 사유를 마비시키지만 실제로는 걸프전 보도도 디즈니랜드만큼이나 '현실 같은 허상'에 불과하며 우리의 사유를 특정 방향으로 마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보드리야르의 가장 중요한 함의이다. 그가 "죄다 모방이니 다 헛짓거리야!"[10] 라고 말했다면 구태여 탈근대 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건 플라톤식의 천국론이다. 그의 철학적 의의는 '''명백히 허상이라고 규정하는 것들로 인하여 되려 우리가 ('현실'에서) 허상에 노출되어 있음이 감춰짐'''을 밝힌 데에 있으며, 나아가 우리는 모두 떠다니는 기표와 허상들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뿐임을, 현대 소비 문화와 자본주의 속에서 우리의 삶 자체가 그러한 시뮐라시옹(=시뮐라크르 하기)임을 처절하게 비판한 것에 그 발전적 함의가 있다.
비슷한 예로 보드리야르는 2002년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뒤에 한국민속촌도 깠다.# 정확히 말하면 보드리야르는 한국민속촌에서 전통혼례를 하는 것을 깐 것이다. (캐릭터 컨셉 알바도 비슷한 범주이겠지만, 캐릭터 알바는 보드리야르 사후에 등장했다.)
이런 것들에 대한 대항이 누락되어 어느 순간 우리가 특정 해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전혀 찾을 수 없게 된다면, 모두가 멀쩡한 원본에서 멀찍이 떨어진 가짜가 될 지도 모르는 것이다.
2.2. 철학적 문제
원본과 복제의 관계는 철학에서 수천년동안 다뤄진 문제였다. 플라톤의 경우 복제물은 원본보다 못하다고 깠다. 플라톤은 이데아(idea) 개념을 주장했는데, 그는 '모든 사물의 원본'인 이데아가 있으며, 이 이데아는 사물세계(물리적인, 우리가 사는 이 세계) 너머 다른 곳(형이상학의 세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즉 플라톤에게는 원본>복제 등식의 가치를 가졌던 것.
그러다 르네상스와 과학혁명 이후 원본=복제 등식으로 점차 넘어갔다. 안 그러면 회화나 박물지 삽화 속 이미지는 원본을 대변하지 못할테니까. 우리가 흔히 아는, 정교하게 그린 사실적 이미지(하지만 이게 현실적이거나 실상을 보여주는건 아니다)가 르네상스 이후 늘어난 건 이때문이다. 탐험가들이 먼나라에서 본 동식물을 그림으로 남기거나, 천문학자들이 별들의 위치를 도표로 남기는 등의 활동도 '''복제물은 원본을 드러내준다, 복제물은 원본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게 불가능하면 당연히 모든 자료는 믿을 수 없는 게 된다.
반면 보드리야르는 이제 광고가 발달하고 이미지가 넘쳐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원본<복제라고 이야기한다. 이유는 위에 적은 대로다. 게임 캐릭터 주제에 현실 사람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2.3. 해결책
해결책으로 과잉 순응을 제시했다. 도리어 오버해서 뭐가 잘못됐는지 상대방이 알아채게 하자는 것이다.적합한 전략적 저항은 의미와 발언을 거부하고, 거부와 비수용의 형태 그 자체인 현 시스템의 메커니즘을 ‘과잉 순응적인’ 방식으로 흉내내는 것이다. 이것이 대중의 저항 전략이다. 그것은 거울의 경우처럼 시스템의 논리를 흡수하지는 않으면서 복사하고 의미를 반영시킴으로써 그 논리를 뒤집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야말로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전략이다(만약 이걸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예를 들어, 이미지에 과잉 순응하여 여자가 온 몸을 핑크색으로 도배하거나 한국인이 하루 종일 김치만 퍼먹는다면 그것들의 이미지가 가짜라는 것을 알게된다는 것이다-
2.4. 사례들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예를 들기 어려울 정도다. 이때문에 보드리야르와 그의 시뮐라시옹 개념은 지금까지도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수많은 광고 : 쉽게 얘기해서, 저 옷을 사면 내가 원빈이/전지현이 될 것 같나? 안생겨요 저 건강식품을 먹으면 내가 원빈이/전지현이 될 것 같나? 안생겨요 저 집에서 살면 내가 원빈이/전지현이 될 것 같나? 안생겨요
