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왕후

 



'''호칭'''
장순왕후(章順王后)
'''시호'''
휘인소덕장순왕후(徽仁昭德章順王后)
'''사망지'''
녹사(錄事) 안기(安耆)의 집
'''본관'''
청주(淸州)
'''배우자'''
예종(睿宗)
'''아버지'''
상당부원군 한명회
'''어머니'''
황려부부인 여흥 민씨
'''능묘'''
공릉(恭陵)
'''생몰'''
'''기간'''
양력
1445년 2월 22일 ~ 1462년 1월 5일(16세)
음력
1445년 1월 16일 ~ 1461년 12월 5일
'''재위'''
'''기간'''
1460년 ~ 1461년
1. 소개
2. 생애
3. 요절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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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조선 8대 국왕 예종의 첫번째 왕비. 한명회와 황려부부인 민씨(黃驪府夫人 閔氏)의 딸로, 외조부 민대생은 고려의 명신이었던 대제학 문인공 민지의 5대손이었다.

2. 생애


1460년 세자빈(世子嬪)으로 간택되어 당시 세자였던 예종과 가례를 올리고 부부가 되었으니 이때 나이가 16살[1]이었다. 당대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한씨는 정숙한 성품에 아름다운 용모로 시아버지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책봉 이듬해인 1461년 음력 11월 30일, 왕위계승서열 2위의 원손[2]을 낳았으나 같은 해 음력 12월 5일 녹사(錄事) 안기(安耆)의 집에서 산후병으로 향년 16세로 요절했다. 조선의 역대 왕후 중 2번째로 수명이 짧았던 왕비다.[3]

3. 요절 이후


세조는 총애하던 며느리의 죽음에 비통해하며, 온순하고 너그럽고 아름다운 것을 장(章), 유순하고 어질고 자혜로운 것을 순(順)이라 하여 세자빈 한씨에게 장순(章順)의 시호를 내리고 장순빈(章順嬪)으로 삼았다. 후일, 장순빈의 제부이자 시조카인 성종이[4][5] 왕위에 오르자, 그녀를 장순왕후로 추존했다.
능은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 파주삼릉 내에 위치한 공릉(恭陵)이다. 장순왕후로 추숭되면서 왕후의 예에 걸맞은 제사를 지냈다고 하나, 애초에 세자빈의 묘로 지어졌기 때문에 다른 왕후들의 묘소보다 초라한 행색을 갖추었다.

[1] 가례 당시 남편이었던 예종의 나이는 만 10세.[2] 예종의 첫 아들로 예종이 만 11세(!) 때 처음으로 낳은 자식이다. [3] 가장 단명한 왕비는 헌종의 첫 왕비인 효현왕후(16세)다. 참고로 3번째로 단명한 왕비는 장순왕후의 동생이자 성종의 첫 왕비인 공혜왕후이다.[4] 공혜왕후는 성종의 정비이자 장순왕후의 동생으로, 동생이자 시조카며느리가 되는 기묘한 사이이다. [5] 아들 대인 연산군중종 형제는 각각 신수근의 누이(폐비 신씨)와 딸(단경왕후)과 혼인해. 처고모부와 처조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