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

 


'''생몰년도'''
1343 - 1401
'''이름'''
'''장옥(張玉)'''
''''''
'''세미(世美)'''
'''작위'''
'''영국공(榮國公), 이후 하간왕(河間王)'''
'''시호'''
'''충현(忠顯), 이후 충무(忠武)'''
'''고향'''
'''하남(河南) 상부(祥符)'''
중국 명나라(明) 지휘관. 원나라(元) 시절에는 추밀사원을 하고 있었는데, 결국 원나라가 망하게 되어 막북으로 도망칠때 '''따라 올라갔다.''' 이후 홍무 18년에 다시 귀환했으니, 제법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
명 초기의 명장 남옥(藍玉)이 북원을 쓸어버릴 때 종군해서 제남위 부천호를 받았고, 안경위 지휘첨사를 했다. 이후 변경에서 여러차례 공을 세웠는데, 그 과정에서 훗날의 영락제가 되는 연왕 주체와 친분을 맺게 되었다. 워낙 용맹한데다 계획도 잘 짜내 주체는 장옥을 상당히 신임했다고 한다.
이후 정난의 변이 일어나자 주체의 장수로서 대활약을 하며 경병문 등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이경륭과 벌어진 싸움에서도 활약을 했는데, 그러나 동창 전투에서 성용이 활약하며 정난군을 위기에 몰아 넣었고, 혼란한 전투 와중에 주체가 어디있는지 알지 못한 장옥은 있는 힘을 다해 싸워 수십명을 죽이다가 결국에는 창에 찔려 58세의 나이로 죽고 말았다.
장옥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주체는 '''눈물을 펑펑 흘렸는데''' 정난의 변 과정 중에 죽은 장수들은 그 외에도 몇명 있었지만 장옥을 잃었을때 만큼 크게 슬퍼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정난의 변에서 주체가 승리하면서 영국공에 봉해졌고, 이후 홍희제 시절에 하간왕에 충무라는 시호가 더해지고 동평왕 주능, 금향후 왕진, 영국공 요광효와 함께 영락제의 묘정에 배향되었다.