2.5. 자연과학계의 비판과 반론
장 보드리야르를 포함한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쪽 학자들이 대부분 말을 어렵게 쓰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자꾸 달린다. 이를테면 "시뮐라시옹을 보면 알겠지만 뜻도 모를 과학, 사회 과학 용어가 곳곳에 산재해 있어 이해가 어렵다. 아니 애초에 이해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핵분열이나 상대성 이론에 관해서는 소칼이 이해도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같은 내용. 특히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과 연관해 비판받는다. 참고로 소칼의 비판에 대해 그는 "지식인의 비굴함과 나태는 우리시대의 올림픽 종목이 돼버렸다."라는 코멘트를 했다.[11]
이 부분에 대해 좀더 살펴보자. 아마 소칼은 임플로전implosion이란 단어를 사용한 걸 가지고 지적한 듯싶다. 핵물리학 쪽 역어로는 내폭(內爆), 혹은 폭축(爆縮)#이라고 한다. 하태환은 보드리야르의 책 시뮐라시옹을 번역하면서 이를 함열이라고 번역했다(내파라고도 한다). 아래는 해당 단락이다. 문제가 되는 implosion 개념이 언급된 부분은 밑줄로 표시하였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보드리야르가 쓴 함열 개념은 핵물리학에서 사용하는 폭축의 의미가 아니다.''' '''애초에 보드리야르는 핵물리학을 고려하고 용어를 골라 쓴 게 아닌 듯 보인다.'''[14] 어떤 신문 기사에서 '관객들이 녹아내렸다'라고 쓴다고 그것이 실제로 관객이 유기물 수용액이 되어버렸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그건 그냥 은유와 말 그대로의 의미도 구분 못하는 것일 뿐이다.[15]'''보부르 효과 : 함열과 저지'''[12]
보부르 효과, 보부르 기계, 보부르 사물 - 어떻게 보부르에게 이름을 붙여줄까? 흐름과 기호로, 그물망과 순환으로 된 이 뼈대물의 수수께끼는 더 이상 이름이 없는 어떤 구조를 번역하는 데 있어서의 궁극적 망설임을 일으킨다. 이 망설임은 표면에서는 환기 장치에(활발함, 자동 관리, 정보, 중간 매체), 깊은 곳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함열에 내맡겨진 사회 관계들을 번역하는 데 있어서의 궁극적 망설임과 동일하다. 총체적 시뮐라시옹의 유희를 위한 기념비로써 이 연구소는 모든 문화적 에너지를 흡수하고 삼켜버리는 소각로처럼 기능한다. 다소는 2001년의 검은 거석 기념비[13]
처럼 말이다. 이곳에서 물질화하고, 흡수되고, 절멸되기 위하여 오는 모든 내용물들이 괴상망측하게 대류하는 현상인 것이다.이곳의 모든 것은 얼음장처럼 평평할 따름이다. 이를 예증하는 것은 깨끗이 갈고 닦음, 소독, 속물적이고 위생학적인 디자인 등이다. 그러나 특히 정신적으로 보부르는 공허를 만드는 공간이다. __약간은 원자력 발전소처럼 말이다. 원자력 발전소의 진짜 위험은 불안전, 오염, 폭발이 아니고, 발전소를 중심으로 방사되는 극대의 안전 시스템, 모든 영토 안에서 더욱더 밀집하여 펼쳐지는 통제와 저지의 얼음장처럼 평평한 면, 기술적인, 환경 보호론적인, 경제적인, 지정학적인 평면이다. 핵이 중요한 이유는 이렇다. 원자력 발전소는 그로부터 절대 안전의 모델이 세공되는 원 틀이며, 이는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일반화할 것이며, 깊은 의미로는 저지의 모델이기 때문이다(핵 위협 시뮐라시옹의 그늘과 평화 공존의 그늘 아래서 세계적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모델과 동일한 것이다).
내용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하태완 씨가 번역한 '시뮐라시옹' 안의 함열에 대한 각주를 인용한다.
보드리야르가 이 글에서 다루는건 핵분열이나 핵융합같은 핵물리학 개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핵 억지력에 의해 공포를 조장하는 오늘날의 세계 질서와 (프랑스) 국내 질서이다. 그 일종으로 implosion을 퐁피두 센터를 비유할 때 가져다 쓴 것뿐이다. 시뮐라크르 같은 허상 이미지들이 넘쳐나면 결국 그것이 사회에 부정적 여파를 미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말로 해석하면 된다. 보드리야르는 오늘날 정보의 유통량이 많아졌지만, 그게 사회를 풍요롭고 견고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도리어 '내부에서 파괴'시킨다고 본 것이다.함열implosion은 폭발explosion과 방향이 반대인 같은 힘이다. 팽창, 진보, 식민화를 가치로 여겼던 모더니즘을 대변하는 것이 에너지의 폭발이었다면, 함열은 그와는 반대로 갈라지고 쪼개졌던 것들이 다시 분할 이전의 상태로 응축되어 가는 현상이다. 다름과 구분이 비구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함열을 안으로의 폭발로 이해하거나 번역하는 경우는 이것 또한 폭발이므로 모더니즘의 현상으로 잘못 이해한 것이다. 함열 현상은 우선 실재가 시뮐라크르로 전환되는 것이고, 이어서 시뮐라크르의 가장 대표인 기호만이 남아 실재를 대체하는 현상이다. 그중 가장 극단적인 함열은 아마도 컴퓨터 디스켓에서처럼 모든 실재가 아무것도 없는 하나의 디스켓으로 축약 대체되거나 정보적인 코드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러한 무의 상태는 그러나 전체를 이미 그 속에 담고 있다. 함열은 결코 안으로의 폭발이 아니라 비구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함열은 블랙홀로 모든 것이 흡수되어 응축되는 현상이다.
그렇지만 소칼의 지적이 전혀 타당하지 않은 건 아니다. 지적 사기에서 소칼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즉 이는 과학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너무 맥락없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렇게 전문 용어를 뻔뻔하게 사용하면서 지적 허세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문학자가 과학 용어를 사용한다고 욕하는 게 아니다. 그 과학 용어가 맥락을 무시한 채 사용되어 뭔가 있는 것마냥 보여진다고 비판하는 것이다."우리는 보드리야르의 저서에서 과학 용어가 본연의 의미를 철저히 무시당한 채 무엇보다도 너무나 엉뚱한 맥락에서 남용되고 있음을 본다. 그것을 은유로서 받아들이건 받아들이지 않건, 사회학이나 역사학에 대한 진부한 관찰에 심오함을 덧씌우려는 것 외에 그런 용어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어쨌든 보드리야르의 글이 어려운 건 사실이다. 전반적으로 프랑스 철학자들이 자기 멋대로 개념을 만들거나 기존 개념을 꼬아서 어렵게 쓴다. 보드리야르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정작 '''원전을 읽고 헤매다 주석서나 해설서를 읽고 아 그런 내용이구나 한다더라.''' 뭐, 그래도 어느 정도 배경지식을 가지고 읽으면 재밌다고 한다. 조언을 하자면, 단어의 원래 뜻 의미대로 이해하려 하는 것보단, 어떤 은유로 빗대어 쓰고 있을까 전체 맥락을 보고 이해하는 게 더 쉽다. 핵분열이나 상대성 이론 같은 걸 가져다 쓴다 해서 그 의미 그대로 쓰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냥 '현대 문명의 위기를 상징하는 아이콘' 정도로 생각하고 썼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고려하길. 그리고 책에서 드는 예시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좀더 쉬워진다.
2.6. 페미니즘 계의 비판과 반론
과학계 외의 입장에서는, 페미니즘 진영의 비판을 받았다.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를 시뮐라시옹이 난무하여 실재가 사라진 세상으로 보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 이미지에 과잉 순응해 그 모순을 폭로하는 것을 제시했다. 그런데 여성이 해방을 이루려면 기존의 여성적 이미지를 따라가고 과잉 순응해야 한다고 주장해 페미니즘계에서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있다...[16]
3. 외부고리
http://www.jabo.co.kr/sub_read.html?uid=114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